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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을 거머쥔 자
작가 : 신책
작품등록일 : 2017.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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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운의 항해사 1) 소라고둥항의 소란 ②
작성일 : 17-07-25     조회 : 282     추천 : 0     분량 : 4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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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터운 로브의 사내는 동전 세 닢을 내고 소라고둥항의 관문을 통과했다. 동행도 없고 이렇다 할 교역품도 없이 왔기 때문에 통관료는 세 닢이면 충분했다. 검치호의 소란 때문에 일이 복잡해질까 염려했지만, 사무장의 말마따나 그것은 관문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적어도 관문 통과와는.

  관문을 나서서 1층이라는 표지판이 있는 작은 골목으로 들어서던 사내는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보고 멈칫했다. 앞서 관문을 빠져나간 털보 장한이었는데, 뒤를 돌아보고 선 모양새를 보니 아무래도 그를 기다린 듯 싶었다.

  “덕분에 빨리 통과했수, 그래.”

  “별 말씀을. 오히려 덕분이지요.”

  인사를 주고 받은 그들은 곧 손을 뻗어 악수를 하며 통성명을 했다.

  “난 빌켄 아시르라고 하우.”

  “전 하누인 올랑입니다.”

  털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소라고둥항엔 처음이지 싶은데…….”

  “어떻게 아셨습니까?”

  “이래 뵈도 내가 여기 마당발이라 불리우…….”

  빌켄이 씨익 웃었다.

  “딱히 지인이 없다면 내가 좋은 숙소라도 안내해 드리지. 도움 받은 감사로다가 말이우.”

  하누인이 로브 자락을 당기며 답했다.

  “그것 참 반가운 말씀입니다. 안 그래도 어디로 움직여야 하나 난감하던 참이라서 말입니다.”

  두 사람은 아래층을 향하여 걷기 시작했다. 빌켄은 말수가 적지 않은 사내였다. 하누인이 소라고둥항에 처음 왔다는 확답을 얻자 거침없이 이런저런 정보들을 주워 섬겼다. 하누인은 단지 몇 마디 대답만으로도 금세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었다.

  “이곳은 여러 층의 바위 위에 지어진 항구라우.”

  “그렇군요.”

  “아래로 갈수록 넓어지는데, 관문에서부터 층수를 1층으로다가 붙여 두어 낮은 층 골목일수록 층수가 높다우.”

  “호오!”

  “골목마다 층수가 붙고, 항구는 제일 아래층인 63층에 있지우.”

  “과연…….”

  골목 다섯 층을 내려갈 동안 하누인은 소라고둥항의 구조와 역사, 최근의 화제까지 깊이 있게 섭렵할 수 있었다. 6층이라는 표지판을 보았을 때 비로소 질문을 할 기회를 잡은 하누인은 자칭 ‘마당발’이라는 털보에게 묻고 싶던 것을 물을 수 있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운 좋은 항해사를 만나보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오호라, 여기 오신 이유가 그것 때문이로구먼. 운 좋은 항해사라고 했수?”

  더 이상 마땅한 추임새를 찾을 수 없었던 하누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털보 빌켄이 딱하고 박수를 치더니 말을 이었다.

  “지난 번 광란의 폭풍우에서 홀로 살아 돌아온 그 항해사를 말하는 모양이로구먼. 여기 사람들은 그를 강운의 항해사라 부르지. 댁도 그 양반만큼이나 운이 좋구려. 지금 마침 그 사람이 있는 객관으로 가는 길이거든. ‘뚱뚱이 고둥 객관’ 말이우.”

  “거기에 그 사람이 숙식합니까?”

  “숙은 몰라도 식은 하지. 술을 좋아하는 양반인데, 뚱뚱이 고둥 객관의 주점은 여기 소라고둥항에서 손꼽히는 주점이거든. 저녁 때 주점에 가보면 십중팔구는 만나 볼 수 있을 게요.”

  빌켄은 씨익 웃으며 발을 재게 놀려 아래층 골목으로 내려섰다. 하누인은 숨이 찰 지경이었지만 열심히 털보의 뒤를 따라 붙었다.

  “그 뚱뚱이 고둥 객관은 몇 층에 있습니까?”

  “이름 보면 모르겠수? 고둥이 제일 뚱뚱한 데가 어딘 것 같수?”

  “글쎄요? 제일 아래가 아닐까요?”

  “잘 아시는구먼, 그래. 60층이라우. 항구 바로 위지. 거기 야경이 정말 죽여 준다우.”

  야경이고 나발이고 말을 하며 털보를 따라가느라 숨이 차 올라 힘겹던 차에 60층이라는 말을 듣자 다리에 힘이 절로 빠지는 듯했다. 그런 하누인의 사정을 잘 알고 있다는 듯 빌켄이 씩 웃으며 다음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거기 야경만큼은 아니지만 여기서 보이는 경치도 끝내준다우. 잠깐 쉬어가시겠수?”

  그는 하누인에 앞서 먼저 골목 모퉁이를 휙하고 돌았다. 하누인이 따라 돌자 8층이라는 팻말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곧 그 팻말은 의식의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야 말로 장관이었다.

  가파른 경사에 따닥따닥 따개비처럼 붙어 있는 수많은 지붕들 너머로 탁 트인 푸른 바다가 한 눈에 들어왔다.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을 즈려밟고 바다 위에 고고히 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흰 구름과 함께 나란히 날고 있는 물새들, 시퍼런 파도들 사이로 조심스레 일어난 하얀 포말들, 그 위에서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는 각양각색의 범선들……. 이 모든 것들도 아름다웠지만, 가장 아름다운 것은 사파이어와 청옥보다도 더 새파란 빛을 띤 채 온 수평선을 덮고 있는 망망대해였다.

  “참…….”

  절로 찬탄사가 흘러나왔다. 그마저도 미처 끝맺지 못할 정도였다.

  “참으로 멋진 광경 아니우? 다리도 아플 텐데 앉아서 감상하시구랴.”

  찬탄사를 대신 맺어주며 빌켄이 하누인의 팔을 끌었다. 그가 이끄는 대로 앉기는 했으나 하누인은 자기가 어디에 앉았는지도 느끼지 못했다. 그의 눈은 그대로 바다를 향해 있었다. 그의 귀와 코도, 그의 오감이 온통 바다를 향한 채 그는 한동안 무아지경에 빠져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하누인은 문득 정신을 차리며 겸연쩍은 얼굴로 옆을 돌아보았다. 빌켄 역시 경사 있는 풀밭에 털썩 주저앉은 채로 바다에 온 몸을 내맡기고 있었다.

  “정말 귀한 경험을 했습니다.”

  하누인의 말에 빌켄이 씩 웃었다.

  “나는 이 항구에 살아도 여기만 올라오면 이 지경이 되니, 댁은 오죽허시겠수? 그래도 여기에만 있을 수는 없으니 슬슬 일어나시구려.”

  빌켄이 먼저 벌떡 일어났고 하누인도 뒤를 따랐다.

  “이런 광경을 보고 나니 주점에서 볼 야경도 참 기대가 됩니다.”

  “후후, 내려갈 걱정은 안 되시구?”

  빌켄의 짓궂은 질문은 그야 말로 하누인의 허를 찔렀다. 하누인은 아직도 바다의 풍광에 잠겨 있는 자신의 오감과 의식을 급히 머릿속으로 불러들였다.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하산(下山)의 공포와 맞서기 위해서였다.

  “60층이라고 하셨죠?”

  확인하는 목소리엔 떨림이 묻어났다. 털보가 껄껄거리며 웃었다.

  “하하하, 너무 걱정 마시우. 능선 열차를 타고 가면 되니까. 내려갈 땐 공짜라우.”

  “능선 열차? 그건 또 뭡니까?”

  반색하며 묻는 하누인에게 빌켄이 답했다.

  “소라고둥항의 명물이지. 두 층만 더 내려가면 된다우. 10층마다 서니까.”

  하누인은 갑자기 두 다리에 힘이 솟는 것을 느꼈다.

  “어서 갑시다! 그것 뭔지는 모르겠으나 참 좋은 것인 모양이네요.”

  하누인의 로브 자락이 휘날렸다. 빌켄 역시 씨익 웃으며 그 뒤를 따랐다.

  골목 두 개를 더 내려가자 ‘고둥 능선 열차’라는 표지판과 함께 승강장이 보였다. 무려 70도가 넘는 경사 위로 한 줄의 레일 비슷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저걸 따라 내려가는 겁니까? 무슨 마법인가 봅니다.”

  하누인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우리가 저걸 따라가는 건 아니고. 위를 한 번 보시우. 열차가 오고 있으니까.”

  빌켄이 가리키는 손가락 끝을 따라 위를 올려다보던 하누인은 순간 깜짝 놀라 거의 주저앉다시피 하며 두 팔을 치켜들었다. 구형의 거대한 열차가 엄청난 속도로 하강하고 있었다. 얼마나 속도가 빨랐던지, 점처럼 작던 열차가 순식간에 부풀어 올라 거의 부딪힐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자, 타시우. 워낙 빨라서 벽에 있는 손잡이를 잘 잡아야 할 거외다.”

  하누인은 빌켄이 알려주는 대로 벽과 바닥에 난 구멍에 손과 발을 열심히 끼웠다. 거의 자유낙하에 가깝게 떨어지는 것을 이미 눈으로 보았던 것이다.

  “조금 내려가면 중층부가 나오는데 아마 난장판일 것이우. 아까 그 호랑이가 거기쯤 떨어졌을 테니까. 거길 통과해서는 오늘 중으론 하층부로 가기 힘들걸?”

  빌켄이 낄낄거리며 농담처럼 말했다. 하지만 하누인은 좀처럼 따라 웃기가 힘들었다. 빌켄의 웃음이 마치 신호인 양, 막 열차가 출발하고 말았던 것이다.

  안에서의 경험은 밖에서의 경험보다 한층 선뜩했다. 뚫려 있는 창문으로 바깥 풍경이 비쳤지만 그에 집중할 틈 따윈 조금도 없었다. 푸른 바다의 장관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 뿐이었다. 무언가에 짓눌려 크게 부서진 자욱이 남은 집들이 언뜻 눈에 들어왔지만, 그것이 검치호의 소동 때문에 만들어진 자국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열차가 60층에 도착한 뒤였다.

  그동안 하누인은 그저 천장을 향해 떠오르려는 몸뚱아리를 두 팔과 두 다리를 이용해 필사적으로 막아내었을 뿐이었다. 문이 열릴 때 쯤에는 그의 오른손에 멍자국이 남을 지경이었다.

  “고생했수다. 그래도 급행으로 신청하길 잘했구만. 하마터면 층층마다 구토를 할 뻔 했잖수.”

  승강장 바로 아래의 난간을 부여 잡고 헛구역질을 하던 하누인은 그가 탄 열차가 무려 ‘급행’이었다는 말에 분노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 분노를 표현하려던 마음을 접게 만든 것 또한 이어진 빌켄의 말이었다.

  “다 왔수. 뚱뚱이 고둥 객관이우.”

  간신히 고개를 든 하누인의 눈에 고둥 위에 고둥 여럿을 붙여 놓은 듯한 기이한 형태의 건물이 보였다. 하누인의 긴 여행이 비로소, 잠시 동안이지만,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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