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하루 뒤!
“……!”
나는 새로 얻은 정보로 인해 한동안 멍하니 상념에 잠겨야만 했다. 신주오가가 바로 내 원수 절대검신 독고황의 사후 제자들이 세운 가문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하아. 혼란스럽네, 정말.’
기분 정말 오묘했다.
신마혈사라 불리던 그 날의 전투로 인해 전생의 나는 확실히 죽은 것이 맞는다고 한다.
‘내가 다시 환생으로 기회를 갖게 된 것은 맞는데…….’
생각할수록 기가 막힌다.
어떻게 따지든 내 원수는 독고황인데 하필이면 환생을 그놈의 제자 중 하나의 후예를 택해서 해 버리다니!
‘어쩌지?’
복수할 대상이 이미 죽고 없어졌다는 소식에 김이 팍 샜다고 표현해야 하나?
솔직히 가부좌를 틀 정도만 되면 필사적으로 몸을 회복한 후 곧바로 십만 대산을 향해 군림의 길을 다시 한 번 떠나려고 했었다.
한데, 신마대전이 끝난 지 무려 70년이라고 한다.
세월이 벌써 그렇게 흘러 버렸다니!
십만 대산으로 향하던 내 생각이 확 바뀌었다.
“젠장. 가면 뭐해? 거기도 이미 다른 놈이 다 차지하고 있을 텐데.”
70년이란 시간이 흘렀으면 틀림없다.
신교의 주인은 이미 다른 누군가로 바뀌어 있을 것이다.
게다가 신교의 무공을 궁극으로 익혀 봤자 결국에는 규천마력 9성으로 끝이다. 신교 역사상 최고의 천재라고 불렸지만 결국 그 정도가 한계였다.
“그런데 여긴 또 다른 기회가 있단 말이야?”
잘만하면 죽는 순간까지 그토록 궁금해하던 절대검신 독고황의 모든 것을 아예 내 것으로 만들 기회가 있을 것 같았다.
“차라리 그게 더 낫지 않을까?”
기왕 무공을 바닥부터 다시 시작할 바에야 규천마력마저 마구 썰어 버리던 절대검신 독고황의 무공을 배운다면 더 좋을 것만 같았다.
“괜찮은 생각인데?”
생각할수록 현명한 판단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심장 한 쪽은 여전히 계속해서 부글부글 끓었다.
원수에게 복수를 하기는커녕, 그 후손 중 하나의 집안에 환생을 한 데서 오는 괴리감 때문이었다.
“복수를 하자니 현실적으로는 지독한 패륜이고 잊자니 심장이 터져 버리려고 하고…….”
진퇴양난도 이런 진퇴양난이 없다.
그때였다.
드르륵.
다시 한 번 문이 벌컥 열리고 한 무리의 애송이들이 들이닥쳤다.
“하하하. 용 형, 우리 왔다네.”
또 그 애송이들이다. 귀찮아 죽겠다.
내 표정이 이상했는지 애송들 중 하나가 나름대로 나를 위로하는 말을 꺼내들었다.
“하하하. 운적풍, 그 친구는 우리가 용 형을 대신해 혼쭐을 내주었다네.”
“크하하하. 맞네, 친구. 나 상관웅이 친히 운적풍 그 친구를 상대했었네.”
용무린이 아닌 신마 진무량으로 불릴 때였다면 감히 나를 향해 고개조차 들지 못할 정도의 애송이들 수다로 몇 가지 정보를 더 입수할 수 있었다.
‘나 참, 창피해서 이거 어디 원……!’
드디어 내가 왜 여기 이런 모양으로 누워 있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운적풍이라고 했지?’
독고황에게 배운 장법으로 일가를 이룬 가문 운룡장.
그 운룡장의 현 소공자인 운적풍이란 녀석이 나를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었다고 한다.
‘아무리 대가리 쓰는 게 전부인 놈이라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사내자식이 약관의 나이를 처먹도록 무공 수련 하나 하질 않았지?’
솔직한 감상으로는 맞아 죽어도 싸다고 생각한다.
힘도 없는 주제에 남을 돕는답시고 함부로 나섰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런, 이런……. 우리 용 형의 화가 아직도 풀리지 않은 모양이구려.”
“하하하. 사내라면 그 또한 당연한 일 아니겠나? 용 형제. 나는 다 이해하네.”
입만 열면 자꾸 그놈의 용 형, 용 형제를 찾는다.
듣기 무지하게 거북하다.
약관 스물의 나이로 환생한 것을 인정하기는 하지만 의식은 아직 고스란히 신마 진무량이었기 때문이다.
‘저 시건방진 주둥이를 콱 그냥!’
언제고 묵사발을 내 주리라.
마음은 굴뚝같지만 아직 먼 훗날의 일이다.
‘그건 그렇고 정보 좀 종합해 보자.’
며칠 동안 주워들은 정보가 머릿속에서 쫙 정리가 되기 시작했다.
일단 나 신교의 교주 신마 진무량은 70년 전에 죽었다.
현재는 나를 죽인 원수 절대검신 독고황의 다섯 제자 중 무공은 쥐뿔도 없이 대가리만 굴릴 줄 아는 비룡문이란 곳의 소공자 용무린으로 태어난 상태다.
‘처음부터 그렇게 태어나서 죽도록 얻어맞고 전생의 기억을 되찾게 된 것인지 아니면 이 몸이 죽고 나서 내가 바로 들어왔는데 시간이 이렇게 흐른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이 몸이 현재 나라는 것만큼은 사실이야.’
그리고 내가 누워 있는 이곳은 독고황에게 검법을 사사한 백리청우란 녀석이 세운 백리세가다.
‘빌어먹을! 기왕 원수 놈의 제자들 중 하나를 택해서 태어날 것이면 이곳에서나 태어날 것이지…….’
절대검신 독고황의 특기가 뭔가?
당연히 검법이다.
특히 절대의 경지라 자부하던 9성 경지의 내 규천마력을 쓱쓱 썰어 버리고 짓쳐들어 내 심장을 박살내 버렸던 독고황의 이름 모를 검법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했다. 미세한 움직임 하나까지 고스란히 내 머릿속에 들어 있었다.
‘그건 그렇고, 일 년에 한 차례씩 다섯 가문의 후기지수들이 모두 모여서 단합을 꾀하는데 올해는 백리세가에서 주최를 했다는 것이지?’
그래서 나 역시 여길 왔는데 그놈의 운적풍이라는 애송이와 시비가 붙었고 결국에는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다는 웃기는 이야기였다.
‘다른 세가는 이 회합에 가문의 어른들과 또래의 후기지수들도 많이 참여한 듯한데, 왜 내 집안인 비룡문에서는 딸랑 나 혼자 온 것이지?’
아니, 지금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래, 나를 이 꼴로 만들어 놓은 그 운적풍이란 애송이는 지금 어디에 있지?”
흠칫!
거침없는 내 말에 침상 옆에 서서 주절거리던 애송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신들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용무린의 새로운 모습에 놀라워했다.
그때였다.
드르륵.
“나를 찾았나?”
벌컥 문이 열리고 지금껏 코빼기도 뵈지 않던 운적풍이란 애송이가 안으로 들어섰다.
애 새끼, 눈깔 쭉 찢어진 것 좀 봐.
한 눈에 봐도 성깔 좀 있어 봬는 애송이가 틀림없었지만,
피식.
나는 풀썩 싱거운 웃음부터 나왔다.
이 신마님께 있어 이제 겨우 약관 언저리의 애송이란 성깔 나부랭이 있어 봤자 솔직히 웃길 뿐이었다.
“너냐? 운적풍이란 애송이가?”
아직 침대에 누워 있는 신세라 나름 정중하게 질문만 던졌다. 과거 신마 시절이었다면 녀석은 벌써 한 줌 피 떡이 되어 있을 것이다.
꿈틀!
녀석의 눈두덩이 사납게 요동쳤다.
하지만 이내 상황을 이해한 듯 야비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직 제정신이 아닌 듯하군. 내가 절제하지 못했네. 미안하네.”
말은 미안하다고 하는데 눈깔의 독기는 전혀 풀리지 않았다. 그렇게 짓밟아 놓고도 아직 나를 향한 분노가 다 풀리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오냐, 그래야지. 그래야 밟는 맛이 있는 거야.’
그건 그렇고 저 덩치는 내게 거짓말을 했네?
상관웅라는 이름의 덩치.
실컷 내 대신 운적풍을 손보아 줬으니 이제 그만 화 풀라는 식으로 떠들던 녀석.
“근데 대체 무슨 손을 봐줬다는 거지? 글자 그대로 정말 손만 봐준 건가? 사이좋게 술 한 잔씩 나누면서?”
의도야 알겠는데…… 어린 아이 어르는 것도 아니고, 그런 거짓말은 하지 말아야지.
“그, 그게…….”
나와 눈이 마주친 상관웅이 얼굴을 살짝 붉혔다.
기분 풀어주려고 한 말을 설마하니 저렇게 꼬투리를 잡을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됐고!”
내 눈은 다시 운적풍이란 애송이에게로 향했다.
녀석의 활활 타오르는 듯한 시선을 아무렇지도 않게 정면으로 받아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우드득. 와득.
부러졌다 겨우 이어지고 있던 뼈마디가 여기저기에서 비명을 질렀지만 차가운 심장으로 그냥 무시해 버렸다. 아니, 되레 씽긋 웃기까지 했다.
‘이 정도 고통쯤이야 신교의 지옥훈련에 비하면 싱거운 수준이니까…….’
몸을 다 일으켜 앉은 나는 운적풍이란 애송이의 눈을 똑바로 쏘아보며 손가락 세 개를 들어 올려 보였다.
“석 달.”
“……?”
“기다려라. 정식으로 널 찾아가도록 하마.”
“너 이 새끼……!”
애송이가 되도 않게 이를 드러냈다.
나는 녀석의 말을 가볍게 씹어 버린 후 하고 싶은 말을 마무리를 지었다.
“강호인의 은(恩)과 원(怨)은 확실히 정리할수록 좋지 않던가?”
“……!”
설마하니 이런 말까지 들을 줄은 정말 몰랐다는 듯 애송이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러더니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잠시 후에는 마치 미친놈이라도 되는 듯 격렬한 웃음을 터뜨렸다.
“크크큭. 크흐하하하하하!”
아, 그 애송이 녀석 정말 시끄럽게 구네.
독심술이라도 익혔나?
녀석의 웃음이 갑자기 뚝 끊겼다.
표독한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더니 씹어 뱉듯 말을 툭툭 내뱉었다.
“좋아. 기대하지. 석 달 후라고?”
애송이가 돌아서면서 다시 미친 듯 쳐 웃기 시작했다.
“크크큭. 크흐하하하핫!”
녀석이 사라지기가 무섭게 주변에 늘어서 있던 녀석들이 다투어 입을 열었다.
“이 친구야. 대체 어쩌려고 일을 이렇게 벌였는가?”
자꾸만 친한 척하는 이 녀석은 백리검가의 장손인 백리천월이었다. 자꾸만 날 측은한 시선으로 바라보곤 하는 백리소옥의 오라버니인 셈이다.
‘그래, 그래. 너는 내가 딱히 미워하지는 않으마.’
나를 위해 제 방까지 내어준 어여쁜 백리소옥을 보아서라도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
“크음. 친구가 이처럼 사내다운지 내 미처 몰랐네. 말만 앞세워 친구를 우롱한 나를 실컷 욕하게.”
이 녀석은 상관웅, 손 쓸 생각도 없던 놈이 말로만 정의로운 척하는 부류다.
‘됐다, 이 녀석아. 호기로운 척 좀 그만해라.’
녀석은 곰의 탈을 뒤집어 쓴 여우였다. 호기로운 척 말은 해도 눈은 번들거리며 가라앉아 있다. 그대로 믿다가는 십중팔구 뒤통수가 근질근질할 것이다.
“용 형, 무슨 복안이라도 있는 게요?”
얘가 그나마 제일 낫다.
벽소추.
독고황에게 도법을 사사한 벽운성이 세운 벽력도가의 장손인데, 진실 된 눈빛으로 보나 복안이 있느냐고 먼저 물어보는 신중함으로 보나 지금까지 봤던 녀석들 중 제일 갑이었다.
‘도법은 나도 직접 수련 안 해 봐서 모르겠는데 촌음을 아껴서 수련하고 또 수련해라. 신교에는 너만 한 애들 그야말로 천지다, 천지.’
언젠가는 알려 줄 날이 있겠지.
그때를 그리며 나는 씽긋 웃어 보였다. 아무것도 아닌 듯 툭 입을 열었다.
“그 따위 애송이 하나 때려잡는데 복안은 무슨!”
“……!”
애들이 왜 자꾸 입을 쩍쩍 벌리지?
내 말이 그렇게 안 믿어지나?
“지금부터 몸 좀 단련하면 충분하다. 석 달? 솔직히 그것도 꽤 넉넉하게 잡은 거야.”
내 눈을 지그시 들여다보던 벽소추의 고개가 천천히 끄덕여졌다.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눈빛! 좋아, 믿겠네. 부디 열심히 수련하게, 친구. 석 달 후 친구 옆에는 내가 함께 있도록 하겠네.”
어쭈? 제법인데?
여차하면 네가 나서서 내 대신 운적풍 그놈의 공격을 막으려고 하는 거지?
‘흠, 그런 정도로 생각이 있는 녀석이 왜 운적풍이 날 이 모양으로 만들었을 때는 나서지 않았을까?’
살짝 의심스런 생각이 스쳐 지나는 순간 벽소추의 입이 다시 열렸다.
“그때는 늦지 않도록 하지.”
아하! 이 몸이 쳐 맞을 때 너는 자리에 없었구나?
조금 늦게 도착한 거야? 알았어.
‘그럼 통과.’
기뻐해라 벽소추.
너는 앞으로 이 몸의 총애를 독차지하게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