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이다!’
좌장군은 쓰러져 있는 수하들에게 눈을 돌릴 새가 없었다. 향화정의 지붕을 날아 오른 다섯의 자객들이 곧장 천신을 향해 붉은 칼을 들이밀고 날아들었다.
“피하십시오!”
푸른 색 검기를 띤 좌장군의 검이 어두운 하늘을 갈랐다.
-챙! 챙!
다섯 검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받아 내면서 좌장군은 뒤에 선 천신과 소상궁을 향해 소리쳤다.
“어서!!”
“뭐……, 뭐야! 좌……, 좌장군!”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수영은 비명을 지를 사이도 없이 자기 앞에 칼을 세우고 달려드는 자들을 피해 뒷걸음질 쳤다. 급박했다. 소상궁은 허리가 꺾여져라 다섯 자루의 칼을 받아내는 좌장군의 뒤에서, 놀라 몸이 굳어버린 수영을 데리고 연못을 돌아 뒷문을 향해 뛰었다. 그때였다. 순식간에 검은 하늘 어딘가에서 여섯의 자객들이 나타나 문 앞을 막아섰다. 주춤주춤 뒤로 걸음을 물리는 수영의 눈에 달빛에 번쩍이는 검이 들어왔다.
‘붉은 검! 날 죽이려 했던 자들!’
수영은 등의 상처가 아렸다.
“사……, 살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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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시(寅時)의 반이 넘어가고 있었다. 전날 밤 주인에게서 신단수에 대한 예언을 들은 오성은 새벽이 오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주인의 말씀이 사실이라면……. 신단수를 갖는 자가 이 세상의 주인이 된다는 것인데……. 혹, 나도……!’
오성은 자신도 모르게 일어나는 욕망에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니야, 어찌 나 같은 것이……. 아무나 꿈꿀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허나…….’
오성은 어느 새 자신의 마음이 주인의 방 안 병풍 뒤에 숨겨진 신물을 향해 있음을 느꼈다.
‘너 또한 눈이 멀고 싶은 것이냐! 정신차리거라 오성아!’
방 안의 무거운 공기가 자신의 어두운 욕망을 집어 삼킬 것만 같아 밖으로 뛰쳐나온 오성은 스스로를 다잡기 위해 하늘을 향해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구름 한 점 없던 맑은 밤하늘에 갑자기 어두운 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 이건? 보통 구름이 아니다!’
그때였다.
-쾅쾅쾅!
“대감! 대감!”
초란의 목소리였다.
“대감! 대감! 초란이옵니다. 어서 문을 여십시오!”
오성은 급히 달려 나가 대문을 한껏 열어 젖혔다. 숨을 헐떡이며 대문 앞 기둥을 잡고 있던 초란이 인사도 없이 뛰어 들었다. 마치 이 집에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을 알고 있기라도 한 듯이 갑자기 몰려든 구름을 향해 시선을 둔 채 소리 쳤다.
“어서! 대감마님을 깨우십시오! 어서요!”
오성은 뭔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간다고 생각하면서 주인을 부르며 방문을 열었다.
“대감 마님! 밖에 하늘이……, 어서 나오……. 윽-.”
말을 맺지 못한 오성이 등 뒤에 선 자의 칼을 맞고 쓰러졌다.
“나리!!”
초란의 찢어질 듯한 비명소리가 어두운 집안을 울렸다. 집안의 모든 노비들이 뛰쳐나왔지만, 이미 마당을 가득 메운 검은 복면을 쓴 자들에게 둘러싸여 칼끝에 겁을 먹고 누구도 나서지 못했다.
“누구냐!”
자리를 걷어낸 서문기는 달빛을 등지고 서있는 자의 보이지 않는 얼굴을 노려보며 노기 어린 말을 이었다. 어둠 속에서 보이는 그림자만으로도 보통 체격의 남자는 아닌 듯싶었다.
“여기가 어딘지 알고 이러한 패악을 벌이는 것이냐!”
서문기는 바로 몇 집 건너에 대기 시켜 놓은 사병들에게 이 집안의 소란이 전해지기를 바라면서 한 번 더 큰 소리로 앞에 선 자의 정체를 물었다.
“누구냐고 물었다! 어서 대답하거라!”
앞에 선 자의 칼을 쥐지 않은 손이 얼굴을 가린 복면을 벗겨냈다. 서문기는 단박에 자객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연향 대군!”
“그동안 편안하셨소이까? 영상.”
연향 대군의 차가운 목소리가 어두운 방안을 울렸다. 초란이 뛰어와 발밑에 쓰러진 오성을 일으켰다. 힘없이 축 쳐진 오성의 머리가 다시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지금 이것이 무슨 짓이오! 야심한 밤에 내 집에 쳐 들어오고도 모자라 가신까지 해하고도 무사할 성 싶소이까?!”
분노한 서문기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어둠 속에 서 있는 연향 대군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실상 그의 머릿속에는 연향 대군이 자신의 집을 급습한 이유를 찾고 있었다.
‘신물(神物)을 노리는 것인가?’
검은 신을 신은 채 서문기 앞으로 걸어 들어 온 대군이, 앉아 있는 영상을 향해 눈을 내리 깔고는 말을 이었다.
“그 신물(神物) 말이오. 지금 어디에 있소? 그것 내가 가져야겠는데?”
‘역시……. 신물을 뺏으러 온 것이었구나. 아뿔사! 연향 대군이 나타났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을 때 대비를 했어야 했다!’
서문기는 미처 대군이 자신의 신물을 이리 흉악하게 뺏으러 들이닥칠 것이라 생각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조금 더 치밀했어야 했거늘……!
“어림없는 소리!”
서문기는 고꾸라진 오성에 대한 걱정과 앞에 선 대군에 대한 두려움에 몸을 떨면서도 절대로 신물을 뺏기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들었소, 어제 새벽에 이 집에 부여에서 오신 형님께서 가지고 온 물건이 있다지?”
연향 대군은 김시영에게서 서문기 집안의 일거수일투족을 전해 들었다. 신단수를 찾기 위해 필요한 신물을 부여에 숨겨 두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지금 한양에 있다는 이야기는 시영에게서 들은 것이었다.
-대군 마마, 신단수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만약 신물을 대군께서 가지고 계신다면 일이 좀 더 수월해지지 않겠습니까?-
연향은 시영에게 신단수의 예언을 들려주고 일을 함께 하게 된 것이 참으로 다행이라 생각했다. 신물이 한양에 있다면 필시 서문기의 집안에 있을 터! 부여 전체를 뒤지는 것보다는 쉬운 일이었다.
“그것을 내어 놓거라. 그리하면 목숨은 살려주겠다!”
눈에 핏발이 선 서문기는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머리맡에 두었던 칼집에서 칼을 뽑아 든 채였다.
“어림없는 소리 말거라 이놈! 그것이 어떤 것인데, 네 놈의 말 같지 않은 겁박에 넘기겠느냐!”
소리를 지르는 서문기를 향해 연향의 자비 없는 칼이 그어졌다.
“대감!!”
초란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일으켜 서문기의 앞을 막아서려 할 때였다.
“안 된다!!”
초란 보다 앞서 서문기의 앞을 막아서는 그림자가 있었다.
“형님! 큰 형님!”
서문기에게 향하던 칼을 대신 맞고 쓰러진 큰 형님의 가슴에서 피가 새어 바닥에 떨어졌다.
“문기야……. 내……, 사람들을 부르느라 좀 늦었다……. 너에게……, 뒷일을 부탁하마…….”
그때였다. 마당에서 칼 부딪는 소리와 비명 소리가 섞여 들리기 시작했다. 큰 형님이 부른 사병들이 집안으로 들어와 마당을 메운 연향의 사병들과 싸우고 있었다. 밖이 소란스러워지자, 연향은 닥치는 대로 서문기의 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내어 놓지 않을 것이냐? 허면 이번엔 이년의 목을 쳐줄까?”
앞에 앉은 초란의 목에 차가운 칼날이 들어왔다. 피 냄새가 진동했다. 역한 냄새를 피하려 고개를 돌린 초란의 눈에 한 줄 빛이 보였다.
“벼……, 병풍 뒤에…….”
눈을 커다랗게 뜨고 병풍을 가리키는 초란의 시선을 따라 병풍 쪽으로 다가가던 연향은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병풍 뒤에서 새어나오던 빛줄기가 갑자기 강렬한 기세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서문기 역시 긴 칼을 바닥에 꽂아 몸을 겨우 세우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한쪽 팔로 눈을 가리며 겨우 한걸음씩을 옮기던 연향의 몸이 갑자기 터져 나오는 빛에 몸이 뒤로 떠밀려 밖으로 튕겨져 버렸다. 그리곤 무엇인가 알 수 없는 것이 순식간에 병풍을 뚫고 천장으로 솟구쳤다. 커다랗게 뚫려진 지붕의 기왓장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면서 구멍 난 지붕 너머로 보름에 가까운 달빛이 쏟아져 내렸다. 초란을 안고 방구석으로 피신한 서문기는 눈부신 달빛 속으로 날아가는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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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함, 형님은 왜 하필 이 새벽에 군사를 움직이시는 건지, 원!”
입이 째져라 연거푸 하품을 해대는 좌장군의 입을 좌장군의 손이 막았다.
“쉿! 형님 들으시겠다. 조용히 하거라! 장이가 인시(寅時)를 점쳤다 하지 않았더냐?”
“아, 그러니까, 장이는 왜 하필 인시(寅時)를 점쳤냐? 이 말이오! 한창 잠이 올 시간에……. 난 그냥 푹 자고 일어나서 보름달이 뜰 때쯤에나 움직일 줄 알았더니……. 젠장!”
“어허! 이런! 조용히 하라니까!”
좌장군의 앞에서 걷고 있던 남자는 좌장군의 푸념을 들으며 반 시진 전, 장이의 얘기를 떠올렸다.
<< “인시(寅時)라 하였느냐?”
“예, 형님. 그 시(時)가 범의 기운이 가장 강한 때이지요. 그들은 분명 인시(寅時)를 노릴 것입니다.”
허연 눈을 허공에 두고 앉은 장이는 앞에 앉은 주군의 거칠어진 숨소리에 고개를 틀었다. 새벽이 깊어지면서 방안의 공기가 점점 차가워지고 있었다.
“그들은 필시 신단수를 죽이려 할 것입니다. 형님께선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흠……, 내가 신단수를 가질 수 있겠느냐?”
“그것은 저의 신점으론 알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신단수의 주인이 누가 될지는…….”>>
‘장이의 능력으로 알 수 없는 점괘라면, 그것은 하늘이 알려주지 않은 것이겠지…….’
남자는 요동을 떠나기 전 환웅의 신물이라 지켜오던 검은 돌이 점점 이상한 모양으로 변하던 것을 떠올렸다. 조상 대대로 지켜온 물건이었으나, 자신은 그것을 한낱 관상용 돌로만 여겼었다. 헌데, 장이가 벌판에 나가 돌아오지 않은지 여드레 만에 핏빛 색지 위에 하얀 나무를 그려왔을 때부터 그 돌의 모양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신단수의 예언이 틀림없다면…….”
“예?”
행여나 좌장군의 푸념 소리를 앞서 걷고 있던 주군이 듣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던 충식의 귀에 나지막한 음성이 들렸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우린 다시 요동을 되찾게 될지도 모른다.”
‘요동을?’
충식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면서 검은 복면을 둘러 묶은 주군의 뒤통수를 쳐다보았다.
‘그 여인을 찾아 한양까지 한달음에 달려오신 이유가……!’
충식은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백여 명이 넘는 검은 복면의 부하들이 새벽 안개에 몸을 숨기고 뒤를 따르고 있었다. 모두들 요동에서 형님으로 불리는 주군께 목숨으로 충성을 맹세한 자들이었다.
‘만약, 주군의 말대로만 된다면……. 이곳에서 뼈를 묻어도 좋을 것이다!’
충식은 아직 스무 살도 안 된 좌장군을 바라보았다. 명군에 의해 마을이 쑥대밭이 된 뒤 누구하나 고아가 되거나, 과부가 되지 않은 이가 없었다. 그때 잃은 동생 대신 친동생처럼 여기던 아이였다. 무예는 제법 익혔으나, 혈기만 왕성했지 아직 경험이 부족한 철부지였다. 충식은 어쩌면 고향이 아닌 이곳에서 함께 외로운 넋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 생각에 좌장군의 옆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어! 형님!”
어느새 투덜거림을 멈추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던 좌장군이 다급한 소리로 외쳤다.
“저 자들!”
“쉿! 몸을 낮춰라!”
앞에 선 주군의 명이 떨어지자마자. 검은 복면의 사내들이 일시에 몸을 숨겼다. 충식은 숨소리를 낮추며 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주시했다. 기와집들이 즐비한 골목길에서 칼을 쥔 사내들이 쏟아져 나왔다. 한 눈에 봐도 머리수가 어마어마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무리들 사이로 키 큰 사내가 성큼 걸어 나오자, 무리들은 일사불란하게 남자의 뒤로 붙어 섰다. 그러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궁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성문을 지키고 섰던 병사들이 속수무책으로 쓰러지면서 성문이 열렸다.
“연향이다!”
“예?”
놀라는 충식의 앞에서 몸을 세운 남자가 지키는 자 없이 열려진 성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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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선! 상선!”
“맹의원 아니십니까? 처소로 돌아가신 게 아니셨소?”
“주상 전하를 깨워주시오! 어서!”
“침소 드신 지 얼마 되시지 않으셨는데……. 어찌 이리…….”
“지금 한가하게 이유를 얘기할 때가 아닙니다! 어서요! 어서!”
박상선의 팔을 붙들고 소리치던 맹의원은 영문을 몰라 하는 박상선을 뒤로 하고 뛰듯이 침전의 중문을 향해 들어섰다. 수영과의 이야기를 끝내고 이른 새벽에야 잠을 청한 임금이 바깥의 소란에 어침(御枕)을 밀며 일어섰다.
“의원, 무슨 일이오? 밖이 왜 이리 소란스럽소?”
“지금……!”
“자객이다! 자객이 나타났다!!”
맹의원이 입을 열기도 전에 문밖에 횃불들이 어지럽게 지나다니며 침전을 지키는 내금위들의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자객이라니!! 이것이 어찌된 일이오?!”
“지금, 향화정에……!”
“주상 전하! 내금위장 현이옵니다. 잠시 들겠사옵니다!”
한 손에 칼을 쥐고 급히 뛰어 들어온 내금위장의 뒤를 따라 놀란 박상선이 내시들과 나인들을 데리고 방안으로 들어섰다.
“지금, 향화정에 자객들이 들었사옵니다. 좌장군께서 천신님을 지키고 계시옵니다. 저희는 위급시 대전과 각 전을 철저히 지키라는 명을 받았사옵니다. 소신들이 목숨을 걸고 주상 전하를 지킬 것이옵니다!”
말을 마친 내금위장이 고개를 숙였다. 침전 밖이 횃불로 일렁이고 있었다. 임금은 떨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겨우 몸을 일으켰다. 그의 간절한 눈빛이 앞에 서 있는 맹의원을 향했다.
‘가시오! 가셔서, 부디 그 여인을 살려주시오!’
몇 마디 말보다 그 간절한 눈빛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인 맹의원이 침전을 빠져나가자 내금위장의 수신호 아래 강녕전의 문이 굳게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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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살려줘요…….”
향화정을 벗어나기도 전에 내 다리는 풀려버리고 말았다.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참혹한 상황을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좌장군이 막아내고 있던 다섯의 붉은 자들은 쓰러졌다가도 다시 일어나고, 또 불어났다. 소상궁이 나를 데리고 문밖으로 도망치려던 찰나에 나타난 여섯의 붉은 자들도 똑같았다. 홍안이 이끌고 온 내금위 군사들이 그들을 베고 또 베었지만, 그들은 죽거나 다치지 않았다. 오직 칼날이 부딪히는 끝에 쓰러지는 것은 좌장군의 수하들뿐이었다. 향화정의 푸른 연못은 그들의 피로 붉게 물들었다.
“마마! 마마! 정신 차리셔요! 마마!”
뒷걸음질 치다 나무 하나를 겨우 붙잡고 쓰러져 있는 수영을 부축하며 소상궁이 소리쳤다. 그때 내금위의 칼을 피한 붉은 자 하나가 수영을 향해 달려들었다.
“윽!”
죽는 건가 싶어 눈을 질끈 감은 수영의 앞을 좌장군이 막아섰다.
“챙! 챙!”
몇 번의 쇠 부딪는 소리가 바로 앞에서 나는 듯하다가 이내 검의 날이 천조각을 베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뜬 수영의 앞에 붉은 자가 쓰러져 있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좌장군의 어깨가 위아래로 들썩였다.
‘이자들은 죽지 않는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한 시진을 넘게 향화정 안에서 같은 자들을 베고 또 베었지만, 그들은 쓰러지지 않고 다시 일어섰다. 그리고 다른 이들을 상대하고 뒤를 돌아보면 쓰러진 자들은 그 자리에서 둘로 불어나 있었다.
‘주술인가!’
좌장군은 중원을 떠돌 때 주술로 사람을 부리거나, 환술을 써서 죽은 사람을 마치 산사람처럼 부린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들이 붉은 자들이었는가?’
“아악! 좌, 좌장군! 저기 또……, 또!”
수영이 놀라 가리킨 곳에 방금 쓰러졌던 자의 머리가 둘로 갈라져 나오고 있었다. 검을 말아 쥔 좌장군이 청운검에 다시 푸른 검기를 뻗어 올릴 때였다. 땅바닥에서 몸을 비틀며 일어나던 붉은 자의 머리 위로 순식간에 검은 도끼가 날아와 떨어졌다.
“어……, 어디?”
도끼가 날아 온 곳을 향해 고개를 돌리던 수영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향화정의 지붕과 담벼락에 검은 복면을 한 자들이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달라붙어 있었다.
“저……, 저자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