정민은 신령의 귀가 작동하는 10초가 10시간처럼 느껴졌다. 그 수많은 두근거림들. 한꺼번에 느껴보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더욱 충격은 컸다.
10초가 지났다.
“컥… 컥… 컥…”
정민은 화장실로 달려가 구토를 했다. 그리고 목소리에게 말했다.
“몇 명이야… 몇 명이냐고…”
“그건 사건을 열어봐야 알 수 있어.”
“도대체 그 수많은 두근거림들은 다 뭐냐고…”
“그것 역시 사건을 열어봐야 알 수 있어.”
“왜 그 두근거림들이 한 곳에 모여 있는 거냐고!”
정민은 울부짖었다.
“그것 역시 사건을 열어 봐야 알 수 있다니까. 처음부터 이야기했잖아. 사건을 보라고.”
“치사한 자식… 이렇게 해서라도 내가 사건을 보게 만들려고?”
“난 네게 도움이 되는 행동을 했을 뿐이야.”
“그게 진실이라는 걸 내가 어떻게 믿어?”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지 않아? 지금 당장은.”
“애초에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사건이긴 한 거야?
“그건 네가 해 왔던 행동들과 함께 주어진 사건이 무어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아니겠어?”
“넌 나를 절망시키는 방법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
“널 도우려고 한 거라니까?”
“절망의 바닥에서 사건을 열어보게 만들고, 그 결과에 더 절망하라고 이렇게 하는 거겠지.”
“그렇다면 사건을 열어볼 생각은 아직도 없다?”
“없어.”
“진심이야?”
“진심이야.”
“희생자들에게 미안함 같은 건 전혀 없어? 이제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될지에 대해 알게 되었잖아.”
“가장 아픈 곳을 건드리는구나. 그 고통과 지금 내가 겪는 고통을 저울에 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나 자신에게 가장 역겨운 일이라는 것을 알고 이야기하는 거지?”
“당연하지. 난 네가 사건을 열어보기를 바랄 뿐이거든.”
“역겨운 자식.”
“어떻게 나를 평가해도 상관없어. 아니 관심이 없다고 하는 쪽이 더 어울리겠군.”
“아무리 너에게 증오의 언어를 쏟아 부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겠지.”
“어떨 때는 상황파악을 이렇게 잘하면서, 어떨 때는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 전혀 몰라. 안타까워.”
“지금 해야 하는 일이 사건을 열어 보는 거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거지?”
“당연하지.”
“지금 당장 지금 들고 있는 스마트폰을 집어 던져버리고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싶어.”
“정말? 그러면 정말로 후회할 텐데.”
“지금껏 겪은 일들보다 더 내가 후회할 만한 일들이 있을 거라고? 그런 일들이 존재할 수는 있는 거야?”
“바닥 아래에 바닥이 또 있다는걸 모르는 인간들이 참 많다니까.”
“넌 역겨운 녀석이야.”
정민은 생각을 조금 바꾼 듯 말을 이어갔다.
“이건 너에게 설득되어서 하는 행동이 아니야.”
“그저 본능이 이끄는 대로 하는 행동일 뿐이야. 내 생각의 결론이 아니라.”
그리고 정민은 스마트폰을 켜서 사건 메뉴를 켰다.
처음에는 화면에 무언가가 서서히 나타나는 듯했다.
하지만 곧바로 화면에 나타나려 한 것들은 서서히 지워져 갔고. 마침내 화면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이게 뭐야? 이게 뭘 뜻하는 거지?”
“한 가지 힌트를 주지. 지금 텔레비전를 켜 봐.”
정민은 목소리가 말하는 대로 텔레비전을 켰다.
정규방송이 중단되고 뉴스 속보가 나오고 있었다.
그 내용은 바로, 정확히 두근거림이 느껴진 방향에 있는 커다란 백화점 지하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뉴스였다.
아직 불길이 잡히지 않아 지상으로 화염이 마구 올라오는 상황이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있었다.
“이건…”
“사건이 이미 끝났다는 의미야. 원래 사건이 끝나면 희생자들의 두근거림이 들리지 않거든? 하지만 지금은 특별한 상황이니까 너에게 능력을 잠시 줄게. 한 번 들어봐.”
목소리의 그 말과 동시에 신령의 귀 능력이 다시 켜졌다.
아직 수백의 두근거림들이 들리고 있었다.
정민은 자리에 주저앉아 고통스럽다는 듯 귀를 애써 틀어막으려 했다.
“이걸 들으라는건…”
“그래. 너와 내가 떠드는 시간 동안 네가 한 말들을 돌이켜 보라는 이야기지.”
수백의 두근거림 중 몇몇의 두근거림이 느려지고 있었다.
그리고 두근거림이 차례로 하나 둘 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만해…”
“아니. 넌 이걸 끝까지 들어야 해.”
“제발 그만해…”
“끝까지 들어.”
“제발…”
정민은 고통스럽다는 듯 바닥에 완전히 쓰러졌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숨소리를 마구 내뱉었다.
정민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제…발…그…만…해…”
“안 돼.”
목소리의 답변이 이렇게 차갑게 다가오는 것은 처음이었다.
두근거림은 서서히 작아지고, 서서히 느려지고, 이윽고 서서히 사라져갔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열하나…
“하나하나 두근거림이 사라져 가는 것을 느껴. 그리고 생각해. 네가 해 왔던 말과 생각과 행동들이 얼마나 큰 사치였는지.”
“그…만…”
정민은 마르지 않는 눈물을 닦을 힘조차 없이 바닥에 쓰러져 두근거림이 사라져 감을 하나하나 똑똑히 느끼고 있었다.
“하나하나 세어 보라고, 그들이 어떻게 죽어 가는지를 직접 느끼라는 게 아니잖아? 그저 그들의 심장 소리를 들어. 그리고 어떻게 그들이 사라져 가는지를 느껴.”
“제…발…”
“사건을 더 이상 볼 수는 없지만 어떻게 죽어 가는지는 알겠지? 그들은 불에 타 죽고, 연기에 질식해 죽고, 그리고 다시 사체는 불에 타고, 모두가 잿더미가 되겠지. 도저히 수습이 불가능한 잿더미.”
텔레비전에 나오는 뉴스 속보에서는 아직도 불길을 잡지 못하고 지하에 들어가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소방대원들의 모습을 카메라로 촬영하고 있었다.
그리고 화면에 나오는 자막은 다음과 같았다.
[400~500명 지하에 갇혀 있을 가능성 있음]
[구조에 난항, 불길이 너무 강해 지하 진입 실패]
[현재까지의 피해 규모로도 사상 최악의 화재 재난]
정민은 자막을 보면서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새도 없이 울기 시작했다.
“이…정도로…심각한…상황…이면…말을…했어…야…지…”
“난 충분히 이야기했어. 네가 듣지 않았을 뿐 아니야?”
“난…이런…일인…줄은…몰…랐…어…”
“넌 알 수 있었어. 8월 5일에, 그것도 누구보다 빠르게.”
“그…만…”
화면에서 갑자기 무언가가 폭발하는 소리와 함께 발생한 거대한 화염이 화재를 진압하는 소방대원을 집어삼켰다.
그 순간 하나의 두근거림이 사라졌다.
“아악… 헉…”
“인간이 만든 도구가 무섭다니까. 이런 장면도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제발… 그만…”
“넌 끝까지 들을 의무가 있어. 단 하나의 두근거림도 남지 않을 때까지.”
“이런…거였으면… 이런… 거였으면…”
“내가 이야기했지? 사건을 늦게 보아서 반드시 후회할 거다. 난 앞서 두 번이나 전화하면서 사건을 보기를 바랐고. 넌 나의 부탁을 완강하게 거절했어. 거절한건 바로 너야.”
두근거림은 계속 사라지고 있었다. 하나의 두근거림이 사라질 때마다 정민의 마음은 찢어질 듯한 고통에 휩싸였다.
“도대체…얼마나…많은…사람들이…죽어야…”
“그건 나도 몰라. 사건을 미리 열어 보았으면 알 수 있었겠지. 나중에 텔레비전을 통해 확인해 봐. 사망자와 실종자 수를 합치면 대략 비슷하지 않을까?”
“이건… 너무… 많아…”
“희생자가 갑자기 확 많아질 수도 있는 거 아냐? 저 정도의 재난을 처음 보는 거야? 그렇지는 않잖아.”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을 보고 있는 거고, 그걸 막지 않은 건 바로 너지.”
두근거림은 그 순간에도 사라지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두근거림이 사라져야 고요가 찾아올지는 정민도 알지 못할 정도였다.
“아직 지하에 생존자들이 많이 있는 모양이군. 하지만 불길을 잡는 건 무리인 거 같고. 그러면 그들에게 희망은 없는 셈이야.”
텔레비전으로 중계되는 화면에는 불길이 잡히기보다 더 커지는 장면만 나오고 있었다.
그 순간에도 두근거림은 하나씩 사라져가고 있었다.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거야…”
“몇 번을 이야기하게 만드네, 그러니까 사건을 왜 안 봤냐고…”
“내가… 딱… 이때… 사건을… 열어… 볼거… 라는거… 알고… 있었지…”
“몰랐어.”
“정말 몰랐어.”
“우연의 일치일 뿐이야. 우연의 일치.”
“이…역겨운…자식…”
“가장 네가 역겨워 하는 건 너 자신 아니야? 지금껏 겪은 고통이 최악의 고통이라고 생각하고 움츠러든 것. 하지만 세상에는 더 괴로운 일들이 많아요…”
그 순간에도 두근거림이 사라지는 것은 멈추지 않았다.
“악… 으윽… 커억…”
두근거림이 사라지는 속도가 갑자기 빨라지기 시작했다.
“생존자들이 버티지 못하는 순간이 드디어 오기 시작한 거 같군. 불행히도 저 위에 있는 사람들은 그걸 모르겠지만.”
“악… 제발… 그만…”
두근거림이 멈추는 속도가 빨라진 만큼 고통은 커져만 갔고, 그렇게 쉼새 없이 정민은 눈물 흘리기와 울부짖기와 목소리를 원망하는 말을 하는 것을 반복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이제 몇 남지 않은 희미한 두근거림만이 정민의 귀를 때리고 있었다.
“그래도 오래 버티는 사람들이 있구나. 인간의 생존본능이란.”
“얼마 가지 않을 거야. 조금만 기다려 봐.”
정민은 더 이상 울 힘도, 아무것도 할 힘도 남지 않았다.
그저 두근거림이 멈추는 것을 들을 뿐.
다섯… 넷… 셋… 둘… 하나….
희생자들의 마지막 단말마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했다.
그리고 마지막 두근거림이 멎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