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화는 유화의 품에서 떨어져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갓 열일곱 나이의 소녀. 그 나이이면 알 만큼 알 수도 있는 나이이건만.
그동안 엄격한 아버지인 재위의 통제 아래, 연화는 그 흔한 연정 소설조차도 접해볼 기회 없이 귀한 화초처럼 자랐다.
어릴 때에 극심히 앓아 죽다 살아난 적도 있었기에, 재위와 첫째 오라비인 연서의 과잉통제는 지나친 감이 있었다.
“그나저나 아가씨, 제국의 수도에서 처음 맞는 아침은 어떠셔요? 명 소왕국 연위에서 여기 수도까지 오는데 장장 열흘이나 걸렸는데. 아가씬 처음이잖아요.”
“참으로 좋아. 이토록 화려한 도성이라니. 연우 오라버니 집도 너무 좋구. 유모! 여기 오라버니 집에서 황궁이 가깝다지?”
“그러믄요. 이제 곧 황궁에서 마차가 나올 거예요.”
어느덧 유화의 얼굴에 어미와 같이 자상함이 깃들었다. 그러다 다시 근심이 일었는지 금세 그녀의 표정에 먹구름이 피어올랐다.
“그나저나 걱정이어요. 후궁 전 후궁들, 엄청 드세다던데. 집안 변변치 않은 후궁이나 어쩌다 승은을 입은 후궁을 따 시키면서 못살게 군다던데. 가엾은 우리 연화 아가씨.”
그러지 않으려 몇 번이고 마음을 다잡았건만 결국 유화는 눈가가 촉촉해지고 말았다. 연화는 그런 유화를 되려 몇 번이고 위로하였다.
“에이 참, 유모! 나 지금 죽으러 가? 나 오늘 혼인하러 궁궐에 들어가는 날이야. 후궁 것들이 못살게 굴면 내 힘으로 다들 한 방에 날려 보내주지 뭐.”
연화는 유모를 위로한답시고 거침없이 말하고는 씨익 웃었다. 유화는 눈물바람을 하다가 그런 연화를 보고는 더욱 근심에 젖어 눈물을 보였다.
연화의 때 묻지 않은 씩씩함이 더 염려가 되었던 것이다.
* * *
청명한 물빛 하늘 아래, 봄빛 바람이 살며시 불어왔다.
이제 막 피어난 신록의 향기로움과 달콤한 봄꽃의 향내가 바람에 묻어났다.
한껏 단장한 연화가 마차에 오르기 전에, 둘째 오라비 내외인 연우와 소혜가 연화에게 다가왔다. 연우는 황궁에 함께 입궁하기 위해 연청 빛깔의 문관복을 입고 있었다.
“연화야, 어여쁘구나.”
연우는 이제 스물 가량 되어 보이는 젊은 문관이었다. 사내라기엔 백옥 같은 피부에 짙고 가지런한 눈썹, 단정한 이목구비가 꽤 아름다운 용모였다.
어느 정도 미모에 자신 있다 하는 여인들도 연우 옆에 서면 그 미모에 빛을 잃을 듯했다. 같은 어머니에서 난 남매인데도, 연우와 연화는 전혀 닮지 않았다.
그들 외모의 갭은 실로 하늘과 땅 차이였다. 여인보다 아름다운 꽃 미모 오라비에, 천하에서 둘 째 가라면 서러울 박색 누이이니.
그러한데도, 연우는 연화가 정말로 어여쁘다고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연화는 꽃 같이 해사해진 얼굴로 연우에게 외치듯 답하였다.
“오라버니! 관복이 참으로 멋지옵니다.”
참으로 소녀다운 말이다. 허나 연화의 목소리 톤은 어찌나 큰지 하늘을 움켜쥔 우레 소리와 같았다.
연화의 커다란 목소리에 이미 익숙한 연우와 유화는 평온을 유지했지만 소혜는 조금 놀란 듯 눈이 동그래졌다. 유화는 그런 소혜를 힐끗 보고는 작게 속삭였다.
“우리 연화 아가씨가 힘이 좋아서, 목소리도 가끔 우레처럼 쩌렁쩌렁하실 때가 있답니다.”
“아, 그러하군요.”
소혜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연화는 연우가 함께 황궁까지 동행해주는 것을 기뻐했다.
낯선 황궁의 담벼락 안으로 첫 발걸음을 하는 것인데, 그곳 문턱까지 만이라도 오라비가 함께 해주는 것이 어찌 위안이 되지 않겠는가.
연화는 연우 내외와 한동안 대화를 나눈 후에 유화와 함께 혼인 마차에 몸을 실었다.
연우는 연화가 마차에 오르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은 한없이 어리게만 여겨지는 막내 누이가 혼인을 하는 날인데도, 기쁠 수만은 없다는 것이 착잡했다.
입궁하는 연화와 함께 해주는 이는, 오직 둘째 오라비뿐이니 혼인하는 날이라기엔 너무 쓸쓸하기도 했다.
위세 있는 가문도 아니고, 조그마한 지역관의 딸이 황명에 따라 가장 낮은 품계의 후궁으로 입궁하는 것뿐이었다.
그렇기에, 누구 하나 연화의 입궁에 관심 가져 주는 이가 없었다.
연우는 모질고 삭막한 황궁에서 외로운 황궁 살이를 하게 될 누이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려왔다.
그런데도 연화는 그저 천진할 뿐이었다. 황제가 기거하는 황궁이란 곳은 무릉도원과도 같다지 않던가.
그저 연화는 세상에서 가장 화려하고 멋진 황궁에서 살게 될 것이라는 막연한 설렘에 들떠 있었다.
아직은 황궁이 어떠한 곳인지, 그곳에서 어떠한 처지로 놓이게 될지 알지 못하는 것이다.
연우는 그의 누이에게 황궁에 대해 많은 얘기를 해주지 못하였다. 차마 그러하지 못하였다.
사슴 같은 눈빛으로 황궁에 대해 묻는 누이에게 화려한 황궁의 냉혹한 실상에 대해선 차마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드디어, 연화를 태운 혼인 마차가 황궁이 있는 곳을 향하여 움직이기 시작했다. 연우는 말에 훌쩍 올라타 마차를 뒤따르며 마음에 되새겼다.
황궁 안, 의지할 곳 없는 누이를 위해 오롯이 그늘이 되어주고 울타리가 되어주겠노라고.
* * *
연화는 혼인 가마 안에서 연신 고개를 내밀고 수도의 거리를 구경하곤 하였다.
제국의 중앙 영토에 있는 수도는 그녀가 나고 자랐던 연위와 비견할 수 없는 화려하고도 세련되며 활기찬 도시였다.
거리는 몹시 넓었고 길은 다듬어진 돌로 포장되었으며 대부분 건물들은 큼직했다. 지나는 행인들의 차림새만 해도 소박한 연위 사람들에 비해 어딘지 멋스러워 보였다.
황제의 통치권이 직접적으로 미치는 중앙 영토에 들어섰을 때에도, 연화는 동그래진 눈으로 뭐든 신기한 표정이었다.
소왕들이 아닌, 황제의 통치가 미치는 지역이라 그런 걸까. 그저 중앙 영토 안으로 발을 내딛는 것만으로도, 공기가 다르게 느껴졌다.
그 땅에 깃드는 보드라운 햇살이나 연초록 빛깔의 잎사귀에 이는 미풍마저도 황제의 위엄이 서린 것처럼 여겨졌다.
그런 연화인데, 중앙 영토 중에서도 황궁이 있는 수도에 오자 그녀의 눈은 더욱 동그래지는 것이다.
제국의 수도라는 곳은 거리마다 어찌 그리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지.
한적한 연위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활기가 넘쳐났다. 황궁이 있는 곳으로 가까워갈수록, 제국의 수도 풍경은 더할 나위 없이 화려했다.
귀족들의 저택이 모여 있는 부유한 마을들과 번화한 상점 거리들, 연화는 마차 안에서 지루할 틈이 없었다.
“연화 아가씨, 이제 곧 황궁에 당도한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