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숲의 레이디
작가 : 커피새
작품등록일 : 2017.7.24
  첫회보기
 
1. 검은 매 의뢰 (2)
작성일 : 17-07-27     조회 : 258     추천 : 0     분량 : 4565
뷰어설정열기
기본값으로 설정저장
글자체
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젊은 처자의 손바닥에서 꿈틀대는 검은 먼지 같은 소용돌이는 예상대로 뚜렷하게 제 목적을 밝혔다.

 

  [너를 먹어 완전해 지겠다. 릴.리.안.]

 

  소용돌이가 그리는 단어는 마수의 언어였다. 이종족의 힘을 빌지 않으면 읽을 수 없는 단어. 어린 아가씨는 마수의 먹잇감으로 낙찰된 상태였다.

  그러나 후작을 당황시킨건 이사벨라였다. 이사벨라의 눈동자와 머리카락이 빛을 받은 것처럼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릴리안이 누굽니까.”

 

  딱딱해진 후작의 물음에 이사벨라가 헛, 침을 삼키고 간신히 말했다.

 

  “릴리안 칼라프, 돌아가신 제 모친이에요.”

 

  “모친은 어디 출신인가?”

 

  후작의 질문에 이사벨라가 고개를 저었다.

 

  “모릅니다.”

 

  “며느리는 고향도, 집안도 밝히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아들래미가 혼인신고해서 데려왔습니다.”

 

  변방에서 혼인신고한 두 사람을 칼파르가는 내치지 못했다. 결국 본가가 터잡은 문타시에서 성대한 결혼식을 올려 릴리안을 식구로 받아들였다.

  “아들도 병사해서 물어볼 수가 없습니다.”

 

  윌리엄의 추가 설명에 뮈레 후작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는 딱딱한 표정으로 자신의 추측을 말했다.

 

  “이사벨라양의 저주는 모계를 타고 계승된 것 같구려.”

 

  “네?”

 

  “아!”

 

  한 박자 늦게 이해한 윌리엄과 바로 이해한 이사벨라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강한 마수가 손을 뻗고 있소. 릴리안을 먹겠다는 강력한 집념으로 먹이를 추적하는 게 이 저주의 목적이라오. 이사벨라양의 모친이 과거를 밝히지 않는 이유가 이것이었음이 분명하오.”

 

  “마수라니! 그런 고대 괴물이 아직 남아있단 말입니까?”

 

  수백 년 전에 사라진 과거의 재앙을 들먹이는 후작의 말에 윌리엄 칼파르가 입을 쩍 벌렸다.

 

  “대륙을 휩쓴 마수전쟁 때 뿌린 마수와 마물의 무수한 씨 중 일부는 몇 백 년 단위로 부화가 된다오,”

 

  “새상에, 그런 끔찍한 일이.”

 

  이사벨라는 몸서리쳤다. 그런 그녀를 뮈레 후작이 측은한 듯 보았다.

 

  “영애의 모계에 붙은 마수는 그 잔당 중 하나같소. 아마, 혼이나 육신을 취해 힘을 얻으려는 새끼 마수겠지.”

 

  이런 마수나 마물을 사냥하는 조직이 있다.

  데빌헌터클럽. 뮈레 후작가가 속한 프렌시아 왕국의 비밀 수호대다.

 설명을 마친 뮈레 후작은 [외눈의 클리프]눈 돋보기를 조심스럽게 상자에 넣었다. 잠시 말을 멈추었던 후작이 다시 입을 열었다.

 

  “윌리엄 칼파르씨. 이 일을 해결하려면 돈이 제법 들 것이오.”

 

  뮈레 후작의 설명은 가차 없었다.

  우선 이사벨라가 저주를 없앨 때까지 마수의 눈을 피할 도구가 필요했다.

  다음으로 릴리안 칼파르의 과거를 알아야했다. 베일에 쌓인 과거를 파기위해 윌리엄 주니어 칼파르의 젊은 시절을 추적해야한다. 릴리안의 과거는 그녀를 원하는 마수의 정체를 알아내 저주를 푸는 열쇠였다.

  마지막으로 연결고리 끊기. 고리를 끊거나 마수를 없앨 때 드는 비용은 방법에 따라 달라진다.

 

  “얼마가 소요되든 괜찮습니다. 저에게 남은 후손은 이 아이뿐입니다.”

 

  “아니에요. 할아버지, 무리마세요. 후작님! 저도 돈이 있습니다.”

 

  이사벨라의 말에 윌리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통통한 뺨이 흥분으로 붉어졌다.

 

  “그건 네 지참금이야!”

 

  “마수에게 먹히면 장례비용이 되겠죠. 그리고 고백하건데 저, 신탁 말고도 벌고 있는 돈이 있어요. 곧 나가게 될 돈이야 앞으로 그보다 더 벌면 되잖아요? 어쨌든 저는 꿈이 있으니까 우선 살고 봐야겠어요.”

 

  이사벨라의 대꾸에 윌리엄의 목소리가 더 올라갔다.

 

  “가만, 어떤 방법으로 돈을 벌고 있다는 게냐? 내가 따로 용돈을 준 적이 없는데!”

 

  당황한 조부에게 손녀가 당당한 어조로 말했다.

 

  “벤자민 당숙부님이 요청하는 꽃과 나비, 풍경 정밀화를 그려드리고 대가를 받고 있지요. 이미 2년이나 된 아르바이트인걸요.”

 

  칼파르 아가씨의 입담과 능력이 제법이다. 후작은 피식 웃었다.

 

  ‘엉뚱하고 싹싹한 아가씨군,’

 

  전날 저녁, 이 사건을 고하던 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파랗게 변하기 시작한 눈두덩을 선물한 칼파르가 아가씨를 말할 때 아들이 지었던 묘한 표정이 이해되었다.

 

 * * *

  “스물넷이나 먹고 얻어맞고 다니다니. 어쩌다 그리 되었느냐?”

 

  “자기 목숨을 노리는 마수에게 잡혔던 여자가요. 주먹이 세더군요.”

 

  뛰어난 운동신경으로 칼리지 졸업 전부터 어디서 맞은 적 없는 장남이었다. 대학 시절엔 스포츠 동호회를 휩쓸었다. 삿된 것과의 전투에서도 크게 다치지 않아 클럽 회원들의 신임이 높은 아들 아닌가.

 

  “농담이지?”

 

  뮈레 후작의 물음에 칼이 얼굴을 찌푸렸다.

 

  “오늘 위스키 계약을 맺은 칼파르가의 직계 핏줄이 먹이 저주에 걸려 있었습니다. 이제 19살이 된 아가씨죠. 꿈을 통해 마수가 접근하는데 낮잠을 통해 속박된 그녀를 깨우니까 주먹으로 사정없이 제 눈을 쳤습니다.”

 

  “허허. 마물과 악령도 못 건드린 너를 여자가 때렸다고?”

 

  너털웃음을 짓던 프레드릭 뮈레 후작이 입을 다물었다. 칼이 볼을 뚱하게 부풀렸다. 16살 이후 처음 보는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다 큰 줄 알았더니 24살도 아직 어리군.’

 

  괴물도 아닌 여자에게 다쳤으니 자존심이 상할 만했다.

  그러나 아들은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은 신사다. 칼은 관대하게 이사벨라의 실례를 용서하고 클럽 반지까지 빌려주었다고 했다.

  암, 보기엔 쌀쌀해도 칼은 착한 아들이지.

 

  “이쁘더냐?”

 

  꼴을 보니 거인의 힘을 가진 처자임이 분명하지만, 이왕이면 아리따운 아가씨면 덜 억울하지 싶었다.

 

  “엉뚱한 구석이 있는 아가씨였어요.”

 

  후작의 물음에 칼이 대답을 돌렸다. 외모가 아닌 성격 이라, 그러나 노련한 후작은 아들의 눈에 살짝 스친 망설임을 포착했다.

 

  ‘칼파르가가 퇴치 의뢰를 하면 아들에게 전적으로 위임해야겠군.’

 

  혹시 알아. 이번 일을 계기로 칼이 여자에게 관심 가질지. 까탈스런 제 모친 때문에 이성에 대한 관심을 어릴 때부터 포기한 장남이다.

  혈기왕성한 젊은 나이에 노친네처럼 구는 칼을 보며 내심 걱정하던 후작은 결심했었다.

 

  ‘이건 기회다.’

 

  칼파르 아가씨에겐 어린 마수가 붙은 걸꺼다. 커다란 마수는 보통 마을이나 도시 단위를 첫 제물로 삼으며 움직이니까.

  [데몬헌터클럽]이 맡을 사건임엔 틀림없다.

  핏줄을 타고 흐르는 저주는 가문의 존망이 걸린 문제다. 개인 단위로 가장 큰 의뢰인 검은 매 계약으로 거래를 해야겠어.

  의뢰인이 당차니 클럽 지원 서비스까지 왕창 받게 해주자.

  뮈레 후작은 생각했다.

  ‘다행히 아가씨도 우락부락하지 않고 귀엽군.’

 

  키는 좀 크지만 아들보다 작다. 전날 대화를 회상한 후작이 입을 열었다. 거물 고객을 잡은 그의 말투가 갑자기 진지해졌다.

 

  “비용은 의뢰자가 마수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면 최종 정산되오. 기간과 해결법에 따라 금액이 달라질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알려주지요. 의뢰 시 착수금은 금화 10개라오.”

 

  금화 10개는 서민 5인가정의 3개월 생활비다. 못해도 이것의 곱절은 들 것이다. 이사벨라의 얼굴을 마주본 윌리엄이 가볍게 웃었다.

  아무렴. 비싸봤자 5년 전 신전에 갖다 바친 돈보다 적게 들 거야.

  그의 얼굴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현금을 미처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수표로 써 드려도 되겠습니까?”

 

  “괜찮소. 칼파르가의 신용은 높지 않소이까.”

 

  후작의 허가에 윌리엄이 안심하며 조끼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갈색 가죽 수표첩을 꺼내는 윌리엄에게 후작이 말했다.

 

  “그럼 의뢰를 정식으로 받으리다. 설명을 한 뒤 계약서를 작성하도록 하겠소.”

 

 * * *

  어떻게 뮈레 후작저를 나왔는지 모르겠다. 승합마차에서 내린 윌리엄과 이사벨라가 정신을 차렸을 땐 엘리사의 집이 있는 거리가 보이는 공원 담벼락이었다.

 

  “정신없구나.”

  “저도 그래요. 그런데 배고프지 않으세요? 할아버지.”

 

  긴장이 풀리자 허기가 몰려왔다. 그럴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이 먹은 건 이른 아침 문타시 기차역에서 사마신 뜨거운 코코아 몇 모금이 다였다.

 

  ‘그러고 보니 후작저의 다과를 맛도 못보고 나왔네! 맛나게 생긴 과자들이었는데.’

 

  뒤늦게 손도 안 댔던 다과를 떠올린 이사벨라가 입을 다셨다. 그녀는 물론, 뮈레 후작과 윌리엄도 다과에 손조차 뻗지 않았다.

 

  ‘아깝다. 그런 대귀족의 주방음식을 언제 또 먹을 기회가 온다고 그냥 나왔을까.’

 

  후회해봤자 지나간 일.

  이사벨라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길 건너편에 문을 연 까페와 식당들이 조금 몰려있었다. 테라스에는 음료나 주전부리를 앞에 놓고 수다 떠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음, 그러고 보니 출출하구나. 저기 가서 뭐 좀 먹을까?”

 

  윌리엄이 길 건너편을 가리켰다. 그의 여동생 엘리사는 출퇴근 고용인을 쓴다. 이들은 십년이상 근무해 가끔 들리는 윌리엄을 안다.

  그러나 윌리엄은 고용주가 없는 날 식사시간에 찾아갈 뻔뻔함이 없었다.

  느긋하게 배를 채우고 공원을 산책하면 오후 티타임 즈음 도착할 엘리사를 만날 수 있을 터였다.

 

  “고기 파이 냄새가 근사하구나.”

 

  “음, 그렇네요. 그리고 커피향도 나요.”

 

  커피는 차보다 인기가 없다. 그래서 파는 곳이 많지 않다. 그래도 가끔 마시고 싶을 때가 있는 법.

  윌리엄과 엘리사는 배를 채울 곳으로 고기파이와 커피를 파는 작은 가게를 선택했다.

 

 * * *

 

  해가 질 무렵 손님이 찾아왔다. 뮈레 후작이 말한 클럽 사람이었다.

 

  “펜섬 후작가에서 마차가? 오라버니를 찾아올 거라는 방문객이 또다른 후작가 사람이였어?”

 

 
 

맨위로맨아래로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20 4. 두 번째 단서 (4) (1) 7/31 316 1
19 4. 두 번째 단서 (3) 7/31 275 0
18 4. 두 번째 단서 (2) 7/31 250 0
17 4. 두 번째 단서 (1) 7/30 261 0
16 겉가지 1 7/30 263 0
15 3. 과거의 잔영 (4) 7/30 275 0
14 3. 과거의 잔영 (3) 7/30 271 0
13 3. 과거의 잔영 (2) 7/29 261 0
12 3. 과거의 잔영 (1) 7/29 265 0
11 2. 첫 번째 단서 7/29 249 0
10 1. 검은 매 의뢰 (5) 7/29 270 0
9 1. 검은 매 의뢰 (4) 7/29 259 0
8 1. 검은 매 의뢰 (3) 7/28 269 0
7 1. 검은 매 의뢰 (2) 7/27 259 0
6 1. 검은 매 의뢰 (1) 7/27 277 0
5 0. 악몽의 진화 (4) 7/26 263 0
4 0. 악몽의 진화 (3) 7/26 298 0
3 0. 악몽의 진화 (2) 7/25 247 1
2 0. 악몽의 진화 7/25 280 1
1 프롤로그 7/24 45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