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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을 거머쥔 자
작가 : 신책
작품등록일 : 2017.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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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7-25     조회 : 557     추천 : 1     분량 : 4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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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사라져 버렸다.

  거칠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정도로 험한 파도가 사납게 뛰놀았다. 파고 꼭대기에 잠시 일어난 물결 거품만이 아주 작은 하얀 색을 띌 뿐, 온 세상이 온통 검게 물들어 있었다. 그 물결 이랑이 깊이 패인 가장 낮은 곳에 거대한 범선이 그 묵직한 몸체를 돌리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핫하! 돌아라, 돌아! 왼쪽이다!”

  파도를 그대로 들이 쓰는 뱃머리, 배의 키가 자리한 그 곳에서 한 사내가 키를 꽉 부여잡은 채 악을 쓰듯 소리를 치고 있었다.

  “으핫하하! 빨랑 돌아라, 으핫하하!”

  ……그냥 웃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키를 잡은 두 팔엔 잔근육이 가득했다. 우락부락한 근육은 아니었지만, 근육이 자리 잡아야 할 곳엔 어김없이 불룩 근육이 솟아 있었다. 땀인지 비인지 파도인지 모를 물기로 번들거리는 얼굴을 한 채, 그는 재차 소리를 질렀다.

  “자, 뚫고 나가자! 왼쪽이다!”

  누가 들으라는 것인지, 마치 배를 향해 격려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의 목소리에 반응하기라도 하듯, 범선이 꿈틀 거체를 움직였다.

  촤아악!

  파도가 범선을 덮쳤지만, 배는 그 파도를 고스란히 맞으며 바다를 뚫고 위로 솟구쳐 올랐다.

  둥실.

  솟구쳐 오르는 반동에 범선은 일순 그 육중한 몸을 바다 위로 띄우는 듯싶었다. 물론 그 순간은 지극히 짧은 순간이었다.

  텅.

  큰 충격과 함께 배는 밑바닥 전체로 바다에 충돌했다.

  “으악! 사람 살려!”

  비명 소리와 함께 선원 하나가 갑판에서 튕겨져 나가 바다에 떨어졌다.

  “위르단!” 그 선원의 이름이 아마 위르단이었던 모양이었다. 다른 사람 하나가 자기 몸에 묶여 있던 줄을 화급히 풀기 시작했다. 물에 빠진 선원을 구할 생각인 듯 했다. 키를 잡은 사내가 뒤를 흘깃 바라본 뒤 곧 눈살을 찌푸렸다.

  “자네 미쳤나? 당장 줄을 다시 묶어!” 어느새 줄을 다 풀고 있었던 그 선원은, 키잡이의 고함을 듣고 방향을 돌려 그에게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일등 항해사님! 제발 저희 좀 살려주십시오!”

  일등 항해사라 불린 키잡이 사내의 미간이 한층 좁아졌다.

  “야, 이 미친 놈아! 니들 살리려고 지금 용 쓰고 있는 거 안 보이냐? 빨리 다시 돛대로 가!”

  “항해사님, 위르단도 좀 살려 주세요. 그 녀석은 이번 항해 중에 아들이 태어났다고 했어요. 돌아가서 아들을 본다고 했는데… 그 녀석 좀 꼭…….”

  “얌마, 내가 신이냐? 뱃사람의 성자 오론에게 빌어 보든가. 당장 돛대로 돌아가! 파도 온다.”

  “항해사님, 항해사님!” 끼익하는 거친 소음과 함께 범선이 용틀임을 하기 시작했다. 키잡이 사내의 양팔에 근육이 불끈 솟았다.

  “야, 임마! 죽고 싶냐? 빨리…….”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엄청난 파도가 다시 범선을 덮쳤다. 키잡이 사내는 양손으로 잡고 있던 키에서 오른손을 놓고 왼손 하나로 키에 매달렸다. 오른손으론 그 선원을 잡은 채였다. 다행히 선원은 구할 수 있었지만 이번엔 배가 왼쪽으로 크게 기울기 시작했다.

  “으랏차!”

  기합소리와 함께 키잡이는 왼손을 힘껏 치켜 올리며 그 반동으로 오른손에 잡은 선원을 주돛대를 향해 던졌다. 우당탕 소리와 함께 선원이 돛대 근처로 나가 떨어졌다. 거의 괴력이라 할 만한 힘이었다. 어쩌면 단지 운이 좋았던 것일 수도 있고.

  “운이다!”

  키잡이 사내의 고함이었다.

  “운이려니 해라. 아니면 기도라도 하든가. 살고 싶은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내 힘 그만 빼고.”

  그는 다시 양 손으로 키를 붙잡고 바다와 사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비바람이 거칠어지고 파고가 높아갈수록 그의 웃음소리도 점점 더 커졌다.

  “으핫하하! 나비처럼 돌아라, 타고 넘어야 한다! 하하하!”

  배는 몇 번이나 위기를 넘기며 파도를 정면으로 타고 넘었다. 큰 파도를 측면으로 맞으면 끝이다. 배가 뒤집어 지거나 동강날 위험이 있었다. 그것을 막으려고 지금 일등 항해사가 키를 손수 붙잡고 고군분투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폭풍우는 좀처럼 끝날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선원들의 도움은 기대할 수 없었다. 그들도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광란과도 같은 폭풍우 때문에 모두들 몸을 선체에 묶어 놓고 있었던 것이다. 실은 일등 항해사도 왼손을 키에 얽어매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진즉에 벌써 파도에 휩쓸려갔을 상황이었다.

  “이보게, 일등 항해사.”

  또 하나의 큰 파도를 넘고 배가 잠시 안정을 찾았을 때, 돛대로부터 나이든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일등 항해사가 멈칫하며 뒤를 흘깃 돌아보았다.

  “예, 선장님.”

  “…자넬 믿어도 되겠나?”

  일등 항해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지난번이 미간을 찌푸린 정도였다면, 이번엔 안면 전체를 확 구겨버린 듯한 표정이었다.

  ‘도대체! 내가 무슨 신인가? 왜 나한테 모든 걸 맡기는 거야? 내가 대체 뭐라고!’

  하지만 그 표정은 뒤에서 보이지 않았고, 그의 생각 또한 그의 머릿속에 머물렀다. 두려움 속에 옹기종기 모여 서로의 몸을 묶은 선장과 선원들에겐 파도를 타넘는 뱃전에 버티고 선 듬직한 뒷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그는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른 부정적인 생각을 도로 눌러 삼키면서 선장을 향해 입을 열었다.

  “선장님…….”

  선장은 답 없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선장님께선 행운의 여신을 더 믿으십니까, 아니면 저를 더 믿으십니까?”

  몇 안 남은 갑판의 물통들과 함께 흔들리던 선장의 입가에 비로소 희미한 미소가 감돌았다.

  “……그야 물론 자네지…….”

  일등 항해사는 여전히 앞을 바라본 채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믿으십시오. 기필코 살아남아 보일 테니!”

  그의 마지막 말은 선장을 향한 것이 아니라 울부짖는 검은 하늘을 향한 것이었다. 애초에 그 말이 선장을 향한 것이었어도, 선장은 한동안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을 터였다. 그 직후 배는 삼중으로 들이닥친 파도를 뚫느라 온통 물난리에 휩싸이고 말았으니까.

  폭풍은 그 후에도 장장 이틀 밤낮을 지속한 끝에야, 옅은 물거품 몇 다발을 남긴 채 사그러들었다. 그리고 그 해역 어디에서도 거대한 범선의 자취는 찾을 수 없었다.

 

  철썩.

  쏴~.

  철썩.

  쏴~.

  단조로운 파도의 소리가 노크하듯 귓전으로 향했다. 뱃전에 와 부딪히는 물결의 찰랑거리는 소리와는 차이가 많이 나는, 전형적인 해변가의 파도 소리였다. 들어오는 소리만큼이나 나가는 소리가 컸다. 마치 시계 초침과도 같이 규칙적인 소리.

  “쿨럭, 쿨럭.”

  그는 기침을 하며 간신히 눈꺼풀을 치켜 올렸다. 눈꺼풀이 너무 무거워 안간힘을 써야만 눈을 뜰 수 있었다. 거인도 들 수 없는 게 졸린 눈꺼풀이라고 했던가. 정신이 혼미한 중에도 그는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햇살이 뜨겁게 내리쬐는 어느 바닷가였다. 그 해변 모래톱 어딘가에 그는 양팔을 벌린 채 엎드러져 있었다. 파도가 들어오면 허리께까지 물이 들어오는 자리였다. 온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잠시 눈만 뜬 채로 정신을 돌아오게 하려 애쓰며 그대로 엎드려 있었다.

  “쿨럭.”

  그는 다시 기침을 하며 입과 코에 들어간 모래를 떨어내었다. 엎드러져 있긴 했지만 다행히 고개는 옆을 바라보고 있었고, 덕분에 모래나 물에 코와 입이 막히는 불상사는 면할 수 있었던 모양이었다. 안 그랬다면 지금쯤 그는 저승 행 우마차에 올라타 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모래가 어느 정도 털려 나갔는지 확인하며 그는 팔과 다리에 힘을 주어 몸을 일으켰다. 아니, 일으키려 했다.

  “으윽.”

  저절로 터져 나오는 신음을 삼키며, 그는 오른손으로 왼팔을 부여잡았다. 그의 왼팔에는 여전히 범선의 키가 매달려 있었다. 물론 범선은 없이 키만 말이다. 하지만 그 키마저도 무게가 거의 그의 몸무게만 했기 때문에, 그의 왼팔은 자연히 기이한 각도로 꺾여 있었다.

  “부러진 모양이로군.”

  남의 이야기를 하듯 무심히 말한 그는 무엇이 우스운지 쿡쿡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작은 웃음이었으나 곧 웃음소리는 해변을 덮을 만큼 커졌다.

  “크하하하하…….”

  그 웃음소리에 놀라 갈매기라도 한두 마리 날을 법 했지만, 그가 있는 해변에는 새 한 마리 없는 모양이었다. 한동안 웃어젖힌 그는 눈물을 닦으며 자세를 바로 했다. 너무 웃어서인지, 다른 이유에선지, 어느새 그의 눈매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는 자유로운 오른손을 이리저리 움직여 왼팔에 얽힌 로프들을 풀기 시작했다. 좀처럼 쉽게 풀어지지 않았지만 그는 끈기를 가지고 물에 불은 그 로프들을 풀어냈다. 마침내 육중한 키가 그의 팔에서 벗겨져 나갔다. 겨우 자유를 찾게 된 왼팔이었지만, 도무지 그의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확실히 부러진 모양이었다.

  “살아남긴 살아남았는데…….”

  그는 혼잣말을 하며 비스듬히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보았다. 긴 모래톱이 펼쳐져 있는 것은 여느 해안과 다를 바가 없었다. 문제는 모래톱 너머에도 계속해서 모래의 세상이 펼쳐져 있다는 것이었다. 주변 어디에도 생명체의 흔적은 없었다. 비쩍 마른 나무 한 그루도, 낮게 깔린 덤불들도 눈에 띄지 않았다. 바다에 사는 게를 제외하고는 작은 덤불쥐 하나 보이지 않는 완전한 사막이었다.

  “또 나 혼자 살아남은 건가?”

  투덜거리듯 중얼거린 그는 억지로 몸을 일으켜 비척비척 걷기 시작했다. 입 안에 감도는 소금기와 볼록해진 배로 보아 바닷물을 꽤 많이 먹은 듯했다. 빨리 단물을 찾아 먹지 않으면 탈수 증세로 쓰러질 터였다.

  어디로 가야 물이 나올지 좀처럼 알 수 없는 기약 없는 발걸음이었다. 사막의 한가운데를 향하는 비틀거리는 걸음 뒤로 그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섰다. 어느덧 태양이 내리깔리고 있었다. 기운 없는 그의 몸 마냥 축 처진 그림자였지만, 왠지 그 그림자는 웃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림자가 점점 길어질수록 그 웃음의 환청은 더욱 더 커졌다. 어디선가 그 웃음소리가 바람에 실려 날아왔다.

  “크하하핫, 크하하하하……!”

jubila 17-07-27 17:35
 
오옹.....정통판타지라하셔서 왔습니다. 일단 초반부가 흥미로워 선작하고 갑니다. 분량 채우고 나면 읽으러 올게요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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