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연재 > 무협물
신마귀환
작가 : 서경
작품등록일 : 2017.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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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화
작성일 : 17-07-21     조회 : 593     추천 : 0     분량 : 5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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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내 선전포고가 백리세가에 퍼지는 것은 그야말로 한 순간이었다. 백리세가의 가주까지 찾아와서 우려의 뜻을 피력했고 백리세가에 도착해 있던 상관세가의 인사들까지 돌아가며 찾아와 귀찮게 굴었다.

 상황이 그러니 당연히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특히 시비들이 소문에 열중했었는데, 일부러 들으라고 하는 것인지 자꾸만 내 방문 앞에서 수다를 떨어댔다.

 “우리 용 공자님 이제 어떻게 해?”

 “한없이 순하고 착한 분이신데 정말 큰일이네.”

 주로 내 염려였다.

 한 녀석도 내가 이길 것이란 생각은 안 했다. 시비들 사이에 석 달 후 내 패배는 이미 기정사실이었다. 죽지나 않으면 다행이라는 투였다.

 ‘신마 체면이 정말 말이 아니구나.’

 와, 진짜 자존심 팍 상한다.

 절로 주먹이 콱 쥐어졌다. 더불어 맹세 엇비슷한 걸 속으로 하게 되었다.

 ‘기다려라. 폭력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이 몸이 손수 보여 주도록 하마.’

 비 오는 날 먼지가 나도록 탈탈 털어 주리라.

 그런 즐거운 상상을 끝으로 병아리 눈물만큼 남아 있는 내공을 이용해 기경팔맥과 12정경의 현재 상태 파악에 나설 찰나였다.

 스르르.

 하여간 내가 무공 익히는 꼴은 죽어도 보지 못하겠다는 것인지 또 누가 들어왔다.

 무척이나 어여쁜 시비다.

 환생 후 처음으로 눈을 떴을 때 나를 당혹하게 만들었던 여인이나 차가운 백리소옥에 비하면 당연히 격이 많이 떨어지지만 예쁜 건 예쁜 거다.

 그건 그렇고,

 ‘하여간 하루라도 빨리 이놈의 집구석을 완전히 벗어나야만 해.’

 그러기 전에는 절대로 본격적인 수련에 돌입할 수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데, 넌 대체 뭔데 표정이 그러니?’

 나와 눈이 마주친 시비가 참으로 오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혹시라도 나를 막 사모하고 그러는 앤가?’

 그랬으면 정말 좋을 텐데…….

 ‘어림없겠지?’

 궁금증은 바로 풀렸다.

 시비는 눈물을 글썽이더니 풀썩 무릎을 꿇었다.

 “용 공자님 죄송해요. 저 때문에 공연히 공자님께서 곤욕을 치르셨네요.”

 아하, 네가 바로 운적풍이 술 먹고 대화 좀 나누려 했었다는 그 시비로구나?

 “곤욕은 무슨!”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솔직히 기억에도 없다.

 “저희 아랫것들은 다 알고 있답니다. 용 공자님이 아니었다면 저는 그날 운적풍 공자에게 끌려가서 몹쓸 짓을 당했을 것이에요.”

 오호라, 그랬단 말이지?

 ‘듣기로는 내가 주제도 모르고 운적풍이란 놈에게 먼저 시비를 걸었다고 하던데…….’

 그 이면에는 이런 일이 숨어 있었던 거다.

 ‘어쩐지…….’

 이런 허약한 몸뚱이를 가진 주제에 포식자에 가까운 운적풍에 대한 뜬금없는 시비는 역시 너무 생뚱맞은 일이다, 싶었다.

 “괜찮다.”

 과거의 용무린이었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겠지만 어쩐지 호감 가득한 시비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이런 말을 덧붙이고 싶어졌다.

 “네가 무사한 것으로 되었다. 어여쁜 네 행복이 지켜진 것만으로도 나는 족하구나…….”

 화르륵.

 시비의 얼굴이 도화빛으로 물들었다.

 ‘오오오! 먹혀들었어!’

 사내는 문지방 넘을 힘만 있어도 그(?) 생각이 든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듯 나는 70년 만에 실로 야릇한 상상의 나래를 폈다.

 “고, 공자니-임.”

 시비의 입에서 대뜸 코맹맹이 소리가 났다.

 ‘그래, 뛰어 들어. 내 품에 콱 안기란 말이야.’

 그냥 한 번 안아 보기라도 하자.

 약속할게. 솔직히 그 짓 할 힘도 없다, 아직은…….

 그때였다.

 드르륵.

 느닷없이 문이 활짝 열렸다. 청수한 인상의 중년인이 말도 없이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마, 말씀 나누시어요.”

 파바박.

 불에 덴 듯 화들짝 놀란 시비는 얼굴을 분홍빛으로 가득 물들인 채 그대로 밖으로 뛰어나가 버렸다.

 ‘아으, 아까워라!’

 조금만 시간이 더 있었다면 어쩌면 저 시비를 품에 안았을 수도 있었는데, 저 망할 놈의 인간 때문에 산통이 다 깨졌다.

 ‘넌 또 뭐야?’

 나는 억하심정을 한껏 담아 사내를 노려보았다.

 솔직한 심정으론 욕이라도 한 바가지 퍼부어 주고 싶었지만 아직 용무린이라는 녀석의 주변 인물들에 대한 정보가 적다 보니 나름 조심하는 거였다.

 “미안하구나, 아들아.”

 뭐라고? 아들? 아드-을?

 ‘미리 조심하기 참 잘 했네.’

 신주오가의 하나인 비룡문의 현 가주이자 지금 차지하고 있는 용무린이란 녀석의 아버지 용대명의 등장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무인들의 모임 따위에는 나가기 싫어하는 것을 잘 알면서도 억지로 보냈던 아비의 불찰이구나.”

 이게 대체 뭔 소리래?

 ‘나는 본래 여기 오기 싫어했다 이건가? 여긴 저 양반이 강제로 보낸 것이고?’

 대충 짚은 것인데 정확했다.

 용대명이 바로 신주오가의 화합이네 뭐내 하는 구질구질한 핑계로 서재를 떠나기 싫어하는 용무린을 억지로 백리세가로 내몬 장본인이었다.

 “백리세가에 도착하자마자 들었다. 운적풍 그 아이에게 석 달 후 대결을 청했다고?”

 어째 분위기가 말리기라도 할 기세다.

 “이미 결정된 일입니다.”

 먼저 선수를 쳤다. 딱 잘라 말했다.

 하지만 용대명 역시 물러서지 않았다. 얼음처럼 냉철한 태도로 묵직하게 말을 이었다.

 “우리 가문은 절대검신 조사께 지혜를 중점적으로 물려받았을 뿐 기초적인 십팔반무예 외에 따로 절기를 사사한 것이 없다. 석 달 후……. 그동안 부상을 다 회복하는 것만으로도 벅찰 것이 빤한데, 정말 가능하다고 보느냐?”

 부상회복에 더해 무공까지 익혀내어 운적풍 녀석을 박살내야 하는데, 사실 그것은 누가 봐도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긴 했다.

 그러나 나는 그딴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비룡문에 독고황의 독문무공 중 일부가 없다는 사실에 실망했고 아쉬웠을 뿐이다.

 ‘내 원수 절대검신 독고황의 무공 중 하나를 날로 먹을 절호의 기회였는데…….’

 가만, 그러고 보니 비룡문은 원수의 후예가 아닌 건가?

 ‘아니, 후예는 맞지. 무공을 받지 않았을 뿐이지.’

 살짝 헷갈린다.

 후예인 듯하지만, 또 한 편으로 생각하면 후예라고 볼 수가 없는 일이다. 무림이란 대지에 무예대신 지혜만 받아서는 결코 후예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중요한 것은 무예와는 거리가 먼 집안이라는 거잖아.’

 그 사실을 확실하게 알게 되자 생각이 살짝 달라졌다.

 원수에게 복수를 하기는커녕, 그 후손 중 하나의 집안에 환생을 한 것에서 오는 괴리감, 그 진한 괴리감이 조금쯤 희석되어 버린 것이다.

 ‘직계 혈손도 아니고 무(武)를 사사한 것도 아니잖아. 엄밀하게 따지면 절대검신 독고황이 비룡문 선조의 글 선생 정도인데 뭐…….’

 무인에게 적통후예란 무공을 오롯이 이은 사람이다.

 도대체가 직계 혈손도 아니고, 그 무예를 전부 이은 것도 아닌데 직계 또는 제자라 부를 수 있을까? 무인에게 단순히 지식 좀 나누어 받았다는 것 정도로는 후예 또는 제자라 부르기 뭣한 상황 아닌가?

 ‘무인이라면 당연한 법이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저런 생각을 하자니 괴리감이 다시 조금 더 희석되어 사라졌다.

 ‘그러면 대체 절대검신 독고황의 무공은 어떻게 얻어야 하는 거야?’

 속마음을 들여다보기라도 하는 듯 정보가 쏟아졌다.

 “조사님께서 잠드신 곳을 가꾸고 돌보는 것이 우리 가문의 숙명, 그것이 바로 조사님께서 네 증조부께 기관 진식과 진법을 사사하신 이유다.”

 이렇게 또 하나 정보가 수집되었다.

 ‘내 원수 절대검신 독고황이 죽어서 묻힌 곳이 따로 관리되고 있었구나? 그 안에 뭔가 있나 보지? 기관 진식 운운하는 것이 말이야?’

 어쩌면 내 원수 독고황의 무공이 긴 세월 동안 나만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팍 들었다.

 용대명의 입에서 고급 정보가 계속해서 쏟아졌다.

 무림을 진동시키는 신주오가에 대해 보다 정확히 알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교류라는 시답잖은 핑계로 1년에 한 번씩, 그리고 성산의 일로 10년에 한 번씩 신주오가의 후기지수가 모두 모이는 이유는 너도 잘 알고 있을 거다.”

 그걸 알면 내가 점쟁이이게?

 생각이야 그랬지만 내 표정은 흔들림이 없었다. 누가 봐도 잘 알고 있다는 듯 보일 거다. 미미하게 고개까지 살짝 끄덕이고 있었으니까.

 “사람은 가르치지 않으면 도를 잃고, 사람이 아닌 사람을 가르치면 오만하여 도를 누설한다…….”

 다소 생뚱맞은 말이었지만 나름 무공의 완성을 위해 이것저것 온갖 잡동사니 책 깨나 읽었던 사람이라 대뜸 알아들었다.

 ‘황제내경의 기교변대론에 나오는 말이잖아!’

 머리 좋은 인간들은 저래서 문제다.

 그냥 간단하게 축약해서 비인부전(非人不傳)이라고 말하면 될 것을 꼭 저렇게 있어 보이게 배배 꼬아서 두루뭉술하게 말을 한다.

 “합당한 사람이 아니면 진신절기를 전수하지 않겠다는 조사님의 뜻에 따라 10년에 한 번씩 후기지수들을 모아 성산에 데려간 것이 어언 일곱 번, 벌써 70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문은 열리지 않았지.”

 오호라. 이건 정말 희소식이다.

 독고황의 진신절기는 아직 누구에게도 풀리지 않았다.

 “그동안 본가는 무가(武家)가 아니라는 이유로 성산(聖山)에 입산하지 않았지만…….”

 용대명의 눈에 안타까움이 스쳤다.

 자신의 고집으로 장손을 10년의 회합에 보내 놓은 이 결정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는지 직접 보게 되니 마음이 아팠던 것이다.

 “미안하구나. 아비의 실수다. 글만을 벗 삼던 네게 너무 무리한 부탁이었…….”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무리한 부탁 아니야. 겁나게 잘 내린 결정이었다고!

 나는 잽싸게 용대명의 말을 중간에 툭 잘랐다.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어떤 부탁을 했었는지는 빤하다.

 “도전할 겁니다.”

 다소 의외라는 듯 휘둥그레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용대명의 얼굴에 그제야 살짝 미소가 돌았다. 조금은 흥분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무릇 대명천지를 태양이 밝힌다면 마땅히 밤에는 달이 두루 비추이는 법, 비록 문(文)으로서 부족함이 없는 가문의 수장이었지만 늘 무(武)를 그리워하였더니라.”

 당연한 말 아닌가?

 동서고금을 통틀어 글만 잘 써서 나라를 세웠다거나 천하를 통일했다는 말은 들어보질 못했다.

 ‘암. 문무겸전(文武兼全)은 당연한 거야.’

 힘만 있고 대가리가 돌아가질 않으면 어딜 가나 이용만 당하다가 죽기 딱 좋게 된다. 반대로 머리가 아무리 좋아도 정작 힘이 없으면 마지막엔 죽 쒀서 개 줘야하는 경우가 생긴다.

 “빼어난 머리를 타고 나는 대신 천형(天刑)과도 같은 병약한 몸을 타고나는 것이 우리 가문의 혈통, 하지만 전에도 네게 이야기했듯 조사님의 신공이라면 뛰어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터…….”

 젠장. 이것 하나만은 확실해졌구나.

 ‘운적풍이란 애송이에게 자신 있게 약속했던 석 달이라는 시간이 사실은 넉넉하지만은 않다는 거네.’

 아예 대놓고 천형과도 같은 병약한 몸이라고 하지 않나?

 어쩐지 아무리 약기운 때문이라고는 해도 너무 잘 까무러치다시피 잠에 빠져든다 했다.

 ‘하, 별 수 없이 다시 한 번 지옥훈련 치른다고 생각해야 하겠구나.’

 그렇지 않고서는 도저히 석 달 만에 나름 경지에 오른 운가 애송이를 짓밟아줄 정도로 육체를 단련하고 내공을 쌓기란 힘이 들 것이다.

 “가문의 숙원을 이뤄주기 위해 네가 노력해 주는 것만으로도 이 아비는…….”

 말과 동시에 용대명의 손이 내 손을 살짝 덮었다. 지그시 힘을 한 번 주었다. 단순히 체온이라고만 치부할 수 없는 따스함이 가득히 전해져왔다.

 “한량없이 고맙구나, 아들아.”

 아들아!

 ‘거 참…….’

 정말 이상도 하지?

 단순하기 짝이 없는 말 한 마디와 내 손을 한 번 살짝 잡아준 것뿐이었는데 기분이 대체 왜 이렇지? 왜 아득히 깊은 심연에서부터 뭔가가 울컥하고 치솟는 것이며 심장이 뜨거워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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