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추격전 – 쫓는 자와 쫓기는 자
다음 날은 첫 날보다 세 배 정도 지루한 시간이 흘러갔다. 첫 날은 막 배를 탔다는 느낌이 있었기에 그럭저럭 한나절이 흘러갔고, 또 남은 나절은 이야기꽃으로 시간을 때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뱃멀미에 시달리며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이 되어 멀미마저 멎게 되자, 해상에서의 시간은 그저 느릿느릿 걸어가는 거북 떼의 움직임처럼 느껴졌다. 어느 정도냐 하면, 차라리 뱃멀미가 그리워질 지경이었다.
하누인은 일각이 멀다하고 선실 문을 박차고 바깥으로 뛰어나갔다가, 금세 온 얼굴에 서릿발을 새긴 채 선실로 굴러 들어오기를 반복했다. 추위를 못 견딜 지경이 되어선 바깥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선실 창을 여닫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추위에 조금 더 단련된 키리에의 경우에는 선장실과 갑판을 지속적으로 기웃거렸는데, 아마도 빌켄으로부터 올 과일 바구니를 노리는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그 대상인 빌켄조차도 그 거대한 바구니가 하룻밤 사이 결딴날 거라고는 미처 짐작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선장실을 포기한 키리에는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으로 계속 돌아다니다가 오후 나절이 되었을 때에야 다시 선실에 나타났다. 어깨에 자그마한 술통을 하나 걸머지고서였다.
“드디어 찾았다는 거 아니겠나?”
“…어련하시겠습니까?”
밝게 웃는 뱃사람의 얼굴은 이미 불그레하게 물들어 있었다. 다시 말해 ‘드디어 찾았다’는 것은 하누인을 위한 체면 차리기용 표현일 뿐이고, 이미 한 통 정도를 싹 비우고 나타났다는 얘기였다.
“얼마나 남은 겁니까?”
하누인의 질문에 키리에가 피식 웃었다.
“자네가 그 질문을 한 지 아직 하루가 채 안 지났지. 아니, 한나절 쯤 되었나?”
“이렇게 무료한데 그 정도 빈도의 질문이라면 양호하다는 생각이 드는 군요.”
“아주 좋은 태도야. 이틀하고 반나절 정도 남았어.”
선심 쓰듯 하누인의 잔을 가득 채워주며 키리에가 대답했다.
“럼을 이렇게 마시는 건 남쪽 지방에만 있는 관습이지.”
그는 술통 윗부분을 날려 버리고 표주박 비슷한 것을 통 속에 띄워 둔 채였다.
“뭣하면 자네도 주걱 채 마셔도 좋아.”
그 표주박을 주걱이라 부른 키리에는, 크게 한 바가지를 떠 입에 대고 벌컥거리며 술을 넘겼다.
“사양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할 줄 알았지.”
키리에가 킥킥거렸다. 두 사람은 슬슬 서로에 대해 파악해 가는 중이었다. 긴 여행의 기간 동안 서로를 이해할 수 있어야 여행이 파탄으로 이르지 않을 터였다.
“배가 좀 남쪽으로 기운 것 같던데요.”
하누인이 반쯤은 질문으로, 반쯤은 확인으로 그렇게 말하자 키리에가 고개를 뻗어 창밖을 내다보았다.
“…음, 겨울엔 이 근방 해류가 남극 대륙 쪽으로 좀 더 다가가는 편이지.”
“정상 항로라는 말씀이시군요.”
“그야 물론이지.”
고개를 끄덕인 키리에는 문득 하누인을 쳐다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뭘 두려워하는 겐가?”
하누인이 씩 웃었다. 정상 항로를 확인하는 것만으로 그의 속마음을 짚어 낸 뱃사람에게 속으로 경의를 표하면서였다.
“모든 걸 두려워합니다.”
그는 조금 선문답 같은 답을 던지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키리에에게서 아무런 반응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잠시 기다리다가 부연을 덧붙였다.
“세상 모든 걸 두려워하는 법을 배우며 자라왔습니다. 세상은 아직 모르는 것투성이니까요.”
“탐험가 같은 말을 하는군.”
“탐험가요?”
“윌로드 경의 말 아닌가? 모르는 것, 그 바깥에 또 모르는 것이 있다…….”
“다시 그 바깥에 모르는 것이 있다.”
하누인이 키리에의 말을 받았다. 남극을 탐험했던 위대한 탐험가의 말이었다.
“세 번의 모르는 것을 찾아낸 분이었지요. 제가 존경하는 분입니다.”
윌로드 경은 남극 대륙을 처음 탐사하고, 두 번째 탐사를 떠나기 전 기자들 앞에서 키리에가 전한 그 유명한 명언을 남겼다. ‘모르는 것, 그 바깥에 또 모르는 것이 있다.’ 첫 번의 탐사로 모든 것을 알 수 없어서 재차 탐사를 떠날 수밖에 없다는 그의 입장을 설명하면서였다. 그리고 세 번째 탐사를 떠나면서 그는 자신의 명언을 증보했다. ‘모르는 것, 그 바깥에 또 모르는 것이 있다. 다시 그 바깥에 모르는 것이 있다.’ 이것이 세상에 전해진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세 번째 모르는 것은 아직 우리에게 전해지지 않았지.”
키리에는 윌로드 경이 남극에서 돌아오지 못한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는 아직도 탐사 중인지도 모르지요.”
하누인은 약간의 미련을 담아 그렇게 중얼거렸다. 돌아오지 못한 것이 아니라 돌아오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하는 심정으로 한 말이었다.
“이것 봐, 이것도 탐험가들이 잘 쓰는 말인데.”
키리에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윌로드 경의 후예인 탐험가들은 하누인의 말과 비슷한 말을 종종 꺼내곤 했다. 한 50년 전까지는 그 말이 실제적인 의미가 있었다. 정말 윌로드 경이 남극을 탐사하느라 스스로의 의지로 돌아오지 않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었던 것도 그 맘 때 까지였다.
인간의 생존 가능 나이를 넘겨 버린 지금에 와서는 그 말에 또 다른 의미가 담겨지게 되었다. 멈출 수 없는 탐험가의 정신을 표현하기 위한 일종의 구호가 되었던 것이다. 윌로드 경은 지금도 탐사 중이다. 그가 남극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말하며 탐험가들은 남극을 향하여 출발했다. 돌아온 자도 있고, 돌아오지 못한 자도 있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윌로드 경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고 있었다.
“어쨌든, 저는 탐험가는 아닙니다.”
“그럴 줄 알았어.”
하누인의 말에 키리에가 고개를 심하게 끄덕이며 긍정했다. 사실 누가 봐도 탐험가로는 봐 줄 수 없는 외양이었던 것이다.
“미행자가 걱정되는 건가?”
술을 한 바가지 들이켠 키리에가 잊은 줄 알았던 이야기를 다시 꺼내었다.
“얘기했잖아. 여긴 항해 기술이고 뭐고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곳이라고. 혹 누군가가 우리를 뒤쫓아 출항했다 하더라도 우리와의 간격을 좁힐 수는 없단 말이야. 이 배 위에선 걱정할 필요가 없어.”
하누인이 대답을 주저하는 틈에 뱃사람은 침까지 튀겨가며 걱정할 필요가 없음을 설파했다.
“…저도 압니다. 단지…….”
“단지, 뭐?”
키리에가 진지하게 묻는 바람에 하누인은 하마터면 그가 감추고 있던 비밀을 털어 놓을 뻔 했다.
“걱정하는 게 아니라, 그냥 생각하는 겁니다. 시간이 많으니까요. 이것저것 생각해 두면 대책도 확실한 게 나올까봐서요.”
“하긴 뭐, 생각하는 거야 자유니까…….”
그렇게 중얼거리던 키리에가 문득 손뼉을 탁 치며 외쳤다.
“하늘을 날아오는 건 어떤가?”
“예?”
무슨 의미인가 싶어 당황해하던 하누인이 잠시 뒤에야 무슨 뜻인지를 깨닫고 피식 웃음을 지었다. 미행자가 하늘에서 날아오는 건 아니냐는 얘기였다. 즉, 하누인의 주장에는 일고의 가치도 없겠으나, 크게 심려하고 있으니 장단을 맞춰 주겠다는 정도의 대꾸였다.
“마법을 쓴다는 말입니까?”
빙긋 웃으며 답한 하누인에게 키리에가 되려 성을 냈다.
“꼭 마법을 쓴다고 한 적은 없는데? 거대한 수리를 타고 날아올 수도 있잖아.”
“수리라고요? 이 동네에 수리도 난답니까?”
하누인은 어이없어 하며 대꾸했다. 일단 수리가 사람이 타고 다닐 만큼 크지도 않은데다가, 좀체 추운 지방에서는 보기 어려운 까닭이었다. 배에 올라타고 하누인의 눈에 띄었던 새라곤 극제비갈매기 몇 마리와 알바트로스 한 마리가 전부였다.
“정말 이 동네에 대해서는 몰라도 너무 모르는군. 큰발수리를 모르나?”
“큰발수리요?”
처음 듣는 말에 주춤하는 하누인에게 키리에가 투덜대듯 말했다.
“남방제도에 사는 수리의 한 종류인데, 보통 독수리들보다 두 배는 크다고. 발은 세 배 더 크고. 작은 사람은 충분히 타고 올 수 있어.”
“그렇다고 한들 사람이 무슨 수로 새를 타고 다닌단 말입니까?”
항변하는 하누인에게 키리에는 꾸짖듯 말했다.
“이 사람 참, 정신머리하고는. 바로 얼마 전에 검치호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나?”
뒤통수를 치는 듯한 충격이었다. 멸종위기 종인 검치호를 애완동물처럼 끌고 다니는 여인의 존재. 하누인은 왜 자신이 진작 그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황당할 지경이었다. 그 여인은 분명 동물지배자였다. 만약 그녀가 동물지배자라면, 수리라고 지배하지 못할 까닭이 없는 것이다. 큰발수리라는 수리는 처음 듣는 것이지만, 정 안 되면 보통의 독수리라고 해도 두세 마리를 지배하여 몸을 묶는다면 여인의 가벼운 몸 정도는 실어 나를 수도 있을 것이다. 정 안 되면…….
하누인의 생각이 거기에 이르렀을 때, 키리에가 생각에 잠긴 채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꼭 사람이 타야 되는 것도 아니잖아? 인조족은 몸이 아주 가볍다고.”
시작과 달리 어느새 진지해진 대화 속에서 하누인은 비로소 웃음을 찾을 수 있었다. 안 그래도 하누인 역시 거기에 생각이 미쳐 있었던 것이다.
“생각을 못했군요.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새삼 키리에의 식견에 감탄하는 하누인이었다. 그러나 정작 키리에 본인은 전혀 다르게 생각하는 눈치였다.
“어쨌든 바다뱀보다야 큰발수리 쪽이 현실성이 있으니까…….”
“바다뱀이라고요? 이 동네에 바다뱀도 있습니까?”
경악한 하누인에게 키리에가 손사래를 쳤다.
“그건 그냥 전설이야. 바다뱀은 실재하지 않는다고. 큰발수리야 남방제도에 분명히 사는 종이니까…….”
“그럼 다행입니다만…….”
하누인이 말끝을 흐릴 때였다.
쿵.
갑작스레 작은 충돌음이 들리면서 배가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두 사람이 무슨 일인가 싶어 몸을 바로 했을 때, 다시 한 번 작은 충돌음이 들려 왔다.
쿵.
하누인이 먼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방금 바다뱀은 실존하지 않는다 하셨지 않습니까?”
키리에 역시 따라 일어났지만 그리 걱정하는 기색은 아닌 채였다.
“전설은 전설일 뿐이야. 하지만 이 소리가 뭔지 좀 알아볼 필요는 있겠는걸.”
“나가 보시려구요?”
“그래. 잠깐 기다려 보게. 빙산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키리에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문밖으로 나섰다. 하누인은 물끄러미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불안한 표정으로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