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연재 > 무협물
신마귀환
작가 : 서경
작품등록일 : 2017.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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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화
작성일 : 17-07-21     조회 : 615     추천 : 0     분량 : 5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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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신마다

 

  1

 

 

 나를 보고 눈물을 글썽이며 손발을 닦아 주던, 잽싸게 밖으로 나가 먹을 것을 마련해 왔던 여인, 그런데 왜 그동안은 얼굴도 보이지 않았을까?

 “가신다고 들었어요, 공자님.”

 고새 그 말을 들었어?

 ‘세가의 규율이 무척 엄하다고 했었지 않나?’

 백리세가란 곳은 고뿔과 함께 소문 역시 참 빨리 도는 곳이구나, 싶다.

 “가야지. 시간이 조금 촉박해서 말이야.”

 “석 달 후를 말씀하시는 거죠?”

 피식.

 “그래.”

 “……!”

 표정이 왜 또 그러니?

 혹시, 너 나 좋아하고 막 그러는 거니?

 그렇지 않고서야 왜 날 볼 때마다 저런 표정을 짓는 것일까?

 “그날 밤, 읊어 주셨던 시와 따뜻한 말씀 정말 너무나 감사했어요, 공자님.”

 이건 또 무슨 소리야?

 “……?”

 내 눈은 자연스럽게 다시 한 번 동그래졌다.

 ‘너는 대체 정체가 뭐냐?’

 여인의 입술이 살포시 열렸다.

 “문은 무보다 강하다고 하셨죠? 자공의 연환계, 방통의 연환계가 그와 같다고 말이에요.”

 ‘으응? 내가 네게 그런 말을 했었어?’

 진짜 나였다면 그런 말을 할 리가 없다.

 ‘이 풍진 세상, 무력이야말로 모든 것에 앞선다. 힘을 먼저 갖춰라. 세상은 이긴 자들만의 세상, 한 번의 패배로 죽거나 모든 것을 잃을 뿐이다.’

 아마도 그렇게 외쳤으리라.

 “깨달음이 무척이나 컸어요. 그동안 아득히 잊고 지내던 무엇인가를 그 기회에 되찾았다고나 할까요?”

 사르륵.

 말끝에 얼굴은 왜 또 그렇게 곱게 물들이는 거니?

 ‘음, 시간이 나면 산책이나 해 보자고 한번 해 볼까?’

 고뿔 흔적도 없어 보이는데 이 아이는 어쩌면…….

 “결심했어요. 돌아가는 즉시 가주님이신 저희 아버지께 말씀드릴 거예요. 본 제갈세가는 신주오가나 무림맹 사파연합 등에 소속되지 않는 문파들을 모아 중도연합을 추구해야 무림의 한 축을 지킬 수 있는 기둥이 될 수 있다고요.”

 아! 넌 제갈세가의 여식이었었구나.

 ‘어쩐지!’

 그냥 시비라기엔 너무 어여쁘고 품위가 있더라니.

 방긋.

 여인이 나를 보며 함초롬 웃었다.

 “언제고 찾아와 제 초상화를 그려주신다던 약속 꼭 지켜 주어야 해요. 알았죠?”

 초상화?

 내가 그런 약속까지 했었다고?

 상관세가 여식에게도 그러했다더니 이 여인에게도 그런 황당무계한 약속을 했었어?

 “그, 그게…….”

 내가 또 무어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여인은 발딱 자리에서 일어나 버렸다. 밖으로 나가려는 듯 문고리를 붙잡더니 다시 살짝 몸만 돌리고 말을 꺼냈다.

 “그 말씀을 믿고 아버지께 상관세가와의 혼약을 없었던 일로 해 달라고 간청할 거예요.”

 화르륵.

 말끝에 여인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되도록 빨리 찾아와 주세요. 알았죠?”

 ‘나는 아직 네 이름도 몰라 이 아가씨야!’

 기껏 찾아가 봐야 유행성 고뿔 어쩌고 아니면 가문의 규율이 지엄 어쩌고 할 것이면서 무슨…….

 “기다릴게요.”

 드르륵. 탁.

 그 말을 끝으로 여인은 밖으로 나가 버렸다.

 “……!”

 나는 멍한 얼굴로 굳게 닫힌 문을 바라보았다.

 피식.

 그러다가 풀썩 웃음이 터졌다.

 그 여인이 사라진 자리에 새하얀 손수건 한 장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체 저 손수건은 언제 떨어뜨린 거람?”

 우윳빛 뽀얀 광채가 도는 손수건.

 은은한 장미향이 배어 있는 그 손수건을 보는 순간 내 눈은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설마, 그건 아니겠지?’

 우윳빛 뽀얀 광채가 도는 실은 천하에 드물다.

 나는 재빨리 손수건을 집어 들고 확인을 해 보았다. 활짝 펼쳐 잡아 당겼다.

 티이잉.

 손수건이 내 미약한 힘으로도 한없이 늘어나려들었다. 허심(許心)이라 쓰인 글귀가 우스꽝스럽게 길어졌다.

 “이, 이건?”

 천잠사다. 내공을 주입하면 어지간한 도검으로도 끊어내기 힘들다는 천잠사로 된 손수건이었다. 아직 몇 가지 더 확인을 해 봐야만 하지만 진실로 천잠사라고 하면 내겐 아주 유용한 기물이 되어줄 것이다.

 씨이익.

 내 입가에 절로 환한 미소가 돋았다.

 “하여간 내 말은 참 안 듣는 아가씨란 말이야.”

 이 방에서 처음으로 눈을 떴을 때도 그랬다.

 내 말은 듣지도 않은 채 자신의 할 말을 노래하듯 쏟아내더니 이내 음식을 해서 대령하기까지 했다.

 “어쨌든 좋아. 상관세가와의 혼약을 없었던 것으로 하겠다고 했지? 네가 싫다면 그 누구도 널 갖지 못하도록 내가 만들어 주마.”

 마음이 살짝 더 바빠졌다.

 석 달 후 운적풍이란 애송이를 완전히 박살내야만 하고 아직까지 이름도 모르는 저 여인이 싫어하는 혼사도 막아 줘야만 한다.

 ‘어쩌면 쟤는 고뿔이나 규율 따위 운운하지 않을 것 같은데 말이지…….’

 그런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없던 힘이 마구 솟구치는 기분이다.

 “자, 그럼 어디 출발해 볼까?”

 우드득. 투드득.

 여전히 움직일 때마다 뼈마디가 울부짖는다.

 하지만 확실히 고통은 확 줄었다. 움직임도 조금은 편해졌다. 불사신기 입문결 그것도 초입에 불과하지만 계속해서 동공의 형태로 운용한 덕인 것 같았다.

 “아버지께서 조금 늦으시네? 모처럼 만의 만남이라 인사가 길어지시나?”

 자주 왕래할 만큼 가까운 곳에 세워진 가문들이 아니니 그 정도는 이해해 주어야 할 듯싶었다.

 “여기서 이러고 있을 일이 아니다. 나가자.”

 가부좌까지 틀고 해야 하는 정식 수련은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하다. 불사신기가 지닌 동공의 묘용을 취하기 위해서라도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던 나는 그대로 밖으로 나섰다.

 “저쪽이 신주오가의 핵심들이 회의를 하던 대의청 쪽으로 가는 길이었지?”

 회의는 그것으로 끝났을 것이다.

 아마 지금쯤이면 다른 곳에서 흩어져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고들 있겠지.

 자박자박

 때마침 저만큼 앞에 안면이 익은 시비 하나가 지나가는 것이 눈에 띄었다. 세숫물을 떠올 때마다 얼굴을 붉히던 바로 그 시비였다. 반가웠다.

 ‘물어보자.’

 나는 손을 번쩍 들며 시비를 불렀다.

 “마침 잘 되었구나. 반갑다. 여기에서 어디로 가면…….”

 “코, 콜록! 아, 현기증이…….”

 “이런, 고뿔이 아직도 낫지 않았구나.”

 “옮길까 두렵습니다, 공자……. 콜록. 콜록콜록.”

 저러다가 허파가 튀어나오는 것이 아닐까 싶게 거친 기침을 연신 토해내던 시비는,

 성큼성큼. 파바박.

 진정으로 내게 고뿔을 옮길 수 없다는 듯 잽싸게 발을 놀렸다. 어디론가 금방 사라져 버렸다.

 “거 참, 굉장히 사려 깊은 아이로구나.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데…….”

 소문은 빨리 퍼지지만, 이런 것을 보면 확실히 백리세가의 규율은 엄한 편이 맞는 것 같았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을 향해서 가 보자.”

 시비들 말고 사내들을 만나게 되면 아버지가 담소를 나누고 계신 곳을 알아낼 수 있거나 밖으로 향하는 길목을 찾아서 기다릴 수도 있을 것이다.

 “확실히 웅장한 면은 신교의 그것을 따라갈 수 없지만, 아기자기하고 오밀조밀한 맛은 있구나.”

 가산을 중심으로 배치된 연못과 정원도 그러했지만 백리세가의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괜찮은 편이었다. 안락하고 화사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이 하나도 없지?”

 어째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것만 같다.

 왜 시비들은 물론이고 남자 하인들조차 하나도 눈에 띄지 않는 것일까?

 “맞다. 내가 있던 방이 백리소옥의 침실이었지?”

 그렇다면 이곳은 직계 혈손들이나 귀빈들만 주로 사용하는 내원이라는 뜻이다. 시비나 하인들을 비롯해 사람들이 적은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때였다.

 패액. 쉬쉬쉭. 팡. 파파팡.

 많이 익숙한 소리와 함께 드디어 사내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익숙한 소리에 끌린 내 발은 저절로 그곳으로 향했다.

 “형님 내 장법 어때요?”

 “오! 많이 좋아졌는데?”

 “확실히 기초는 뗀 것 같다.”

 “그렇죠? 이제 어지간한 놈들 정도는 다 눌러 버릴 수 있을 것 같죠?”

 “방심하지 마 인석아. 나머지 가문들의 방계들도 다 너 정도는 해!”

 장법 어쩌고 하는 말로 보나 나머지 가문들의 방계들 어쩌고 하는 말을 듣자니 답이 바로 나왔다.

 ‘운룡장?’

 10년에 한 번씩 이뤄지는 성산에서의 일도 있고 하니 아예 올해는 직계 방계 할 것 없이 경험삼아 몽땅 끌고 온 모양이구나.

 피식.

 풀썩 웃음이 났다.

 ‘잘들 놀고 있어라.’

 고만고만한 수준에 어떤 짓들을 하고 있을 것인지 빤해 보이는데 굳이 구경할 필요도 없어서 나는 그대로 발을 돌려 버렸다.

 ‘내가 너희들을 만나는 날은 운적풍 그 애송이의 피를 보는 날이나 될 거다.’

 그때였다.

 “으응? 거기 누구냐?”

 내가 움직이는 소리를 들었는지 한 녀석이 고함을 버럭 질렀다.

 “감히 무공 수련을 엿보다니!”

 “거기 서랏!”

 타닷. 타다다닷.

 운룡장의 방계 식솔들로 보이는 사내 한 무리가 우르르 몰려 나왔다. 순식간에 내 앞을 가로막았다.

 “이런 시건방진, 어라? 이게 누구야?”

 “와하하. 삼절신공을 석 달 만에 대성해서 돌아오겠다고 만천하에 선포한 서생나리 아니신가?”

 “아하! 백면서생 주제에 감히 소장주님께 도전을 했다던 그 멍청이?”

 찧고 까불고 잘들 놀고 있다.

 ‘이것들을 그냥 콱!’

 꾸우욱.

 내 두 주먹이 저절로 불끈 쥐어졌다.

 “여긴 어쩐 일이신가?”

 “뭐 빤하지 않습니까, 형님? 저렇게라도 본 장의 무공을 몰래 훔쳐 파훼할 방법을 찾겠다는 것이겠죠.”

 뭐가 어쩌고 어째?

 너희 운룡장의 무공을 몰래 훔쳐서 내가 뭘 어떻게 한다고? 파훼-에?

 ‘절대검신의 진신절기도 아니고 그저 대충 아무거나 하나 던져준 것을 받아 익혀 세워진 너희 운룡장의 장법에 내가 겁을 집어 먹어서?’

 기가 막혀서 코가 다 나올 지경이다.

 피식.

 실제로도 코웃음이 살짝 나왔다.

 그게 녀석들의 심경을 조금 더 긁은 모양이었다.

 “이런 시건방진 서생 놈이 감힛!”

 “붓이나 잡던 서생 나부랭이가 감히 본 운룡장의 장법을 비웃다니!”

 더 들어주기가 고역이다.

 “그래서?”

 나도 모르는 사이 발 하나가 슬쩍 뒤로 빠졌다.

 우드득. 트드득.

 채 붙지 않은 뼈마디와 누워만 있어 약해진 근육과 신경이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요란법석을 떨었다. 하지만 그대로 무시했다.

 “……!”

 “……!”

 설마하니 저런 태도로 되물어 올 줄은 몰랐던 모양인지 녀석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병아리 같은 새끼들!’

 후우우.

 고요하고도 은밀하게 호흡을 고르며 불사신기의 입문결 요결에 따라 병아리 눈물 같은 내공을 전신으로 고르게 흘려보냈다.

 “석 달 후는 석 달 후고, 너희들과는 지금 여기서 해결을 보자고?”

 긴장 때문일까? 아니면 불사신기의 묘용 덕?

 고통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더없이 병약해진 근육에 촌각의 폭발력을 제공할 힘까지 천천히 고여 들기 시작했다.

 후우우우우-우.

 호흡이 무섭도록 깊이 가라앉았다.

 더없이 차가워진 내 눈은 일말의 흔들림도 없이 녀석들을 한꺼번에 시야에 담았다.

 트드득. 우드득. 꽈아아악!

 불사신기로 아직 완전히 바뀐 것은 아니지만, 그 요결에 따라 충실히 움직여 준 나의 아주 작은 내공은 단련도 아니 되고 누워만 있어 약해진 근육과 신경에 촌각의 폭발력을 기어이 제공해 줬다.

 ‘이제 되었다.’

 준비 끝. 어떤 방법으로든 마지막 살풀이는 가능하다.

 “이런 시건방진 서생 놈이 감힛!”

 “오만 방자한 놈!”

 “네가 정녕 죽고 싶은 것이냐?”

 픽.

 나도 모르게 다시 한 번 코웃음이 터졌다.

 ‘너희들 따위가 나를?’

 물론 지금이라면 가능하겠지. 몸 상태가 이보다 더 엉망일 수는 없는 시점이니까.

 ‘하지만 순순히 곱게 그 어쭙잖은 장법에 맞아 죽어줄 수야 없는 노릇 아니겠어?’

 지금 너희들 서 있는 자세만 봐도 답은 빤히 나와.

 ‘이제 겨우 이류 턱걸이?’

 다섯 놈들 중 불과 한 녀석만이 이류 완숙의 경지쯤 되어 보인다. 나머지는 다 거기서 거기다.

 ‘이렇게 쉽사리 심각한 상황으로 일이 치달아 버리게 된 것이 살짝 어처구니없긴 한데…….’

 나는 걸어 온 싸움 앞에 절대로 꼬리를 말지 않는다.

 비록 용무린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지만 그 점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거다.

 “덤벼라!”

 그렇게 살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통쾌하게 죽으리라!

 “깡그리 짓밟아 주마!”

 나는 신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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