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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련
작가 : 고은설
작품등록일 : 2017.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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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박색, 연화
작성일 : 17-07-25     조회 : 455     추천 : 0     분량 : 4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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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혜의 련❀

 

 <천하제일 박색, 연화>

 

 한 소녀가 벽에 걸린 석경 앞에 섰다. 그녀의 이름은 ‘연화’

 

 머리카락이 그녀의 등허리를 지나 엉덩이를 덮고 있고, 옆머리는 가늘고 길게 땋아 마치 장식 꽃처럼 둥글게 말려 고정되어 있다.

 

 비녀와 머리 장식들은 금과 백옥과 루비로 정교하게 세공된 값비싼 것들이었다.

 

 혼인 복색으로 보이는 긴 치마 자락과 상의는 붉은 비단에 은사로 아름다운 자수들이 놓여 있었다.

 

 이렇듯 붉은 비단에 은사 자수의 혼인 복색은 혼인하는 신부가 귀족 가문의 여식임을 나타내었다.

 

 보통은 황가나 왕가의 여인이 붉은 비단에 금사와 색실이 수놓인 혼인 복색을 입었지만 귀족가는 은사로 수놓았다.

 

 귀족 가문의 복색이라 할지라도, 비단에 수놓인 자수의 문양에 따라 신분의 고귀함과 비천함이 나뉘어 드러나기도 했다.

 

 연화의 유모인 유화는 응접실을 지나 연화의 침실 안으로 들어섰다.

 

 정갈한 침실 안을 들어서니, 이제까지 연화를 심혈을 기울여 꾸며주던 시녀 둘이 방을 나오고 있었다.

 

 유화의 시야에 혼인 옷을 입은 연화의 뒷모습이 들어왔다. 연화의 귓불에는 동그란 백 진주가 사랑스레 매달려 있다. 고운 분 향내가 유화 코끝을 스쳤다.

 

 드디어 혼인 단장을 끝낸 것인가. 유화는 감동에 젖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우리 연화 아가씨…….”

 

 그러자 연화는 유화를 향해 돌아섰다. 그녀의 붉은 치마 자락이 사락거리며 움직였다. 귓불에 매달린 진주 귀걸이가 자그맣게 흔들렸다.

 

 연화가 급히 몸을 돌이킨 탓이다. 곱게 단장한 어린 새신부의 자태는 과히 아름다울 만하다.

 

 “유모!”

 

 유화를 부르는 연화의 목소리, 소녀답게 맑고 또르르 옥구슬 굴러가는 듯하다.

 

 유화의 눈빛과 표정은 감동으로 물들어가려던 찰나!

 

 “나 어때?”

 

 “음?”

 

 유화는 문득 김빠지는 듯한 소리를 내었다.

 

 주근깨와 피부 트러블 자국이 있는 까무잡잡한 얼굴, 뱁새눈처럼 작은 눈, 낮은 들창코, 엷은 입술에 커다란 입.

 

 턱 선은 네모지고 얼굴형은 감자와 같았으며 입은 다소 돌출되었다. 눈썹은 모나리자처럼 옅어서 존재감이 없는 것을 억지로 길게 그렸다. 긴 머리카락은 푸석푸석했다.

 

 연화를 보던 유화의 표정이 급격히 가라앉았다. 유화는 고개를 갸웃거리기까지 하며 이상하다는 듯 말하였다.

 

 “분명 신부 화장을 했는데, 어째…….”

 

 “왜?”

 

 유화의 반응에 연화는 의아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분명 신부 화장을 했는데 어째, 아가씨는 여전하신지.”

 

 “응?”

 

 “우리 연화 아가씨의 걸출한 용모는 무슨 짓을 해도 가려지질 않는 군요.”

 

 유화가 한숨을 내쉬자 연화는 새초롬하게 눈을 흘겼다. 하지만 새초롬한 표정을 해도 연화의 용모에선 못생김만 그득 묻어날 뿐이었다.

 

 “유모, 빈말이라도 좀 어여쁘다고 해주면 안 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 했던 말은 거짓부렁인 거지?”

 

 “거짓부렁은요. 우리 연화 아가씨야, 이 유모의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아가씨인데요. 그나저나 혼인 옷이 무색할 용모의 아가씨를, 아무리 집안 유익이 중하다 하나 황제 폐하의 후궁으로 보내시다니요. 이 유모는 참으로 근심이 떠나질 않습니다.”

 

 올해 이제 열일곱인 연화는 명 소왕국 연위 지역관의 고명딸이었다.

 

 연화가 황제의 후궁으로 입궁 날짜가 정해진 것은, 한 달 전. 갑작스럽게 결정된 것이지만, 실상 소왕국 지역관의 여식으로서 이와 같은 혼인은 어차피 정해진 수순이었다.

 

 유화는 한숨을 지으며, 동그란 창틀에 새하얀 문풍지가 발라진 창문이 활짝 열린 바깥 풍경에 시선을 주었다.

 

 침실 창밖 풍경에는 이른 아침의 창백한 햇살이 말간 빛으로 그득해지고 있었다. 유화는 황궁이 있을 방향으로 멀리 응시하였다.

 

 ‘우리 아가씨, 신분이 드높지 못하다 할지라도 아가씨를 아껴줄 지아비를 만나게 되길 바랐건만. 감히 우러러보기도 어려울 하늘이라니.’

 

 청천 제국의 하늘, ‘황제’ 사람들은 그저 하늘 제국이라 불렀다. 70년 전 황제의 정복 전쟁 이후, 소국들이 하늘 제국에 복속되고. 이제 황제가 다스리는 하늘 제국은 12개의 소국으로 둘러싸여 있다.

 

 중앙에는 황제가 직접 다스리는 도성이 있었고, 소왕국마다 다스리는 소왕이 있었으며, 각 소국마다 십여 개의 도시가 나뉘어 있다.

 연화의 아버지는 그 수많은 도시들 중 하나인 '연위'의 치리자 중 하나였던 것이다.

 

 각 주요 도시와 소왕국들마다, 그곳 통치자들의 딸들은 황궁의 후궁으로 입궁시켜야만 황궁의 지원을 받을 수가 있었다. 그렇기에 연화의 황궁 입궁은 어차피 처음부터 정해진 수순이었다.

 

 연화는 돌이켜 다시 석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유모에게 말하였다.

 

 “유모, 꼭 황제의 후궁이 되어야만 하는 걸까? 그래봤자, 나는 황제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할 텐데.”

 

 “그러게요, 연화 아가씨. 그래도 나으리의 명을 어길 수는 없잖아요. 어쨌거나 유모의 가슴이 미어지네요. 우리 연화 아가씨가 그 수많은 처첩이 모여 산다는 후궁 전에 들어가 어찌 살 수 있을까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려요. 다른 후궁들에 비해 집안이 빵빵하길 하나, 황제를 홀릴 만큼 미색과 재능이 출중하길 하나. 분명 늙을 때까지 독수공방 신세일 텐데.”

 

 유화는 손수건으로 눈가를 콕콕 찍으며 그렇게 말하였다.

 

 “유모, 지금 나 위로하는 거 맞아? 내가 왜 미색이 없어, 이래봬도 나 밤이면 예뻐지잖아.”

 

 “그렇긴 하지만, 낮에 눈 뜨고 있을 때엔 하루 종일 그 박색 얼굴일 텐데. 자정을 넘기고 동트기 전 겨우 몇 시간 동안 예뻐지면 뭐해요? 그 시간엔 아가씨 주무시기 바쁠 텐데요.”

 

 “어떻게든. 한밤중에 황제를 만나보려 노력해야지.”

 

 “한밤중에 어여쁜 얼굴로 황제를 만났다 쳐요. 다시 아침에 박색이 된 아가씨를 보고서 폐하께서 넌 누구냐? 이러시면 어떡해요?”

 

 “그런가?”

 

 “당장에, 네 이년, 감히 그 얼굴로 날 덮쳤겠다? 저 년을 당장에 하옥하라, 하면 그 날로 끝입니다.”

 

 유화는 격노한 황제 얼굴 표정을 흉내 내기까지 했다.

 

 “유모, 말을 해도 꼭 그렇게 해야겠어?”

 

 “사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연화 아가씨를 황제의 후궁으로 입궁시키는 것부터가, 불안 불안해요. 혹여나 황제 폐하께서 아가씨의 박색 얼굴을 보시고 역정을 내시기라도 해봐요. 이는 세상 천하의 박색을 황제의 후궁으로 들이민 것이니, 역심을 품은 것이라 곡해할 만하다고요.”

 

 “유모오.”

 

 너무 솔직한 유모의 입담에 연화는 유모를 처량하게 불렀다. 그러나 유화는 탄력을 받았는지 말이 그칠 줄 몰랐다.

 

 “그리되면, 이 집안에 황궁의 지원은커녕 화가 떨어질지 모르는 일. 연화 아가씨, 아가씨와 집안의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차라리 낮이고 밤이고 웬만하면 그 누구에게든 얼굴을 보이지 마세요. 그냥 조용히, 그래야 궁궐 생활이 평안할 겁니다.”

 

 “유모, 그렇게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

 

 연화는 귀가 축 늘어진 강아지와 같은 표정이 되어 힘없이 대꾸했다. 유화는 의기소침해진 연화를 보더니 짠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두 이 유화에겐 연화 아가씨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금지옥엽인 건 아시죠?”

 

 “병 주고 약 안 발라줘도 돼.”

 

 “어휴, 참. 연화 아가씨 토라지셨어요? 연화 아가씨와 집안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어요. 이 유모의 마음 알잖아요?”

 

 “알아, 유모의 마음.”

 

 “하여튼, 황궁에 입궁하면 죽은 듯이 조용히 지내는 거예요.”

 

 “알았어, 알았어. 일단은 조용히.”

 

 연화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였다. 유화는 그제야 한시름 놓는다는 표정이 되었다.

 

 그녀는 연화를 한참을 바라보다 살며시 끌어안았다.

 

 “우리 연화 아가씨, 어쩌나.”

 

 유화는 연화의 등을 토닥였다.

 

 “이제껏 천방지축 금지옥엽으로 자라신 아가씨인데. 이젠 갑갑한 옥살이와 같은 황궁에서 평생을 보내게 생겼으니. 지아비가 황제 폐하이시니, 이는 지아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신세.”

 

 이번에는 연화가 유화의 품에 안긴 채로 그녀의 등을 두들겼다.

 

 “염려 마, 유모. 독수공방 좀 하면 어때?”

 

 “아가씨가 몰라서 그렇지, 그거 좋은 거 아니에요. 그리고 세상살이가 그리 간단하지가 않어요.”

 

 “복잡할 건 무어야? 혼자 자면 편한데?”

 

 순진무구 만사태평, 단순하게 생각하며 말하는 연화의 답변에 유화는 멈칫하더니 난감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연화에게 설명해야할지 유화로서는 난처했다.

 

 “일단 외롭거든요.”

 

 “유모가 있는데 뭘. 연우 오라버니도 있고.”

 

 “어휴,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 아가씨, 내 입으론 민망해서 가르칠 수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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