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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레이디
작가 : 커피새
작품등록일 : 2017.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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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작성일 : 17-07-24     조회 : 450     추천 : 0     분량 : 4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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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그러니까 이게 다 그 악몽 때문이야.’

 

  이사벨라는 심호흡 했다.

  안개 악몽. 그녀가 붙인 이름이다. 안개 자욱한 어스름한 곳을 밤새 헤매는 그 꿈은 그녀가 15살이 되던 날 처음 시작되었다.

  악몽은 1년에 한 번, 생일 전후 2~3일간 이어졌다. 오늘이 19살 생일이니 벌써 5년째였다.

  그러나 이번 꿈은 달랐다. 실내인지 실외인지, 낮인지 초저녁인지 알 수 없는 그 공간에서 오늘,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 외의 존재와 맞닥트렸다.

 

  ‘아주 불쾌한 존재야.’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온 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을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그녀를 난처하게 하는 건 꿈 속 존재가 아니었다. 꿈이 현실로 튀어나오지 않은 이상, 악몽이 깨어있는 그녀를 괴롭힐 수는 없으니까.

  그녀를 불편하게 만든 건 마주보고 있는 남자였다.

 

  “괜찮으세요?”

 

  쥐어짜는 음성으로 묻자 상대방이 불퉁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 남자의 눈동자에는 불만이 서려있었다. 남자 가문의 특징이라는, 진실을 꿰뚫어본다는 신비한 눈동자가 험악하게 빛났다.

  칼 데 뮈레.

  청색 가까운 푸른 눈동자와 윤기 반짝이는 짙은 갈색 머리, 여기에 폴로로 다져진 몸과 큰 키의 미남인 그는 대부호 뮈레 후작가의 장남이자 본인도 자작위를 가진 24살의 청년이다.

  프렌시아 왕국 최고의 신랑감 중 하나로 꼽히는 초절정 인기남이 그녀 앞에서 툴툴거리고 있는 것이다.

 

  “머리와 눈이 얼얼하군요.”

 

  “아....”

 

  가시돋힌 그 말에 이사벨라의 귀뿌리가 붉게 물들었다.

  칼의 오른쪽 눈 주변이 붉었다. 그녀의 주먹을 맞은 자리였다. 머리는 또 어떤가. 까치집이다.

  날달걀로 눈 주변을 문지르는 그의 옷차림은 타이도 없이 구겨진 셔츠 차림이었다.

  입고 있던 조끼와 타이는 하녀가 세탁실로 들고 갔다. 세탁실은 옷에 맞는 실을 찾아 수선하느라 부산할 터였다.

 

  ‘하필이면 몸이 먼저 반응하다니.’

 

  이사벨라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이게 다 오늘 새벽부터 시작된 올해의 악몽 때문이었다.

 

 * * *

 

  0. 악몽의 진화

 

  자욱한 안개였다. 앞으로 뻗어 허우적대는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제발!’

 

  발밑에 뭐가 있는지, 앞에 어떤 게 나타날지 모르지만 그녀는 죽을힘을 다해 달렸다. 교양 있는 숙녀라면 하지 않을 행동이었다.

  그러나 뒤에서 나는 소리는 그녀가 생애 가장 빠른 속도로 질주하게 만들었다.

  철벅철벅. 드그득, 그르륵.

  무언가가 그녀 뒤를 쫓고 있었다. 물에 젖은 육중한 몸을 끌고,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속도로.

  철푸덕.

 

  “안돼!”

 

  잠옷자락에 다리가 걸려 넘어졌다. 드그그득. 그르륵. 쫓아오는 소리가 갑자기 커졌다.

 

  “크크륵. 드디어....”

  녹슨 쇠붙이가 쩔그덕거리는 것 같은 끔찍한 음성이 귓가를 때렸다. 썩은 물 냄새가 머리 뒤에서 훅 풍겼다.

 

 

 * * *

 

  “싫어!”

 

  이사벨라는 눈을 떴다.

  헉헉. 꿈이구나. 등줄기와 이마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느끼며 이사벨라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1년 만에 꾸는 악몽이었다.

 

  ‘또 변했어.’

 

  안개 속을 헤매던 첫 3년이 오히려 그리울 정도였다. 지난해 꾼 마지막 꿈에서 그녀는 자신 뒤를 쫓아오는 무언가를 느꼈었다.

  지난 해 악몽의 마지막 날이었다. 잠을 깨기 직전에 이사벨라는 뭔가 질질 끌리는 소리를 들었다. 아니, 들은 것 같았다.

 

  ‘그 땐 바람소리를 착각해서 들었나 싶었지.’

 

  2월 말, 겨울 끝자락이 아직 남은 초봄의 문타시는 바람이 세다. 창문 틈을 비집느라 덜컹대는 바람소리는 도시 여기저기의 소음을 몰고 온다.

  그래서 이사벨라는 막간의 소음을 꿈에서 들었다고 착각했나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방금 꾼 꿈을 통해 그녀는 지난 해 들은 소리가 착각이 아니었음을 알았다.

 

  “도중에 눈뜨지 않았다면 붙잡혔을까.”

 

  저도 모르게 혼잣말이 나왔다. 이사벨라는 누운 채 양 팔을 감싸 떨리는 몸을 진정시켰다.

 

  ‘분명 괴물일거야.’

 

  소름끼치는 음색하며 구역질나는 냄새까지, 괴물이 아니라면 그런 악취와 목소리가 나올 리 없다. 코끝에 아직 그 냄새가 맴도는 기분이었다.

 

  ‘실제 같았어.’

 

  어느 정도 몸이 진정되자 그녀는 창문을 보았다. 해가 뜨려면 아직 멀었다. 달과 별, 그리고 지상을 밝히는 가로등이 아직 일하는 중이었다.

 

  ‘잠이 오려나? 설마 또 이어서 꾸진 않겠지.’

 

  잠시 망설이던 이사벨라는 눈을 감았다. 그러나 바램과 달리 이사벨라는 해가 뜰 때까지 잠들지 못했다.

 

 

 * * *

 

  “생일이라고 밤을 세웠니? 어째 푸석해 보이는구나.”

 

  할머니의 물음에 이사벨라는 얼굴을 붉혔다.

 

  “오늘 19살이 되었지? 선물에 흥분할 나이는 지났는데, 허허.”

 

  자리에 앉은 할아버지, 윌리엄이 빙긋 웃으며 신문을 접었다. 반 대머리에 풍성한 흰 콧수염을 가진 윌리엄 칼라프는 유서 깊은 양조장 주인답게 덩치 큰 고양이가 들어간 마냥 볼록한 배도 가지고 있다.

 

  “이이는, 성인이 되기 전 마지막 생일인데 설렐 수도 있잖수.”

 

  할머니 헬렌 칼파르가 남편에게 가자미눈을 했다. 그녀는 깊은 눈매를 가진 작은 여인이다. 그윽한 그 눈매는 아들을 거쳐 손녀에게 이어졌다.

  그러나 손녀의 눈빛은 자신 같은 연분홍색이 아니다,

  이사벨라의 눈동자는 연녹색이다. 풍성한 검은 머리와 잡티 없는 하얀 피부는 눈동자와 잘 어울린다. 여자치곤 큰 키가 흠이지만, 아름답고 똑똑한데다 낙천적이다.

  더구나 이사벨라는 부친이 남긴 제법 넉넉한 유산을 상속받은 상속녀기도 하다.

  조부모는 손녀의 결혼이 그리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 중이었다.

 

  “거, 성인식인 스무살 생일도 아닌데.”

 

  윌리엄의 퉁박에 헬렌의 얼굴이 샐쭉해졌다. 이사벨라는 얼른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 그냥 잠이 오지 않았어요.”

 

  악몽을 이야기할 수 없었다. 5년 전을 떠올리면 더 그랬다.

 

  ‘15살생일 무렵이었지.’

 

  처음으로 내리 3일 같은 꿈을 꿨을 때였다.

  계속되는 손녀의 악몽에 걱정이 된 헬렌은 이사벨라를 데리고 가까운 신전을 찾았다. 종일 계속된 사제의 기도를 받고 돌아온 뒤부터 그녀는 안개 속을 헤매는 꿈을 꾸지 않았다.

  조부모는 사제의 성력에 감탄하며 엄청난 돈을 헌납했다.

 

  ‘그게 그 전 해 양조장 수입의 1/10이었단 말이야.’

 

  그러나 1년 뒤 같은 꿈을 꾸었을 때 이사벨라는 그 꿈이 한번으로 끝나지 않으리라는 걸 깨달았다. 그 뒤 그녀는 안개 악몽이라 이름붙인 그 꿈에 대해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어차피 또 꿀 꿈.

  신전에 집안 돈을 기부하게 할 수 없었다.

  안개 악몽은 며칠 안개 속을 헤매기만 하면 끝나는 기간제 꿈이었다. 일어나면 실제로 움직인 듯 다리 근육이 뭉쳐 아프긴 했지만, 일상에 끼친 영향은 그게 다였다.

  그래서 이사벨라는 꿈에 그리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목표를 향해 공부하고 연습했다.

 

  그녀는 교양위주 교육을 받는 귀족이나 젠트리 계급 아가씨들과 달리 수영과 사격, 정밀화 교습, 별자리와 외국어를 배웠다. 저명한 과학자인 5촌 숙부님이 보내준 책과 강의 노트로 틈틈이 기초 생물학을 독학하는 열성도 보였다.

 

  [탐사대 일원이 되어 신종 생물에 내 이름을 붙인다.]

 

  아버지처럼 탐험가가 되어 사전에 올릴 생물을 발견하는 게 이사벨라의 꿈이다.

 

  ‘설마, 빌어먹을 안개 악몽이 내 앞길을 막지는 않겠지?’

 

  숙녀답지 않은 욕을 속으로 구시렁거리는 그녀 앞에 아침 식사가 차려졌다.

 

  “아가씨 생일 축하합니다.”

 

  “축하드려요.”

 

  식사를 내온 하녀들이 인사했다.

  뜨거운 홍차와 우유, 각설탕, 갓 구운 빵, 치즈 3종, 삶은 달걀, 구운 햄이 있는 따뜻한 식사에 럼에 절인 사과를 얹은 머랭 케이크가 뒤이어 나왔다.

 

  “호오, 올해는 머랭 케이크로군.”

 

  윌리엄의 눈이 동그레졌다. 헬렌이 흡족한 목소리로 말했다.

 

  “허드슨 부인이 힘 좀 줬어,”

 

  “와아. 생일 케이크가 머랭 케이크라니! 아침부터 고생 많았어요. 허드슨 부인.”

 

  달걀흰자를 휘저어 거품을 내는 머랭은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생일맞이 저녁 만찬에 선보일 케이크를 아침 식사에 내는 건 칼파르가의 전통이었다.

  이걸 아침부터 내오기 위해 요리사이자 하녀장인 허드슨 부인은 새벽부터 움직였을 게 뻔했다.

  이사벨라의 인사에 나이든 하녀가 미소 지었다.

 

  “저녁 만찬도 기대하세요. 아가씨, 그럼 맛있게 드세요."

 

 * * *

 

  케잌을 곁들인 식사 후 윌리엄이 이사벨라에게 말했다.

 

  “너도 오늘로서 19살이 되었구나. 성인이 되기 위한 준비를 본격적으로 할 때가 되었어. 알다시피 네겐 네 아버지가 남긴 신탁이 있다.”

 

  이사벨라의 부친, 윌리엄 주니어 칼파르는 식물학자였다.

  명성을 쌓기 위해 집안 돈을 왕창 깨먹으며 나간 개인 탐사에서 윌리엄 주니어는 이사벨라의 어머니 릴리안을 만났다.

  집안도 친척도 알려지지 않은 릴리안은 신비한 미녀였다. 당시 젠트리 계급 사교계를 뒤흔들만큼 아름다웠던 릴리안은 이사벨라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다.

  아내가 죽자 실의에 빠진 윌리엄 주니어는 왕실 탐사대에 들어가 신대륙 탐험을 떠났다. 그리고 몇 년 뒤 카리프에서 뎅기열로 죽었다. 윌리엄 주니어 칼파르는 뎅기열로 죽은 최초의 구대륙인이었다.

  그가 받았던 봉급과 상금, 사망금은 고스란히 외동딸 이사벨라에게 상속되었다. 윌리엄 칼파르는 아들의 재산을 은행 신탁에 넣어 손녀가 성인이 되면 찾도록 묶었다.

 

  “금화 605개와 은화 10개가 8년 전 신탁에 처음 맡긴 네 유산이다. 어제 은행에 들러 확인해보니 이자가 붙어 금화 746개가 있더구나. 성인이 되는 내년에는 금화 762개와 은화 16개 정도를 받을 것 같다.”

 

  금화 700개는 방 5개, 응접실 두 개, 그리고 아담한 정원이 딸린 소도시의 집을 살 정도의 돈이었다. 지참금으로 후한 액수였다.

 

  “이것과 별도로 나는 너에게 돈을 줄 생각이다. 아무래도 지참금이 많을수록 좋은 곳에 시집갈 확률이 높으니까.”

 

  이곳 프렌시아 왕국의 여성 평균 결혼 연령은 22세였다. 어린 시절 정혼하지 않은 귀족과 젠트리 계급 여성은 성인이 되면 바쁘게 사교계를 드나들며 남편감을 찾는다.

  윌리엄의 말에 이사벨라가 얼굴을 찌푸렸다.

 

  “흠, 아침부터 유산과 돈 이야기라니요. 다른 생각이 있으신가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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