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말?”
곁에서 유화가 말을 건네자, 연화의 마음은 기대와 설렘으로 부풀어 올랐다. 연화는 마차에 난 조그만 창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그러고 보니 저 멀리서 거대하고 어딘지 웅장해 보이는 황궁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연화의 자그마한 뱁새 눈 사이로 영롱한 까만 눈동자가 빛을 냈다.
“우아와.”
견고한 성처럼 높은 담벼락이 둘러 있고, 모든 건축물마다 금테를 두른 것 마냥 연화의 눈에 황궁의 모습은 번쩍번쩍하기만 하다.
“이야? 엄청 멋진 곳이다. 그렇지 않아? 유모? 나 저런 멋진 곳에서 살게 되는 거야?”
* * *
정사각형의 성처럼 높다란 담벼락이 이중으로 솟아 있고, 담벼락 밖으로는 해자가 있어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황궁에서 밖으로 통하는 총 4개의 문은 북문, 동문, 서문, 남문이라 불리었다. 그 중, 남문이 황궁의 정문이라 할 수 있었다.
황궁 안엔 크고 작은 건물들이 무수하게 있었다. 알려진 바로는, 무려 900채의 건물들이 황궁에 있다 하였다. 건물들의 정교한 기와의 빛깔은 전부 금색이었다. 그로 인해, 눈부신 햇살을 받은 황궁의 자태는 화려하기 이를 데 없었고 그 웅장함은 하늘 구름 위에 지어진 집들처럼 보였다.
황궁에서 가장 화려한 건물은 단연 황제가 기거하는 하늘 궁이었는데, 3층에 달하는 커다란 건물이었다. 1층으로 오르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널따란 계단은 일품이었다. 건물의 웅장함과 크기는 또한 천여 명을 수용할 만했다.
하늘 궁 근처에는 여러 처소들과 전각들이 있었다. 호위청과 내관청과 근위청이 하늘 궁 안에 소속되어 있어 황제를 보필하였다.
이러한 하늘 궁 다음으로 위용 있는 건물로는 제국의 정치가 결정되고 이루어지는 지혜궁이 있었다. 지혜 궁은 5층에 달하는 기품이 깃든 건물이었고 부속된 작은 건물들이 있었다.
수정궁에는 황제의 가족들이 기거하는 곳이었다. 그곳은 여러 채의 전각들이 모인 곳이었고, 통들어 수정궁이라 불리었다.
수정궁 내부에는 가장 위엄을 자랑하는 태후전이 있고, 그 외에 다른 전각들도 있으나 지금은 태후전 외에 비어있었다.
태후전의 종 8품 상궁, 정애는 태후전에 당도한 혼인 마차 앞으로 다가갔다. 연화와 동행하였던 연우는 황궁 정문에 들어선 순간 헤어졌던 터였다. 봄의 신록을 닮은 빛깔의 고운 상의에 푸른빛 치마의 상궁복을 입은 정애는 마차 앞에 서서 조금 고개를 조아렸다.
보통 소왕 정도 되는 신분의 딸이 5품 이상 첩지의 후궁으로 입궁할 때는, 대상궁 정도 되는 이가 새로 입궁한 후궁을 인도하곤 했다. 그러할 때는, 입궁 절차도 제법 형식이 있고 몇 명의 궁녀들도 돕곤 했다. 그러나 신분이 낮은 여인이 가장 하품 후궁으로 입궁할 때는, 정애가 소임을 감당하곤 했다.
“태후전 상궁, 정애라 하옵니다. 소신이 마마의 입궁 절차를 안내하겠사옵니다.”
연화는 유화의 도움을 받으며 마차에서 내렸다. 그녀의 붉은 치마 자락 앞으로 붉은 비단신 앞코가 살짝 보였다. 화려한 혼인 옷을 입고서 한껏 단장한 연화는 새 신부다웠다.
아무런 감흥 없이 연화에게 눈길을 주며 고개를 들던 정애는 돌연 눈을 치켜떴다.
“음?”
정애가 목도한 연화의 얼굴은 깜짝 놀랄 만큼 박색이었던 것이다. 이제껏 많은 존귀한 신분의 여인들이나 비천한 계집들을 보았어도, 연화만큼 참담한 박색은 처음이었다. 정애는 신기한 듯 연화의 얼굴을 계속 바라보았다.
‘세상에나, 이런 박색 여인이 다 있다니. 헌데 이 여인이 황제 폐하의 후궁으로 입궁했다고?’
정애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하늘 궁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대륙에서 가장 강대한 제국으로 융성하고 있는 청천제국.
광대한 영토의 제국임에도 강한 황권을 자랑하는 제국의 하늘, ‘황제’
무려 140명의 처첩을 거느린 황제였고, 황궁의 상궁이나 궁녀들도 혹여나 황은을 입어볼까 사모하곤 하는데.
이런 천하의 박색 여인이 황제의 후궁으로 입궁했다니. 신분도 왕족이 아니요, 집안도 권세가 있지 않으니, 이리 되면 ‘연화’라 하는 박색 여인의 황궁 생활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정애는 소리죽인 한숨을 쉬었다. 이제껏 무수한 여인네들이 황제의 마음을 움직이려 했어도, 황제의 철벽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러한 황제인데, 만일 친히 이 박색 후궁을 목도한다면…….
자기도 모르게, 정애는 눈을 살포시 감고 말았다. 차라리 모르는 게 약.
이런 박색 후궁은 황제의 눈에 띄지 않는 게 여러모로 낫다.지존의 심기를 거스를 구실 밖에 되지 않을 터.
그나마 다행인 것은, 후궁들이 너무 많아 아마도 황제는 오늘 후궁 하나가 입궁한다는 사실조차도 까맣게 모르리라는 것이다.
후궁을 들이는 것은 태후전이 주관하고 첩지를 내리는 것은 내명부의 수장인 황후의 소관이었다. 황제는 후궁전 일에 대해 도통 관심도 없었고 관여조차도 안하고 있었다.
연화는 정애를 향해 방긋 웃으며 말을 했다.
“정애 상궁, 나는 연화라 합니다.”
정애의 한쪽 눈썹이 꿈틀하고 움직였다.
‘그래도 목소리만큼은 박색이 아니라 천만다행이로군.’
정애는 형식적으로 연화에게 고개를 조금 조아리고는 입을 열었다.
“연화 마마, 입궁 절차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우선 황태후 마마를 알현하셔야 하옵니다. 허나 태후 마마께선 지금 중요한 내명부 일로 처소를 잠시 비우셔서 기다리셔야…….”
“그러합니까? 참으로 아쉽습니다. 허면 태후 마마를 기다리는 동안…….”
정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냉큼 말해오자, 무슨 말인가 싶어 그녀는 반문했다.
“예?”
“황궁을 구경하고 싶은데 혹 안내해줄 수 있겠습니까?”
반짝반짝한 눈초리로 정애에게 말해오는 연화.
정애는 생각지 못한 후궁의 요구에 당황했다.
“안내요?”
“그러합니다.”
연화는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답했다.
“그게.”
정애는 난처한 표정으로 말을 꺼내려 했으나, 연화의 호기심 어린 눈동자는 어느새 이곳저곳을 향하기 시작했다.
“여기가 태후전이지요?”
“예, 그러합니다.”
“후궁전은 어디옵니까? 아, 하늘 궁은 황제 폐하께서 계시는 곳이라지요? 그곳은 천상에 지어진 집과 같다지요?”
정애는 가장 낮은 품계의 후궁의 요구 따윈 거절할 생각이었다. 후궁이라 봤자 7품이고, 정애는 8품 상궁이 아니던가.
까짓것 얼마든지 무시할 수 있는 존재이다. 황궁 안에선 찬밥 덩어리와 같은 존재가 하품 후궁들이었다.
하지만 연화는 그녀가 거절할 타이밍도 허락지 않고 있다. 그녀는 어느덧 몸을 홱 돌려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마마, 황궁은 그리 함부로 나다니실 수 있는 곳이 아니… 아니, 그보다 황제 폐하가 계신 곳에 가셨다간 경을 치실 겁니다.”
정애는 당혹하며 연화를 만류했다. 곁에 있던 유화도 연화가 또 사고를 치는 게 아닐까 싶어 연화를 부르려 했다. 그때, 태후전을 들어서던 노상궁과 연화가 떡하니 마주쳤다.
노상궁은 두 명의 젊은 상궁들을 거느린 채로 연화 앞에 우뚝 섰다. 정애는 난처한 표정으로 노상궁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대상궁님.”
태후전의 대상궁인 그녀는 주름진 얼굴에 뾰족한 눈매를 한 여인이었다. 대상궁은 탐탁지 않은 눈빛으로 연화를 바라보며 차갑게 물었다.
“뉘십니까?”
정애가 연화 대신 황급히 답변하였다.
“오늘 새로 입궁한 후궁 마마이십니다.”
“오늘 입궁한 후궁 마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