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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이르면 모든 물줄기가 하나가 되나니 마음을 창대한 바다에 이르게 하여…….”
쌍둥이를 보는 느낌이랄까?
미세하게 빠지거나 살짝 다른 부분이 있긴 하지만 틀림없는 불사신기의 입문결이었다.
“휴우, 이건 뭐 주해고 뭐고 할 필요조차 없이 호연지기를 말하는…….”
“그 다음!”
“예?”
“그 다음, 네가 알고 있는 호심결 전부 읊어 봐!”
잠시 내 눈을 빤히 바라보던 백리소옥은 같은 신주오가 사이에서는 비밀도 아니라는 듯 거침없이 호심결을 처음부터 끝까지 읊어 나가기 시작했다.
‘이, 이럴 수가!’
불사신기다.
비록 입문결에 불과하지만 불사신기가 틀림없다.
‘어떻게 신교 조사동에 잠들어 있던 불사신기의 입문결을 얘들이, 아니 절대검신 독고황이 알 수가 있는 거냐고?!’
냉철한 내 머리가 무섭게 회전했다.
몇 가지 가능성을 면밀하게 살핀 후 가장 유력한 가설 하나를 추출해냈다.
‘불사신기가 어떻게 해서 신교 조사동에 삼대 지존신공과 함께 들어 있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거 하나만은 확실해. 불사신기는 독고황 아니 그놈의 선조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어!’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같을 수는 없는 거다.
“이게 다예요. 보통 우리 신주오가는 어린 아이들에게 본격적인 무공을 가르치기 전 호심결을 베풀어 준비를 시키는 데 사용해요. 아시겠어요?”
정말 그게 다란 말이지?
신교 조사동에 잠들어 있는 불사신기 원본처럼 오단공까지 있는 것이 아니라?
“좋아!”
불사신기의 입문결처럼 전신의 뼈를 몽땅 부러뜨리라는 구절은 호심결엔 없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답은 이미 나왔다.
“알겠다고요?”
불사신기다. 그걸로 간다.
“아버지께 내 말 좀 전해줘.”
설득이 통했다고 여긴 것인지 녀석의 입가에 다시금 보기 좋은 미소가 떠올랐다.
“뭐라고 전해드릴까요?”
“호심결 없이 간다고 말씀 드려. 그것이 내 의지라고.”
“알겠어요.”
백리소옥이 발딱 일어섰다.
“마지막으로 나는 나만의 길을 걷겠노라 말씀드리면 알아들으실 거야.”
“예-에?”
넌 정말 잘 놀라는 아이구나?
눈 좀 고만 부릅떠라. 너무 크니 쏟아질 것처럼 보여 불안 불안하단 말이다.
“아직도 복수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인가요?”
“당연하지 않나? 나란 남잔 포기를 몰라. 나는 마음먹은 것은 기필코 해내지.”
“고리타분한 선비 쪽인 것이야 진즉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앞뒤 분간도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인 줄은 미처 몰랐네요.”
“네 멋대로 생각해.”
“뭐예욧!”
눈에 힘 풀어라. 인상 잔뜩 써 봐야 귀엽기만 하다.
“나한테 인상 쓸 것 없다. 어서 우리 아버지께 내 말이나 좀 전해줘라.”
“보자, 보자 하니까 정말! 아까부터 말투가 그게 뭐죠? 나이도 내가 두 살이나 위인데, 이제는 감히 명령까지 내리는 건가요?”
음, 살짝 놀랐다.
‘나보다 두 살 아래가 아니라 두 살 위였어? 얼굴은 무지 앳되어 보이는데?’
나는 새삼스런 시선으로 백리소옥을 찬찬히 살폈다.
확실히 몸매는 성숙한 여인의 그것이었다.
‘너는 고뿔보다는 가문의 규율 쪽이겠구나.’
대화라도 나누자고 하면 어쩐지 그런 말이 튀어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팍 들었다.
“운적풍 그 망할 인간과의 혼사에 대한 반발심에 내 침대에 뉘였더니 내가 그리 우습게 보이나요?”
아하, 그래서 날 네 방 네 침대에 뉘인 것이었구나?
피식.
싱거운 미소와 함께 나는 그대로 침상 위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우드득. 투드드득.
아직 채 붙지 않은 부러진 뼈마디가 노래를 불렀다.
침상에 누워만 있는 동안 약해질 대로 약해진 근육과 신경이 화들짝 놀라 한꺼번에 들고 일어난 것 같다.
‘끄-으-응.’
비명이 절로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나는 끝까지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았다. 그 흔한 신음소리 한 번 흘리지 않았으며 결국엔 내 발로 당당히 일어서며 말했다.
“명령과 부탁도 구분하지 못하나?”
“뭐예요?”
“됐다. 내가 직접 하지.”
-내공심법에 의한 운기도 결국엔 호흡, 우리가 평소 살기 위해 하는 것도 결국엔 호흡, 두 가지가 무엇이 다르던가? 바다는 바다일 뿐 그저 바다가 되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