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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련
작가 : 고은설
작품등록일 : 2017.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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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랖 후궁, 연화 3
작성일 : 17-07-25     조회 : 334     추천 : 0     분량 : 4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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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제의 정비라 칭함 받는 정1품 원 귀비가 거한다는 모란전은 여느 후궁 처소와는 확연히 달랐다.

 

 황궁 안에서 가장 위세 높은 장미 궁에 비할 바는 아니었으나, 태후전 못지않게 아름다운 건물과 정원이 있는 처소였다.

 

 모란전에는 그 이름에 걸맞게 정원에 모란꽃나무들이 가득 심어져 있었다. 조만간 봄이 더욱 무르익으면 모란꽃이 화사하게 만개하여 모란전 정원을 화려하게 수놓을 듯하다.

 

 장미 궁에는 장미꽃들이 만발하겠으나 이곳 모란전은 모란이 그득 꽃피울 터였다.

 

 이곳 황궁 안에서 원 귀비의 위세는 황후와 필적할 만하다했는데, 꽃을 보아도 모란은 장미처럼 여왕과도 같은 붉은 화려함을 지녔다.

 

 이곳 역시, 황궁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게 하는 곳이었다.

 

 연화는 모란전의 화려함과 아름다움에 ‘우와’ 하면서, 길을 잘 아는 송 현녀를 따라 처소의 접견실로 향하였다.

 

 정원엔 다음어진 돌길이 나 있고, 정원 안에 작은 인공 호수가 있었으며 멋스러운 구름다리가 놓여 있었다.

 

 호수의 맑은 수면 아래로는 잉어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붉거나 은빛으로 반짝거리는 잉어들의 유연한 놀림에, 연화는 눈을 못 떼며 걷다가 송 현녀에게 말을 걸었다.

 

 “어쩜, 같은 후궁 전인데도 이렇게 달라요?”

 

 “다를 수밖에요. 원 귀비는 황후 다음인 정비이시니까요.”

 

 현녀, 송 라희는 성품이 유순한 편이고 풍기는 분위기도 여리여리 했다. 그녀는 조금 전의 일로 인해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는 것 같았으나, 자신을 도와준 연화에게 친절했다.

 

 “정비 마마요? 귀비라는 칭호는 정비를 일컫는 건가요?”

 

 “네. 내명부에는 황후 마마 아래로, 정비 되시는 정1품 원귀비 마마가 계세요. 종1품 후비 마마는 총 세분 계시고요.”

 

 새삼 아내를 수도 없이 많이 둔 황제에 대해 연화는 조금 불편해진 마음이 일었다.

 

 소왕국 공주 출신도 부족해서 웬만한 지역관들 여식까지 죄다 후궁으로 만들어 입궁시킨 황제이다. 그런데 후미지고 조그만 지역 관리의 여식인 연화마저 후궁으로 들여야만 했던 걸까.

 

 그렇게 입궁한 후궁들은 황궁 안에 갇혀 살며, 지아비가 황제이지만 마치 지아비 없는 여인처럼 평생을 살아야할 터인데. 이런 건 정치적인 볼모와 다름없다.

 

 연화는 라희와 함께 접견실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그곳엔 이미 많은 후궁들이 와 있었다.

 

 그녀들의 행색은 다들 화려하기 이를 데 없다. 각양각색의 아름다운 꽃들이 이곳에 활짝 피어난 것처럼 보였다.

 

 ‘다들 어여쁘구나.’ 연화는 금세 자신의 몰골이 부끄러워졌다. 붉은 혼인 옷을 입은 제 모습이 외려 부끄러워진 것이다.

 

 라희는 주변 눈치를 보다가 연화에게 속삭였다.

 

 “후궁전은 정비 마마가 한분. 후비 마마가 세 분, 정2품 빈 되시는 분도 세 분이고요. 아까 련 채녀께서 맞닥뜨리신 분이 정2품 현빈 되시고요. 해서, 련 채녀께서는 아까 저 때문에 큰 실수를 하셨어요.”

 

 라희의 말에 살짝 후회가 일긴 했지만, 그래도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또 다시 같은 행동을 하였을 연화이다.

 

 접견실에서 후궁들이 시립한 가운데 라희와 연화는 상궁들이 지정해준 자리인 가장 끝에 섰다. 곧, 원 귀비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의 이름은 라희에게 듣기론 ‘원 화정’이라 했고, 원 소왕국 공주라서 원씨 성을 가졌다고 하였다. 모란전 대상궁이 원 귀비에게 다가가 아뢰었다.

 

 “귀비 마마, 후궁 마마님들이 모두 모이셨사옵니다.”

 

 원 귀비는 접견실에 모인 모든 후궁들보다 훨씬 권위 있는 차림새로 접견실 상좌에 자리했다.

 

 연화는 가장 끄트머리에 선 채로 원 귀비를 힐끗 보았다. 귀비의 차림새는 상의 소매와 치마 끝단에 금사로 아름답게 수가 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커다란 금비녀로 머리를 틀어 올렸고, 공작 깃털 무늬를 한 황금 머리장식과 모란 꽃모양의 루비 장식으로 머리를 꾸미고 있었다.

 

 그녀의 양 귓불엔 커다란 황금 귀걸이가 매달려 있었고, 그녀의 손가락에는 금과 옥가락지들이 끼어져 있었다.

 

 하얗게 분을 바른 피부와 숯처럼 검게 그린 눈썹과 눈꼬리, 붉게 칠한 입술의 빛깔이 극한 대조를 지루었다. 너무도 화려한 자태에 보는 이의 눈이 아플 지경이었다.

 

 원 귀비는 고고하게 고개를 든 채로 냉엄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래. 오늘 새로 왔다던 후궁도 이곳에 온 것이냐?”

 

 “예. 저기 가장 끝에 계신 분이 련 채녀 마마이옵니다.”

 

 대상궁의 말에 원 귀비의 시선은 연화에게 옮겨져 왔다. 원 귀비는 연화를 자세히 보고 싶었는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접견실 안에 시립한 많은 후궁들은 다들 뭐가 두려운지, 원 귀비 앞에서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하고 있었다.

 

 원 귀비는 한 떨기 화려한 붉은 모란처럼 도도하게 연화가 시립한 곳으로 다가왔다. 그녀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연분홍 고운 빛깔의 비단 치마 끝으로 붉은 비단신이 살짝 보이곤 했다.

 

 고운 색으로 꽃들과 나비 문양으로 수놓아진 원 귀비의 의상이 너무도 아름다워 연화는 홀린 듯 바라보았다.

 

 어느덧 원 귀비가 연화 앞에 섰다. 원 귀비의 서늘한 눈빛과 잠시 맞부딪혔다가, 연화는 시선을 내리깔았다.

 

 원 귀비의 붉은 저고리에 금사로 수놓아진 금빛 모란 꽃 문양이 연화의 시선 끝에 걸리었다.

 

 “네가 련 채녀, 연화인 것이냐?”

 

 “예, 귀비 마마.”

 

 연화의 몰골을 자세히 뜯어보던 화연. 포스스 웃음소리를 내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호호. 아주 박색이로구나. 내가 오늘 새로 온 후궁 때문에 걱정할 일은 없겠구나.”

 

 그러자 방금 전까지 숨죽인 듯 시립해 있는 후궁들이 낮은 웃음소리를 냈다. 원 귀비는 기분이 나쁘지 않은지 돌아서서 자기 자리로 발걸음을 향했다.

 

 그때, 조금 전에 연화로 인해 나자빠졌던 재 기연이라는 이름의 현빈이 원 귀비에게 입을 열어 아뢰었다.

 

 “귀비 마마, 조금 전 오늘 새로 입궁한 후궁이 내명부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패악을 저지르며, 후궁으로선 감히 담지 못할 언사를 행하며 폭력어린 행동까지 보였었사옵니다.”

 

 “뭐라?”

 

 원 귀비는 현빈을 바라보았다가 다시 연화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시립해 있는 후궁들을 찬찬히 돌아보았다.

 

 “지금 고한 것이 거짓이 없는 사실이렸다?”

 

 “그러하옵니다, 마마.”

 

 시립해 있던 후궁들은 입을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다들 한 목소리로 답하였다. 다만, 라희만은 창백해진 얼굴로 연화에게 속삭였다.

 

 “이를 어떡해요? 첫날부터 귀비 마마의 눈 밖에 나면 큰일이어요.”

 

 그러면서도 라희는 그 상황에서 감히 다른 말을 고하지는 못하였다. 연화는 모란각 접견실에 모인 후궁들의 태도를 보고서 놀란 눈빛을 했다.

 

 조금 전 일은 모란전 근처에서 일어났던 일이기에 지나던 후궁들이 원 귀비에게 증언하여 고할 것이라고는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곳에 모인 후궁들 전부가 말을 맞춘 것처럼 현빈의 편에 서는 태도를 보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비록 작은 지역 관리의 딸이지만, 그래도 외동딸로서 부족함 없이 컸던 연화이었기에 이런 경우는 난생 처음 겪는다. 무슨 커다란 조직에 발을 담그게 된 것만 같다.

 

 궁에 들어오기 전에 유모와 오라버니들이 그토록 조용히 고분고분해야 한다고, 귀에 딱지 앉을 정도로 잔소리했던 이유를 이제야 통감하는 연화이다.

 

 원귀비는 도도한 걸음걸이로 다시 연화 앞으로 다가왔다. 현빈을 비롯한 그녀의 곁에 선 후궁들이 연화를 보며 웃음을 흘리는 것이 얼핏 연화의 시야에 들어왔다.

 

 원 귀비는 냉엄한 눈빛으로 연화를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

 

 “너는 얼굴만이 박색이 아니로구나. 언행 또한 박색이니 너로 인해, 내명부와 황제 폐하의 위엄에 누가 될까 참으로 염려되는 구나. 오늘 처음 입궁하여 혼인을 치르는 날이라 하나, 폐하께서 어찌 너와 같은 후궁에게까지 관심을 갖겠느냐. 그러니 첫날부터 규율을 어긴 후궁에겐 벌과 훈계가 상책이니, 내일 동이 틀 때까지 반성하고 사죄하는 편지를 140여명이 되는 모든 후궁들에게 편지 스무 통씩 쓰고, 후궁 전 안에 있는 곡식 창고에서 그 안의 곡식들을 모두 종류별로 나누어 정리를 해두어야 할 것이니라.”

 

 “네?”

 

 하룻밤 사이에 혼자 하기에는 너무도 벅찬 벌이라서 연화는 놀라 반문하고 말았다.

 

 곁에 서 있던 라희는 어쩔 줄을 몰라 하다가 원 귀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귀비 마마, 이 모든 일은 소신으로 인한 것이옵니다. 련 채녀는 오늘 처음 입궁한지라 황궁의 법도와 내명부의 질서에 익숙지 않고 잘 알지 못한 것으로 인한 것이니 너그러이 헤아려주십시오. 하오니 저 또한 귀비 마마의 벌을 나누어 함께 받게 해주십시오.”

 

 원 귀비는 가느다랗게 그린 한쪽 눈썹을 꿈틀하며 치켜 올렸다.

 

 “송 현녀, 너는 은 소왕국의 수도인 송화 출신이라 했지?”

 

 “그러하옵니다.”

 

 “벌을 자청하여 받겠다니 말리지는 않겠다. 너희 둘이 내일 동이 트기 전까지 내가 말한 모든 일을 마쳐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을 시엔, 내 친히 너희들에게 매로 훈육할 것이다.”

 

 “명심하겠사옵니다.”

 

 라희는 원 귀비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답하다가, 곁에 선 연화에게 눈짓을 했다.

 

 연화도 얼른 귀비 앞에 엎드려, 전에 유모에게 교육받은 대로 커다란 목소리로 답을 하였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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