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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레이디
작가 : 커피새
작품등록일 : 2017.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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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검은 매 의뢰 (4)
작성일 : 17-07-29     조회 : 259     추천 : 0     분량 : 4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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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 혼자 여행하기 험한 세상이다. 조부는 문타시로 돌아가니 이사벨라의 동행자는 아니다. 우선 벤자민 K 코흐가 같이 움직일 가능성이 있었다.

 

  “설마 조력자 중에 그 뮈레 자작이 있지는 않겠지.”

 

  본의 아닌 주먹질로 강한 인상을 남긴 후작가의 장남이 같이 움직인다? 생각만 해도 뻘쭘해! 이사벨라는 고개 저었다.

 

 

 * * * * *

 

  오싹.

  레스로마행 밤기차 안에서 잠시 눈을 감았던 칼 데 뮈레는 한기에 눈을 떴다.

 

  ‘왜 오한이 들지?’

 

 

 * * * * *

 

  벤자민 K 코흐는 눈을 깜박였다. 그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현장 조사를 하라는 말씀이시군요.”

 

  “그렇네. 코흐 교수. 이틀 뒤 출발이니 서둘러 물품을 챙기게. 교수의 이번 학기 강의는 취소했으니 부담 갖지 말고.”

 

  출근하자마자 병원장에게 호출된 벤자민은 혼이 반쯤 나갔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놀렸다.

 

  “병원장님, 혹시 이건 좌천입니까? 저는 학교 명예를 훼손한 적도, 개인적 일탈을 한 적도 없습니다.”

 

  벤자민의 항의에 병원장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책상 위의 편지를 잡은 오른 손 검지의 반지가 반짝였다. 황금 테두리를 두른 커다란 사파이어 반지였다.

 

  “오해 말게. 그 쪽 숲이 무언가에 감염되고 있다는 제보가 비공식 경로로 왔다네. 지회장은 곰팡이가 아닌가 의심중이지. 이걸 읽어보게.”

 

  펄럭. 병원장이 편지를 쥐어 내밀었다. 벤자민은 천천히 손을 내밀어 편지를 받았다.

  편지는 프렌시아 왕립전염병학회 동북부 지회장이 보낸 것이었다. 릴스난 산맥 아래, 테슈 지역에서 원인불명의 진균(곰팡이) 감염이 일어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곰팡이는 자네 전문 아닌가. 문제가 더 커지기 전에 해결법을 찾으라는 지시가 오늘 새벽 상부에서 따로 내려왔네.”

 

  벤자민의 눈썹이 꿈틀거였다.

  병원장 말대로다. 자신의 전문은 곰팡이, 사람이나 생물에 영향을 미치는 곰팡이를 분류하고 사용법이나 퇴치법을 찾는 게 그의 일이었다.

 

  “코흐 교수, 자네는 촉망받는 학자야. 이번 일이 잘 해결되면 내년에는 정교수 발령이 가능하네.”

 

  왕립의대 조교수가 정교수가 되는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15년. 조교수 생활 10년째인 벤자민에겐 솔깃한 제안이었다. 벤자민의 양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열과 성을 다해 일하겠습니다.”

 

  “잘 해결하도록. 코흐 교수. 필요한 건 그때그때 요청하게. 물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네.”

 

  벤자민은 편지를 돌려준 뒤 인사를 하고 나갔다. 집무실 문이 닫히자 병원장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K가 칼파르 약자였단 말이지. 코흐 교수가 칼파르가 핏줄이라니. 인연이란 묘하군.”

 

  그는 오른손의 반지를 보았다. 산맥표범을 연상시키는 사파이어 반지였다.

 

  ‘두 문제를 같이 해결하게 되어 기쁘다고 해야하나.’

 

  잠시 생각을 정리한 병원장이 전화기를 들었다.

 

  “네. 전화국입니다. 화창한 아침입니다. 병원장님 어디로 연결해 드릴까요?”

 

  수도에 30개도 설치되지 않은 전화기다. 발신지를 확인한 교환의 인사에 병원장이 천천히 말했다.

 

  “펜섬 후작저로.”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딸가닥. 딸그락. 30초 쯤 기다리자 수화기 너머 목소리가 바뀌었다. 기분 좋은 저음의 남자였다.

 

  “헨리 데 펜섬입니다.”

 

  “프렌시아 제 4 파수꾼 레비크가의 크로슈 데 레비크입니다. 의장님, 검은 매의 첫 보호자가 임무를 받았습니다.”

 

 

 * * *

 

  “프렌시아의 칼 데 뮈레입니다. 데빌헌터클럽을 대표해 왔습니다. 헬더 공작님의 별세를 애도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레스로마의 수도, 티로마.

  왕성 근방 메그님 공작저는 끊임없이 오는 추모객으로 가득했다. 레스로마의 전 재상, 헬더 퓌아 메그님 공작이 80세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검은고래전사와의 오랜 우정을 잊지 않고 이 먼 곳까지 찾아주셔 감사합니다. 칼 데 뮈레 자작.”

 

  신임 공작이 칼을 반갑게 맞았다. 그는 상복 왼쪽 가슴에 지름 1.5cm는 될 법한 검은 진주 브로치를 달고 있었다. 백금으로 만든, 파도를 맞는 가리비에 올라간 진주였다.

 

  “먼 곳에서 와 주셔서 감사하오. 오랜 벗이여.”

 

  “데빌헌터클럽의 빛나는 미래를 봐서 반갑소.”

 

  두 사람 주변으로 공작과 같은 브로치를 단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70대에서 20대까지, 인사를 나눈 열대여섯 명은 700여년전 황룡의 선물을 받은 레스로마쪽 후예였다.

 

  “47년 숙성 위스키라. 절말 좋은 조의품이군.”

 

  “호오, 프렌시아의 위스키 중에는 20년이 넘어가는 것도 있군요.”

 

  검은고래전사 회원들은 칼의 조문품에 감탄했다.

  전사부족국가에서 시작한 레스로마는 유력인의 장례 조문 시 떠난 자와 남겨진 자에게 각각 선물을 주는 풍습이 있다.

  술은 배에 태워 화장하는 망자의 부장품으로, 장례식 하객이 마실 수 있는 음료로 가장 인기 있는 선물이었다.

  칼이 가져간 빌리 칼라프 47년 위스키는 노공작의 장례에 걸맞는 조의품이었다.

 

  상주가 개봉해 나누어준 칼파르 위스키는 깊은 풍미를 가졌다. 잔을 받아든 칼은 검은고래 회원 몇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뮈레 자작이라 했지요? 뮈레 후작의 장남이고? 프렌시아의 클럽 회원 중에서 헨리 데 펜섬 후작과 함께 미혼이라고 들었는데요.”

 

  옥수수빛 머리에 푸른 눈의 여인이 위스키를 홀짝이며 물었다. 그녀의 가슴께에는 검은 진주 브로치가 있었다.

 

  “의장인 선배가 아직 혼자라 이성교제가 쉽지 않습니다.”

 

  연모나 이익을 위해 접근하는 여자야 많았다. 칼은 이런 여자들에게 필요 이상의 예를 보이지 않았다.

  헨리 데 펜섬은 칼보다 더한 냉기를 흘린다. 데빌헌터클럽장인 펜섬 후작을 판 칼의 대답에 여자가 낮게 웃었다.

 

  “보는 자는 배우자 고르기가 쉽지 않지요. 안타깝네요. 제가 약혼만 하지 않았으면 펜섬 후작님을 만나러 산맥을 넘을 텐데 말이죠. 그러면 경도 진지한 교제가 가능하잖아요. 이런 미남이 혼자인 건 인류의 손실이에요.”

 

  여자의 말에 칼이 빙긋 웃었다.

  보는 자들의 배우자 선택은 신중하다. 동류와 혼인이 최고지만, 이해심 많은 사람도 좋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부친인 현 뮈레 후작처럼 상대에게 무심한 사람과 결혼하는 방법도 있다.

 

  “과찬이십니다. 약혼하셨군요. 심성 고우신 분이니 부군 되실 분의 복이 많으십니다.”

 

  어머나! 홍조를 띄는 여인 옆에서 남자 한 명이 물었다. 그는 왼 손 약지에 결혼반지를 끼고 있었다.

 

  “클럽 가문에 미혼 처자가 없나봅니다.”

 

  “아직 10살도 되지 않은 꼬마숙녀 외엔 없군요.”

 

  보는 자는 수가 적다. 요절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계도 적다. 칼의 대답에 남자가 다시 말을 이었다.

 

  “마음에 둔 처자가 없다면 여기서 한 명 만나보심이? 경은 레스로마에서 드문 머리와 눈 색을 가진 미남이라 미소 한 번만 보이면 넘어올 여자가 많을 거요.”

  “이 쪽을 보는 저 여인 같은?”

 

  칼은 눈대중으로 홀 저쪽에 홀로 선 여자를 가리켰다. 자신들을 보고 있는 붉은 빛이 도는 금발 여인이었다. 칼의 대답에 일행이 화들짝 놀랬다.

 

  “아이리 헬가 퓌아 토릴양이군,”

 

  “경이 만날 최후의 여인이 아이리양이 되지 않는 이상 권하고 싶지 않소.”

 

  “문제 있는 여인입니까?”

 

  칼의 물음에 옥수수 머리 여자가 애매한 미소를 띄었다.

 

  “모친이 유명한 과부라 들어오는 혼사가 없어요. 그 저주를 딸이 이었다는 소문도 돌죠. 토릴양의 모친은 네 번 결혼해서 남편 장례를 네 번 치렀다지요. 여기에 토릴양은 몇 년 전에 약혼을 했는데 약혼자가 작년 가을에 급사했다지요.”

 

  아이리는 죽은 메그님 공작의 외손녀임에도 혼사를 원하는 집안이 없었다. 독신이 거의 확정된 아이리 헬가 퓌아 토릴을 위해 왕실은 그녀에게 레스로마 최초의 여성 대학 진학 허용을 했다.

 

  ‘평생 몰두할 직업이나 연구 분야가 있으면 적적하지 않게 살겠지.’

 왕실의 파격적 배려는 거기까지였다.

 

  ‘강제 독신행이라.’

 

  약간의 연민이 가지만 그 뿐이다. 모친을 제외하면 칼이 관심가진 여자는 없었다. 아니. 얼마 전 인생에 끼어든 이상한 여자가 있긴 했다. 이사벨라 칼파르.

 

  ‘젠장, 떠올리니까 멍든 데가 쑤시네.’

 

  그녀를 생각하자 칼은 눈은 화장으로 가린 눈 주변이 콕콕 쑤시는 느낌이었다.

 

  * * *

  여독을 핑계로 조문객 틈을 빠져나온 칼은 메그님 공작저의 위층으로 올라갔다. 자신을 위해 준비한 방을 찾아가는 그에게 공작저의 부집사가 급히 걸어왔다.

 

  “뮈레 자작님, 고국에서 후작님이 전보를 보내셨습니다.”

 

  아버지가 전보를? 칼은 부집사가 건네주는 전보를 받았다.

 

 [우정 확인을 마무리하면 티보크의 벨자크에서 검은 매와 합류, 보호자직 수행할 것]

 

  암호문을 확인한 칼의 얼굴이 서서히 구겨졌다. 부친의 명령은 확고했다.

 

  [메그님 공작의 장례가 끝나면 티보크의 벨자크 호텔로 가서 의뢰자인 칼파르 영애와 합류해라. 검은 매 의뢰다. 알다시피 개인수준의 최대 난이도 의뢰다. 네가 이번 사건 해결 담당이니 제대로 처리하도록]

 

  클럽회원이 된 후 자신이 전담할 사건을 맡길 고대했었다.

  그러나 이건 아니다. 주먹을 휘두르는 아가씨를 전담하라고? 그것도 고대하던 단독 첫 임무를? 방으로 들어간 칼은 전보를 집어던지며 외쳤다.

 

  “아니, 이 아저씨가! 귀찮다고 나에게 일을 넘기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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