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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단수-천수(天樹)의 환생.
작가 : 동그리
작품등록일 : 2017.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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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보름 전야 1.
작성일 : 17-07-26     조회 : 282     추천 : 0     분량 : 4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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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이 세상을 이렇게 만들었다고? -

 

 

 “마마, 괜찮으시옵니까?”

 

 수영은 벽에 기댄 채 움직이지 않았다. 머리카락에 가려진 얼굴이 표정도 없이 어두웠다. 해가 움직이면서 담벼락의 그늘이 그녀의 얼굴에 더 짙은 그림자를 만들었다.

 

 “마마, 어서 궁으로 돌아가셔서 시료를 받으셔야 합니다. 상흔이……, 너무나 깊사옵니다.”

 

 제 상전을 향한 소상궁의 간절한 청에도 그녀의 몸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다친 손목을 잡은 손이 떨리는 듯 했으나, 얕은 숨소리만이 들리다 말다 할 뿐이었다.

 

 “마마, 어서 환궁하셔야 하옵니다.”

 

 이번엔 앞에 선 좌장군이 초조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 내가, 그러니까……, 신단수가 만든 이 세상이 실패……, 했다고? -

 

 

 모여선 사람들의 불안한 시선 속에서 수영의 고개가 움직였다. 아주 천천히 사람들이 다니는 운종가 길을 향해.

 

 

 - 운종가! -

 

 

 “마마, 왜 그러시옵니까? 무엇이옵니까? 마마?”

 

 좌장군의 다급한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수영이 몸을 세워 걷기 시작했다. 옆에 서 있던 소상궁이 놀라 달려나가 수영의 다친 손목의 팔을 부축하듯 붙들었다.

 

 “마마, 어디를 가시려 하시옵니까?”

 

 소상궁의 걱정스런 물음에도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는 운종가를 향한 수영의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운종가 쪽으로 걸음을 잡으신다. 골목을 빠져나가는 즉시 내금위는 맡은 위치에서 호위한다. 사람들이 많은 곳이다. 사방의 경계를 늦추지 말라.”

 

 “예, 장군!”

 

 대답과 함께 그 많던 병사들이 지붕 위로, 골목길 사이사이로 흩어졌다.

 

 “홍안은 나머지 병사들을 데리고 공주 마마를 호위하여 환궁한다.”

 

 “예, 장군!”

 

 빠르게 목례로 대답한 홍안이 몸을 돌려 소영 공주를 향했다.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홍안의 등 뒤로 수영을 향해 달려 나가는 좌장군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소영 공주는 왠지 모를 서운함을 느꼈다.

 

 “공주 마마, 저 여인, 뭔가 이상하지 않사옵니까?”

 

 “쉿, 그런 말 말게. 저 분……. 이 모든 상황을 혼자서 감당하셨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상황을 지켜보던 소영 공주는 내금위 군사들의 호위 속에 환궁하는 걸음을 재촉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저 운종가를 걸으며 천신님과 함께 재미난 구경을 하려했을 뿐이었는데, 이런 곳에서 연향 대군을 만나게 될 줄은……. 더구나 연향대군의 폭력적인 언사를 저 분 혼자서 감당하셨으니……. 소영 공주는 자신이 나서지 못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어찌 10년 전과 다름이 없으신지……. 아니, 더 무서워지셨어.”

 

 “그러하옵니다. 공주 마마. 소인 또한 그 눈빛에 질려 옴짝달싹을 할 수가 없었사옵니다. 그때 좌장군께서 나타나지 않으셨으면 정말 큰일 날 뻔하였사옵니다.”

 

 “그래…….”

 

 좌장군은 분명 연향 대군이 어떤 분인지 알고 있었어. 그런데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천신님을 지키려 날아드는 칼을 피하지 않고 막았어. 천신님의 작은 신음 소리에도 금세 불안하게 바뀌던 그 표정…….

 

 “헌데, 나, 그분……, 그런 얼굴…….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네?”

 

 조상궁은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말하는 상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공주의 하얀 얼굴이 어딘가 서운하고 슬퍼보였다.

 

 --

 

 “마마, 어디로 가시옵니까? 손목은 아프시지 않으시옵니까?”

 

 소상궁의 걱정스런 물음은 계속되었지만, 수영은 뭔가에 홀린 듯 연신 고개를 돌리며 이리저리 초점 없는 시선을 둘 뿐이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저으며 이상한 소리를 내뱉었다.

 

 “아니야……. 아니야!”

 

 “예? 뭐라 하셨습니까? 마마!”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에 소상궁이 상전의 입술을 향해 시선을 두던 그때 갑자기 수영이 방향을 바꾸어 달리기 시작했다.

 

 “저쪽은 개천이 있는 곳인데!”

 

 좌장군은 이미 수영의 바로 뒤를 달리며 호위하고 있었다. 보는 눈이 많았다. 어서 천신님을 환궁시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수영의 뒤를 따르다 멈춘 곳은 개천 거지들의 움막이 보이는 다리 위였다. 누런 황톳물이 고인 개천가에 기둥도 세우지 못한 움막을 짓고 더벅머리에 누더기 차림을 한 걸인들이 오고 갔다.

 

 “저 사람들……. 왜, 저렇게…….”

 

 그들을 바라보는 수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마마, 지금은 저들보다 마마께서 환궁하시는 것이 중요하옵니다.”

 

 “그 사람이 나보고 그랬어요. 지금 이 세상이 나 때문에 실패했다고. 아까 운종가에서도 마르고 지쳐 보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저기 저 사람들은 더 심해요. 아니, 어쩌면 세상이 실패했다고 할 만큼 뭔가 더 안 좋은 게 있을 수도 있겠죠? 그런데 그게 모두 신단수의 탓이래요. 정말이예요? 좌장군도 그렇게 생각해요?”

 

 좌장군은 자신을 바라보는 수영의 일그러진 눈빛에서 고통스러움을 느꼈다. ‘지금까지 연향대군이 한 말을 곱씹고 계셨구나. 이 세상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손목의 아픔도 잊어버리신 채로…….’

 

 “천신님의 책임이 아니옵니다.”

 

 좌장군은 고개를 숙이고 낮은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소신, 많은 것을 알지는 못하옵니다. 하오나 지금 이 세상이 실패했다는 것은 연향 대군의 생각일 뿐이옵니다. 하오니, 대군의 말은 잊어버리시옵소서.”

 

 “그런데……. 난 왜……, 연향 대군의 말이 맞는 거 같은 걸까요……?”

 다리 아래 움막을 바라보고 섰는 수영의 어깨가 반동처럼 떨렸다.

 

 “마마…….”

 

 뭔가 위로가 될 말을 찾지 못한 좌장군은 자신을 등지고 서있는 수영의 어깨를 다독여주고 싶었다. 좌장군은 주변을 살피며 어렵게 손을 들어 앞에서 선 여인을 향해 뻗었다. 그때였다.

 

 “아까부터 내 귓가에서 이상한 소리가 떠나지 않아요. 궁으로 가요. 맹의원님을 만나 뵙고 싶어요.”

 

 ===

 

 “천신님께선 아직이신가?”

 

 “곧 당도하신다 하옵니다. 전하.”

 

 상참을 마친 뒤 대신들이 빠져나간 근정전의 어좌는 더 없이 쓸쓸해 보였다. 근정전 마당 앞에서 안쪽을 바라보던 임금이 한숨 섞인 말을 이었다.

 

 “저 어좌를 지키느라고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어갔던가.”

 

 “전하. 어인 말씀을…….”

 

 옆에 선 박상선이 몸 둘 바를 몰라 허리를 숙였다. 노을빛으로 물든 용안이 더 없이 쓸쓸해 보였다. 이 세상에 미련을 두지 않는 사람처럼…….

 

 “상선, 향화정으로 가자꾸나.”

 

 ==

 

 “마마, 조금 아프실 것이옵니다.”

 

 수영은 맹의원의 시료를 받으면서도 신음 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비단 천으로 손목을 감쌀 때마다 손목이 시큰하게 아파왔지만, 그건 지금 그녀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다 되셨습니다. 마마. 등의 통증은 아려오지 않으십니까?”

 

 수영은 바로 앞에서 자신의 눈을 바라보며 물어오는 이 맹의원이라는 사람의 눈을 지그시 들여다보았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눈. 주름진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짙고 까만 눈동자가 투명하리만치 맑은 흰 눈자위 위에 떠 있었다.

 

 ‘적어도 거짓말은 하지 않을 눈이다.’

 

 수영의 눈빛에 간절함이 베어 올랐다. 맹의원은 어제보다 더 야윈 이 여인에게 이제 자신의 얘기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맹의원님.”

 

 “예. 마마, 하문하오소서.”

 

 “어젯밤에 제가 신단수의 환생이라고 하셨어요. 그 단군 이야기에 나오는 하늘의 나무라고…….”

 

 “그러하옵니다. 마마.”

 

 “음……. 제가 물을 게 너무 많은데……. 하- 그러니까, 음…….”

 

 수영의 눈가에 눈물이 차올랐다. 뭐부터 물어야 할지를 생각하는 순간, 이곳에 온 뒤로 겪었던 많은 일들이 차례대로 떠올라 그동안 힘들었던 마음에 서러움이 북받쳤다. 많은 질문과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머릿속에 떠다니면서 맹의원을 향하던 시선이 갈 바를 잃고 방안을 떠돌았다.

 

 “음음, 그러니까……. 그래요, 내가 신단수로 이곳에 왔다고 했던 말이 사실이라 쳐요. 그런데 대체 신단수가 뭐죠? 그게 뭐 길래, 난 여기 오자마자 이상한 사람들한테 쫓기고, 붉은 검을 가진 사람들에게 칼을 맞고, 또 아까 운종가에서 만난 대군이란 작자는 날보고 이 세상을 이렇게 만들었다고 원망까지 했어요. 그리곤 자기를 위해서 신시를 만들래요, 나한테 왜 그러는 거죠? 신단수가 대체 뭐 길래요?”

 

 말을 이을수록 수영의 눈에 맺힌 눈물이 서서히 걷혔다. 수많은 생각들 속에서 물어야 할 것들이 정해지자, 주변을 훑으며 방황하던 눈동자도 다시금 맹의원을 향해 간절한 눈빛만을 두었다. 침착해진 수영의 눈을 마주하던 맹의원이 시선을 내리고 무릎을 꿇어 엎드렸다.

 

 “신단수(神檀樹)는 하늘과 땅의 나무이옵니다. 그 가지는 하늘의 바람과 비와 구름을 지니셨고, 그 뿌리는 헤아릴 수 없는 곳까지 뻗어 이 땅의 모든 것을 만들고 살게 하였사옵니다. 신단수가 없이는 하늘의 뜻을 땅의 존재들이 헤아릴 수 없고, 하늘 또한 땅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시옵니다. 신단수만이 하늘과 땅을 하나로 이을 수 있는 존재이옵니다.”

 

 엎드린 맹의원의 두 어깨가 떨리고 있었다. 수영은 아까부터 귓가에서 들려오던 소리의 정체를 알 것 같았다.

 

 “맹의원님의 말씀이 사실이라면……. 아까부터 제 귀에서 들리는 이 목소린……."

 

 고개를 숙이고 있던 맹의원이 눈앞의 여인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신단수를 만드셨다는 그분……. 환웅이시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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