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연재 > 무협물
신마귀환
작가 : 서경
작품등록일 : 2017.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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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화
작성일 : 17-07-21     조회 : 556     추천 : 0     분량 : 5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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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처럼 만의 너그러운 생각에 한층 풍요로워진 표정을 지으며 나는 천천히 가부좌를 틀기 시작했다.

 그런데,

 “끄으응!”

 나도 모르게 비명이 살짝 흘러나왔다.

 젠장, 이거 아직 하나도 안 붙은 거 아니야?

 혹시나 하는 의심이 번쩍 든다.

 정신을 잃고 있던 시간이 이레에 정신을 차린 후 다시 사흘이 지났다. 모두 합해 열흘이나 흘렀는데도 아직 살이 푸들푸들 떨릴 정도의 고통이라니!

 “이, 이거 지옥훈련이 따로 없구나…….”

 아니, 그에 비하면 솔직히 이건 약과다.

 지옥훈련 과정 중에는 고통에 맞서는 법을 거쳐야 하는데, 그때는 아무런 표정을 얼굴에 드러내서는 안 된다. 얼굴에 한 조각의 고통이라도 떠오르게 된다면 그 즉시 탈락이다.

 “탈락은 곧 짧은 수명 혹은 죽음으로 직결되지.”

 잘 풀려야 하급 무사다.

 그 시절을 생각하니 이 정도는 차라리 행복할 정도다.

 단순히 뼈가 부러지고 근육이 조금 찢어진 정도의 고통만 참으면 되는 것이다.

 “좋아, 웃어 주지.”

 씨이익.

 그렇게 마음먹자마자 내 입꼬리가 저절로 위로 들렸다.

 고통을 발전의 자양분으로 삼아 버리니 눈빛은 한층 더 또렷해졌다. 백두간척에 홀로 선 듯 심장은 새파랗게 냉철해졌다.

 불사신기의 입문결이 스르르 떠올랐다.

 ‘기경팔맥 12정경은 모두 잊어라. 그것들은 모두 작은 강줄기에 불과할지니 꼭 붙들고 바로 세워야 할 관념은 오직 하나 바다뿐이다.’

 천마조사는 이 구절을 두고 전신세맥의 타통에 관한 깨달음일 것이라는 각주를 달아 두었다.

 그런데…….

 드르륵.

 다시 소리도 없이 문이 열리고 누군가 또 들어왔다.

 ‘아, 그 예쁜 시비다.’

 내 훤칠한 용모와 말발에 도화빛으로 얼굴을 물들이던 앙큼한 녀석.

 “공자니-임. 벌써 이렇게 일어나 앉아 계실 정도로 회복 되셨어요? 감축 드려요.”

 천성인지 정말 완전히 내게 반한 것인지 시비는 호들갑스럽게 다가와 세숫물을 내려놓았다.

 “하하하. 그래야 너와 오순도순 정원이라도 빨리 거닐 수 있지 않겠느냐?”

 흠칫!

 왜 갑자기 몸을 떨지? 그렇게 좋은가?

 하지만 시비의 입에서는 천만 뜻밖의 말이 흘러나왔다.

 “제, 제가 몸이 많이 약해서……. 고뿔 때문에 어딜 돌아다니기가 조금…….”

 으응? 갑자기 웬 고뿔?

 ‘그것도 이렇게 햇살이 따뜻한 봄날에 말이야.’

 생긴 것 답지 않게 정말 몸이 허약한 모양이다.

 “그러하냐? 그러면 다 나은 다음에 함께 정원을 거닐어 보도록 하자꾸나.”

 움찔!

 녀석이 다시 살짝 몸을 떤다. 그렇게 말해 주기를 기다렸었던 것 같다.

 그런데…….

 “세가의 규율이 엄해서 저는 그런 곳을 거닐 수가 없어요, 공자님. 웃전들에 걸리면 경을 쳐요.”

 “하하하. 염려 마라. 나와 함께인데 누가 뭐라 하겠느냐?”

 “코, 콜록! 아, 고뿔이 너무 심해서 저는 이만…….”

 “아, 그러하냐? 어서 들어가 쉬어라. 빨리 나아야 나와 함께 정원을 거닐지 않겠느냐?”

 “콜록! 콜록!”

 정말 심한 고뿔이었는지 시비는 황급히 방을 벗어났다.

 ‘거 참, 몸 정말 약하네…….’

 그렇게 멍하니 잠시 있을 무렵 다른 시비 하나가 불쑥 문을 열고 들어왔다.

 “공자니-임. 세숫물 내어 갈게요.”

 와, 이 시비도 꽤 어여쁘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목소리다. 내 방 밖에서 날 자꾸만 걱정해주던 시비들 중 하나인 듯싶다.

 “문 밖에서 날 염려해 주던 것을 들었다.”

 “어마? 들으셨어요?”

 녀석의 얼굴이 발갛게 물들었다.

 ‘후훗. 너도 날 마음에 두고 있었구나.’

 이놈의 인기란!

 “그래, 내 몸이 다 나으면 함께 가까운 강가에라도 나아가 바람이라도 쏘이자꾸나.”

 흠칫!

 녀석도 역시 살짝 몸을 떨더니 갑자기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아, 심한 고뿔 때문에 도저히…….”

 “이런! 너도 그러하냐?”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병아리 눈물만큼의 내공 덕에 완벽한 탐색은 어렵겠지만 손끝의 감각만으로도 간단한 진맥 정도는 가능할 터, 도와주어야겠다.’

 의원은 아니었지만 기의 흐름에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도 더 해박한 지식을 지닌 나다. 체질에 맞는 약재 몇 가지 정도는 추천해 줄 수 있다.

 “어디 손목 좀 내밀어 보거라!”

 비틀.

 “아, 현기증……. 너무 어지러워서 저는 이만…….”

 견디기가 힘들다는 듯 시비는 곧바로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 버렸다.

 “거 참, 몸들 참 허약하네 진짜…….”

 점심이 들어올 때는 또 다른 시비가 들어왔다.

 뭐, 주근깨가 조금 많긴 했지만 나름 귀여운 얼굴이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인상을 딱딱하게 쓰고 다니니? 웃으면 꽤 귀엽겠는데 말이야.’

 쟁반에 들고 온 간단한 보양식을 내려놓은 후 굳은 얼굴로 몸을 돌리는 시비를 보자니 문득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얘도 고뿔인가?’

 “너도 요즘 고뿔로 고생을 하…….”

 “세가의 규율이 엄하여 시비들은 세가의 귀빈들과 함부로 말을 섞을 수 없습니다.”

 신주오가의 일원답게 참 엄격한 가풍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이만…….”

 혼자 덩그러니 남게 됐다.

 구수한 향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용봉탕을 향해 막 수저를 드리우는 순간 문득 신교에서 겪었던 몇몇 기억들이 아스라이 떠올랐다.

 

 -소녀 갑자기 찾아든 고뿔이 너무 심하여 오늘은…….

 -내궁의 규율이 지엄하니 먼저 신녀님께 호숫가를 거닐어도 되는지 여쭈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물어보는 애들마다 다들 그러했다.

 어쩜 그리 하나 같이 몸들이 허약한지 물어보는 족족 고뿔에 오한 심지어는 원인 모를 복통까지 다양한 고통을 호소하며 물러났다.

 “신교나 중원이나 하여간 여인들은 모두 고뿔을 달고 사는 모양이로구나. 쯧쯧쯧. 하여간 여기나 거기나 무슨 놈의 규율들은 그리도 뻑뻑한지 어디 원…….”

 사람 사는 것은 신교나 중원의 거대 세가나 다 똑같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났다.

 

 ***

 

 백리세가의 내원을 담당하는 주방에 용무린을 담당했던 시비 3인방이 은밀히 모여들었다.

 “나를 위기에서 구해준 것은 고맙긴 해. 그런데 알고 봤더니 호색한이야, 호색한!”

 “맞아. 내 손목을 막 잡아 보려고 하더라니까? 아예, 대놓고 내밀어 보래 손목을……. 내 참 어이가 없어서, 내가 유곽의 기녀야 뭐야?”

 “삼절일학의 성품이 대쪽 같고 고고하다더니, 겪어 보니 말짱 거짓말이더라니까?”

 “맞아. 눈에 띄는 시비마다 족족 추파나 던지고 말이야. 얼굴만 잘생기면 다야? 정말 기분 나빠.”

 “바보들아. 그러니까 나처럼 처음부터 아예 딱딱하게 나갔어야지.”

 “어떻게 그러니? 산수화라도 한 점 얻으려면 너무 그래서는 곤란해.”

 “맞아, 내가 대삼이랑 사귀면서도 왜 꾹 참고 용 공자님에게 그렇게 생글생글 웃었는데? 그게 다 이름 높은 삼절일학 용무린 공자님의 낙관이 찍힌 산수화라도 한 점 얻기 위해서란 말이야.”

 “아유, 산수화고 뭐고 나는 이제 더는 못하겠다. 어찌나 자꾸만 추근거리는지!”

 “약관의 나이가 다 되도록 무예도 닦지 않아 힘도 없어 뵈던데…….”

 “그러게 말이야. 어디 밤에 힘이나 제대로 쓰겠어?”

 “맞아. 오호호호호호!”

 시비들의 수다는 그렇게 한동안이나 이어졌다.

 

 ***

 

 용봉탕을 뒤로 물린 후 나는 다시 기를 쓰고 자세를 다잡았다.

 우드득. 투득.

 다시 한 번 땀을 후두둑 흘리고 나서야 겨우 가부좌를 틀 수 있었다.

 ‘어디, 다시 한 번 시작해 보도록 할까?’

 불사신기의 입문결 시…….

 드르륵.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이 없이 다시 문이 벌컥 열렸다.

 달콤한 사향 냄새.

 그 안에 살짝 감춰진 은은한 박하 향이 훅 밀려든다.

 그녀다. 이 방의 본래 주인이자 백리세가의 금지옥엽인 백리소옥. 그녀가 이틀 만에 다시금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거다.

 ‘근데 쟤는 왜 날 제 침대에 뉘인 것이지?’

 날 바라보던 그 오묘한 동정의 눈빛이 답인가? 아니면 아끼던 시비를 구해준 일에 대한 대접인가? 그것도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나?

 아니, 젠장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왜 다들 내가 뭐만 하려고 하면 다들 귀신같이 알고 나타나서 방해하고 지랄이냐고!’

 꼭 뭐 좀 제대로 해 보려고 하면 기다렸다는 듯 이때다, 하고 나타나 방해질이다. 정신을 차린 후 사흘 내내 이 모양이니 정말 돌아 버리겠다.

 ‘하루라도 빨리 이 저주받은 집구석을 떠나야만 해.’

 그러지 않고서는 석 달이란 시간이 촉박함으로 숨통을 조여 올 것이다.

 나는 인상을 확 긁어 버렸다.

 그런데 백리소옥은 되레 의외라는 듯 고개를 살짝 갸우뚱 틀고 마네?

 ‘내가 성질내는 게 우스워 보이나?’

 정말인지 입가에 살짝 미소까지 짓네?

 ‘이게 정말 콱!’

 사나이 성질 한 번 진짜 제대로 보여주려는 순간 백리소옥의 입이 한 발 빨리 열렸다.

 “벌써 의연하게 자리에 앉으시다니……. 고통이 심하실 터인데, 의지가 정말 대단하시군요.”

 목소리에서 진심이 느껴진다.

 ‘하여간 용무린 이 녀석은 대체 어떻게 살아왔기에 이 정도 고통 이겨냈다고 의연을 찾고 의지가 대단하다는 소리를 듣고 그러냐?’

 한심하다는 생각과 동시에 치밀어 올랐던 노기가 슬그머니 가라앉았다. 과거 신마 시절에는 있을 수 없었던 일인데, 아무래도 규천마력이 깡그리 사라지면서 생긴 부작용 중 하나인 모양이다.

 “운가 애송이 밟아 주려면 이제 슬슬 움직여야 할 시간이라서 말이야.”

 놀라긴! 그러다 너 내가 진짜 운가 애송이 밟아주는 걸 보면 까무러친다?

 “지금 영존(令尊)께서 10년의 회합에 참여하러 오신 여러 어른들과 대화를 나누고 계셔요.”

 대화? 내게 말씀하셨던 그 선물 때문인 건가?

 “다과를 내어드리는 과정에 잠깐 영존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는데, 비룡문의 가주님께서는 나머지 신주오가의 일원들에게 절대검신 조사님의 심결 중 하나인 호심결을 용 공자님께 잘 풀어서 전해주시길 주장하고 계셔요.”

 오오오! 독고황의 심결 중 하나인 호심결!

 우리 아버지께서 그걸 이놈들에게서 빼앗아서 날 주시려는 게로구나!

 “하-아!”

 좋은 일에 웬 한숨이야?

 “용 공자님. 운적풍 공자와의 석 달 후의 약조, 그냥 잊으시면 안 되나요?”

 그냥 잊으라고?

 “어림도 없는 소리! 그건 내 영업 방침이 아니야!”

 왜 또 놀라지?

 얘는 고뿔이 아니라 심장 쪽이 조금 약한가?

 살짝 벌어진 입을 잽싸게 다물더니 백리소옥은 제법 단호한 목소리로 다시 한 번 쓸데없는 잔소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용 공자님의 체질이 무공을 익히기에 적합하지 않음은 이미 비밀도 아니에요.”

 “나도 잘 알아! 정말 한심하지. 하지만 상관없어.”

 “어떻게 상관이 없어요? 체질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상승의 무공을 익힐 수조차 없는데?”

 “그건 네가 걱정할 일이 아니야. 신경 꺼!”

 “뭐예요?”

 백리소옥의 입에서 살짝 앙칼진 목소리가 터졌다.

 하지만 이내 내가 무공에는 완전히 젬병이었다는 것을 떠올렸는지 목소리를 낮추며 말을 이었다.

 “겨우 호심결 하나를 믿고 복수를 그리신다면 그건 정말 큰 착각이에요 용 공자.”

 “겨우 호심결 하나?”

 이거 어째 느낌이 쌔하다.

 “비룡문은 무가가 아니니 그 가치에 대해서 잘 모르시겠지만, 호심결은 절대검신 조사께서 다섯 가문에 모두 전수하신 일종의 호연지기를 기르는 심공에 불과해요. 그걸 익혔다고 단숨에 무적이 되는 신공이 아니란 말이에요.”

 헐! 나 원 참 기가 막혀서…….

 ‘호심결이 겨우 그런 거였어?’

 김이 팍 새는 느낌이다.

 백리소옥은 쐐기라도 박겠다는 듯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기경팔맥 12정경은 작은 강줄기에 불과할지니 생각할 것은 오직 하나 바다뿐이다…….”

 어? 이, 이거 뭐야?

 살짝 빠지고 상이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확실히 불사신기의 입문결이 맞다.

 ‘한데 그걸 어떻게 쟤가 알고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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