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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사
작가 : 크라피아
작품등록일 : 2017.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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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또 한명의 마술사의 제자 <11>
작성일 : 17-07-23     조회 : 319     추천 : 0     분량 : 3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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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인 잔은! 신의 은총을 받고 있는가!!!”

 "만약 제가 은총의 상태에 있지 않다면 하느님께서 제게 은총을 베풀어 주시기를, 만약 제가 은총의 상태에 있다면 하느님께서 제게 계속해서 은총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재판관은 이를 갈았다.

 지금까지 이어진 모든 함정을 알기라도 하는 듯 너무도 당연하게 피해가는 그녀의 답변에 이미 모여든 70명의 재판관이 더 이상 질문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은총을 받았다 말한다면 신의 이름을 사칭한 죄로 단죄를 내렸을 것이다. 또한 은총을 받지 않았다 한다면 저주를 받았다며 그녀를 악마로 몰아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 조차 불가능했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시골에서 태어나 글조차 읽지 못하는 그녀가 어찌 70명이나 되는 재판관들을 몰아붙이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 까지 부끄러울 뿐이었다.

 시민들도 하나 둘 더 이상 잔에게 이단이라는 말을 내뱉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신이 그대로 헌신한 듯 옳은 말과 틀리 지 않은 가르침을 전하고 있었다.

 몇몇 주교들은 그녀의 말을 받아 적고 있었고 이미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는 자들도 있었다. 재판관들은 불안했다. 그러나 그들보다도 이 재판을 주도한 샤를은 분노에 가득 차 붉어진 얼굴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무너뜨리는 것이 이토록 어렵단 말인가…!”

 샤를은 자신이 그녀를 무시했다는 것을 시인했다. 글을 읽지 못하는 여자라 무시했고 그 결과는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글을 읽지 못하는 소녀는 재판의 법률을 알고 있었고 단호히 재판의 불공정함을 토로했다.

 이미 여론은 상당히 좋지 않았다. 프랑스에서 그녀를 구하기 위한 모금이 열렸던 적이 있었으나 샤를은 그 모금을 거절했다. 그에게 그녀는 구할 가치가 없는 여자이며 더 이상 여자의 분위기가 풍기지 않는 소녀이기도 했다.

 은화 70kg이라는 거금을 들이기도 아까웠을 뿐더러 그는 자신의 능력에 자신이 있었다. 잔을 이단으로 몰아 시민들을 속일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현 상황까지 도달했다. 그녀는 연신 시민들을 둘러보며 자애롭게 한마디 한마디를 전하고 있었다.

 “그대는 남장을 하지 않았는가!”

 “한 사람의 여자가 남자들의 사이에서 그 조차 하지 않고 칭송받는 것이 가능하다 생각하시는 겁니까.”

 잔은 아름다웠다. 피곤과 땀에 젖어 침대에 몸을 뉘여 새근거릴 때면 그녀의 막사 주변엔 병사들이 모여들었다. 그들 중엔 불손한 감정을 품은 자들도 있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그들의 욕망을 알았기에 잔은 남장을 택했다.

 길었던 머리를 잘라내었고 여자로 보일 수 있는 모든 부분을 감추었다. 평생에 걸쳐 사랑할 단 한사람에게 배신을 할 수는 없었기에 누구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길 바랬다.

 샤를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표면으로는 모르는 척을 하며 암암리에 병사들로부터 정보를 수집했고 이를 전달했다. 잉글랜드는 손을 들어 환영했다. 물론 정보를 전달한 병사를 숙청하는 것 역시 잊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그녀가 죽어주기만 한다면. 나아가 그녀가 죄를 받고 죽는 것. 그보다 좋은 이야기는 샤를에게 없었다.

 잔은 남장이라는 혐의에 반론을 펼쳤다. 실제로 반년 전 열렸던 재판에서도 순결을 지키기 위한 남장은 인정된 전례가 있었다. 그럼에도 재판관들은 고개를 흔들어 그녀를 몰아세웠다.

 이날 잔은 애달프도록 시민들을 둘러보았다. 시민들은 그녀의 자애의 눈빛을 보며 그녀에게 깊게 빠져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시민들에게 깨우침을 줄 의도 따위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 재판에서 이길 생각도 없었다.

 그저 한 사람. 그 눈동자를 바라보기 위하여. 쉬지 않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가 있다면 알아보지 못할 리 없었다. 반나절이 지나갔다. 그녀에게 더 이상 죄를 물을 수 없던 재판관들은 다음 재판을 준비하고 있었다.

 시민들도 하나둘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토록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포리엔트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인지는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이미 수차례 내친 그의 얼굴을 쫓는 다는 것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잘 알고 있음에도 그저 그의 눈을 바라보고 싶었다. 그러나 결국 모든 재판이 끝나고 다시 감옥에 끌려갈 그 순간까지도 포리엔트는 나타나지 않았다.

 

 ***

 

 “부탁이야 후스. 딱 한번이면 된다고…….”

 그러나 후스는 단호하게 고개를 흔들어 보였다.

 포리엔트는 지난 한달 간 미친 듯이 마술을 탐구했다. 자신의 만족을 위함이 아니었다. 달빛이 빛나고 자네트가 16살이 되던 그날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내듯 그녀에게 내린 저주를 풀 방법을 찾기 위하여.

 끝끝내 1년이 넘도록 찾아내지 못했던 방법을 한 달 만에 찾아 낼 수 있었다. 글을 보지 못할 그녀에게 다시금 글을 돌려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전해줄 말을 전할 편지도 준비를 끝냈다.

 그녀가 얼굴을 보지 않길 바란다면 적어도 자신의 진심만큼은 전하고 싶었다. 원망하지 않는다고 그녀에게 보낼 사죄는 아직도 남아있었다.

 하지만 가해진 후스의 제제로 인하여 마술을 피워낼 수 없었다. 도달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후스의 바지를 붙잡고 미친 듯이 고개를 조아렸다. 단 한번, 한 번의 마술이라면 후회조차 남기지 않을 터.

 그럼에도 후스는 허락하지 않았다.

 그가 원망스러웠다. 마술을 돌려주지 않는 점이, 단호히 무시하는 그 얼굴이, 나아가 그녀를 가장 몰아붙이고 있는 것이 그이기에.

 벌써 재판은 끝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이미 그녀는 이단이라는 죄목을 선언 받았고 빌어 처먹을 교회 놈들은 그녀를 죽일 준비를 가속하고 있었다.

 그녀를 볼 수조차 없었다. 얼굴을 마주하더라도 말을 전할 수 없었다. 그녀와 만날 수 있다면… 그녀의 얼굴에 지어질 그 아름다운 미소를 볼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다.

 정령왕을 찾아 목숨을 버리겠다 선언했지만 그조차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자신이 그녀를 위해 쌓아올린 모든 것은 이제 존재치 않았다. 머릿속에 감도는 사형이라는 한 단어만이 쉬지 않고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런 포리엔트를 바라보는 후스의 마음에는 어느 때 보다도 깊은 슬픔이 차오르고 있었다.

 몇 달 전 베아트리체가 정령왕에게 모든 것을 잃을 뻔 했을 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면 지금 바닥에서 고개를 조아리고 있는 것은 자신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아이를 내버릴 부모는 어디에도 없듯 자신 역시 미쳐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 한차례 미쳐버렸었다. 그날 내리지 못한 선택이 재앙을 불러 일으켰고 아직도 남아 로마 전역에 어둠을 흩뿌리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서야 후회를 알았지만 아직도 선택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포리엔트의 등을 두드려 위로를 건네고 싶었다. 말을 전해 설득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를 잃은 그 심정을 알기에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떤 말을 한들 변치 않을 비참함을 덜어줄 자신이 자신에게는 없었다. 그러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다소 강압적이라도 후회가 남지 않을 선택을 강요할 뿐.

 평생을 미움 받더라도 그 편이 좋았다. 자신과 같이 비참한 남자가 또 한명 태어나는 것은 바라지 않았기에.

 문득, 그녀의 이름이 머리를 휘감았다.

 아직도 사랑스럽고 아직도 잊지 못한 그녀의 온기가 품속에 남아있었다. 베아트리체에게 잠식당해 사라졌을 것이라 믿었던 그 감각과 온기에 몸을 떨었다.

 “베아트리스…….”

 과연 그녀가 미소를 흘리고 자신에게 사랑을 말한 다면 자신은 떨쳐낼 수 있을 것인가. 가능치 않았다. 여전히 사랑스러웠다.

 심장에 비수를 박아 넣은 그녀는 여전히 사랑스러웠다. 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사랑 할 수 없었다. 마음은 남았으나 받아들이는 것이 불가능했다.

 사랑이 남아있기에 그녀를 사랑할 수 없었다. 잊을 수 없고 잊지 않을 수도 없는 그 날의 선택을 번복하지 않기 위하여.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머리를 박은 채 일어나지 않은 포리엔트를 향하여 냉혹하게 보지 못한 척을 하는 것. 슬픔을 이겨내고 내릴 최선의 선택을 위해 후스는 베아트리체를 끌어안았다.

 따스한 감촉이 심장을 매워온다. 찢어질 듯 했던 심장이 다시금 뛰기 시작한다.

 “무슨 일 있나요 후스?”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니다.”

 베아트리체는 총명하다. 총명한 그녀이기에 더욱이 말을 아낀 채 자신을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 그때의 그녀와 너무도 같은 미소와, 같은 얼굴로.

 다만 그 조금도 틀리지 않은 미소가, 그가 내린 한때의 실수에 대한 죄책감을 전달하고 있는지는 그녀 역시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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