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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일디나크
작가 : 아르체
작품등록일 : 2017.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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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어가는 하루
작성일 : 17-07-22     조회 : 267     추천 : 0     분량 : 6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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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소는 전형적인 2층 구조로, 아래는 탁자가 여럿 놓인 휴게실 겸 식당이고 위층은 객실이었다. 들어올 때 본 모습을 대충 기억하는지라 헤매지는 않았다. 반쯤 뜨인 눈으로 부스스한 머리를 털어내며 카모렐이 2층 계단에서 내려다보니 입실할 때 본 사람과 르윈이 무언가 이야기하고 있었다.

 

 “다행이군요. 감사합니다.”

 

 “당연한 일이니 그러실 것 없수다. 곧 준비할 테니 조금만 기다리시라구요!”

 

 그녀의 목에서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기운 좋게 웃어 보이며 중년 여인은 주방으로 들어갔다. 르윈은 곧 자리를 잡아 앉았고, 내려오는 카모렐을 눈치채곤 말을 걸었다.

 

 “일어났어요? 아직 점심때가 지나지 않았다네요. 아슬아슬하게 주문했으니까 이리로 오세요.”

 

 “……네.”

 

 카모렐도 의자에 앉았다. 급한 것 같아 빨리 내려오느라 분별이 엉성했기에 그는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소년이 덜 깬 표정으로 있는 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 몇 없는 손님들은 저들끼리의 이야기로 바빴고, 르윈은 조용히 앉아 상대가 정신을 추스르길 기다렸다. 그다지 붙일 말도 없다는 게 중요했다.

 

 “식사 나왔습니다.”

 

 제각기 나무탁자의 흠이나 허공을 바라보고 있으니 요리가 나왔다. 강인한 인상의 덥수룩한 아저씨가 음식을 탁자로 가져왔다.

 

 “아, 감사합니다.”

 

 르윈이 대답했다. 주 요리와 두어 가지의 밑반찬을 조심스레 내려두고는 그는 말없이 사라졌다.

 탁자에 놓인 것은 따뜻하고 걸쭉한 스프에 담긴 여러 색의 면이었다. 잠시 있으니 뜨끈한 접시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라 그윽한 향기가 주위에 훅 퍼진다. 들여다보니 스프에는 면 외에도 양송이, 브로콜리, 당근, 양파* (역자 주 : 지구에 있는 재료에 비유하자면)와 함께 이국의 열매를 볶아 만든 향신료가 잘게 썰려 넣어져 있고, 넓게 퍼진 접시 가장자리에는 적당히 딱딱한 빵이 곁들여져 같이 먹음직한 모양새였다. 게다가 한입에 먹기 좋은 크기로 썰려 있었다. 여러모로 신경을 많이 쓴 요리였다.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재료가 들어갔을 것 같았다.

 알아본 건 당연히 르윈뿐이었다. 카모렐은 음식의 정체를 파악하느라 선뜻 입에 넣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르윈이 빵조각 하나를 집어 스프를 묻힌 뒤 입에 넣자 비로소 소년도 도전적으로 면을 들어올렸다.

 그것을 젓가락으로 목에 넘겨본 소감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담백하고 고소한 맛에 어딘가 짭조름한 풍미가 더해져 미각을 자극한다. 길다란 반죽이 입 안에서 씹히는 느낌도 상당히 재미있었다. 허기도 한몫해 카모렐은 어느새 면과 빵을 다 먹어치운 후 그릇을 마시듯이 스프마저 먹어치웠다. 엄청난 속도에 르윈은 그가 그릇을 핥아먹지 않을까 걱정했으나 소년은 식기를 이용해 적절한 방식으로 식사를 마무리했다.

 

 “잘 먹었습니다!”

 

 요리한 사람이 봤다면 감동할 정도의 식욕이었다. 르윈은 자신의 몫을 덜어줄까 했지만 더 탐내는 기색이 없는 걸로 보아 배는 충분히 부른 모양이었다.

 

 “맛있게 드셨나요?”

 

 물어볼 것도 없었지만 왠지 물어보고 싶었다. 미소를 띤 채 병사는 거의 장난삼아 질문했다.

 

 “진짜 맛있어요.”

 

 만족감에 붕 뜬 얼굴로 카모렐은 의자에 기댔다. 르윈이 여기기로 이 모습을 보여줄 적당한 사람이 지나가지 않는 게 매우 아쉬웠다.

 경험 부족한 소년의 감상을 떠나 객관적인 평을 하자면, 의전관의 기준으로도 음식은 꽤 괜찮았다. 간과 맛이 적절히 배어 있었고, 배도 상당히 부르며 눈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요리였다. 영양이나 맛은 보편적인 솜씨라 쳐도 모양을 제법 신경 쓴 건 역시 파드하의 영향이리라. 수도에는 못 미치더라도 근교 중에서는 큰 도시니 이 정도 실력이 나오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았다. 재료의 신선도로 따지자면 오히려 이쪽이 나을 수도 있었다. 다만 파는 음식치고 묘하게 가정식 느낌이 강한 것도 그렇고, 해안도시인데도 뭍의 재료만을 쓴 건 역시 어제 본 현상이 원인 같았다.

 

 “저도 잘 먹었습니다.”

 

 뒤이어 르윈도 식사를 마쳤다. 해산물을 기대했던 병사로서는 아쉬운 감도 있었지만 어느 정도는 식욕이 채워졌고 그런 걸 따질 상황도 아니었다.

 

 “물입니다.”

 

 아까 그 남성이 와서 유리잔에 물을 더 따라주고 탁자 위를 흘금 본 뒤 완전히 비운 그릇을 가져갔다. 워낙 무뚝뚝한 얼굴이라 카모렐은 화라도 난 줄 알았다. 다시 보니 최소한 나쁜 기분은 아니라는 게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사람경험이 적은 그로선 뭐라 판단할 수 없었다.

 쟁반에서 왔던 접시가 다시 옮겨지는 동안 르윈은 물을 몇 모금 마셨다. 소년의 불안한 시선을 보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략 알 것 같았다. 마지막 한 점을 남기는 게 예의인 어느 나라라면 모를까, 여기는 가능한 다 먹는 게 예절인 로임-벤이다. 싫어할 리는 없었다.

 

 “이제 식사도 했으니 전 조금 더 쉬겠습니다.”

 

 말을 남기고 의전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급하게 깨어나느라 세안도 부족했고 짐도 좀 정리하고 싶었다. 그리고 아무리 자다 일어나서 왔다지만 소년의 헝클어진 머리가 매우 신경쓰였다. 그의 위생 상태로 말하자면, 리쉬팀에 도착하기 직전 개울에서 감은 게 다였고 오래전부터 입은 듯한 옷은 말하기도 귀찮았다.

 

 “그동안 그쪽도 좀 씻으시는 게 어떨까요? 실내복을 드릴 테니 제 옷과 함께 빨도록 하죠.”

 

 말하고 나서 르윈은 깨달았다. 그는 수도의 사용법을 모를 수도 있었다. 옷 위치도 마음에 걸렸다. 서랍장 안에 있는데 그가 찾아서 입을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다. 그 이전에 실내복이라는 게 뭔지 모른다는 경우도 있다. 소년을 대할 땐 기존 상식을 모조리 파괴해 두는 게 속편했다. 아이에게 걸음마를 가르치는 기분이었다.

 결국 병사는 대답이 오기 전에 미리 선수를 쳤다.

 

 “일단 저도 함께 올라갈게요.”

 

 아무래도 휴식은 그른 것 같았다. 한숨을 쉬듯이 잔숨을 내고 병사가 계단을 올라갔다. 멋모르고 소년도 뒤따라 2층으로 향했다.

 

 “아, 잠시만요.”

 

 계단 중간에서 르윈이 멈췄다. 그리고는 뒤돌아 손을 뻗었다. 소년은 한순간 움찔거렸으나 참고 가만히 있었다. 이윽고 청년의 손이 그의 머리카락에 닿아왔다. 알 수 없는 행동이었다. 손길이 카모렐의 머리를 몇 번 휘적이고 나자 느낌은 사라졌다. 무언가 싶어 올려다보니 르윈의 표정이 한결 풀어져 있다.

 

 “머리 정도는 좀 정돈하고 다니세요. 아무리 그래도 남들 앞에서 그게 뭔가요. 앞으로는 조금만 신경써줘요.”

 

 병사는 아까부터 말하고 싶었으나 소년이 덜 깬 것도 있고 해서 그냥 놔두었는데, 앞으로도 똑같이 하고 다닌다 생각하니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이게 뭔가요?”

 

 카모렐은 멀뚱히 물어보았다. 르윈은 돌아서서 위로 계단을 한 칸 밟았다. 말 이전에 뒷등 쪽으로 시선이 남았다.

 

 “엉망인 몸가짐을 고쳐두는 겁니다. 너무 어수룩해요.”

 

 말을 던져놓고 보니 의도했던 것보다 좀 심한 감이 있었다. 성격 나쁜 사람이었다면 비꼬거나 화를 내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 정도. 하지만 그를 다루는 게 더 어려운 건,

 

 “그렇군요. 알겠어요.”

 

 이렇게 의외의 부분에서 시원스레 넘어가는 것이다. 오히려 어떤 곳에서 불이 붙는지 알 수가 없어 신경 쓰인다.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임무의 일부라는 생각을 하며 괜찮아졌지만 그의 태연자약한 반응들이 가짜가 아닌지 의심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저지른 행위에 비해 소년이 너무나도 천진한 탓이었다.

 어쨌든 당장 할 일은 같았다. 르윈은 방으로 돌아가 욕실 문을 열었다.

 

 “옷을 꺼내드릴게요. 앞에 놔둘 테니 씻고 그걸로 갈아입으세요. 수도 쓰는 법은 알아요?”

 

 카모렐은 깔끔하게 질문했다.

 

 “수도가 뭔데요?”

 

 결국 르윈은 물을 열고 잠그는 법을 하나하나 가르쳐준 뒤 소년을 욕실로 들여보냈다. 기술이 이용되긴 하지만 압력을 가해 끌어올리는 게 전부인 구조라서 비 등록자인 그도 문제없이 쓸 수 있었다. 손잡이 돌리는 방향만이 관건이었다.

 바쁜 탓에 덩달아 머리가 꼬여서인지 병사는 카모렐이 입던 옷을 받는 걸 잊었다가 나오자마자 되들어가는 우를 범했다.

 

 “맞다. 옷이요! 빨게 옷 주세요.”

 

 들려오는 물소리를 확인하고서 자신이 입던 제복까지 합쳐 의전관은 아래로 들고 내려갔다. 저 구석의 탁자에 그들에게 음식을 옮겨주었던 남자가 앉아있었다.

 

 “실례합니다. 세탁을 할 수 있는 곳이 어디인가요?”

 

 그 말에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봐도 정말 표정이 없는 사람이었다.

 

 “이리 주시죠.”

 

 그러면서 그는 양 팔을 내밀었다. 내밀어주신 친절은 고마웠지만 받아들일 수 없었다.

 

 “감사하지만…… 규정상 제복은 다른 사람이 만질 수 없게 되어 있어서요. 제가 관리하지 않으면 큰일납니다.”

 

 머쓱히 미소 지으며 의전관은 조심스레 거절했다. 남자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쪽으로.”

 

 안내받은 곳에는 각종 짐들 사이에 세탁기가 딱 한 대 있었다. 나무 선반에 켜켜이 쌓인 잡동사니를 보아하니 창고에 기기(器機)만 들여 둔 모양이었다.

 빨래하기 전에, 뭔가 나올까 싶어 르윈은 소년의 옷을 이리저리 뒤집고 만져 살펴보았다. 보이는 것보다 두꺼운 옷이라 무언가 있을 소지는 충분했다. 그리고 그건 수색하기 전까지의 생각이었다. 본격적으로 조사를 하니 뭔가 나오는 게 문제가 아니라 옷 자체의 정체가 불명이었다. 만듦새가 아주 괜찮은 옷이라 오래 입었어도 이 정도까지 버텼다고는 파악했는데 회사나 제작자를 나타내는 특정한 모양의 자수 혹은 무늬가 없었다. 일부러 뜯어냈는지는 겉이 많이 닳아서 알 수 없었지만, 기성복이라면 이미 파악이 됐을 터였고 맞춤복이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최대한 뒤져본 후 르윈은 포기하고 세탁기로 관심을 돌렸다.

 다행히 세탁기는 돌아가고 있지 않았다. 다른 세탁물도 없었다. 안에 혹시 누군가 놓고 간 옷이나 이물질이 있지 않은지 꼼꼼히 확인하고 나서 르윈은 가지고 온 것들을 죄다 안에 넣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끼워놓았던 개인 비누를 손으로 적당히 뭉쳐 편 다음 위에 뿌리고 나서 세탁기 문을 닫았다.

 이 여관에 있는 세탁기는 납작한 기둥 모양으로, 개발된 지 오래된 구식이었다. 이런 모양은 회전력이 좋고 물 소비가 적지만 높이 혹은 폭이 부족해 세탁물이 넣은 대로 뭉치기 쉽다. 그래서 간혹 안쪽이 덜 빨리기도 하고 재수 없으면 옷이 끼기도 해서 요즘은 거의 만들지 않는다. 그나마도 작은 세탁물에 특화된 소형으로만 제작한다.

 왕궁에서 쓰는 최신식은 겉 지지대를 제외하면 완전한 원형인데, 세탁물을 막 넣어도 되고 더 효율적으로 먼지가 빠져나간다. 물을 조금 더 쓰는 게 단점이지만 그래도 효과는 확실했다. 그런 걸 쓰다가 구식을 사용하자니 의전관은 답답했다. 최대한 잘 펴서 넣는 수밖에 없었다.

 기관 부분에 명령을 내리니 공간을 둘로 나누는 중간의 회전판이 움직여 물과 함께 빨래를 치댄다. 앞으로도 제복을 이런 식으로 빨자니 병사는 좀 걱정되었다. 아예 세탁기가 없을 수도 있었고 소년의 옷도 문제였다. 언제까지나 같은 옷을 입힐 수는 없었다. 지금 빨고 있는 단벌옷마저 많이 낡은데다가 좀 두꺼워서 계속 쓰게 하자니 마음에 걸렸다.

 시장에 한번 들러야겠다.

 세탁기를 돌리며 르윈은 생각했다.

 

 

 

 드디어.

 드디어 다 된 빨랫감을 빌린 바구니에 넣고서 병사는 방으로 돌아왔다. 소년은 밋밋한 실내복을 입고 자신의 침대에 앉아있었다. 이불에 이리저리 물방울이 튄 걸로 보아 지금 자세 그대로 머리를 털어낸 것 같았다. 뭐라 할 기력도 없어 르윈은 일단 자신의 제복을 의자에 널었다. 이윽고 소년의 옷을 부위별로 나누어 탁상과 나머지 의자에 걸쳐두었다.

 빨래를 세 번이나 하니 몹시 기운이 빠졌다. 첫 빨래가 실패한 여파였으며 그건 모두 카모렐의 옷 때문이었다. 소년이 입던 옷에서 상상 이상으로 모래가 잔뜩 쏟아져 깨끗해지기는커녕 제복마저 얼룩질 뻔했다. 결국 급히 작동을 중단시키고 제복과 카모렐의 옷을 나누어 손으로 일일이 문지른 뒤 다시 빨아야만 했다. 병사는 진심으로 그 옷을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다른 옷이 없어서 끝내 고이 세척해 올라왔다.

 걸린 정도를 감안하면 소년은 목욕을 꽤나 오래 한 셈이다. 비누를 더 가지러 들렀을 때에도 씻고 있었고,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주변의 물자국들은 뚜렷하다 못해 생생했다.

 시장에 꼭, 반드시 가야겠다고 의전관은 굳게 다짐했다.

 

 “후……”

 

 르윈은 천천히 침대에 누워 그대로 고개를 젖혔다. 힘들었다. 이게 웬 노동이란 말인가. 그야말로 치다꺼리였다. 뭔가 입장이 좀 바뀐 기분도 들었지만 어느 한쪽의 소지품도 누군가에게 맡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엄연히 감시 임무였고 넘겨받은 김에 옷을 뒤져봤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모래만 잔뜩 먹었다. 뭔가 나오기라도 했다면 보람이나마 있었을 것을.

 

 “저 진짜 쉽니다. 말 걸지 마세요. 나가지 마세요.”

 

 그것이 다음날까지 의전관이 건넨 유일한 말이었다. 소년은 천연히 알았다고 고갯짓했다. 할 일도 없어서 그들은 각자 멍하니 뒹굴거렸다. 저녁이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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