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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레이디
작가 : 커피새
작품등록일 : 2017.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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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검은 매 의뢰 (1)
작성일 : 17-07-27     조회 : 276     추천 : 0     분량 : 4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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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윌리엄 칼파르와 이사벨라 칼파르가 뮈레 후작님을 뵈러 왔다고 전해주시오.”

 

  윌리엄의 말에 집사가 절도 있게 인사했다.

 

  “윌리엄 칼파르씨과 손녀분인 이사벨라양이군요. 후작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저를 따라 오십시오.”

 

  다행이다.

  윌리엄과 이사벨라는 낮게 안도의 숨을 쉬었다. 오전 10시를 조금 넘긴 시각이었다. 방문하기 이른 시간임에도 쾌히 손님을 맞이하니 뮈레 후작은 진정한 신사였다.

 

  명화와 조각품이 진열된 복도를 지나 육중한 문 앞에 도착한 집사가 노크를 했다. 똑똑.

 

  “후작님. 칼파르가 손님들이 도착했습니다.”

 

  “안으로 모시게.”

 

  문 너머에서 중후한 목소리가 들렸다. 집사가 문을 열었다.

  덜컥. 문을 반쯤 연 집사가 허리를 굽혔다. 두 사람이 들어가자 집사가 따라 들어왔다.

  후작의 집무실이었다.

  덜컹. 묵직한 커튼이 달린 창을 뒤로 흑단 책상에 앉아있던 자가 일어났다. 귀 옆이 희끗희끗한 진갈색 머리에 콧수염이 근사한 푸른 눈의 중년남자였다.

 

  “윌리엄 칼파르씨와 이사벨라 칼파르양입니다.”

 

  집사의 소개에 두 사람은 후작에게 예를 표했다.

 

  “프렌시아의 제 2 파수꾼, 프렌시아 동쪽 수호자이자 라우터(동부지역 곡창지대)의 주인이신 프레드릭 데 뮈레 후작각하입니다.”

 

  자신의 고용주를 소개한 집사가 후작에게 허리를 숙였다.

 

  “그럼 저는 차를 준비시키겠습니다.”

 

  집사가 나가자 후작이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여기 앉으시오.”

 

  집무책상 앞 접대 테이블로 걸음을 옮긴 후작의 말에 윌리엄과 이사벨라는 천천히 접대 의자에 앉았다.

 

  “우선 본 가문과 교류가 성사된 데 감사드리오. 윌리엄씨. 그리고 내 아들이 이 자리에 없음을 이해 바라오. 그 친구는 칼파르 한정 위스키를 가지고 기차 편으로 지난 밤 레스로마로 출발했소.”

 

  “뮈레가와 인연을 맺게 되어 저희야말로 영광입니다.”

 

  윌리엄의 대답을 시작으로 두 사람은 사업 이야기를 이었다. 방문 목적을 밝히지 않은 대화는 고용인이 차와 쿠키를 놓고 간 뒤 끝났다.

  문이 닫히자마자 프레드릭 뮈레 후작이 본론을 꺼냈다.

  집무실에 피어오르는 차향이 무색할만큼 빠른 성격이었다.

 

  “아들에게 이야기 들었소. 저주에 걸렸다고? 이사벨라양.”

 

  청색에 가까운 푸른 눈이 그녀를 향했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칼 뮈레 자작님 눈이 부친 쪽이구나.’

 

  가문 적장자만 물려받는 다는 게 사실 인가봐. 저도 모르게 움찔한 이사벨라는 생각했다. 그런 그녀에게 후작이 한 손을 내밀었다.

 

  “왼손을 줘 보게나.”

 

  “아, 네.”

 

  이사벨라는 조심스레 장갑을 벗었다. 벗은 장갑 아래 푸른 알이 반짝이는 반지가 드러났다.

 

  “그 반지는....”

 

  후작의 말에 윌리엄이 냉큼 대답했다.

 

  “아, 칼 데 뮈레 자작이 빌려주신 겁니다.”

 

  잠든 사이 접근할 저주의 주체를 피하기 위해 칼이 하루 빌려준 반지였다. 부친을 만나면 돌려주라고 했지. 기억을 떠올린 이사벨라는 왼손 엄지에 끼웠던 반지를 뺐다.

 

  “여기 돌려드립니다.”

  왼 손바닥에 반지를 올린 이사벨라가 손을 내밀었다.

 

  “잠시 실례하오.”

 

  왼 손으로 반지를 집은 후작이 오른손 검지에 반지를 끼웠다.

 

  “내 걸 아들에게 빌려줘서 급한대로 이걸 써야겠군.”

 

  손님이 들으란 듯 제법 큰 목소리로 중얼거린 후작이 이사벨라의 손을 가볍게 잡아들었다. 손바닥을 보는 눈이 가늘어졌다.

 

  ‘차갑게 타는 얼음이다. 나를 보던 뮈레경의 눈도 그랬는데.’

 

  망측해라. 지금 내가 무슨 생각하는 거야! 후작의 청색이 서린 푸른 눈빛에 이사벨라의 볼에 옅은 홍조가 생겼다 사라졌다.

 

  “흠.”

  후작이 낮은 숨을 뱉었다. 꿀꺽. 윌리엄이 마른 침을 삼켰다.

 

  ‘뭔가 보이나?’

 

  약 1분이 지났을까. 후작이 손을 거두었다. 이사벨라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그는 생각에 잠긴 얼굴로 두 사람을 보았다.

 

  “흠, 강한 집념이 붙은 저주이외다. 이사벨라양은 칼파르가 직계 핏줄이라 들었는데, 혹시 가문이 원한질만한 과거가 있소?”

 

  굳은 얼굴의 윌리엄이 고개를 저었다.

 

  “없습니다. 동티날 짓도 하지 않았고요. 하지만 후작님은 해결이 가능하신거죠? 소문에 의하면 뮈레가는 악랄한 것을 보고 없애는 능력이 있다 합니다.”

 

  윌리엄의 말에 크게 떴던 뮈레 후작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그는 기묘한 미소를 띈 채 손가락으로 의자 팔걸이를 툭툭쳤다.

 

  “저잣거리 풍문은 과장과 거짓으로 점철된 게 대부분. 허나 뮈레가에 대한 소문은 사실이라오. 아니, 실제보다 축소되었지요.”

 

  일반인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쫓는다는 말이 사실이었구나. 기대에 찬 윌리엄과 이사벨라에게 뮈레 후작이 말을 이었다.

 

  “우선 정밀 확인부터 하겠소.”

  의자에서 일어난 후작이 책상으로 갔다. 끼리릭.

  덜컹, 덜컹, 덜커덩.

  간단한 조작으로 책상의 비밀서랍을 연 그가 작은 상자를 하나 꺼내 들었다. 가문의 문장이 박힌 낡은 나무상자였다.

 

  “뮈레가의 문장 [외눈의 클리프]는 뮈레가 직계에 흐르는 특이한 감각을 상징한다는 말이 있다오. 무언가를 보고 감지하는 능력이 직계 자손에 한해 계승되는 건 사실이오. 그러나 이 능력은 우리 뮈레 가문만의 것이 아니라오.”

 

  “예?”

  이사벨라의 눈이 커졌다. 윌리엄은 숨을 멈추었다. 이런 능력이 뮈렌 가문이 아닌 다른 집안에도 있다고?

 

  “이 능력은 과거, 신수 전쟁 때 활약한 몇몇 가문의 시조가 신수 [황룡]에게 받은 선물이라오.”

 

  뒤이은 말에 이사벨라는 가정교사에게 배운 역사 수업을 떠올렸다.

 

  신수 전쟁은 약 700년 전 있던 이디카 대륙 전쟁이다. 천계에서 내려온 못된 불새와 착한 황룡의 싸움으로 인간은 생존을 위해 황룡과 함께 불새를 공격했다.

 

  “황룡이 내린 선물은 사악한 것을 꿰뚫어 보는 시각. 능력을 받은 핏줄 중에는 수백 년이 흐르며 사라진 곳도 있고, 남은 가문도 있다오. 우리 조국 프렌시아에는 다섯 가문이 과거의 명맥을 있고 있소. 그리고.”

 

  설명하던 뮈렌 후작이 들고 있던 작은 상자를 열었다. 딸깍.

  피처럼 붉은 벨벳 위에 낡은 외알 돋보기가 있었다. 손때 묻은 상아 손잡이가 돋보기를 더 골동품으로 보이게 했다. 잘못 쥐면 파삭 깨질 것 같은 돋보기를 조심스럽게 들어 올린 뮈레 후작이 말을 이었다.

 

  “이건 이종족 [외눈의 클리프]의 눈으로 만든 돋보기라오.”

 

  “허! [외눈의 클리프]를 진짜 가져서 문장으로 삼은 겁니까?”

 

  윌리엄의 외침에 뮈렌 후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외눈의 클리프]의 눈은 일반인도 무언가를 볼 수 있게 도와준다오.”

 

  “후작님, 전설대로 뭔가를 본다면 [외눈의 클리프]가 있어야 가능하지 않나요? 두 눈을 가진 [외눈의 클리프]의 안구 하나를 빼서 들고 있으면, 남은 한 눈을 가진 [외눈의 클리프]가 보는 걸 같이 본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이사벨라의 질문에 후작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전설은 절반의 진실만 알려준다네. [외눈의 클리프]의 눈은 다른 생물과 달리 잘 썩지 않아 간수만 잘하면 오래 가지.”

 

  그는 들어 올린 돋보기를 천천히 돌리며 말을 이었다.

 

  “이 투명한 눈동자를 들어 눈앞에 대는 것만으로도 무언가를 볼 수 있네. 애써 그들의 멀쩡한 눈을 도려낼 필요가 없었어. [외눈의 클리프]는 능력을 무서워한 마수와 능력을 탐한 인간 때문에 사냥당해 사라진 걸세.”

 

  이사벨라는 눈을 깜박였다.

  그러니까 무지와 탐욕, 두려움이 한 종족을 몰살시킨 것이었다. 할 말을 찾지 못하는 그녀에게 후작이 말을 이었다.

 

  “이사벨라양, 왼손을 내밀어 보게나.”

 

  쭈뼛거리며 이사벨라가 손을 내밀었다. 뮈레 후작은 돋보기를 윌리엄의 한 눈에 갖다 댔다.

 

  “보시죠.”

 

  “허! 저건!”

 

  윌리엄이 헛바람을 내며 풀쩍 뛰었다. 깜짝 놀란 이사벨라가 윌리엄을 보자 뮈레 후작이 돋보기를 이사벨라에게 건넸다.

 

  “이사벨라양. 이걸 통해 본인의 왼손을 보도록.”

 

  “엄마야! 이게 뭐야!”

 

  조심스럽게 돋보기에 눈을 대서 자신의 왼손을 본 이사벨라가 낮게 비명 질렀다.

  휘오오오.

  왼 손바닥 중앙에 작은 원이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지름이 약 1cm정도인 원은 먼지 같은 검은 알갱이가 휘몰며 만들고 있었는데 손바닥 표면에 붙어 있었다.

  맨 눈으론 보이지 않던 것이다.

  경악한 두 사람을 보며 뮈렌 후작이 돋보기를 치웠다.

 

  “이것이 진실을 보는 눈 [외눈의 클리프]의 힘이오. 일반인이 사용했을 때 나 같은 사람보다는 희미하긴 해도 보이지 않는 이면을 보게 한다오.”

 

  ‘이걸 그냥 본다고! 게다가 이런 능력을 가진 가문이 다섯이라니!’

 

  입을 벌린 윌리엄은 머리를 굴렸다. 뮈레 후작은 이런 분야의 전문가일테니 해결 가능하겠지. 터무니없는 대가를 원한다면 능력을 가진 다른 가문을 알아내 부탁할 수도 있으리라.

 

  “돈이 얼마나 들던 상관없습니다. 손녀 저주만 없애주신다면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역시 상인이군. 계산이 본능적이야.’

 

  윌리엄의 말에 후작이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모든 일엔 대가가 있다. 저주는 주체가 강할수록 해결하는데 돈과 시간이 든다.

  그는 대답대신 돋보기를 자신의 왼 눈에 가져댔다.

  [외눈의 클리프]는 자신처럼 보는 자가 쓰면 본질을 보다 정확히 꿰뚫어볼 수 있다.

 저주의 성질이라든가, 수상한 상대의 정체라든가.

  맨 눈으로는 살짝 보이던 저주가 지금처럼 훨씬 자세히 보인다. 뮈레 후작은 눈을 깜박였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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