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바다로 나서다
어둑한 방이었다. 아니, 캄캄한 방이었다. 끼익하는 작은 소음과 함께 문틈으로 빛이 새어 들어오기 전까지 그곳에는 어떤 빛도 존재하지 않았다. 끔찍할 정도의 고요를 깬 것은 바로 문에서 난 그 소음이었다.
소음은 작은 발자국 소리를 동반했다. 첫 사람이 방안으로 발을 디뎠을 때, 방안엔 갑자기 은은한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벽에 걸린 횃대에 저절로 불이 들어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자신의 의자에 앉았을 때에는 천장에 붙은 조명도 완전히 켜져 있었다. 일각 전과는 완전히 다른, 밝고 환하게 빛나는 분위기의 방에 일곱 사람이 모여 있었다.
“회의를 시작합시다.”
나이든 여성의 목소리가 첫 번째 사람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휑한 공간을 채울 수 있을 만큼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좌중의 사람들에겐 충분히 들릴만한 목소리였다.
“의장님께 보고 드리기 위하여 담당자가 나와 있습니다.”
여성의 오른쪽에 앉은 이가 말했다. 그는 연배가 높은 듯 얼굴 가득 수염과 주름이 덮여 있었지만, 여성 앞에서는 철저히 공손한 말투를 쓰고 있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오른쪽 사람이 문밖을 향하여 소리쳤다.
“들어와 보고하게.”
“예.”
짤막한 대답과 함께 등장한 사람은 짧은 로브를 걸친 젊은 남성이었다. 그는 들어서자마자 아무런 인사말도 없이 보고할 내용을 읊기 시작했다.
“소라고둥항에서 검치호로 인한 소란이 있었습니다. 다만 그 배경은 밝혀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검치호에게 인조족 한 명이 물려 있었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아직 전 대륙의 인조족 동향 중 특기할만한 것은 없습니다. 폐하께서 이 소란과 관련하여 하문하실 것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의장은 눈을 감은 채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의 안색을 살피던 수염 가득한 참석자가 젊은 남성을 향해 조용히 말했다.
“돌아가게.”
“예.”
남성은 가볍게 공손히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뒤로 돌아 바깥을 향했다.
“잠깐…….”
눈을 감고 있던 의장의 목소리였다. 보고자가 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
“빠트린 것이 있는 것 같은데…….”
“예? 무슨 말씀이신지?”
젊은 남성은 당황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 입을 향해 무언가 강한 힘이 날아갔다.
“크윽.”
무엇이 날아가는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지만 남성의 입가에서는 가느다란 선혈이 흐르고 있었다. 단지 의장이 눈을 감은 채 소매를 떨친 것뿐인데 말이다.
“다음부터는 내게 직보(直報)하도록.”
“쿨럭, 알, 알겠습니다.”
의장이 재차 소매를 떨쳤다. 보고자는 도망치듯 뒤로 물러서 방을 빠져나갔다. 삐걱대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힌 것을 확인한 의장이 눈을 들어 회의에 참여한 나머지 여섯 사람을 바라보았다. 아니, 쏘아보았다는 것이 더 적절할 수도 있었다. 그녀는 불을 뿜는 듯한 눈으로 여섯 사람을 하나하나 쏘아보며 말했다.
“정신 차리세요. 아직도 이 자리를 무슨 권력 싸움하는 장소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나라와 나아가 온 대륙을 위해 꼭 해야만 하는 일을 결정하는 자리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거기까지 말한 의장은 고개를 오른편으로 돌렸다. 당황한 표정으로 수염을 쓰다듬는 그에게 의장이 딱딱한 목소리로 물었다.
“부의장, 부의장은 부의장의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오?”
부의장이라 불린 이가 잠시 생각을 가다듬고 나서 입을 열었다.
“의장님을 잘 보필하여 회의와 업무가 잘 돌아가도록 하는…….”
“부의장은 의장 궐위 시 의장의 역할을 대신하는 사람입니다. ‘궐위’ 시라는 말입니다. 이 나를 함부로 궐위시키지 마세요. 회의에서나 업무에서나 마찬가지입니다. 의장에게 보고되어야 할 내용을 마음대로 재단하지 말기 바랍니다. 이건 공식 경고입니다.”
여성의 목소리는 칼바람이 일 듯 차가웠다. 의장의 역할을 욕심내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였다. 부의장은 찔끔하여 입을 다물었다.
“부의장은 국왕 폐하를 알현하고 사건에 대해 요약 보고하고 오세요. 알현 후 곧바로 내 집무실로 와서 알현 내용을 보고하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서기장, 서기장은 소라고둥항 사건을 일각 단위로 정리해서 보고하세요. 해 뜰 무렵에 내 집무실로 오면 됩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연구장은 학교 쪽으로 이상한 소리 안 나가도록 만전을 기울여 조치하기 바랍니다.”
“예, 알겠습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여러 사람에게 관련된 지시를 한 의장은 피곤한 듯 몸을 뒤로 젖히며 조금 큰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 회의는 여기까지 합시다. 다들 나가보세요.”
사람들이 주섬주섬 물건들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장의 불이 꺼지고, 곧 횃대의 불도 사그라졌다.
“재무장.”
재무장이라 불린 사내는 의장의 목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보았다.
“나랑 따로 얘기 좀 하지.”
“집무실로 찾아뵐까요?”
“음. 같이 가세.”
알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인 사내는 의장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집무실까지는 잠깐의 거리였다. 의장은 아마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신중한 사람이니까. 집무실에서 꺼낼 이야기가 무엇일지 짐작하며 재무장은 조용히 그녀를 따랐다. 복도에 걸린 횃불들 너머로, 너울대는 그녀의 그림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우리의 접근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닐 테지?”
의장의 목소리는 조금 침울해져 있었다.
“똑똑한 사람이니 알아서 잘할 겁니다.”
재무장의 답변이었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네만…….”
아직 사위는 어두웠고, 의장 집무실에는 불이 켜 있지 않았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어슴푸레한 여인의 실루엣이 창밖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머리가 똑똑한 것과 세상 일에 똑똑한 것은 서로 다르니까 말이지…….”
온갖 세상사의 거친 풍파를 이겨내고 의장의 자리까지 올라간 그녀의 말이라 더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이야기였다.
“좀 젊긴 하지만, 일은 잘 해낼 겁니다.”
“하나 더 보낼까?”
재무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무언가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것일까?
“상황을 좀 지켜보시지요.”
의장은 별다른 대답 없이 계속해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동편 하늘의 짙은 남색 빛이 조금 밝아진 듯하였다. 혹은 아직 그대로인지도 모른다. 아주 느리게, 아무도 모르게, 하늘은 그 끝에서부터 조금씩 밝아오니까.
“정찰을 강화하게.”
“알겠습니다.”
“이 대륙 안에서 돌아가고 있는 일이라면 단 하나라도 놓쳐서는 안 돼. 촌동네 아낙이 삯바느질을 하는 바늘귀가 떨어져 나간 사건이라도, 평소와 다른 일이라면 포착해 오라고. 작은 사건 하나가 큰 결과로 들이닥칠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하겠습니다.”
재무장이 꾸벅하고 고개를 숙였다.
“환영술사가 있다면 좀 더 마음을 놓을 수 있을 텐데…….”
여인은 계속 바깥을 바라본 채로 손을 들어올렸다. 나가보라는 사인이었다. 별 말 없이 집무실을 빠져나간 재무장이 문을 닫자, 방은 더욱 더 조용해졌다. 고요와 침묵, 어둠 한 가운데에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경지 속에 그녀가 있었다.
같은 시간, 의장 집무실과 조금 떨어진 곳의 어두운 공간에서도 세 사람의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알현은 아니 하셔도 됩니까?”
중년의 남성이 말했다.
“흥, 폐하께서도 잠은 주무셔야 할 게 아닌가?”
대답한 이는 수염이 가득 난 노인이었다. 가슴께까지 떨어지는 허연 수염을 쓸어내리면서, 부의장은 불쾌한 심경을 추스르고 있었다.
“아마도 부의장님이 명성이 있으시다보니, 의장이 부의장님을 두려워 하는가 봅니다.”
처음 말한 이가 눈치를 보며 말했다. 실제 현상과는 동떨어진 해석이었지만 부의장의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데에는 효과가 있었다.
“의외로 겁이 많은 사람이야. 하지만 직보 시스템이 구축되면 그건 좀 어려운데 말이지.”
“의장이 카리스마 있는 체 하지만, 결국 중대 사안은 다수결입니다. 의장 측보단 우리 측이 하나 많으니까…….”
중년 남성이 뒷말을 흐리자 부의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을 받았다.
“결국 중립을 표방하며 지 몸값을 올리려 드는 년놈들을 어떻게 끌어들이느냐가 관건이겠군.”
중년 남성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면…….”
대화에 끼어들지 않고 있던 세 번째 사람이 입을 열었다. 의장보다는 젊어보였지만 역시 나이가 꽤 있는 여성이었다.
“다른 방법도 있지요.”
부의장이 그녀를 돌아보았다.
“어떤?”
“이를테면 그 여자가 갑자기 앓아눕는다거나…….”
그녀의 눈이 번쩍하고 빛났다. 결코 착각이 아니었다. 마치 영혼으로부터 피어오르는 심화인양 그 눈 안에서 어떤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 불길은 앞에 있는 자들의 마음을 움찔하게 했다.
부의장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런 방법은 최후의 방법이지. 우리와 길이 정말 다르다는 게 확인된 다음에 쓰는 게 낫지 않겠나?”
여인의 눈에서 불길이 사르륵하고 꺼져 들었다. 대화에 흥미를 잃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평소와 달리 대화를 마무리하지 않고 한 마디를 더 꺼내었다.
“정 그러시면 소라고둥항 쪽에서 일이 터지는 쪽은 어떠신가요? 그 운 좋다는 양반 운이라도 구경 좀 해 보게요.”
이번엔 중년 남성이 나섰다.
“그 사람은 우리 일에 중요한 역할을 할 사람인데, 거기에 손을 쓰는 건 좀 그렇지 않소?”
“그렇지. 게다가 그 일은 이 대륙의 흥망이 달린 큰일인데……. 설령 우리 마음에 좀 안 들더라도 대승적 차원에서 지원을 해 줘야 한단 말이야.”
부의장이 동의했다. 마음 약한 소리를 하는 부의장을 바라보던 여인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대륙의 흥망이 걸린 일이니 더욱 테스트를 해야지요. 제가 손쓰는 정도도 버텨내지 못한다면 그곳의 미친 듯한 마법을 뚫는 것은 더욱 불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음.”
신음 소리를 내며 부의장이 고개를 떨구었다. 그 신음 소리의 절반은 여인을 어찌할 수 없겠다는 심경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남은 절반은 여인에 대한 동의의 표시였다. 맞는 말이긴 했다. 분명 확인이 필요했다.
“사람을 하나 더 붙여 보세.”
부의장의 결론이었다. 여인은 어깨를 으쓱했다. 아마 부의장은 결국에는 그녀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었다. 그 사이 사람을 하나 더 붙이든, 손을 떼고 방관하든 별 문제될 것은 없었다.
“이제 가 보셔야지요.”
대화에 완전히 흥미를 잃은 여인을 대신해서 중년 남성이 손을 비비며 말했다. 어느덧 창밖으로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음. 다녀올 테니 알아서들 처리해둬. 중도파들한테도 뭣 좀 먹여주고.”
“예, 알겠습니다.”
대답을 귓전으로 들으며 부의장은 천천히 왕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신중하게 몇 걸음을 움직인 후, 그는 햇살을 받으며 밝게 빛나는 왕궁을 바라보며 보고할 내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 대륙은 흥할 것이다. 바다에 재보가 잠들어 있다. 분명 국왕도 동의하게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