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리엔트의 기분은 최고였다. 오늘은 그토록 사랑하는 제자가 빛을 본 날이기도 하며 그녀가 16살이 되는 해이기도 했다. 벌써부터 자네트와 잔을 부딪칠 생각에 가슴이 설렜고 가슴에 품어둔 선물은 온기가 없지만 따듯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그 모습에 주변의 마술사들은 저마다 헛웃음을 터뜨리며 ‘역시 멍청이는 어디가지 않는다니까’ 라며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이미 행복에 녹아내린 얼굴은 팔불출 같은 미소를 지으며 오히려 그들에게 제자를 자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8살인 자네트가 싫어하여 금주를 한지 벌써 8년이었다. 술을 사랑하는 포리엔트였고 오늘만큼은 성인식이라는 변명이라면 분명 자네트도 곤란한 미소와 함께 기분 좋게 취기를 품을 것이다.
“그나저나 후스 자네가 빠져버리면 곤란한데 말이지.”
마술사들이 으레 모여드는 술집에 드물게 후스가 얼굴을 내비쳤다. 술을 좋아하지 않는 후스이지만 오늘 만큼은 미안하다는 얼굴로 내밀어지는 잔을 연거푸 들이키고 있었다.
“소식은 들었지. 대단하다며?”
후스가 다시 제자를 맞이했다는 소문은 익히 퍼져있었다. 다들 자네트와 비교를 할 정도로 후스의 제자는 총명하다는 이야기도 들려올 정도로 역시 후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소식이었다.
다들 후스가 또 다시 제자를 들일 것이라는 예상은 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팔불출 마냥 제자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고 며칠 전에는 스스로 제자를 자랑할 지경에 이르렀다.
“으! 제자를 데리고 있는 입장이라 뭐라고 할 수도 없고.”
“미안하네. 하지만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아 발이 떨어지질 않아서 말이지. 도움은 주고 싶네만 너무 멀다네. 거울을 통한 이동도 쉬운 일은 아니니 말일세.”
포리엔트는 자신이 얼마나 세상 정보를 듣지 않고 살았는지를 깨달았다. 듣자하니 꽤나 오래 지속된 전쟁이 아직도 끝을 맺지 못한 듯 했다. 대부분의 마술사은 웬만해서는 세상에 깊게 개입하지 않지만 이미 너무 오래 지속된 전쟁은 재앙이었다.
세금이 쏟아 부어지고 있었고 시민들은 빈번히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다. 그러나 물러서기엔 너무 멀리 와버린 전쟁이었고 이를 끝내는 것은 마술사들의 가장 많은 관심이 쏟아져 있는 주제이기도 했다.
“솔직히 자네가 이 전쟁에 개입하는 그림도 이상하긴 했네. 그런 점에선 잘 된 거지.”
후스는 이탈리아의 사람이고 전쟁은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전쟁이었다. 과거 프랑스가 이탈리아에 도움을 요청한 적은 있었지만 그 이후 직접적인 도움은 주지 않고 있었다. 또한 후스가 개입하면 분명 체제가 붕괴될 것은 뻔했고 잉글랜드를 지지하고 있던 몇몇 마술사들은 후스가 제자를 위해 발을 뺀다는 소식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제자가 생기면 다들 바보가 된다니까! 안 그래 포리엔트!!?”
“그야 당연하지! 얼마나 귀여운지 너희는 모른다니까!”
그 말에 후스는 작게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자네트와의 약속 때문에 금주상태인 포리엔트는 꿀을 탄 더운물을 잔들과 부딪치며 분위기에 취했다.
돌아오는 길 포리엔트의 심장이 뛰었다. 품에 넣어둔 것은 자네트를 위해 준비한 반지였다. 물론 결혼반지는 결코 아니었다. 오늘은 자네트가 지팡이를 사용하는 제자에서 벗어나 어엿한 한사람의 마술사가 되는 기념적인 날이기도 했다.
이에 포리엔트는 어떤 선물을 줄지 고민하다가 그녀의 아름다운 손가락에 맞출 반지를 떠올렸다. 사치품이지만 자신을 떠올리며 기억해 줄 물품으로는 그것이 제격이었다. 마술사는 무릇 손과 머리를 사용하는 이들이니 말이다.
마음 같아선 자신의 이니셜을 새겨 주고 싶었지만 그녀는 독실한 교회 신자였다. 마술을 알고도 신을 믿는 모습은 흔들림 없는 믿음이었다. 그렇기에 세 개의 십자가, 그리고 예수와 마리아를 뜻하는 글씨를 새겨 넣어 주었다.
“마음에 들지 않을 리는 없겠지? “
생각해보면 자네트는 사치를 즐기지 않았다. 어쩌면 책 몇 개를 사 주는 것이 더욱 좋았을 지도 모른다. 건네준 책이 창고에 수북히 쌓여있지만 그녀는 책이라면 언제나 미소를 짓곤 했으니까.
포리엔트는 애써 고개를 흔들었다. 여자는 반지에 약하다며 설득한 장인의 말을 굳게 믿기로 했다.
잘 그려진 달빛은 희미한 빛을 뿜으며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달빛은 창문을 넘어 테이블에 아로새겨졌으며 그 희미한 불빛 속 이제 한 사람의 어엿한 마술사가 될 자네트는 신음을 내뱉었다.
낮은 신음의 사이로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새 열려진 창문 사이로 물이 떨어지고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너무도 당연하게 포리엔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평소와 같이 편안한 복장, 조금 멍청해 보이는 얼굴.
“생일 축하해 자네트.”
오늘이 지나면 이제 귀엽고 사랑스럽던 소녀는 없을 것이다. 바지자락을 붙잡고 뒤를 졸졸 따르던 귀여운 소녀는 성인이 되었고 한사람의 마술사가 되었다. 지금처럼 편한 대화와 실없는 웃음은 지어내기 힘들 것이다.
한 사람의 마술사로써 예절을 차리고 서로를 존중하며 뜻을 관철하고 그저 서로를 존경하는 관계로써 변하겠지. 그렇기에 오늘 만큼은 마음껏 품에 안고 볼을 쓰다듬어 주고 싶었다.
자네트는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그 모습이 조금 어색했지만 이 또한 그녀 나름의 감사라 생각했기에 포리엔트는 실없이 웃으며 자네트의 방에 털썩 주저앉았다.
“포리엔트 할 말이…….”
“잠시만! 그전에 내가 먼저!”
포리엔트는 그렇게 말하며 품속에 넣어두었던 상자를 건네주었다. 나무를 가죽으로 덧댄 상자는 고풍스러웠으며 장인의 숨결이 수놓아진 보석은 희미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자네트는 손을 뻗어 상자를 받아들었다. 이음쇠 부분도 빈틈없이 처리되어 분명 몇 십 년이 지나도 헐거워지지 않을 듯 했다.
“생일선물이야!”
원래라면 마술사가 된 기념으로 주는 선물이야! 라고 말하려 했지만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직은 마술사로 졸업시키기 싫다는 작은 욕망이 입을 멋대로 움직였다.
자네트는 감사히 상자를 받아들었고 열어보였다. 그곳엔 아름다운 반지가 있었다. 포리엔트 치고는 꽤나 괜찮은 선물이라는 생각에 미소가 지어졌다.
하지만 한때의 감정. 피어올랐던 미소는 사라졌고 싸늘함이 드리워졌다. 포리엔트는 무슨 말일까를 기다리는 듯 몸을 가만히 두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거리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아이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이야기인데도 내뱉으려 할 때마다 숨이 막혀오고 머리가 아찔 거렸다.
그 광경을 본 포리엔트는 철없이 그저 귀엽다는 생각에 방실거리고 있었다. ‘그야 고맙다는 말을 하려면 힘들겠지’ 라는 상상을 하며 조용히 품어온 포도주를 개봉했다.
귀족의 작법은 대충 알고 있다. 말하기 힘든 말이라면 술기운에, 그리고 술잔을 부딪치며 하는 귀찮고도 멋진 풍습에 오늘은 따라주기로 했다.
쇳물을 녹여 만든 고풍스러운 잔에 포도주가 담겼다. 달빛은 오늘따라 너무 밝았고 맑은 포도주에 반사되어 분위기를 고조시켜주었다.
이 정도로 주변의 상황이 도와주고 있었다. 더 이상 미루지 말라는 듯 등을 떠밀고 있다. 그래, 잔을 부딪치고 입을 열어 말하자. 한사람의 마술사를 축복하고 그녀에게 존경을 표하자.
그녀의 손에 들려있는 잔이 떨리고 있었다. 포도주에 반사된 달은 형체를 잃고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잔을 들이밀고 건배를 청했다.
자네트는 들고 있던 잔을 내려놓았다. 영문을 모르는 포리엔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최대한 싸늘한 표정과 흔들리지 않는 시선으로 포리엔트의 눈을 마주했다. 그리고 질식할 정도로 아름다운 입술을 열어.
“당신의 곁을 떠나겠어요. 포리엔트.”
이별을 선언했다.
***
포리엔트는 잠시 말의 의미를 이해 할 수 없었다. 그저 단순히 졸업의 의미라 생각하여 포도주를 부딪치려 했지만 자네트는 그조차 거부하며 잔을 내려놓았다.
시선이 교차한다. 심장은 자맥질치기 시작하며 머릿속은 황폐하게 쓸려나가기 시작한다. 단지 한마디의 말, 그러나 무엇보다도 강한 날이 빛나는 비수는 포리엔트의 심장을 꿰뚫고 그를 떨어뜨렸다.
들고 있던 잔을 내던졌다. 잔에 담긴 포도주는 달빛을 머금지 못했으며 그 향기만을 방안에 흩뿌렸다.
한스러웠다. 알아채지 못한 자신에게 화가 났다. 그녀의 눈길에서 피어오르던 한줄기의 의심을 그저 기우라 생각하고 넘긴 자신을 참을 수 없었고 속이 들끓어 뒤집히려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이 그 한마디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총명하다는 점이 제일 한스러웠다.
예전의 자신이라면 무슨 소리냐며 술잔을 부딪쳤을지 모른다. 또는 놓아주지 않고 우악스럽게 자신의 뜻을 관철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눈동자. 얇게 펼쳐 바른 유리가 파편이 되어 으스러지도록 광채를 뿜고 있는 그 눈동자를 본 순간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허락하지 않아!”
알고 있다. 듣지 않을 것이며 쓸데없는 비명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러나 그럼에도 이 부질없는 짓이라도 하지 않으면 무너질 것만 같았다.
자네트의 눈에는 슬픔이 감돌지 않았다. 분명한 광채는 달빛을 담았고 그 안에 담긴 수많은 감정을 숨기려 평온을 유지했다. 그녀는 포리엔트와 시선을 마주했고 호소하듯 손에 쥔 팬던트를 내려놓았다.
10살이 되던 해 그가 건네주었던 싸구려 팬던트를 보며 포리엔트는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그만 의자에 걸려 넘어지고 말아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럼에도 그는 고개를 흔들며 현실을 부정했다.
그리고 더 이상 부정조차 할 수 없을 때 그를 지탱해온 일말의 희망은 분노에 불길을 넣었고 타오르는 분노가 그에게서 마술을 이끌어 내었다.
그 작은 공간이 젖어들기 시작했다. 그의 눈물은 비가 되듯 천장에 맺혀 떨어지기 시작했으며 거대한 소리와 함께 방안을 침수시키기 시작했다. 먼지는 쓸려나갔고 자네트의 옷은 젖어들었다.
마술사가 비를 내리는 것은 불가능 하다. 그러나 이 작은 공간속을 매우지 못할 정도의 분노가 아니었기에 그는 남김없이 감정을 토해냈다. 쉴 새 없이 저주의 말을 내뱉었으며 점차 차오르는 물은 자네트의 턱 끝까지 차올랐다.
한 줄기의 빛. 형성하여 모든 것을 감싸는 그 기적의 마술을 기대했다. 포리엔트의 버린 줄 알았던 작은 희망이 아직도 남아 질척거리며 그녀의 몸을 휘감은 채 놓아주지 않았다.
그러나 물이 차올라 입을 가리고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으며 눈을 뜰 수 없고 숨이 막혀 더 이상 정신을 유지 할 수 없는 지경에 가서도 그녀는 빛을 뿜어내지 않았다.
결국 포리엔트는 차오른 슬픔을 강제로 거두어 들였다. 감정의 파도가 다시금 몰려들어 심장을 괴롭혔다. 남아있는 물기에 반사된 표정은 일그러져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포리엔트는 입을 열었다. 다시 한차례 자신을 저주했다. 마술사임을 저주했다. 이미 모여든 물이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분노가 형상화 되어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만들어 내기 시작한다.
“실라리온 앤서네이드.”
자네트의 몸이 다시 한차례 젖어들기 시작한다. 물기를 머금었던 머리카락은 다시 떠올라 비명을 지르듯 흩어졌다. 유리의 파편을 담은 눈으로부터 빛나는 광채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으윽…….”
자네트의 신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고통이 담긴 소리에 포리엔트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고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서둘러 물을 떨쳐내었다. 떠올랐던 자네트의 몸이 바닥에 쳐박히며 굉장한 소리를 내뱉었다.
“아…아아아아!!!!”
포리엔트는 괴로움에 비명을 내질렀다. 자신의 소망을 옮긴,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평생 곁에 두어 행복을 속삭일 그녀가 거친 숨소리와 함께 피를 내뱉고 있었다.
두 눈을 의심케 하는 자신의 고집이 만들어낸 결과에 결국 포리엔트는 머리를 쥐어 감싸며 그녀를 차마 바라보지 못한 채 서둘러 그 장소를 벗어났다.
“무슨 일이니 자네트!”
방안에서 들려온 거친 소리에 자네트의 부모가 달려왔다. 그리고 펼쳐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그들은 끝내 다리에 힘이 풀려버렸다.
물기를 머금은 그녀와 재앙이 휩쓸어버린 침실. 마술의 존재를 모르는 그들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그녀를 안아 이름을 외치기 시작했다.
자네트라는 이름이 몇 번이나 반복되었을 즈음. 자네트는 기침과 함께 물을 뱉어내었다. 얼굴은 혈색을 띄었으며 숨을 몰아쉬었다.
“자네트!!!”
어미의 외침에 자네트는 가까스로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어미와 아비는 심장을 쓸어내리며 신에게 감사를 표했다.
“무슨 일이니!”
자네트의 머릿속에서 포리엔트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슬퍼보였던, 분노를 띄웠던 절망했던 그 얼굴이 지금도 원망을 토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그녀는 몸을 일으켜 나지막이 속삭였다.
“신의 목소리를 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