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연재 > 무협물
신마귀환
작가 : 서경
작품등록일 : 2017.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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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화
작성일 : 17-07-21     조회 : 605     추천 : 0     분량 : 6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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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사흘 후.

 용무린은 정주의 외곽 홍등가의 한 지하 장원 중앙에 설 수 있었다. 지하 장원은 가득 들어찬 도박꾼들의 열기에 이미 후끈 달아올랐다.

 “우와아아! 패왕! 나는 네게 걸었다!”

 “삼절일학을 아예 삼절고혼(三絶孤魂)으로 만들어 버려줘 패왕!”

 “지랄! 삼절일하-악! 배당이 자그마치 150대 1이야. 제발 이겨줘라, 제발.”

 “씨발, 누구라도 좋으니 그냥 화끈하게 피 좀 보자!”

 “와하하하. 대가리를 깨버렷!”

 온갖 종류의 광기 어린 악다구니가 용무린을 향해 뜨겁게 쏟아졌다.

 ‘저 중에는 정주의 세도가 자제도 있고 고위 관리 놈들도 있을 거야. 다들 숨어서 즐기고 있겠지?’

 심지어는 군문의 실력자들도 정체를 숨기고 끼어 이 은밀한 유흥을 즐기고 있을 것이다.

 불법에 불과한 무투가 이토록 자유로이 치러지고 도박까지 함께 이뤄질 수 있는 바탕에는 바로 평화롭기만 하고 밋밋한 그들의 삶 속에서 이곳에서야말로 화끈한 자극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리라.

 후웅. 후웅.

 “우와아아아-악!”

 용무린의 상대로 나선 7척 거구의 사내가 철퇴를 두어 번 휘두르더니 거친 포효를 터뜨렸다.

 ‘좋아, 최소 이류는 됨직한 내공이로구나.’

 제 아무리 타고난 용력이 있다지만 철퇴란 무기를 저렇게 바람 소리가 날 정도로 빠르게 휘두를 수 있다는 것은 내공이 돕지 않으면 힘들다.

 ‘충분해.’

 저 정도 용력과 내공이라면 불사신기의 수련 상대로 최적이라 할 수 있다.

 씨이익.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제법 옛 생각이 나는구나.’

 신교에서의 어린 시절 겪었던 지옥훈련은 거의 매일이 이와 같은 무투의 연속이었다.

 단일 세력으로서 신교가 천하제일이라는 위치에 올라설 수 있었던 데에는 기본적으로 그와 같은 지옥수련을 딛고 올라선 자들이 구름처럼 많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때-앵!

 드디어 종이 울렸다.

 “차아아!”

 거구의 사내가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가벼운 보법으로 거리를 좁혔다. 하늘 높이 들어 올렸던 철퇴를 그대로 찍어 내렸다

 후우웅.

 철퇴를 따라 묵직한 공기가 따라 움직였다. 내공이 깃들었기 때문이다. 흑웅의 앞발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 그대로 맞아 주었다가는 필시 머리가 터져 나갈 것이다.

 ‘어차피 맞아 주긴 해야 하지만, 처음부터 맞아 주기만 하면 많이 싱겁겠지?’

 수련 때문에 뼈가 많이 부러져야만 하는 입장이지만 그렇다고 누군가와의 결투에서 무참하게 지는 것 또한 내 영업 방침이 아니다.

 “일단 좀 맞자!”

 타닷. 휘릭.

 한 걸음에 사내의 가슴을 향해 뛰어 들었다. 그 단순한 움직임에 간격이 사라졌다.

 빠박. 와득.

 녀석의 명치와 겨드랑이에 두 번의 주먹이 꽂혔다. 마지막에 뻗어낸 주먹이 거슬러 올라가 턱을 살짝 돌렸다.

 흔들.

 7척 거구의 덩치가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좋았어.’

 동백산에서의 한 달 수련으로 이 육체에 대한 적응이 완전히 끝이 났다. 삑사리가 더는 나지 않는다. 원하는 위치에 원하는 만큼의 힘을 고스란히 전해 줄 수 있다.

 타닷. 스슥.

 완전히 끝내 버릴 수도 있었지만 나는 중심을 잃은 것처럼 살짝 뒤로 빠졌다.

 움찔.

 ‘방금 내 목이 돌아가 버릴 수도 있었다.’

 그 점을 직감했는지 덩치가 살짝 몸을 떨었다. 행동이 조심스러워졌다.

 “아우, 삼절일학 이 멍청아! 거기서 끝냈어야지!”

 “삼절일학 힘내라! 내가 한 냥이나 걸었어! 내가 한 냥이나 걸었다고!”

 “패왕, 이 병신아! 달려들어! 박살을 내란 말이야.”

 “죽여-엇! 저 같잖은 삼절일학 놈을 완전히 삼절고혼으로 만들어 버리라고!”

 용무린이 보여준 간단한 한 수에 후끈 달아오른 도박꾼들은 광기와 환호를 가감 없이 터뜨렸다.

 “이야아아-하!”

 후웅. 후웅. 후우웅.

 도박꾼들의 욕설에 자극을 받았는지 덩치가 철퇴를 마구 휘둘러 왔다.

 휘릭. 타닷. 후욱.

 용무린은 간단하기 짝이 없는 엇박자의 진과 퇴 그리고 좌우로의 회전을 통해 철퇴 사이를 여유롭게 노닐었다.

 빠악. 퍼억. 빠바박!

 그 사이 슬쩍슬쩍 뻗어낸 주먹과 퇴각 그리고 팔꿈치와 슬격이 작살처럼 덩치의 전신요혈을 찍었다.

 “크으흐, 이 쥐새끼 같은 놈이 정말!”

 타닷!

 덩치는 모든 것을 내던진 것처럼 방어조차 도외시한 채 철퇴를 날려 왔다.

 ‘지금이다!’

 기다리던 때다.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다.

 슬쩍 몸을 비틀어 철퇴 아래 가슴을 모두 들어낸 용무린의 손날이 덩치의 중완혈을 향해 쭉 뻗었다.

 뻐어어어-억! 터얼썩.

 둔탁한 소리와 함께 용무린의 몸이 뒤로 훌훌 날렸다. 거칠게 바닥을 나뒹굴었다.

 “우와아아아! 패왕! 패왕!”

 “패왕 만세-에!”

 “이런 제기랄! 삼절일학 이 병신아! 잘 나가다가 왜 거기서 얻어맞아?”

 “내 돈, 내 도-온!”

 무투장이 광란의 도가니에 빠졌다.

 하지만 바로 그 다음 순간,

 털썩.

 승자인 줄로만 알았던 덩치의 무릎이 힘없이 꺾였다.

 울컥. 스르르. 쿠웅.

 새빨간 울혈을 한 움큼 토해낸 덩치의 몸이 거짓말처럼 옆으로 쓰러져 버렸다.

 “끄으응. 거 참 더럽게 아프네.”

 심장이 박살나서 죽었을 것으로만 알았던 용무린이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한 순간 무투장에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뒤이어 무투장 전체가 떠내려갈 만큼 커다란 함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우와아아아-아!”

 “이야아! 150대 1의 전설이 벌어졌다.”

 “삼절일학 만세-에!”

 씨이익.

 도박꾼들의 환호성을 한 몸에 받으며 용무린은 기분 좋게 웃었다.

 ‘기다려라, 운가 애송아.’

 넉넉잡고 보름 정도면 기초수련이 모두 완성된다.

 ‘그때 너를 찾겠다.’

 

 ***

 

 중앙의 무투장이 환히 내려다보이는 곳.

 “호호홍. 정말 욕심나는 사내란 말이야.”

 새빨간 입술을 요염하게 오물거리는 여인의 눈이 탐욕으로 물들었다.

 “아직 채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을 보는 기분이랄까?”

 마지막 순간에 한 차례 위험한 순간을 맞이하긴 했지만 사내는 위기를 훌륭하게 버텨내고 우뚝 일어섰다. 중완혈을 향해 찔러냈던 마지막 한 수는 정말 일품이었다.

 “거침없이 파고드는 그 박력이라니! 오랜만에 심장이 짜릿해졌지 뭐야?”

 보면 볼수록 욕심이 난다는 듯 여인은 입맛을 다셨다.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할짝거렸다.

 그때였다.

 스슷.

 여인의 뒤에 검은 안대로 눈 하나를 감춘 사내가 나타났다.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다녀왔습니다, 루주님.”

 “어떻게 됐어?”

 “삼절일학 용무린. 신주오가의 일원인 비룡문의 소공자가 확실했습니다.”

 “호오, 그래?”

 루주라 불린 여인의 눈가에 아쉬움의 빛이 살짝 스쳐 지났다.

 “용모파기로 백리세가의 시비와 하인들에게 확인을 거쳤습니다. 비룡문의 문주 용대명과 두 의제인 추뢰검사 교진운 그리고 소요일영 유백의 부축을 받아 동백산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는 목격자까지 확보했습니다.”

 “동백산이라……. 그곳 어딘가에서 가문의 천형인 음양쇠맥증을 완전히 치료했나 보지?”

 “그런 듯합니다.”

 “흐응, 무공의 기초야 어렸을 때부터 교진운과 유백이 잡아주었다고 보면 되고, 여긴 그저 외공의 완성과 실전감각을 끌어올리기 위해 온 것이 되나?”

 “그것이 가장 타당합니다. 공연히 본 하오문의 정주 분타가 벌이는 무투 사업에 훼방을 놓기 위해 온 것은 아닌 것으로 보여 집니다.”

 루주의 눈이 둥그렇게 휘었다.

 “좋아. 자리를 한 번 마련해 봐.”

 “자리라시면……?”

 “미래가 기대되는 사내라면 낚시를 한 번 해 봐야 하지 않겠어?”

 사내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위를 향해 말려 올라갔다.

 “알겠습니다.”

 고개를 깊이 숙여 보인 사내는 다시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비록 혼자 몸이지만 가문의 숙원도 풀었겠다. 동백산에서 모종의 수련을 마치자마자 외공의 완성과 실전감각을 끌어올리기 위해 무투장을 찾을 정도잖아?”

 문으로써 일가를 이룬 가문이 아무 생각도 없이 무가로의 변신을 꿈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닐 게다. 그렇다면 확실히 세공 전의 보석일 확률이 농후했다.

 “잡아두거나, 최소한 연결 고리 정도는 만들어 줘야 할 것 같단 말이야.”

 반짝.

 하오문 정주 분타인 화운루의 루주 소가령의 눈에 어린 탐욕의 빛이 더욱 진해졌다.

 

 ***

 

 쩔그럭.

 “여기 배당금.”

 텁석부리 수염의 사내가 두툼한 주머니 하나를 용무린에게 내밀었다.

 “얼마지?”

 “모두 합해 은자 오십 냥이지.”

 은자 다섯 냥은 패왕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일에 대한 상금이고 나머지 마흔 다섯 냥은 철전 30문을 스스로에게 걸었던 것의 배당금이었다.

 은자 한 냥에 쌀이 다섯 섬이나 하니 상당한 액수의 돈을 한꺼번에 딴 셈이다. 150 대 1 배당의 위엄인 것이다.

 “호오, 짭짤한데?”

 용무린은 받아든 주머니를 살짝 흔들었다.

 쩔그럭.

 묵직한 주머니가 둔중한 소리를 내었다.

 “확실하군.”

 품속에 주머니를 넣는 용무린을 향해 텁석부리 수염의 사내가 고개를 갸웃해 보였다.

 “세어 보지 않나?”

 “방금 세어 봤잖아.”

 조금 전에 주머니를 살짝 흔들었을 때 났던 소리를 통해 그 숫자를 파악했다는 뜻이었다.

 “……!”

 텁석부리 수염의 사내가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잠시 후 지나가듯 툭 입을 열었다.

 “술 한 잔 할 텐가?”

 “술? 좋지. 시간도 사흘이나 지났고 첫 상대였던 그 덩치도 쓰러뜨렸고 하니, 어쩌면 오늘쯤 이런 제의가 올 것도 같았어.”

 한층 더 오묘해진 시선을 보내던 사내는 말없이 뒤돌아섰다. 성큼 성큼 걸음을 옮겼다. 옅은 미소와 함께 용무린은 그 뒤를 따랐다.

 

 ***

 

 화운루의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내실.

 용무린은 아찔할 만큼 아리따운 여인과 함께 술상을 마주할 수 있었다.

 “받으시어요, 공자님.”

 쪼르륵.

 용무린의 잔에 진한 소홍주가 차올랐다.

 “오늘 정말 너무 멋졌답니다. 호호호.”

 정말 너무 반했다는 듯 여인의 교태가 노골적이 되었다.

 용무린의 단단한 팔을 살그머니 매만졌다. 새초롬하게 눈을 뜨며 살짝 가슴을 내밀었다.

 용무린은 술잔을 들어 올린 후 바로 들이켜지 않았다. 재미있다는 듯 희미하게 웃었다.

 “어서 드시어요, 공자님.”

 “용연향에 소홍주라……. 소홍주에 들어가는 약재만 두어 가지 바뀌었으면 마시고 나서 야단나겠는데?”

 소홍주는 약재를 넣어 함께 숙성시키는 황주다.

 그런 만큼 몇 가지 약재를 특수하게 배합하면 아무도 모르는 사이 사람 하나 정신 나가게 만드는 것은 손쉬운 일이었다.

 “……!”

 이미 모든 것을 꿰뚫어 본 듯한 용무린의 말에 잔을 권하던 여인은 눈에 띄게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며 용무린은 말을 이었다.

 “나는 용연향과 함께 하면 음약으로 변하는 약재 따윈 즐기지 않아. 그냥 잘 익은 죽엽청이나 한 잔 마시고 싶은데 말이야? 어때? 허심탄회한 대화는 그때나 해 보도록 하지?”

 “저, 그, 그것이…….”

 당황한 듯 여인이 말을 더듬었다.

 그때였다.

 드르륵.

 문이 벌컥 열리고 보기 드물 정도로 아리따운 여인이 성큼 안으로 들어섰다.

 “되었다. 넌 나가 보거라.”

 입술이 유난히 요염하게 빨간 여인, 이곳의 루주인 소가령이었다.

 “예, 루주님.”

 여인이 살았다는 듯 냉큼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는 가서 죽엽청이나 내어 오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루주님.”

 잠시 후 용무린의 요구대로 잘 익은 죽엽청이 술상 앞에 놓였다.

 쪼르륵.

 자신의 잔에 술을 따르며 소가령이 입을 열었다.

 “과연 삼절일학. 학문으로 일가를 이뤘다는 비룡문의 소공자다운 식견이군.”

 용무린은 대답 대신 죽엽청을 병째 입으로 가져갔다. 시원하게 들이켰다.

 소가령이 용무린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어떻게 눈치 챘지? 언제나 서책을 끼고 살았다더니, 그 잘난 책을 통해 알게 된 지식인가?”

 “책을 통해서라기보다는 경험이라고 해야 옳겠지. 용연향에 몇 가지 약재만 섞어 먹이게 되면 효과가 아주 뛰어난 음약이 된다는 것은 그냥 책만 읽어서는 알아차리기 힘들거든.”

 “경험? 웃기는군. 이제 겨우 약관의 나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백면서생이었던 주제에 경험이라…….”

 “믿기 싫으면 믿지 않아도 돼.”

 용무린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자신감과 여유로움이 하나 가득 그 미소에 묻어났다.

 “……!”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용무린을 들여다보던 소가령의 입이 불쑥 열렸다.

 “잔에 따르지 않고 병째 마시는 이유도 그래서인가? 술잔에도 수작을 부려 놓았을까 봐서?”

 “후후훗.”

 용무린은 그저 웃고 말았다.

 “아무리 봐도 백면서생을 갓 탈피한 강호초출인데 식견은 노강호라니……. 앞으로 비룡문을 눈여겨보아 둬야 할 것 같군그래.”

 “그래, 그래서 내가 지금 이렇게 온 거야.”

 “……무슨 말이지?”

 “무슨 말은? 본가가 무가로 전향 하려고 하니 혹시라도 나중에 무슨 덕이라도 볼까 싶어서 용연향에 소홍주를 준비했던 것 아니야?”

 “그, 그것은…….”

 소가령이 뭐라고 변명을 하려 했지만 용무린은 그 말을 냉정하게 잘라 버렸다.

 “굳이 그런 걸 쓰지 않더라도 하오문에는 한 번 기회를 주고 싶어서 내가 이렇게 직접 찾아온 거야. 오늘도 그렇고, 앞으로도 며칠 더 무투장에서 재미 좀 봐야 할 것 같아서 말이지.”

 한 번 기회를 주고 싶어서 왔다.

 마치 커다란 은혜를 베풀고 있기라도 한다는 모양새였다.

 잠시 어이가 없다는 듯 입을 쩍 벌리고 있던 소가령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강호초출 주제에 너무 건방지군. 굳이 무투장의 질서를 어지럽힌 죄를 묻지 않더라도 이 자리에서 널 죽일 수 있다는 걸 모르는 모양이지?”

 씨익.

 용무린의 입가에 흰 선이 쭉 그어졌다.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한마디 툭 던졌다.

 “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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