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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레이디
작가 : 커피새
작품등록일 : 2017.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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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첫 번째 단서
작성일 : 17-07-29     조회 : 249     추천 : 0     분량 : 5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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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뜩 낀 구름이 아침 하늘을 덮었다. 마차에 오르는 벤자민의 얼굴이 어두웠다.

 

  “이거, 한바탕 쏟아질 모양일세. 까딱하다간 길에서 노숙할라. 벨 너도 서둘러라.”

 

  정말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벤자민은 왕립의대와 전염병학회 인장이 박힌 짐을 가득 실은 마차가 출발할 때까지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조카와 칼을 걱정스레 보았다.

  벤자민이 탄 마차가 덜컹대며 작은 점이 될 무렵, 마차 한 대가 도착했다. 덮개가 있는 검은 이륜마차였다.

 

  “우리도 출발하지요.”

 

  마부의 인사를 받으며 칼이 이사벨라를 에스코트했다.

 

  ‘음?’

 

  마차에 오르던 이사벨라의 눈이 커졌다. 마차 문 잡이 아래 조그맣게 박힌 문장이 이채로웠다. 허공을 향해 포효하는 산맥표범의 옆모습이라니, 처음 보는 문장이었다.

  그녀의 시선을 눈치 챈 칼이 간단히 설명했다.

 

  “데빌헌터클럽의 문장입니다.”

 

  음지에서 마수와 괴물의 공격을 봉쇄하는 프렌시아의 파수꾼. 데빌헌터클럽.

  약 700년 전, 신수 황룡이 내린 축복을 받은 자들의 후손이 주축이 되어 만든 비밀 조직이다.

  정회원 가입자격은 칼처럼 [보는 자]들에 한해 주어진다. 이들은 산맥표범 눈과 같은 색의 커다란 사파이어를 박은 금반지를 착용한다.

  [보는 자]가 아닌 이는 준회원 가입이 가능하다. 준회원은 작은 사파이어를 박은 은반지를 착용하며, 마물과 직접 싸우는 [보는 자]를 보조한다.

 

  “준회원 중에는 정회원 집안 고용인과 가신도 있습니다. 이 마차의 마부는 클럽 준회원이자 뮈레가 정원사입니다.”

 

  “와. 클럽이 생각보다 큰가 봐요.”

 

  이사벨라의 감탄에 칼이 사무적인 어조로 말했다.

 

  “클럽일이 프렌시아 전체 보호다보니 음지에서 활약하는 준회원이 제법 있습니다.”

 

  “대단하네요. 그리고 자작님은 보는 눈을 가진 정회원이니까 저를 노리는 마물같은 사악한 것과 직접 싸우는 거죠?”

 

  대단하군. 칼은 속으로 감탄했다.

  그녀의 반짝이는 연녹색 눈동자와 말간 얼굴에는 순수한 놀라움이 가득했다. 남자를 후드려치는 전날의 우악스러움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보니 전형적인 레이디인데.’

 

  두근. 칼의 가슴이 이상스레 뛰었다. 심장이 놀랬나보다. 이거 원, 실전에 나가니 긴장해서 그러나. 칼은 깊게 숨을 몰아쉰 뒤 부러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아, 네. 자작님, 어떤 존재가 저를 노리는 거죠?”

 

  이사벨라의 이어지는 질문에 칼은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어린 시절부터 정회원 후보로 클럽 교육을 받은 그다.

  그러나 그런 칼도 이사벨라를 노리는 마수의 정체를 아직 알지는 못했다.

 

  “마물과 마수는 이계의 존재입니다. 직접 마주하기 전까지 정체를 알기 힘듭니다. 꿈을 통해 접촉하니 몽마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

 

  꿈에 나타나는 마수와 마물은 알려진 것만 이십 여종이다. 하지만, 칼은 이사벨라를 노리는 놈이 새로운 종류라 확신하고 있는 중이었다.

 

  ‘썩은 밧줄 같은 가느다란 신체와 고약한 냄새라.’

 

  듣도 보도, 읽어보지도 못했다. 이사벨라가 묘사한 마물의 특징은 700여 년간 내려온 데빌헌터클럽과 옆 나라 레스로마의 검은고래전사의 마수 및 마물 기록에도 없었다.

  그나마 가까운 건 자라면서 몸체가 썩어가는 진흙 마물

 인 부트체체다.

 

  ‘허나, 부트체체는 고구마처럼 퉁퉁한 몸체를 가졌지. 거기에 자아가 없다.’

 

  의지대로 행동하는 마수와 달리 마물은 본능에만 충실하다. 대화라는 것이 가능한 건 마수였다. 그러니 이사벨라를 노리는 건 마수임이 분명하다.

  기억을 더듬은 칼이 생각에 잠긴 목소리로 이사벨라에게 주의를 주었다.

 

  “마수나 마물은 인간의 약한 마음을 헤집고 들어옵니다. 이사벨라양, 일이 끝날 때까지 긴장을 늦추지 말고 아티팩트를 계속 소지하십시오.”

 

  “아, 네네”

 

  통통 튀던 그녀의 목소리가 한풀 꺾였다.

 

  ‘아우, 무뚝뚝하긴. 정보도 얻고 이미지 변신 좀 할까 했더니 협조를 안 하네.’

 

  전날에도 민망한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와일드한 모습을 희석하려고 부러 헤맑은 미소까지 지었다.

  그러나 칼 데 뮈레는 그녀의 노력에 눈썹하나 꿈쩍이지 않았다.

  쳇, 속으로 혀를 한 이사벨라는 입을 다물고 꼿꼿하게 앉았다.

  그런 그녀의 노력을 알 리 없는 칼이었다. 그는 여성과의 대화에 서툴렀다. 아들만 셋인 후작가의 장남에 남자만 득실한 칼리지와 대학을 나온 칼이다. 여기에 데빌헌터클럽의 현역 회원은 모두 남자였다.

  성인이 되어 데뷔한 사교계에선 신사무리에 섞여 사업이나 국제 정세 이야기를 하느라 꽃처럼 단장한 영애들과 인사 이상의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

  물론, 레스로마 왕국의 검은고래전사클럽의 여성 회원들은 제외다. 그녀들과는 공통 화젯거리가 있으니까.

 

  ‘왜 갑자기 말을 멈췄지?’

 

  칼은 눈을 새초롬히 감은 이사벨라를 흘깃 보았다. 가슴 한 쪽이 이상스레 간질대며 묵직하다는 것만 빼면, 그녀와의 대화는 의외로 즐거웠다.

  멀미를 하나? 자신이 아는 몇몇 마수와 마물에 관해 알려주려고 마음먹었던 칼은 생각을 접었다.

 

  ‘뭐, 그렇다면 그동안 윌리엄씨의 일기나 볼까.’

 

  그는 가장자리가 너덜대는 커다란 수첩을 펼쳤다. 마차에 오르기 전 이사벨라가 건네준 것이었다.

 

  ‘거의 매일 일기를 쓴 걸 보니 굉장히 성실했군.’

 

  일기는 대학 졸업 후 했다던 개인 탐사를 준비하는 과정부터 기록되어 있었다. 탐사 이후론 중간 중간 펜으로 그림이나 약도도 그려 넣어 윌리엄 주니어 칼파르의 일기는 한권의 여행기 같았다.

  한 장 한 장, 넘기던 그의 손길이 무거워진 건 21년 전 초여름 부근에 들어서였다.

 

  ‘음? 두달치의 기록이 없잖아?’

 

  성실한 기록가인 윌리엄 주니어 칼파르는 5월과 6월을 기록하지 않았다. 아니, 흔적은 남긴 듯 했다. 4월 후반과 7월 사이가 벙벙했다. 칼은 종이 사이를 자세히 살폈다.

 

  “허!”

 

 

  공책 연결부위에 맞춰 여러 장의 종이가 찢겨나간 흔적이 있었다, 누군가 이 부분을 없앴다!

  두 달을 훌쩍 건너뛰어 이어진 7월에는 티그만의 신전에서 올린 결혼식이 짧게 기록되어 있었다.

 

  [7월 10일. 티그만 신전에서 결혼했다. 이제 내 옆에는 같이 손을 잡고 미래를 향해 걸어갈 동반자가 있다.

  릴리안 칼파르. 내 생이 다할 때까지 사랑할 유일한 내 아내.]

  메모처럼 간략한 서술에 칼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이 고장의 식물분포도는 어쩌고, 무엇이 여기서도 자생하니 무엇을 더 연구해야한다는 등의 설명과 주석을 달던 윌리엄 주니어답지 않은 간단한 묘사였다.

  왜? 무엇 때문에? 설마 그녀 가문의 저주를 알고 있던 건가?

 

  “이사벨라양? 혹시....”

 

  입을 열었던 칼은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했다. 맞은편의 이사벨라가 고개를 꾸벅이며 졸고 있었다. 그 모습이 사뭇 귀여워 칼은 일기장을 덮고 저도 모르게 이사벨라를 감상했다.

 

 * * *

 

  “자작님, 길이 엉망입니다요.”

 

  문을 열어주는 마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도중에 비가 내렸다. 서쪽 지평선에 맞닿은 햇살에 잠긴 마을, 타그만은 질척했다.

 

  “이곳은 목축의 신을 모시는군.”

  신전문의 문양을 확인한 칼이 말했다. 마차는 마을 중앙의 하나뿐인 신전 정문 앞에 서있었다.

  타그만은 마을치곤 규모가 있지만, 도시는 아니다. 시청이 없는 마을의 결혼기록은 신전에 보관된다. 타그만은 젖소와 양을 치는 전형적 마을이었다.

  목축의 신, 테우리신을 모시는 소담한 신전이 늦은 오후의 방문객 맞이에 소란스러워졌다.

 

 

  “21년 전의 결혼기록을 찾으신다고요?”

 

  그들을 맞은 사제 눈이 커졌다.

 

  “제 부모님이 21년 전에 여기서 혼인을 하셨어요. 그 기록을 찾아 보려한답니다.”

 

  이사벨라의 말에 흐음, 사제가 이해한다는 미소를 지었다.

 

  “아, 부모님의 혼인 증명서를 분실하셨군요. 결혼을 앞두고 시가쪽에서 레이디의 부모님 결혼을 확실히 확인하고 싶으신가 봅니다.”

 

  사제는 오해하고 있었다. 도시는 신전이든, 시청이든 식을 올린 뒤 국가기관에 혼인신고를 한다.

  그러나 작은 마을의 신전 결혼은 주민들이 부러 도시까지 나가 신고하지 않는 이상 중앙 정부 집계에 기록되지 않았다. 왕국의 지역별 인구수가 항상 어림잡아 나오는 건 이 때문이었다.

  여자 쪽도 괜찮은 집안이지만, 남자 쪽 집안이 훨씬 뼈대 있는 곳이겠지.

  여자가 입은 질 좋은 녹색 코트와 모자는 여인이 젠트리 가문이상임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수수한 옷을 입은 칼의 모습에선 정중한 신사의 향이 났다.

 

  ‘분명 귀족일게야.’

 

  신분을 밝히기 싫어서 변장한 게야. 자신의 추리에 만족한 사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아니예요. 저는 아직 데뷔탕트도 하지 않은 미성년자입니다.”

 

 둘이 남매인가요? 미처 묻지 못한 사제의 뒷말이 들리는 기분이었다. 이사벨라의 입이 벌어졌다. 칼의 머리가 띵 울렸다. 이 양반이!

 

  “헛.”

 

  뒤에 서있던 견습 사제가 헛바람을 삼키는 소리가 났다. 구두에 묻은 흙을 닦으라고 준비해준 신문을 봤을 때 눈치 했어야 했다.

  일간 제노렐라. 여기 연재중인 통속 소설이 요즘 장안의 화제라지. 주인공이 출생의 비밀을 간직했다던가.

  모친이 열렬 구독자라 칼은 제노렐라의 위상을 알고 었었다. 간신히 감정을 감춘 칼이 입을 열었다.

 

  “이 레이디의 부친은 왕실과학자였습니다.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보다 많은 업적을 남기셨을 겁니다. 저희는 그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고자 일대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결혼 확인은.”

 

  여기서 칼은 머뭇거렸다. 뭐라 말하나. 개인의 일대기에 결혼 날짜를 집어넣는 게 유의미한가? 망설이는 그의 말을 이은 건 이사벨라였다.

 

  “그러니까 자칫 무미건조할 수 있는 일상기록에 분홍빛 색을 넣는 거죠. 아버지의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 돌아가신 어머니거든요.”

 

  “아!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제가 아픈 곳을 건드렸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으니 자식이 발 벗고 흔적을 훑어가는 것이다. 어린 처자 홀로 여행할 수 없으니 저 신사는 후견인이나 친척이 분명해. 신분을 감추려 수수하게 입은 게지. 사제는 감상에 젖어 고개를 끄덕였다.

 

  “전기문이니 제대로 된 고증이 필요하군요.”

 

  ‘볼수록 제법이군.’

 

  칼은 감탄했다. 임기응변으로 꺼낸 말에 이사벨라가 제대로 장단을 맞췄다. 흐음, 진짜 칼파르의 일대기 출간을 추진해봐?

 

  ‘어?’

 

  그의 생각을 읽은 듯 이사벨라가 흘깃 칼을 보았다.

 

 

  먼지 쌓인 보관실에서 찾은 결혼 기록은 갓 작성한 듯 깨끗했다. 주례와 결혼 당사자, 증인의 서명과 인장역시 생생했다. 기록을 확인한 세 사람은 각자 다른 이유로 충격을 받았다.

  사제가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허어, 에즈라 대주교님이 주례를 보셨네요.”

 

  에즈라 대주교는 종파를 넘어 왕국 내에 유일하게 성인의 힘을 가진 사제다. 그가 일반 사제였던 시절 순회근무 했던 곳 중에 티보크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와, 어머니의 필체가 이렇구나.”

 

  릴리안 칼파르. 유려한 필체로 휘갈긴 서명을 보며 이사벨라가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그런 그녀에게 칼이 말했다. 목소리가 딱딱했다.

 

  “이사벨라양, 이사벨라양도 행방을 모른다는 부친의 유실된 일기 내용이 무척 중요한 건가 봅니다. 아무래도 모친을 보호하기 위해 양친 중 한 쪽이 뜯어낸 것 같군요. 모친이 생각보다 거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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