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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사
작가 : 크라피아
작품등록일 : 2017.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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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푸른 눈동자의 소년 <完>
작성일 : 17-07-23     조회 : 318     추천 : 0     분량 : 4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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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그를 미치게 만들었어요.”

 “예… 이것은 저와 그의 죄입니다. 분명 용서받지 못하겠죠. 하지만… 이런 끔찍한 상황에도 심장이 식질 않습니다. 아직도 뛰고 있습니다. 사랑이란 감정이 그와 저의 눈을 감게 하고, 귀를 막았습니다.”

 모나리자의 손이 베아트리체의 손에 닿았다. 매혹적인 눈빛, 그와 대비되는 소름끼치게 차가운 손길. 이 모든 감정을 느끼는 베아트리체의 심장은 무너질 듯 아파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뿐이에요. 사랑이란 감정으로 미쳐버렸다고 말하기에 죄는 너무도 무겁습니다. 그러니 마술사의 아이 당신에게 부탁합니다.”

 모나리자는 베아트리체를 향해 고개를 숙여왔다. 정작 부탁을 하고 용서를 구할 다빈치는 아직도 검은손에 휩싸여 영혼을 뜯어 먹히며 비명을 내지르고 있다.

 “부디 그림을 태워주세요.”

 “고작 그것으로 무마하려고 하는 겁니까. 저 역시 사람을 죽였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 잘못을 알기에, 단 하루도 그들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그저 태워 재로 만들어 달라 말하시는군요.”

 한순간의 분노에 잘못된 선택을 했던 기억에 베아트리체는 몸을 떨었다. 시간을 돌릴 수는 없다, 잘못된 선택을 번복할 수 없다.

 그렇기에 평생 동안 담아 둘 원한은 그녀에게도 언제나 공포로 다가왔다. 그런 자신에게 모든 죄를 태워 달라 말한들 고개를 젓는 아주 단순한 행동, 그 외의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용서를 구할 뻔뻔함은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사랑하는 이를 남기고 죽어간 사람들의 원한이 고작 한명의 목숨을 취한다고 멈출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까? 저를 죽이고 저의 재산을 쓸어간 교회의 인간들을 강에 빠뜨려 죽인다 한들 제가 용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모나리자의 손이 떨려왔다. 그날 강물에 빠졌던 공포, 지팡이로 자신을 짓누르던 사제의 이죽거림. 사람들의 비난과 쏟아지던 돌덩이들. 그 무엇도 잊지 않았다.

 전부 머릿속에 짓눌러 모으고 모아 썩혀 이젠 불쾌한 냄새마저 풍기고 있다. 기억하면 손이 떨려오고 분노로 정신이 날아간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과 같은 경험을 타인에게 넘겨주고 싶진 않았다.

 “분명 이대로 두면 그들은 모든 것을 집어 삼키겠죠. 많은 이들의 고통이 로마에 울려 퍼질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잘못된 선택에 후회하기 전에 당신의 손으로 모든 것을 끝내주세요.”

 “하지만 고작 제가……!”

 “어려운 부탁을 떠넘기게 되는 모양이 되었네요. 하지만 이런 부끄러운 일을 달리 남자에게 부탁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어요?”

 베아트리체는 입을 열었다. 소리쳐 자신은 할 수 없다 전하고 싶었다. 아직 무엇을 목표로 삼을지도 정하지 못한 풋내기 마술사에겐 너무 거창한 부탁이었다. 그러나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그저 따스한 손이 몸을 이끌기 시작한다.

 “당신은 아직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입니다. 죽은자가 가득한 이 공간속을 어째서 당신이 들어올 수 있었는지, 그리고 어째서 다시금 이끌어 내질 수 있는지, 당신은 그 해답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손을 내저었다, 그러나 움직이지 않았다. 시야는 흐릿해져가며 의식까지 아득해져 가기 시작한다. 무엇도 외칠 수 없고 움직일 수 없는 그 끔찍한 고통에서 모나리자는 손을 흔들었다.

 “안녕히 가세요, 한낮의 햇살이 탐내고 밤의 달빛이 시샘하는 마술사의 아이….”

 

 .***

 

 “…을 뜨거라! …서 일어나거라!”

  눈을 뜨자 눈물을 글썽거리는 후스공작의 얼굴이 바로 앞에 있었다. 단 한 번도 본적 없는 강철과 같던 그의 눈물에 손을 뻗어 볼을 쓰다듬었다.

 “괜찮아요. 그나저나 꽤나 볼만한 모습이네요 스승님.”

 “그런 빌어먹을 말은 하지 말거라. 후스면 된다.”

 “그렇다면 후스. 부디 놓아주지 않겠나요?”

 후스는 꽤나 당황스러운 표정이었다. 주변을 둘러보자 내뻗어지던 검은 손은 사라졌으며 넋이 나간 듯한 다빈치가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처박고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저주는 어떻게 된 건가요.”

 “강한 저주였다. 도저히 마술을 모르는 자가 만들어낸 마술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했다. 다행히 막긴 했다만… 부탁이니 다음부터 위험한 행동은 하지 말거라. 잃는 것은 질색이다.”

 후스의 얼굴에 슬픔이 서려왔다. 그러나 그 슬픔이 행하는 방향이 자신이 아니라는 것, 무언가를 떠올리려 한다는 생각에 베아트리체는 묘한 질투심이 끌어 올랐다. 질투심을 가까스로 억누른 채 베아트리체는 방금 전까지 재앙이 펼쳐졌던 그림을 바라보았다.

 소름끼치도록 아름다운 미소가 그곳에 있었다.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탁한 빛을 자랑하는 데도 오로지 그 미소만이 남아 방금까지의 모든 것을 상기시켜 주고 있었다.

 “라 이스트라 …”

 “그만 두거라. 지금은 임시방편으로 너의 피가 닿은 부분을 태워 원한을 막은 것뿐이다. 흑마술로 빚어진 원한을 태워버린다면 결국 그 죄를 네가 짊어지게 되는 것이지. 아직 너의 죄도 씻어내지 못한 너다. 그런 네가 다른이의 원한까지 책임질 용무는 어디에도 없어.”

 역시 남자란 빌어 처먹게 무감각한 동물이라고 베아트리체는 진심으로 생각했다. 돌연 여자가 된 후스가 검은 치마를 두르고 코르셋을 조여 매는 모습이 스쳐지나가 웃음이 터져 나왔다. 다만 한순간의 즐거움과 달리 이미 답은 내려져 있었다.

 “어째서 죽은 자들의 세계에 저는 들어갈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왜 저만이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을까요.”

 “그건… 모르겠구나. 나는 그림자의 마술사다. 애석하게도 불의 열망은 그다지 알지 못해.”

 그림자와 불의 관계가 아니다. 마술의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그저 아직 정리되지 못한 나의 머리가 목숨을 유지할 생각을 하지 못했었을 뿐이다. 목적이 없이 생명을 유지했고, 바라는 것 없이 공기를 마셔왔다.

 지금도 삶의 목적을 명확히 이야기 할 수는 없다. 바라는 것은 없고 좋아하는 것 역시 없다. 아침에 일어나면 손짓하는 햇살에 문득 눈물이 흘러내렸었다. 침대를 떠나면 이토록 생기 넘치는 사람들이 꿈을 좇아 살아가고 있는 곳에 발을 내려놓기 무서웠기에.

 “저번에 말했었죠? 마술사는 꿈을 좇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전… 잊지 않는 것을 꿈으로 삼겠습니다. 뜻을 이어 받겠습니다. 푹신한 침대와 달콤한 다과와 존경받는 명예를 지니겠습니다.”

 베아트리체의 선언에 후스공작의 얼굴에 다시 한차례 슬픔이 감돌았다. 과거의 기억이 머리를 간지럽혔다. 아련한 감각이 심장을 쥐어뜯었다. 애써 눈물을 참아내고 안면의 근육을 움직였다.

 “지금은 그걸로 충분하겠지.”

 베아트리체는 손을 들어올렸다. 의심은 존재치 않는다. 자신은 불꽃, 모든 것을 태우는 작열하는 화염. 형태를 이루어라, 대답하여 뜻을 관철하여라.

 “라 이스트라 파리온.”

 대기가 울부짖는다. 먼지가 불타오른다. 작은 불씨는 주변의 것들을 집어삼키며 거대한 불꽃으로 모습을 변화한다. 집어삼키는 불꽃은 이내 캔버스에 닿았고, 종이가 타들어가는 화향이 퍼지기 시작한다.

 “이제 다빈치는 죽을 때 까지도 그녀를 기억하지 못 할 것입니다. 가슴속에 스며드는 공허함의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괴로워하겠죠. 제가 내릴 수 있는 최고의 저주는 이게 끝입니다. 죄를 가진 채 죽는 것 보단 괴로움에 신음하는 편이 몇 배는 힘들 테니까요.”

 재가 되어버린 캔버스, 이제 다시는 타오르지 못할 재를 보는 베아트리체의 슬픈 미소에, 후스는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그녀를 안아주었다.

 

 .

 .

 .

 

 “호오. 이게 바로 그 다빈치의 최고의 작품이라 이건가.”

 “몇 년 동안이나 공방에 나오질 않더니 자리에 앉아 한 달 동안 미친놈처럼 붓을 휘둘러 대더군요.”

 귀족은 걸려있는 그림을 보며 알 수 없는 매력에 빠져들었다. 결코 아름다운 얼굴은 아니었다. 어디에나 있을 흔해빠진 얼굴. 그러나 시선을 땔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화가들은 일생에 한두 번 걸작을 그려냅니다. 그 그림은 이상할 정도로 아름답죠. 특유의 붓 터치, 색감의 조화를 모작으로 흉내 내는 것은 어렵지 않아요. 하지만 백 개의 모작을 그려내도 원작에서 품어 나오는 아름다움은 결코 흉내 내지 못합니다. 그 이유를 아십니까?”

 “내가 그런 것을 안다면 그림이나 그렸을 걸세. 그렇지 않겠나?”

 귀족은 껄껄 웃으며 수염을 쓸어내렸다. 공방의 사람은 ‘그야 그렇겠죠.’ 라며 같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귀족은 웃기보다는 질문에 대한 답이 궁금했고 남자역시 입이 근질거렸다.

 “이런 예술품엔 흔히들 혼이 담긴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이상하군. 그 정도로 정성을 들인 그림에 왜 눈썹은 그려 넣지 않은 거지?”

 꼼꼼하게 붓이 맞닿은 캔버스에 실수라고 하기엔 너무 거대한 오점. 눈썹이 그려지지 않은 얼굴은 당연히 의구심이 들게 만들었다.

 “그것이 궁금하여 저도 물어보았지만. 묘한 말을 하더군요. 뭐라더라… 아 마침 저기 오는군요. 이봐! 다빈치!”

 소년의 눈동자는 푸른빛이 감돌았다. 단단한 육체와 부드러운 피부는 빛을 받아 빛나고 있었으며 매끄러운 다리는 이미 여인들의 시선을 잡아끌고 있었다. 지금도 수많은 여인들이 다빈치를 보며 눈을 보내고 있지만 이상할 정도로 그런 시선에 무감각한 소년은 오늘도 기름에 찌든 냄새를 풍기며 귀족을 향해 고개를 끄덕거렸다.

 “자네가 소문의 다빈치군. 하나만 물어봄세. 저 그림에 눈썹을 그려 넣지 않은 것은 어째서인가? 물론 지금도 아름답네만 그것이 너무 안타까워서 말이지.”

 다빈치는 공방에 걸린 자신의 그림을 바라보았다. 이내 얇은 미소를 띄운 다빈치는 바쁘다는 듯 귀족을 뒤로 한 채 공방으로 향하며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기 위해 입을 열었다.

 “완성되면 안 되는 그림도 있는 법입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요.”

 다빈치의 묘한 대답에 귀족은 고개를 갸웃 거렸으나 다빈치 역시 시원한 대답을 할 순 없었다. 그런 다빈치를 보던 귀족은 슬며시 웃음을 흘리며 미소를 흘리는 여인의 그림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것은 이유 없이 아름다웠고, 가슴을 붙잡기엔 모자람이 없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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