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연재 > 무협물
신마귀환
작가 : 서경
작품등록일 : 2017.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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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화
작성일 : 17-07-21     조회 : 571     추천 : 0     분량 : 5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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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물

 

  1

 

 

 “운적풍 그 애송이에게 석 달 후 내가 찾아갈 때까지 목이나 잘 씻고 있으라고 전하시지.”

 “뭐, 뭐야?”

 “이런 발칙한!”

 그 뒤로도 뭐라 뭐라 떠들어 댔지만 나는 그들에게서 시선을 거둬 버렸다. 아버지의 눈만 지그시 바라보았다. 내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계시던 아버지의 고개가 천천히 끄덕여졌다.

 “오냐, 아들아.”

 “잘 선택하신 겁니다, 아버지.”

 “아비는 네 눈빛을 믿는다.”

 씨이익.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얼굴에 다시 한 번 미소가 걸렸다.

 용대명. 나를 믿어주는 내 아버지.

 비록 무(武)와는 담을 쌓고 지낸 분이시지만, 참 좋은 아버지가 아닌가 싶다.

 그 길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아버지께서는 나와 함께 밖으로 나섰다.

 “용 가주님!”

 “이렇게 그냥 가시면…….”

 백리장천과 벽운성이 용대명과 용무린을 붙잡았지만 두 부자간은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기라도 한 듯 동시에 무시해 버렸다.

 “조심하거라.”

 “예, 아버지.”

 나를 부축해 주시지는 않았지만 보조를 맞추어 천천히 움직이시는 모양새로 보아 용대명은 언제라도 내가 쓰러지면 붙잡아 주려는 의도가 엿보였다.

 ‘아기자기하니 꽤 볼만하네.’

 우리 두 부자는 천천히 걸어 작은 가산(假山)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정원으로 이동했다.

 온갖 기화요초가 심어진 가산과 함께 어우러진 아름다운 연못은 신주오가의 하나인 백리검가의 위세가 고스란히 드러나 보였다.

 “무척 아름다운 곳이로구나.”

 “무척이라기보다는 그냥 저냥 볼 만 한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단일 규모로는 천하제일이라 할 수 있는 신교의 교주였던 내 입장으로서는 솔직한 감상이었다. 신주오가의 하나라고는 하지만 백리세가의 정원이 신교의 웅장함과 같을 수는 없었으니까.

 “역시, 대쪽 같은 네 입장에서 보자면 청빈을 중시하는 우리 집안과는 무척 다른 이곳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어? 그게 아닌데?

 “하여간, 이리 좀 앉자꾸나.”

 말과 동시에 아버지께서 나를 부축해 앉혔다.

 살이 찢겨도 지독한 내상을 입었어도 언제나 홀로 모든 것을 감당했던 내가 단순히 자리에 앉는 것조차 부축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는 사실이 조금 웃겼지만 이상하게 가슴은 따뜻했다.

 “아직 너는 잘 모르겠지만, 사실 호심결을 원했던 것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단다.”

 그럴 만한 이유?

 내 귀가 단숨에 쫑긋 섰다. 아버지의 목소리에 즉시 집중하기 시작했다.

 “호심결은 신주오가에 모두 베풀어진 조사님의 심공, 모든 가문이 호연지기를 기르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지.”

 “사실은 알려진 것과는 다르다는 뜻이로군요.”

 “바로 보았다. 본디 호심결은 삼단공까지 있느니라.”

 “삼단공?”

 오단공이 아니라?

 “십여 년 전 이 아비는 가문의 서고에서 비밀스러운 공간을 찾아냈단다.”

 “그 안에서 호심결을……?”

 “그렇단다. 호심결의 나머지 이, 삼단공이 그 안에 들어 있었다. 조사님의 선물이었지.”

 “선물…….”

 “그래, 선물. 조사님께서는 비룡문을 세우신 네 증조부님의 병을 고쳐주실 생각이셨던 것으로 생각된다.”

 “왜 직접 주시지 않고 비밀스럽게 숨겼을까요?”

 “조사님의 그 깊은 뜻이야 우리가 어찌 알겠느냐? 다만, 천기까지 짚을 수 있으셨던 분이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아비는 생각하는구나.”

 “……!”

 “오랜 연구 끝에 이 아비는 호심결에서 한 줄기 빛을 보았느니라. 병약하고 허약한 육신을 타고나는 가문의 천형을 뛰어 넘어 무가로의 변신을 이룰 길이 바로 거기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정말 그걸 알아볼 수 있었단 말이야?

 변변한 내공심법이나 무공 한 가지도 없는 가문에서?

 “그런 판단을 내리신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모든 물은 결국엔 바다로 흘러드는 것 아니겠느냐? 비록 무공에는 문외한인 집안이지만, 우리 가문에는 기관지학과 진법이 있음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흠, 만류귀종을 말하는 것인가?

 “만류귀종!”

 역시 그렇구나.

 “비록 펼쳐 보이진 못하지만 학문으로서의 무(武)는 어느 정도 알아볼 눈은 지녔다고 자부한다.”

 일리 있는 말이었다.

 기관지학 역시 그러하지만 특히 진법은 음양오행의 운용을 비롯해 무예의 이치와도 많은 부분이 일맥상통하는 것이었으니까.

 “거기에 더해…….”

 아버지의 목소리가 살짝 낮아졌다.

 “성산의 기문진이 호심결에 반응을 보인다는 점에 주목해야만 한다.”

 “예에? 호심결에 반응을 보여요?”

 “그렇다. 그간 내내 아무런 반응이 없었던 성산의 기문진이 10년 전에야 반응을 보인 까닭이 바로 호심결에 있다고 이 아비는 생각한다.”

 놀라운 이야기였다.

 기관지학과 진법으로 일가를 이룬 비룡장에서조차 지난 수십 년 동안이나 비밀을 풀 수 없었던 기문진이 호심결 따위에 반응을 보인다니!

 “이것이 바로 조사님의 마음이다.”

 아버지께서 갑자기 품속에서 무엇인가를 꺼내더니 내게 슬쩍 내밀었다.

 “이런 귀물까지 남기셨으니 어찌 조사님의 마음을 의심하겠느냐?”

 조그마한 자단목함이 아버지의 손에 들려 있었다.

 ‘이거 어째 분위기가 영단인 것 같은데?’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두 근 반 세근 반 한다.

 “칠채보왕단, 절대검신 독고황 조사님께서 남기신 서신에 따르면 이 칠채보왕단과 호심결 삼단공이라면 우리 가문 사내들에게 내려오는 천형인 음양쇠맥증을 능히 고칠 수 있다고 하셨다.”

 이런 제엔-장. 희소식과 비보가 동시에 전해지다니!

 ‘칠채보왕단은 분명히 영단이 맞긴 한데, 다른 것도 아니고 음양쇠맥증이라니!’

 음양쇠맥증은 다른 말로 12쇠맥증이라고도 한다.

 인체의 주요 경혈인 12정경 모두가 쇠약하고 딱딱하게 굳어 어떤 무공도 익힐 수 없는 그야말로 하품 중의 하품인 육체를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급부라고 해야 할까?

 육신의 기가 원활하지 않으니 당연히 그나마 원활한 두뇌의 기혈이 극도로 발달하게 되고 무예 같은 육체적인 활동보다는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게 된다.

 그야말로 대쪽 같은 학자에게나 어울리는 체질을 비룡문의 사내들은 타고난 것이다. 독고황에게 진법과 기관지학을 전수받았던 것도 공연한 일이 아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 셈이다.

 ‘이렇게 되면 석 달의 시간도 조금 힘들겠는데?’

 이젠 살짝 조바심마저 들었다.

 지금부터 지옥수련을 다시 한 번 돌파한다는 생각으로 내공을 모으고 육체를 단련해야만 운가 애송이를 짓밟아줄 수 있는데 솔직히 음양쇠맥증까지 극복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많이 촉박했다.

 ‘믿을 것은 칠채보왕단밖에 없는 건가?’

 자단목함을 열어보니 묘하게 여러 빛을 뿜어내는 신비한 단약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청아한 향만으로도 심신이 편안해지는 것이 보통 약은 아닌 듯했다.

 “조사님이 남기신 서신에는, 의성 화타가 제자 번아에게 전수했던 청점(靑黏)을 이용한 칠엽청점산(漆葉靑黏散)에 다시 일곱 가지 특별한 재료를 더해 빚은 영단으로 다른 것은 몰라도 음양쇠맥증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잡을 수 있다고 하셨느니라.”

 좋아, 절대검신 독고황 그 인간이 그렇게까지 말했다니 믿지. 암 믿고말고.

 “칠채보왕단에 호심결의 힘이라면 가문의 장손인 너의 음양쇠맥증을 고칠 수 있으리라 생각했…….”

 아버지의 말씀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칠채보왕단을 집어 들었다.

 “호심결은 필요 없다고 말씀드렸었지요?”

 “……무슨 복안이 있더냐?”

 “예, 아버지.”

 “가문의 비원을 푸는 일이다. 물어도 되겠느냐?”

 어떻게 하지?

 ‘내가 완벽한 호심결 오단공을 이미 알고 있다고 말씀드려도 괜찮을까?’

 생각해보니 조금 위험했다.

 아버지조차 삼단공을 끝으로 알고 계시지 않나?

 그 말은 곧 호심결을 은밀히 남겨놓은 절대검신조차 호심결의 끝이 삼단공이라고 알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 된다.

 ‘물론 따로 깊은 뜻이 있어서 삼단공까지만 남겨 놓았을 수도 있긴 하지.’

 다른 네 가문은 겨우 입문결 하나만 호심결이란 이름으로 알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그런 상황에 다 털어놓기엔 설명하기도 어렵고 위험했다.

 별 수 없어서 나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가문의 서고에서 비밀 공간을 찾아낸 것은 아버지 혼자만이 아닙니다.”

 “……!”

 용대명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더니 이내 환한 얼굴이 되었다. 고개를 크게 끄덕여 보였다.

 “하지만 호심결 삼단공까지는 알고 있어야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아비는 그래야만 조사님의 심모원려가 깃든 안배가 다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나쁠 것 없다.

 ‘어차피 내공은 불사신기로 갈 건데 뭐…….’

 백리소옥의 입을 통해 입문결은 다 들어봤고, 나머지 이단공과 삼단공의 다름 또한 알고 넘어가는 편이 사, 오단공을 익힐 때 도움이 되리라.

 “알겠습니다, 아버지.”

 “잘 생각했느니…….”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용대명은 품속에서 얇은 책자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이, 이것이……?”

 “그래. 이것이 바로 절대검신 조사님께서 남기신 호심결의 나머지 이단공이니라.”

 나는 잽싸게 책자를 받아 펼쳤다.

 마른 솜이 물을 빨아들이듯 그 안에 적힌 것들을 읽어 들였다.

 ‘역시, 많은 부분에서 살짝 다르거나 빠졌어.’

 신마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내 입장에서 보자면 신교의 조사동에 들어 있던 불사신기가 더욱 정본에 가깝다는 느낌이었다.

 ‘이것은 마치 불사신기의 거친 일면을 가다듬어서 완화시켜 놓았다고나 할까?’

 전신의 뼈를 완전히 부러뜨려라, 불사신기만 믿고 바다로 나아가라 등등 파격적인 일면을 없앤 후 순화시켰다고 보면 딱 맞을 것 같았다.

 ‘대체 왜 그랬을까?’

 방을 나서며 살짝 맛을 보았던 것을 생각하면 쓸데없는 짓을 한 셈이다. 불사신기는 순화시킬 필요가 없이 그대로 무식하게 나아가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건 나중에 생각하자.’

 중요한 것은 일단 이걸 완전히 내 머릿속에 넣어두는 일이다.

 ‘일단은 몽땅 외운다.’

 펄럭. 펄럭. 펄럭.

 다른 사람이 볼 때면 그냥 대충 넘기기만 하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짧은 사이 모든 글자들이 머릿속에 쏙쏙 들어왔다.

 ‘과연 음양쇠맥증. 12정경 모두가 쇠약한 대신 두뇌의 혈도들만 활발한 덕인가?’

 그런 것 같았다.

 불과 세 차례, 각 단계마다 수백여 글자에 달하는 호심결을 나는 단지 세 차례 훑어보는 것만으로 머릿속에 모두 집어넣을 수 있었다.

 “벌써 다 외웠느냐?”

 “예.”

 당연하지 않나?

 다른 것도 아니고 불사신기와 한 몸이나 다를 바 없는 호심결이다. 이미 오단공까지 외우고 있는 내가 그 정도도 못할 까닭이 없다.

 “과연 내 아들, 달리 너를 삼절일학이라 부르는 것이 아니겠지. 너를 믿는다.”

 너무나 당당한 내 대답에 용대명은 환한 미소로 책을 넘겨받더니 이내 갈기갈기 찢었다.

 “이제 이 책은 제 사명을 다 했느니…….”

 틱. 틱. 틱. 화르륵.

 찢는 것으로도 모자라 용대명은 화섭자를 꺼내 찢어 버린 호심결에 불을 붙여 버렸다.

 “이 하늘 아래 호심결 이, 삼단공을 알고 있는 사람은 이 아비와 너 둘밖에 없다.”

 “잘하셨습니다.”

 가지고 있어 봐야 누군가에게 들킬 염려가 더 크다.

 혹여 호심결에 이, 삼단공이 더 존재하고 그 가치가 음양쇠맥증을 단숨에 호전시킬 수 있는 공능이 있음을 다른 가문이 알기라도 하면 곤란할 테니까.

 ‘무가가 아니라 얕본 나머지 몰래 침입해서 훔쳐가려 들지도 모르는 일이야.’

 상관종명과 운전추 같은 인간들을 보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것이라 생각한다.

 “칠채보왕단도 어서 복용하거라.”

 그러면 좋을 텐데 칠채보왕단과 같은 영단을 먹기엔 장소가 좋지 않았다.

 “이곳을 나서서, 조금 안전한 곳을 찾아 하겠습니다.”

 “하긴, 그게 좋겠구나.”

 “소지품을 챙기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거라. 이 아비는 백리장천과 벽운성 두 사람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오겠다.”

 “예, 아버지.”

 아버지와 그렇게 헤어진 나는 일단 백리소옥의 방으로 들어왔다. 주변을 돌며 소지품이랄 것도 없는 문방사우와 옷가지 등을 챙겼다.

 ‘검이나 도가 아니라 벼루와 먹, 붓과 종이라니…….’

 새삼 내가 신마 진무량이 아님이, 이제부터는 비룡문의 소공자 용무린으로 살아야 함이 피부로 느껴졌다.

 그때였다.

 드르륵.

 언제나 그러했듯 혼자 조용히 뭘 못하게 만들겠다는 것인지 다시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어라? 저 여인은?’

 내가 이 방에서 눈을 떴을 때 처음으로 마주했던 여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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