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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사
작가 : 크라피아
작품등록일 : 2017.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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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푸른 눈동자의 소년 <2>
작성일 : 17-07-23     조회 : 283     추천 : 0     분량 : 4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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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비로웠다.

 아직 어린 소년의 눈동자에는 신비가 감돌았다. 입술은 탐스러웠고 그가 있는 곳이라면 어떤 곳이던 그저 아름다웠다.

 다빈치, 푸른 눈동자와 옅은 갈색의 머리카락을 지닌 그 소년을 보았던 순간은 소녀에겐 그의 일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푸른 초원에 앉아 그윽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그 소년은 어디에도 가지 않고 그 자리에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소년은 떠나버렸다. 도시에 나가 많은 인정을 받고 있다는 소문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가슴이 찢어지고 세상이 무너지는 듯하였다.

 그러나 하염없이 슬퍼하기에 현실은 쉴 새 없이 목을 조여 왔다. 찢어질 듯 가난한 집안, 배를 곯는 동생들, 지긋지긋한 부모님끼리의 다툼. 소작농의 딸로 태어난 현실은 어느새 소년을 잊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영주가 아버지를 찾아왔다. 내밀어진 반지. 환하게 빛나는 아버지의 표정, 나를 바라보는 끈적거리는 영주의 눈빛….

 팔려가듯 청혼을 받았던 몸에는 채찍의 붉은 상처가 새겨졌다. 밤마다 고통에 신음했고 의사는 다시는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말했다.

 병원에서 나와 도시를 거닐었다. 무엇도 느껴지지 않았다. 세상은 회색으로 변해버렸고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수구가 손짓하고 있었다. 뛰어들어 신원조차 알 수 없는 시체가 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발끝에 차가운 감각이 느껴졌다. 하수구는 매력적으로 손을 내밀었고 편안히 그 손길에 몸을 내주었다. 온 몸에 저릿거리는 감각이 느껴졌으며 황홀한 감각에 정신을 맡긴 채 편안히 눈을 감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따듯한 침대의 감각에 편안히 몸을 뉘였다. 꿈이라 생각했다. 그윽한 푸른 눈동자가 있었으며 비릿한 그곳엔 기름 냄새가 감돌았다. 손을 뻗으면 닿는 곳에 소년이 있었다.

 지금까지 뻗지 않았던 손을 내밀었다. 손이 맞닿았고 시선이 부딪혔으며 어색함이 감돌았다. 하지만 인사말을 전할 수 없었다. 포개진 입술은 온기를 나누었고 어느새 타액을 교환하기 시작했다.

 결국 달라진 것은 어느 것도 없었다. 무르익은 사랑의 과실과 확인 할 수 있는 용기만이 변했을 뿐….

 그의 손길이 어깨를 쓰다듬었다. 아찔한 황홀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짜릿한 감각에 녹아버릴 듯한 정신을 가까스로 유지한 채 그의 입술을 탐닉했다.

 그러나 이내 멎는 그의 손길, 저물어지는 고양감과 뒷목에 스며드는 차가운 공기. 그리고 온몸 전체에 새겨진 고문의 흔적이 더욱 사무치게 불타기 시작했다.

 그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곳에서 언제나 자신을 기다렸고 손을 내밀어 주었다. 그러나 몸에 새겨진 고통과, 사무친 그리움과 잊지 못한 외로움과 더러운 손길은 형태를 만들어 몸에 새겨졌다.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어두운 조명아래 한층 이불을 끌어올려 털어내듯 고개를 돌렸다. 변할 수 없기에, 변하기엔 너무 어두운 손길이기에. 그저 눈을 감고 이젠 토해내지 못할 것만 같은 눈물을 흘렸다.

 소년은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소년의 눈동자를 보고 싶은 욕망이 치밀었다. 목숨을 버릴 때 모든 것을 버렸다. 무엇도 남기지 않았다 생각했다. 그러나 남아있는 아주 작은 집착이 심장을 긁어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집착은 형태를 맺어 들리지 않을 것 같은 마음을, 소망을 전했다. 하지만… 그뿐이다. 낡아 빠진 집, 기름 냄새가 묻어나오는 침실. 소년의 삶을 증명하는 모든 요소들이 끝내 소녀의 몸에 다시 한차례 코르셋을 채웠다.

 영주의 소유욕은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청혼을 거절한 마을의 처녀들이 다음날 변사체로 발견되었던 것도 포함하여 그가 가지지 못하는 것은 누구도 가질 수 없었다. 푸른 드레스와 그에 어울리는 여성은 오로지 그의 것, 그리고 자신 역시 그의 소유물이었다.

 때문에 함부로 다루어 깨지더라도, 심장이 무너져 제 역할을 하지 못하더라도 목에 달린 쇠사슬을 풀어내는 것은 불가능하겠지.

 그의 비틀어진 욕망을 피부로 맞닿아온 그녀이기에 스스로의 손으로 목에 감긴 사슬의 잠금 쇠를 채웠다. 한때의 꿈, 목숨을 버리고 얻어낸 한 순간의 휴식만으로 평생을 살아 갈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젠 누구에게도 열어주지 않을 심장을 소중히 간직한 채 한때의 꿈에서 깨어나 눈물로 자수가 놓아진 베갯잇에 얼굴을 묻으러 소년을 뒤로했다.

 ***

 

 “쯧쯧 저럴 줄 알았지.”

 “이보게나 그래도 고인의 부인 앞 일세 말조심을…….”

 “말조심? 나 같으면 좋아서 날뛸걸? 자네도 이놈의 변태적인 취향은 잘 알잖아.”

  갑작스러웠다. 그저 공허한 눈동자로 이젠 재가 되어 뿌려지는 그것을 보며 드물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어느새 내 뒤에 쌓인 도저히 꿈도 꿀 수 없던 수많은 재보들.

 영주가 죽었다. 이유는 마차를 몰던 말이 넘어지는 바람에 마차가 쓰러졌고 놀라서 날뛰는 말발굽에 머리를 밟혔다는 웃기지도 않는 이유. 딱 그 사람다운 결말이었다. 시신은 알아 볼 수 없을 지경으로 갈가리 찢어발겨져 있었다.

 다만 단 한 가지. 모든 이들이 이해할 수 없었던 것. 양피지에 특유의 미려한 글씨로 써 내려간 영주의 유언. 마치 죽음을 예상했다는 듯 써내려간 한 줄기의 글귀에 나의 인생이 바뀌었다.

 ‘처는 과욕이 심하다, 허영심이 강하며 코르셋으로 숨길 수 없는 비대한 신체는 눈이 찌푸려진다. 그렇기에 난 나의 재산을 나의 모든 것이었던 나의 첫 번째 첩에게 남긴다. 만일 이 유서가 지켜지지 않는다면 나는 교회의 자질을 의심할 것이며 누구도 그녀를 무시하지 않길 바란다. 이 모든 것을 아리아슨 영주가 다시 한차례 강조하며 마지막으로 나의 첩에게 사랑을 속삭이겠다.’

 영주의 처는 미친 듯이 날뛰었다. 그녀는 쌓아올린 재보가 자신의 것이라 믿었다. 이 따위 문장은 어렵지 않게 타개 할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영주는 교회의 이름을 언급했고 이는 모든 판결을 교회가 도맡게 되는 결과를 만들었다.

 국왕과 교회가 대립중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교회는 수많은 영주의 재산을 절반 가져가는 조건으로 영주의 청을 들어주었다. 결국 창고에 잔뜩 쌓아올려진 금과 재보는 절반이지만 전부 나의 것이 되었다.

 처의 눈동자는 불타올랐다. 피둥피둥 살이 오른 입술로 나를 저주했으며 입에 담을 수 없는 모독을 가했다. 그녀의 눈동자를 마주했다. 화가 치밀어 오르진 않았다, 몸에 새겨진 수많은 고문과 인격적인 희롱은 나를 잔인하게 만들기엔 충분하고도 남았으니.

 영주의 장례식, 뼛가루가 뿌려지는 풍경의 뒤로 소년의 눈동자를 보았다. 그를 끌어안고 사랑을 속삭였다. 세월의 흐름이 만들어낸 고풍스러운 멋이 감돌았으며 묵혀진 사랑은 더욱 간절했다.

 손을 붙잡았고 체온을 나누었다. 시간은 아득했고 몸에 새겨진 상처도 점차 시간에 묻혀 사라졌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던 시간이 나의 목을 조이고 있었다는 것만큼은 그때의 난 전혀 알지 못했다.

 이른 아침 교회가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자 사제는 나의 목을 졸라왔고 병사들은 앞 다투어 나의 양 팔을 구속했다.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소리를 내지르고 이유를 물었지만 사제는 침을 내뱉으며 나를 감옥에 집어넣었다.

  감옥은 쥐가 들끓었다. 음식은 쓰레기와 다를 바 없었다. 정욕에 미친 간수와 죄수들의 얼굴은 익숙해질 정도였으며 몸에서는 비린내가 감돌았다. 연이은 고문, 인자한 표정과 달콤한 말로 나에게 죄를 요구하는 사제. 이 모든 것들은 매일 나를 조금씩 부숴갔다.

 고개를 끄덕여 이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매일 찾아와 나에게 조금만 기다려 달라 말하는 소년, 그제야 소년의 사회적 지위와 그가 쌓아올린 것들이 실감되었다. 눈은 전에 없던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오로지 그를 믿고 견뎌냈다.

 

 며칠이 지난 것인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한줄기의 빛도 보지 못했고 내 위에서 흥분에 들썩이는 남자의 거친 숨소리만이 방안에 감돌았다. 아픔도 수치심도 이미 잊었다.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이미 몸은 힘을 잃었고 머리는 아득했으며 목소리도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마음속에 그 푸른 눈동자를 간직하며 그를 기다렸다.

 

 열리지 않을 것만 같은 감옥의 문이 열렸다. 오랜만에 제 발로 밝아보는 땅의 감촉은 단단했고 무서울 정도로 차가웠다. 사제는 더러운 벌레는 보는 눈길로 나에게 손을 흔들어 따라오라 전했다.

 

 문이 열렸다. 빛이 들어왔고 뒤로 묶인 손은 사람의 것이 아닌 듯 뼈가 그대로 보이고 있었다. 사제의 일장 연설과 함께 사방에서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사제는 신의 이름을 들먹이며 나의 몸에 걸쳐진 누더기를 빼앗았다. 스며드는 차가운 바람과 끈적이는 시선들이 나의 몸을 사정없이 유린했다.

 “마지막 마녀재판을 시작한다!”

 마지막 이라는 단어에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이것만 버틴다면 분명 짧았던 열망의 순간을 다시금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차갑게 식었던 심장이 다시금 뛰기 시작했다. 미친 듯이 피가 감돌았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사제는 나의 손을 이끌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모든 것을 참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강물 그리고 나의 등을 미는 사제의 손길. 발끝에 닿는 차가운 물의 감촉 그리고 전신으로 퍼지는 공포.

 눈을 뜰 수 없었다. 심장은 쉴 새 없이 요동쳤고 힘을 잃은 양 손이 휘둘러졌다. 고개를 내밀어 공기를 갈망했다. 그러나 느껴지는 묵직한 감촉, 나는 눈을 의심했다. 어찌 사람이, 그것도 신의 이름을 들먹이는 자가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사제는 얼굴 가득 혐오감을 뿜어대며 나의 얼굴을 지팡이로 짓눌렀다. 살고 싶었다. 바라는 것은 오직 그것이었다. 수많은 황금도, 쌓아올려진 명예도 바라지 않았다.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고 살았으며 언제나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 하지만 오직 신의 이름아래 욕망에 찬 눈동자로 사람을 목숨을 빼앗는단 말인가….

 이가 갈리기 시작했다. 눈은 증오를 품었다. 심장은 쉬지 않고 뛰었으며 입은 어느새 저주의 말을 퍼붓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것조차 불가능 해졌으며 숨은 멎었고 몸은 가라앉기 시작했다. 무서울 정도의 암흑에 덮쳐왔을 때 비로소… 나는 참아왔던 눈물을 흘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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