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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단편
작가 : 마이랑
작품등록일 : 2017.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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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
작성일 : 17-07-28     조회 : 603     추천 : 0     분량 : 4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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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망자 352명, 실종자 168명.

 

  정민이 방치한 사건에서 만들어진 희생자들의 최종 인원이었다.

 

  정민은 고통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다. 며칠간 밥을 먹는 것조차 잊을 정도였다.

 

  “우… 으…”

 

  정민이 할 수 있는 말은 짧은 울음뿐이었고,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고통이 아직도 계속되는 듯이 온몸을 바들바들 떨며 겨우 버티고 있을 따름이었다.

 

  며칠이 지났을까. 정민은 다시 날짜를 세는 것을 잊었다. 그때 벨 소리가 울렸다. 목소리였다.

 

  갑자기 스피커폰이 자동으로 켜지더니 정민이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전화가 자동으로 받아졌다.

 

  “네가 지금 제대로 말할 상황이 못 되는 것 알아. 하지만 내일부터 출근이라는 점을 잊지 말라고 전화했어.”

 

  “듣고 있어?”

 

  “듣고 있다고 생각하고 계속 이야기할게.”

 

  “지금 아파하는 이유가 뭐야? 하필이면 그때 사건을 열어서? 아니면 심장 소리가 사라지는 것을 느껴서?”

 

  “그게 지금까지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가 될 만한 합당한 이유일까? 이런 사고, 세계 어딘가 에서는 며칠에 한 번은 일어난다고.”

 

  “그저 네가 사건을 여는 타이밍을 잘못 맞춘 것뿐이지.”

 

  “운이 없었던 거야. 그리고 운을 네 발로 차 버린 거기도 하지만.”

 

  “네가 지금 이렇게 엎드려 있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정말이라니까? 언젠가 다음 사건이 또 올 건데 그때도 이러려고?”

 

  “이렇게까지 답을 못할 상태가 될 줄이야…”

 

  “안타깝다. 안타까워.”

 

  “하… 그래. 네 안부도 물을 겸 전화한 건 맞지만 그래도 이럴 때 항상 이야기하던 거 있잖아? 그거 말하러 왔어.”

 

  “바로 너의 새로운 능력.”

 

  그 순간 정민의 온몸이 밝게 빛났다. 그래도 정민의 반응은 없었다.

 

  “능력의 이름을 소개할게. 능력의 이름은 ‘유령의 피부’야. 느낌이 딱 오지 않아? 그래. 이 능력은 널 투명인간으로 만들어 줄 거야. 더 이상 CCTV나 블랙박스를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언제나 걸림돌이 되던 것들 아니야? 너의 능력을 들킬까 봐. 이제는 안 그래도 돼. 네가 원할 때까지 타인에게 네 존재를 숨길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희생자의 코앞까지도 다가갈 수 있다고.”

 

  “단 하나의 제약만 빼면 말이지. 다른 사람과 직접 접촉을 하게 되면 바로 능력은 풀려. 그리고 1분간 능력을 사용할 수 없어. 왜냐하면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까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야.”

 

  “그래도 마음에 드는 능력이지?”

 

  “제발 마음에 든다고 해 줘…”

 

  “아, 맞다. 넌 아직 말할 힘조차 없지.”

 

  “내가 할 말은 다 했어. 다시 한번 이야기할게. 내일 출근 해야해. 잊지 마. 그럼.”

 

  목소리의 일방적인 대화가 끝났다.

 

  정민은 대화를 들으면서도 내용을 이해하지 못 하는 것이 아니라, 내용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안 된 듯하였다.

 

  다음 날. 정민은 그래도 본능적으로 몸을 이끌고 출근을 했다. 마스크를 쓰고, 감기에 걸렸다는 핑계로 최대한 말을 아끼며 있으려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6학년 2반에 다른 선생님이 들어와 있었다. 정민은 힘겨운 상황이었지만 학년 부장 선생님을 찾아갔다.

 

  “부장님… 방학 잘 보내셨죠…”

 

  “물론이지. 어디 아파? 목소리가 왜 그래?”

 

  “괜찮아요… 감기에요…”

 

  “다름이 아니라… 2반 선생님이 바뀌었네요… 무슨 일이지요…”

 

  “2반 선생님이 질병휴직을 하셨어. 어디가 아픈지는 자세히 듣지는 못했는데, 아무튼 그래서 이번 학기는 출근하지 않을 거래.”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정민은 당장이라도 울고 싶었지만 직장에서 우는 것은 안 되었길래 눈물이 나오려 하는 것을 최대한 참았다.

 

  ‘나를 보고 싶지 않아서 아예 휴직을 해 버린 걸 거야… 나 때문이야…’

 

  정민은 그렇게 또다시 마음속에 커다란 못이 박히는 기분을 느끼고 말았다.

 

  그렇게 하루를 겨우 보내고 퇴근한 정민.

 

  갑자기 지혜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어디가 아파서 쉬는 건지.

 

  그래서 자신의 능력을 쓰겠다는 결심을 겨우 했다. 그리고 전화를 걸었다. 익명으로.

 

  “여보세요.”

 

  목소리에 힘이 없어 보였다. 지금의 정민 자신처럼.

 

  “……………”

 

  정민은 말을 할 수 없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이상하네…”

 

  그리고 지혜는 전화를 끊었다.

 

  짧은 목소리를 들은 것뿐이지만 정민은 확신했다. 지혜도 자신과 같은 고통을 겪고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니 자신의 행동에 대한 후회가 다시 몰아닥치기 시작했다.

 

  지혜의 모습이 보고 싶다. 어떤 모습인지를.

 

  정민은 순간 생각했다. 목소리가 이야기한 능력들. 여기서 이용하면 지혜를 볼 수 있어. 순간 정민은 가지고 있는 도보비상연락망으로 지혜의 집 주소를 알아내고 지혜의 집으로 출발했다.

 

  유령의 피부를 이용하니 정말 아무도 자기 자신을 쳐다보지 않았다. 거기에 문을 여는 것도 자유자재. 마침내 지혜가 사는 아파트의 안까지 들어가 지혜가 사는 집 바로 앞으로 올 수 있었다.

 

  그리고 초인종을 눌렀다. 잠시 기다리니 문이 살짝 열리더니 지혜의 어머니로 생각되는 분이 나왔다. 아직 정민이 들어가기에 문이 충분히 크지 않았기에, 정민은 그곳에서 정복자의 눈을 사용했다.

 

  지혜의 어머니를 지배하는 데 성공한 정민은 문을 활짝 열고, 지혜의 어머니를 문 바깥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걷게 했다. 그리고 능력을 풀고 즉시 자기 자신은 문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까지 하니 자신이 집 안에 들어가는 것까지는 성공. 이제는 지혜의 모습을 볼 차례다.

 

  마침 저녁식사를 할 때라서 그런지 온 가족이 식탁으로 모였다. 가족은 모두 넷이었다.

 

  정민은 식사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로 했다.

 

  식사하는 내내 지혜는 숟가락을 겨우 들어서 밥을 먹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지혜야 밥 조금이라도 더 들어. 괜찮으니까.”

 

  “그래. 밥을 먹어야 몸도 마음도 나아지지.”

 

  “네…”

 

  지혜가 말을 겨우 꺼내고 식사를 천천히 했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정민의 마음은 또다시 고통의 한복판으로 빠져드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저 보고 싶어서 왔을 뿐인데, 이렇게 상처 입은 모습만 볼 줄이야.’

 

  ‘지혜도 이만큼 다쳐서 고통받고 있었어…“

 

  식사를 끝낸 가족이 다시 흩어졌다. 지혜는 자기 방의 방문을 조금 열어놓은 채 방으로 들어갔다.

 

  정민은 그 방문의 틈으로 지혜의 모습을 살짝 쳐다보았다.

 

  지혜의 모습은 정민이 방학 동안에 보낸 모습과 차이가 있지 않았다.

 

  고통 속에서 헤메는 그 모습. 절망 속에서 허우적대는 그 모습.

 

  정민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고 무어라 말이라도 꺼내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더 이상 이런 모습을 쳐다볼 수 없던 정민은 들어올 때와 같은 방법으로 지혜의 집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계속 눈물을 흘렸다.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 정민은 순간의 생각에 괜히 들어가서 서로가 고통받는 모습만 지켜봤다고 생각했다.

 

  집에 들어온 정민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다음날이 또 지나가고, 또 지나가고, 또 지나가기를 빌 뿐.

 

  하지만 또 다시 사건이 주어지는 그 날이 오지 않기를, 오지 않기를, 오지 않기를 바랄 뿐.

 

  하지만 언젠가는 사건이 주어질 것이고 또 자신은 어떤 방법으로든 그것을 해결하려 몸부림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상처를 입을 것이다. 어떤 방법으로든.

 

  그런 생각을 하는 중에 벨 소리가 울렸다. 목소리였다.

 

  “이제는 말할 힘이 나는 것 같아서 전화했어. 능력을 다른 목적으로 썼더군. 역시 이번에 주어진 능력이 내가 유용하다고 하지 않았나?”

 

  “그때 너의 그 한 마디가 증오스러울 뿐이야.”

 

  “아니지, 아니지, 그녀가 만약에 너와 잘 되었어. 기분이 좋아서 무얼 꾸미러 광복절에 그 백화점에 갔어. 그러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내 말은 다른 게 아니라 과거에 만약을 붙이고 생각하지 말라는 소리야.”

 

  “젠장…”

 

  “반박하지 못하겠지? 그렇게 되었으면 너의 고통은 더 커졌을걸.”

 

  “바닥 밑에 바닥이 또 있다는 건 이번에 절실히 깨달았어. 그러면 다음 달에는 더 깊은 바닥을 보여줄 건가?”

 

  “그건 네가 하기에 달려있지.”

 

  “결정적인 순간에 내 고통을 더해 주는 건 너였어.”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의 선택은 네 것이었잖아.”

 

  “그래 그건 맞아… 특히 이번 달 일은 더 그랬지.”

 

  “때로는 사건을 안 열어보는게 아무 일도 아니게 지나갈 수도 있는 거지만, 때로는 이런 고통을 맛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는 점을 알아둬.”

 

  “다음번에는 꼭 사건을 열어보라는 이야기로 들리네.”

 

  “말 속에 숨어있는 뜻을 잘 찾아내는군.”

 

  “말 안해도 그럴 거야. 이런 종류의 고통을 또 겪기는 싫으니까.”

 

  “부디 다음 달에는 희망적인 결과가 오기를 바라지.”

 

  “그거 진심이야?”

 

  “생각하기 나름.”

 

  “알아서 생각하지.”

 

  “그게 정답일지도 모르겠네. 아무튼 말할 힘까지는 생긴 걸 확인했으니 다음에는 조금 더 이야기를 하자고. 그럼.”

 

  목소리와의 대화가 끝났다.

 

  정민은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마치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마치 겪지 않는 고통을 강제로 겪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외로웠다. 정민의 입에서 나온 한 마디는 이것이었다.

 

  “지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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