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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사
작가 : 크라피아
작품등록일 : 2017.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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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푸른 눈동자의 소년 <3>
작성일 : 17-07-23     조회 : 323     추천 : 0     분량 : 4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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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체 무슨…….”

 정신을 차리자 아까의 그 방이 눈에 들어왔다. 캔버스에는 다시 천이 덮여져 있었고 방안은 어둠에 잠겨있었다.

 공포감이 몸을 휘감았다. 지금이라도 당장 방을 뛰쳐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어둠에 익숙해진 눈은 다시금 시야를 만들어내 내었고 비추는 달빛은 마치 우연처럼 또 다른 문을 가리키고 있었다.

 분명 어둠에 가려진 저 문고리를 연다면 또 다른 진실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공포감을 압도하는 호기심과 탐구심이 베아트리체의 몸을 움직였다.

 떨리는 손으로 문고리를 잡았다. 스며드는 냉기, 풍겨오는 역겨운 향기. 속이 뒤집어지는 긴장감. 이 모든 감정이 뒤섞여 나선을 그려내었고 베아트리체는 나선을 따라 손을 움직여 문을 열었다.

 문을 연 그곳엔 동물의 기름을 태우는 양초가 어둠을 몰아내고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불길은 바람에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앞에 펼쳐진 참혹한 광경에 베아트리체는 비명조차 내내지를 수 없었다.

 바닥과 벽을 가득 매운 시체. 연령도, 성별도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하게 찢어발겨진 시체와 고기조각들이 역겨운 냄새를 뿜어내고 있었다.

 “좋은 밤이야. 마술사의 아이.”

 귀를 찔러오는 목소리에 몸이 굳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릴 엄두도 나지 않았다. 쇠가 맞부딪히는 자물쇠의 소리가 들려왔으며 그때 다가온 손이 얼굴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러게 내가 말했잖아. 내 작품에는 손을 대는 게 아니라고.”

 어느새 다가온 목소리는 베아트리체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마주친 눈동자는 푸른색이 감돌고 있었으며 또한 깊은 어둠이 자리하고 있었다.

 “당신이 그 소년 이었군요 다빈치…….”

 “그녀를 만났구나…! 역시 그녀는 저곳에 있었어. 언제나 나의 곁에서 날 지켜보고 있었다고! 아아… 조금만 기다려줘. 곧 만나러 갈 테니…….”

 언제 가져왔는지 모를 자신의 그림을 향하여 다빈치는 미친 듯이 얼굴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본 베아트리체의 입이 절로 움직였다.

 “미쳤군요 당신…….”

 “무슨 소리야? 미친건 그날 그녀를 죽인 그들이야. 돈에 눈이 멀어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세운 그들이라고!”

 다빈치의 손이 목을 졸라왔다. 눈에서는 불길이 일고 있었으며 손에 실린 힘은 도저히 여자의 몸으로 이겨낼 수 없었다.

 “전부 시험해봤어. 어린아이, 아이를 품은 여자, 순백의 처녀와 현자라 불린 노인들… 그들의 피를 섞어 만든 물감으로 아름다운 그녀를 그렸지만 닿을 수 없었어. 그녀가 손짓하는데도 붙잡을 수 없었다고. 하지만…….”

 목을 조르던 손이 풀렸고 베아트리체는 목을 쥐어 감싸고 켁켁거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전신에 땀이 흐르기 시작했고 다빈치의 광기어린 표정은 공포를 더욱 짙게 만들었다.

 “마녀와 마술사는 달라. 나는 마술을 가지지 못했지만 너희는 가능하잖아?”

 다빈치는 다시 한차례 베아트리체의 목을 쥐어 감싸고 미약하게 떨리는 신체를 끌고 온 의자에 앉혔다. 베아트리체의 사고가 정지했으며 공포감에 이가 딱딱거리는 소리가 감돌았다.

 “그러니 너희의 피라면 다를 거야. 검은 마녀도 마지막에 필요한건 마술의 피라고 말했다고!”

 “검은…마녀?”

 “아아 그녀도 기뻐할 거야.”

 그러나 이미 광기에 먹혀버린 다빈치는 들리지 않는 듯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뱉으며 칼을 들고 점차 다가오기 시작했다. 다빈치가 다가올수록 베아트리체는 미친 듯이 발버둥 쳤지만 의자에 고정된 몸은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헛된 발버둥이야. 사람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밧줄이거든.”

 다빈치는 발버둥치는 베아트리체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더 이상 도망 칠 수 있는 방법은 존재치 않았고 움직이지 못하게 베아트리체의 몸을 꽉 끌어안았다.

 “라 이스트라 파리움!”

 “마술인가…. 하지만 과연 이 상황에 정말 네가 살아날 가능성이 있을까? 마음속에서 한줄기의 의심도 없을까? 아니겠지. 그 부분을 덮어줄 지팡이가 없는 이상 헛된 저항이에 불과하지.”

 다빈치의 손길이 베아트리체의 얼굴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베아트리체는 계속해서 주문을 시동했지만 고작 테이블을 데우는 것뿐이었던 마술이 발동될 리 없었다.

 “처음 후스공작이 널 맡겼을 때는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다빈치는 귀엽다는 듯 연신 볼을 어루만졌고 시체가 가득한 방 안에 부질없는 베아트리체의 외침만이 감돌았다.

 “성장한 마술사는 내가 이길 수 없거든. 녀석들은 상식을 깨부수는 자들이야. 그래서 손에 넣지 못했어. 하지만 그 제자는 달라. 지팡이가 없다면 믿음조차 없지. 난 말이야. 계속해서 기다렸어. 나의 삶에 빛을 비추어줄 존재를…”

 서서히 다빈치의 오른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날을 빛내는 칼은 무섭도록 예리했다.

 “그게 바로 너야. 베아트리체.”

 살아 날 수 있을 거라는 작은 희망조차 사라졌다. 자신은 무력하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날도 오빠가 죽어가는 광경을 보며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라…”

 복수는 이루었지만 마음의 공허는 채워지지 않았다. 바라는 것은 이루었다. 살아남을 이유도 존재치 않았다. 그럼에도 왜 자신은 살아남길 원했던 것일까.

 “이셸란테…”

 그래, 모든 것은 만나기 위하여, 한순간의 만남으로 뒤바뀔 자신의 인생과 앞으로의 미래를 만들어 줄 사람을 만나야만 했다 믿었다. 그렇기에 적어도 그 사람에게만큼은 어떤 의심도 가지지 않았다.

 “바리온!”

 마술은 믿음이다. 한 치의 의심 없이 뜻을 관철하는 이기적인 행위이며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쉽게 할 수 없는 것.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기적.

 그렇기에 맹목적인 믿음과 의심 없는 마음은 형태를 이루어내어 단 하나의 기적을 만들어냈고 그 맹목적인 믿음이 만들어낸 기적은 비추어진 거울에 닿았다.

 순간 그림자가 모여들었다. 위엄이 감돌기 시작하며 형태를 만들어낸다. 칠흙의 어둠을 감싸며 그토록 기다린 단 하나의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차마 몰랐군. 자네의 타오르는 열망이 흐르는 방향을 말일세.”

 “말도 안 돼! 아직 지팡이도 가지지 못한 자가 어떻게 마술을…”

 “불은 형태를 가지지 않아. 그리고 베아트리체는 불을 지니고 있지. 불길이 만들어내는 형체와 모양은 무엇이든 가능하다네.”

 그렇게 말하며 후스공작은 다빈치를 향한 맹렬한 악의를 드러냈다. 눈에서는 분노가 치밀었고 공포에 떨고 있는 베아트리체의 얼굴을 보며 조금도 지체하지 않았다.

 그림자는 다시금 형태를 만들기 시작했고 당장에라도 다빈치의 목을 꿰뚫어버릴 기세로 달려들어 다빈치의 오른팔을 꿰뚫었다.

 “크허억!!”

 어느새 베아트리체를 안아든 후스공작은 지금 당장에라도 다빈치를 씹어 먹을 기세였다. 그림자의 창은 수없이 형태를 이루었고 분노는 쏘아붙여지기 직전이었다.

 “하…… 하하핫!!! 됐어! 됐다고!”

 그때 다빈치가 광소를 터뜨렸다. 오른쪽 어깨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눈앞의 창들이 무색할 정도로 웃어대는 광경은 후스마저도 등이 서늘해질 정도였다.

 “으읏…….”

 목덜미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통증에 베아트리체는 신음을 내뱉었다. 그림의 눈썹에 젖어든 피를 바라보며 손을 가져가 목덜미를 어루만지자 칼로 인하여 깊게 파인 상처를 통해 많은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후스공작은 이를 갈았다, 자신의 것에 상처를 입힌 다빈치의 목을 졸라 바닥에 처박아 머리를 밟고 싶은 충동을 자제할 수 없었다. 그러나 형태를 이룬 그림자의 창은 전부 회수되었고 베아트리체의 주변에 그림자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아 드디어… 드디어!!!!!!!”

 후스공작은 두려움에 삐걱거리는 고개를 가까스로 돌려 천이 걷혀진 그림을 바라보았다. 비린내가 감도는 그림, 그리고 그림이 빛을 뿜어내기 시작한다.

 후스공작은 서둘러 베아트리체의 목덜미를 쓰다듬고 곧바로 치료하려 했지만 도저히 여유가 나질 않았다.

  흑마술은 저주의 마술이다. 마술을 이루어지고자 하는 힘이나 흑마술은 이루지지지 않길 바라는 힘이다. 그렇기에 수많은 사람들의 원한을 이용하고 마음을 잔인하게 유린한다. 과연 저 그림에 담긴 원한과 비통함은 몇 명의 꿈을 빼앗았을 것인가.

 베아트리체의 피가 튀긴 그림에서 검은 손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농축된 원한은 뿜어져 나오며 주변의 모든 것들을 집어 삼키기 시작한다.

 다빈치는 황홀한 표정으로 손을 내밀지만 그 광경은 차마 사랑하는 사람을 되돌리기 위한 남자의 로맨스 따위가 아니었다. 그저 일방적인 학살.

 마술사의 피가 더해진 바람에 흑마술의 위력은 증폭되었고 그것이 아무리 적은 양이라 할지라도 통로가 생겨버린 이상 재앙이 발생되어 버렸다.

 낡아빠진 나무집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도 다빈치는 그저 황홀한 표정으로 양손을 벌려 검은 손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제야 베아트리체는 소녀의 바람을 깨우쳤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사랑과 증오라는 단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언가는 무엇일까.

 알지 못했다. 그러나 어떤 감정이라도 상관은 없었다. 만일 자신이 그 소녀라면 미친 듯이 외쳤을 것이다. 그를 막아달라고….

 “베아트리체! 서둘러 나가야 한다. 흑마술의 원인인 다빈치를 집어삼키면 어느 정도 진정될 테니 그 이후에 수습을…….”

 “잠시 만요.”

 베아트리체는 후스공작도 한심한 남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 알아주지 못하는 것일까. 사랑이라는 감정의 애타는 울림과 울림에 담긴 한 사람의 진심을 눈치 채지 못하는 것이란 말인가.

 “서둘러서 도망을…….”

 “제가 해야 합니다.”

 베아트리체는 자신을 끌어안고 있는 후스공작의 손을 밀어내었다. 그림자의 막은 걷어지기 시작했고 후스공작은 애타는 마음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나 베아트리체는 검은손에 섞인 소녀의 감정을 바라보았다.

 달라질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과도한 간섭일지도 모른다. 지극히 이기적이며 타인의 목숨을 가벼이 여기는 행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알아야만 했다.

 어째서 푸른 눈의 소년이 타락했는지, 또한 무엇을 바랬는지. 지금이 아니라면 알 수 없었다. 마술사란 이기적이기에 언제나 자신의 뜻을 관철해야만 하기에 베아트리체는 후스공작의 손을 붙잡지 않고 검은 손에 몸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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