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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단수-천수(天樹)의 환생.
작가 : 동그리
작품등록일 : 2017.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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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보름 전야 - 환웅의 뜻.
작성일 : 17-07-26     조회 : 280     추천 : 0     분량 : 5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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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이 세상의 이야기를 하늘에 전하고, 하늘의 이야기를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는 역할을 신단수가 했다는 얘긴데……. 그런데 왜 신단수가 사라진 거지? 그리고 이곳에서 날 죽이려던 사람들은 결국 신단수를 죽이려던 사람들이란 건데, 왜 신단수를 죽이려는 거지? 신시(神市)를 만들라던 연향 대군의 말은 또 뭐고?’

 

 맹의원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수영은 더 많은 질문들이 떠올랐다. 앞에서 서로 기분 좋은 웃음으로 웃고 계신 두 어른을 향해 수영은 몇 가지를 더 물었다.

 

 “그런데 맹의원님께서는 제가 신단수의 환생이라고 하셨어요. 그렇다면 그 나무가 죽어서 저로 환생했다는 얘긴데……, 신단수는 그때 왜 이 땅에서 사라지게 된 거죠?”

 

 “그것은……, 아주 오래 전의 이야기부터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웃음을 거두고 임금은 맹의원을 향해 편안한 눈빛을 보냈다. 숨김없이 이야기해도 좋지 않겠냐는 뜻이었다. 맹의원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뒤 눈을 감은 채 옛 일을 떠올리듯 이야기를 시작했다.

 

 “환웅께서는 처음에 세상을 내려다보시면서 늘 안타까워하셨다 하셨습니다. 병들어 아프고, 슬퍼하고, 고통 받고, 가지지 못해 뺏고, 죽이고 하는 세상을……. 하여, 이 세상의 생명들을 이롭게 할 수 있게 되길 기원하고 또 기원하셨다 하셨지요. 허나, 하늘의 신들은 땅의 것들과는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때 환웅께서 만드신 땅의 것들 중에 한 그루의 나무가 땅의 세상을 위한 간절한 기도를 올렸고, 그 기도를 환웅께서 받으셨다하셨습니다. 하여, 천지 만물을 다스리시는 제석(帝釋) 환인님께 청하여 하늘 아래 땅의 세상으로 오시게 되었지요. 그리고 그 나무를 찾아 하늘에 기도드릴 신단(神壇)을 짓고, 나무의 이름을 신단수(神檀樹)라 하시었습니다.

 

 환웅께서는 자신과 같은 마음을 가진 신단수에게 약속했지요. 신단수가 선택한 백성을 지키고, 그 백성들을 통하여 온 세상을 이롭게 만들겠노라고 말입니다. 그리하여 이 넓은 세상 가운데서 신단수 아래 환웅 천황의 신들이 주관하시는 나라인 신시(神市)를 열었던 것입니다. 그 얼마나 아름다운 곳이었겠습니까? 환웅께선 신시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을 홍익사람이라 부르셨고, 이들이 온 세상에 널리 퍼져 세상사람 모두를 이롭게 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것이 환웅 천황님의 뜻이었지요. 헌데 신단수가 베어진 것입니다.”

 

 아련한 눈빛으로 맹의원이 하는 얘기를 상상하던 수영은 신단수가 베어졌다는 말을 듣는 순간 가슴팍이 저릿해지는 통증을 느꼈다.

 

 “신단수가……, 베어……, 졌다구요?”

 

 “그러하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들 몇몇이 욕심 많은 땅의 사람들과 결탁하여 자신들이 마음대로 다스릴 땅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하늘의 신물(神物)로 신단수를 베었지요. 그때, 환웅님의 진노는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참으로 사랑하시던 나무였고, 환웅님의 뜻을 담은 유일한 나무였으니까요. 하여 환웅께서는 이 땅의 욕심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하셨고, 또 분노하셨습니다. 만약 신단수가 이 세상에서 소멸하는 순간에 환웅께 올린 마지막 기원이 아니었다면, 이 세상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옵니다.”

 

 “마지막 기원이……, 뭐였죠?”

 

 수영은 먼 옛날, 자신의 기도였을지도 모를 그 마지막 기원의 내용이 궁금했다. 그러자 떠오를 듯 말 듯 뭔가 알 수 없는 뭉클함이 저릿한 가슴의 통증이 되어 밀려왔다. 그때였다. 윙-

 

 '바람 소리? 또!'

 

 <<환웅이시여…….>>

 

 ‘누구지?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린데?’

 

 수영은 귓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앞에 앉은 맹의원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 땅의 백성들이 진실한 것을 더는 볼 수 없고…….”

 

 <<아름다운 것을 더는 들을 수 없어 가슴이 텅 비어 갈지라도…….>>

 

 ‘누구지? 환웅이신가? 아니야, 달라!’

 

 메아리처럼 들리는 맹의원의 말소리 사이로 정체를 알 수 없는 목소리가 점점 또렷이 들렸다.

 

 <<그들이 이 땅에서 올리는 기도를 외면하지 말아주시옵소서.>>

 

 바람 소리가 잦아들며 들리는 목소리에는 슬픔이 가득했다. 수영의 눈에 눈물이 고여 들었다. 그 눈물을 바라보며 숙연한 목소리로 맹의원은 신단수가 남긴 기원의 마지막 구절을 읊었다.

 

 “그들이 이 땅에서 하늘에 기도를 올리는 한 이 세상을 버리지 말아주시옵소서.”

 

 맹의원의 얘기가 끝나자, 수영의 두 눈에서 맺혀 있던 눈물이 떨어졌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수영의 가슴에 밀려들었다.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닦고 있는 수영을 향해 맹의원이 말을 이었다.

 

 “하여 환웅 천황께서는 신단수를 이 땅에 다시 보내시어 새로운 세상을 만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잠시 말을 끊은 맹의원은 앞에 앉은 임금을 바라보았다. 이 예언을 입에 올려도 되는지를 묻고 있는 눈빛이었다. 맹의원의 의중을 읽은 임금이 아련한 눈빛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인지는 알 수 없으되, 신단수가 다시 이 세상에 모습을 나타내는 날. 하늘과 땅을 지키는 신룡(神龍)이 바람을 일으키리라. 하늘의 비가 이 땅에 쏟아지리니. 하늘의 나무, 신단수(神檀樹)를 가진 자. 이 땅의 주인이 될 것이니, 영원히 하늘의 보호를 받을 것이며, 끝나지 않을 역사를 가지게 될 것이다. 이 말씀을 종이에 새기시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나는 그때 가슴이 미어진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를 깨닫고 있었다. 신단수의 마지막 기원을 듣는 순간, 어둡고 먼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두려움과 모든 것을 잃은 것만 같은 슬픔이 밀려왔다. 귓전에서 겹쳐 들리는 목소리에 묻어 있는 떨림이 마치 내 것인 것만 같았다. 외면할 수 없는 뭔가가 자꾸만 눈을 뜨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

 

 

 “형님. 어찌 이리 먼 길을 직접 오셨습니까?”

 

 절을 올린 후 무릎을 꿇고 앉은 충식의 앞에 곱슬머리가 헝클어진 채 얼굴의 반이 수염으로 덮인 남자가 가부좌로 앉아 있었다. 수염은 길었으나, 흰 가닥은 하나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헝클어진 머리 사이로 반듯한 이마며, 날카롭게 솟은 콧날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넓은 어깨에 다부진 체격까지 한 눈에 봐도 넓은 요동을 다스릴 남자라 할 만 했다.

 

 ‘서찰을 보낸 지 삼일 만에 한양에 도착하셨다면 밤낮없이 말을 몰아 달려온 것이 분명할진데……. 무엇이 이 분을 이리 급박하게 만들었단 말인가?’

 

 충식은 눈을 감고 앉아 있는 자신의 주군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형님, 지금 이 한양에 누가 나타났는지 아십니까?”

 

 정길은 충식의 질문이 참으로 영리하다고 생각했다. 좀처럼 입을 떼지 않는 분이셨다. 요동의 남자답게 성격은 과묵했고, 말보다는 칼이 먼저 나가는 분이셨다. 눈을 감고 있던 남자의 눈이 충식의 말 말미에 떠졌다.

 

 “신단수(神檀樹) 말고 또 누가 나타났다는 것이냐?”

 

 덥수룩한 수염이 들썩이자 묵직한 저음이 들렸다. 충식과 정길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이 남자의 눈빛을 감히 마주 대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

 

 “연향 대군이란 자가 한양에 다시 나타났습니다. 형님.”

 

 연향 대군이란 이름이 들리자 수염으로 덮인 남자의 입꼬리가 보일 듯 말 듯 올라갔다.

 

 “밖에 좌장군 있느냐?”

 

 “예, 형님.”

 

 “들어오너라.”

 

 충식은 열리는 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허리를 숙이고 들어오는 남자는 키가 작고 눈에 백태가 끼어 회색이 감돌았다. 나면서부터 소경인 좌장군었다.

 

 “좌장군까지……. 형님, 진정 무슨 일이십니까?”

 

 충식의 말소리가 들리는 곳을 피해 빈자리를 용케 찾은 좌장군이 자리에 앉자, 앞에 앉은 남자가 말을 이었다.

 

 “네가 말한 대로구나. 대군 연향이 제 발로 걸어나왔다는구나. 하하하.”

 

 좌장군을 사이에 둔 충식과 정길은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서로의 얼굴만을 멀거니 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니, 그것이 무슨 말씀이십니까? 대군이 제 발로 걸어나오다니요?”

 

 눈치를 살피며 앉아만 있던 정길이 되물었다.

 

 “좌장군 네가 대답해 보거라.”

 

 어린 나이에 상투를 튼 좌장군이 먼 곳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형님들께서 조선으로 떠나신 직후에 신물(神物)이 깨어났습니다.”

 

 “신……, 신물이?”

 

 충식과 정길은 자신이 주군으로 모시는 형님의 방에 있는 검은 빛이 도는 단단한 암석을 떠올렸다. 뭔진 몰라도 그것이 바로 신물일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깨어났다?

 

 “그리고 제게 신점이 하나 내렸지요.”

 

 “신점? 신단수의 신점은 이미 그려내지 않았더냐?”

 

 충식은 꿇고 있던 무릎 앞으로 두 손을 짚으며 소경을 향해 물었다.

 

 “신단수의 점괘는 이미 나타났지요. 한 가지 신점이 더 있었습니다.”

 

 “이번엔 무엇을 그렸더란 말이냐?”

 

 장은 점을 치는 것이 다른 무당과 달랐다. 그의 신점은 그림으로만 나타났다. 끝없이 펼쳐진 벌판에서 며칠간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중얼거리다 한 번씩 호흡을 멈추고는 신들린 듯이 뭔가를 그려댔다. 신단수가 나타날 것이란 신점을 그린 날은 죽지나 않을지 걱정이 들만큼 야윈 채 신점을 받아 그림을 그렸다. 충식은 회백색이 도는 장이의 눈을 바라보았다.

 

 “신단수 밑으로 짐승 한 마리가 기어드는 모양이었습니다.”

 

 “짐승 한 마리라면? 혹시?”

 

 정길은 낮에 운종가에서 좌장군과 싸우던 연향대군을 떠올렸다. 뭔가 사람 같은 않은 냄새가 난다고 생각했었다.

 

 “허면, 연향 대군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형님?”

 

 앞에 앉은 남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의 힘 있게 뻗은 숱 많은 검은 눈썹이 위로 올려지며 외꺼풀에 가로로 긴 눈이 드러났다.

 

 “신단수와 함께 곰사냥도 할 수 있게 되었어.”

 

 남자는 만족스런 미소를 흘렸다.

 

 “고, 곰이라……, 하심은…….”

 

 망설이는 충식을 대신해 정길이 나섰다.

 

 “허면, 연향 대군 또한 잡는 것입니까?”

 

 “곰 사냥이라 했다. 사냥에서 곰을 살려 둔적이 있더냐?”

 

 충식은 몸이 떨렸다. 일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

 

 “마마, 곧 날이 밝을 것이옵니다. 어서 안으로 들어가 침소 드시옵소서.”

 

 수영은 향화정 앞 연못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연못에 비친 얼굴이 낯설었다.

 

 ‘이곳에 온지 며칠 안 된 거 같은데, 좀 마른 거 같아……. 다이어트 할 때는 그렇게 찌기만 하더니……. 하긴, 여기선 삼시세끼 다 챙겨 먹은 날이 없어……. 살이 좀 빠져서 그런가? 내가 아는 얼굴이 아닌 거 같아. 연못에 비친 난 누구지? 김수영? 아니면 신단수?’

 

 수영은 맹의원이 들려준 이야기를 계속해서 되새기고 있었다.

 

 ‘내가 그 단군신화에 나오는 신단수라니……. 누가 믿을까? 나조차 믿기가 힘든데……. 그런데 이상한 소리까지 들리니……. 이건 뭐……. 아니라 할 수도 없고, 휴……, 이제 나 어떡하지 ?’

 

 소상궁은 연못 앞에 쪼그리고 앉아 두 손으로 양 볼을 감싸 쥐고 머리를 흔들고 있는 수영의 옆에 살며시 앉았다. 뒤에 서있는 좌장군이 조금 신경쓰였지만 개의치 않았다.

 

 “마마, 아무리 생각하셔도 지금은 해답이 떠오르지 않지요?”

 

 수영은 고개를 돌려 소상궁을 바라보며 끄덕였다.

 

 “그럴 땐 푹 잠을 자두시는 것이 상책이옵니다.”

 

 “잠을요?”

 

 “예, 마마.”

 

 “그런데, 잠을 못자겠어요. 잠을 자고 깨어나면 뭔가가 또 달라져 있을 것만 같아서……. 지금보다 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또 생길 것만 같아서…….”

 

 “그렇지 않을 것이옵니다. 주무시고 나면 한결 머리가 가벼워져서 해결되지 않던 문제들이 술술 잘 해결될 것이옵니다. 소인을 한 번 믿어보시옵소서.”

 

 수영은 자신의 옆에 앉아서 미소를 지어 보이는 소상궁이 정말 친구 같다고 생각했다. 친구……. 내 친구들……, 잘 있을까……?

 

 “소상궁이 있어서 참 다행이에요.”

 

 얼굴에 겨우 미소를 띤 수영이 소상궁의 부축을 받으며 몸을 일으킬 때였다.

 

 “좌장군!”

 

 향화정의 지붕 뒤편에 잠복해 있던 수하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털썩

 

 뒤를 돌아보던 수영의 눈에 향화정을 지키던 좌장군의 수하들이 힘없이 떨어졌다. 그 사이 놀란 소상궁은 소리를 지르며 수영을 두 팔로 감싸 안았다. 옆에 선 좌장군의 검이 푸른 검기를 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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