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의 북쪽에 위치한 송산. 산이 깊고, 절벽이 많아 사람이 한 번 숨으면 찾기 힘든 곳이었다. 게다가 옛 상운국의 수도인 송경에 위치해 있어, 죄인들이 많이 숨어들곤 했다.
이 송산의 깊숙한 곳. 사람이 찾기 어려운 곳에 나무로 된 집들이 수십 채 모여 있었다. 얼핏 보면 산 속에 있는 작은 마을 같았지만, 마을 한 가운데 위치한 넓은 공터. 그곳에서 훈련하는 병사들까지. 그것을 보면 사람들은 도적들의 소굴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것도 틀렸다.
이곳이 뭘 하는 곳인지는 한 가운데 위치한 2층짜리 건물에 흔들리는 깃발을 보면 알 수 있었다.
흰 바탕에 검은 정 사각형. 그것을 세로로 가로지른 선 하나. 옛날 상운국의 깃발이 펄럭이는 이곳. 바로 상운국의 재건을 꿈꾸는 반란군의 진영이었다.
“각지에서 소규모로 항쟁하던 자들이 가담하고 있습니다.”
“서쪽 진영에서 타미스 한 도르의 병사들과 교전이 있었는데, 우리 쪽이 대승을 거뒀다고 합니다.”
공터 근처에 위치한 오두막집에 다섯 사람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 중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상석에 앉아 있었다.
갑옷도 없이 반팔 옷을 입고 있었고, 여자처럼 긴 머리를 포니테일로 한 번 묶은 모습이었다. 두꺼운 팔뚝에 털이 수북하게 나있었고, 구레나룻부터 턱, 코밑까지 수염이 지저분하게 있었다. 툭 튀어나온 이마와 부리부리한 눈. 건장한 체구까지. 누가 봐도 장군이었다.
“좋아. 우리가 타미스 한 도르에게 승리하고, 황제의 사촌동생인 그를 사로잡거나 죽이면 다른 나라의 항쟁군들도 들고 일어날 거야.”
상운국 부흥군 대장. 패형소. 한 때 일군을 이끌던 그는 지금 상운국 사람들을 모아 다시 한 번 조국을 일으키려 하고 있었다.
지금 제국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대도시를 제외한 곳들은 사실상 정부의 손길이 닿지 않고 있었다. 세금을 걷는 것도 점점 힘들어지는 상황에 도적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양아치들까지 작은 마을을 차지하고 자기들 마음대로 세금을 걷고 있었다. 영주들이 그런 곳들을 신경 쓸 수 없을 만큼 규모가 큰 도적들이 여기저기서 날뛰고 있었다. 죽어나는 것은 제국 국민들이었다. 양아치들에게 내는 돈에 나라에 바치는 세금. 거기에 영주들이 따로 돈을 걷을 때도 있었다.
국민들은 결국 나라와 영주들이 걷는 세금을 거부하고, 자기 마을을 접수한 도적들에게만 돈을 냈다. 도적들도 이런 상황을 반겼으며 국민들이 나라와 영주들에게 세금을 내지 않도록 보호해줬다.
이 틈을 타 멸망한 나라를 부흥시키려는 반란군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고 있었으며, 패형소가 그 선두 주자 격이었다.
“지금 기세를 타 수도에서 지원군이 오기 전에 바로 송경을 치는 건 어떻겠습니까?”
패형소의 부하 중 하나가 근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나 패형소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병력이나 무기로 송경을 공격하는 건 힘들다. 차라리 군을 일으켰을 때 기세를 타 곧장 송경을 쳤다면 가능성이 있었겠지만…. 이미 적은 우리의 존재를 알고, 준비를 해놨을 거다.”
“그렇지만 시일을 끌어서 좋을 건 없지 않습니까?”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지.”
패형소의 한숨을 쉬며 말하는데, 밖에 있던 병사 하나가 안으로 들어왔다.
“장군님. 손님입니다.”
“손님?”
“예. 아벨에서 왔다고 합니다.”
“아, 아벨. 들여 보네. 자네들은 나가보게.”
패형소의 말에 앉아 있던 네 명의 부하들이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이어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타윈. 타윈이 건물 안을 한 번 훑어보며 패형소 쪽으로 다가왔다. 패형소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반가운 듯 손을 내밀었다.
“이렇게 어린 친구가 올 줄은 몰랐군.”
“아, 예. 저도 설마 의뢰인이 반군 사람일 줄은 몰랐네요.”
타윈이 패형소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패형소는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눈매는 매서웠다. 피 같은 자금을 들여 의뢰한 헌터. 그런데 보내준 것이 이런 새파란 애송이라니. 속으로 열이 뻗쳤지만 패형소는 최대한 내색하지 않았다.
악수를 한 뒤 둘이 각자 자리에 앉았다.
“무슨 일을 해야 하는 진 알고 왔겠죠?”
“의뢰서에서 봤습니다. 타미스 한 도르를 암살하는 일이라고요.”
타윈이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인 듯 말했다. 패형소가 앞에 놓인 물을 단숨에 들이켠 뒤 말을 이었다.
“가능하겠습니까?”
“제가 어려서 못 믿으시는 모양인데, 그 정도는 껌이에요. 그 사람이 사는 곳이나 말씀해주시죠.”
“예?”
타윈의 말에 패형소가 당황한 듯 물었다. 타윈은 패형소의 반응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주소요, 주소. 그 사람이 사는 곳을 알아야지 죽이든, 살리든 하죠.”
재차 묻자 패형소는 멍한 표정으로 타윈을 바라봤다. 타윈은 패형소가 왜 이러는지 몰라 고개를 갸웃했다.
타미스 한 도르.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송경의 영주인 그는 황제의 사촌동생이다. 당연히 지내는 곳은 옛날 상운국의 왕이 머물던 궁궐, 대운궁(大雲宮). 너무도 당연하고,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기에 패형소는 약간 당황스러웠다.
“그, 어…. 상운 중부의 영주이니…. 송경의 대운궁에 살겠죠?”
“네?”
이번엔 타윈이 그 말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영주, 그것도 상운 지방 중부를 영지로 가진 대영주.
레오트 왕국 아니, 제국은 사실상 대륙을 통일했다. 그 과정에서 점령국을 다섯 개로 나눠 영지를 하사했는데 그 중 각국의 중부의 영주들에게는 ‘백작’이 아닌 ‘공작’의 작위를 수여했었다.
“네?! 여, 영주요?”
타윈은 놀라 뒤로 넘어질 뻔했다.
“그, 그러고 보니 타미스…. 황제도 타미스, 그 쪽도 타미스….”
타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패형소는 그 원맨쇼를 어이가 없다는 듯 지켜보고 있었다. 패닉 상태에 빠졌던 타윈이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 제가 아무래도 잘 못 알고 온 것 같군요. 그럼 이만, 안녕히 계세요.”
타윈이 허리를 90도로 숙여 인사를 하고 나가려 하는 순간, 탁자를 강하게 치는 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타윈이 멈춰서 슬쩍 뒤로 돌아봤다.
‘왜 저러지…. 설마 일을 안 맡으면 죽이겠다거나….’
“칠백 만은 선금이고. 일만 완수하면 추가 보수로 이걸 드리겠습니다.”
패형소가 말과 함께 탁자에 올려놓은 것은 황금. 커다란 황금 두 덩어리. 그것을 본 순간 타윈의 눈이 뒤집혔다.
“이, 이걸….”
타윈이 홀린 듯 탁자 위에 올린 황금 쪽으로 다가갔다. 타윈이 황금으로 손을 내미는 순간, 패형소가 탁자 위의 황금을 옆으로 치워버렸다.
“말씀드렸듯이 일을 완수하면, 입니다.”
그 말에 타윈이 얼른 패형소의 손을 붙잡았다.
“걱정 마십시오. 제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처리하겠습니다. 아-무 걱정 말고 가만히 여기 계세요.”
“정말입니까?”
“당연하죠.”
타윈은 자기도 모르게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저 정도면 천만 헤트는 되겠는데…. 그럼 합쳐서 천칠백만 헤트…. 지금까지 모아놓은 돈 천만 헤트까지 하면….’
타윈이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는 동안 패형소가 자기 뒤에 있던 활과 화살을 꺼내 아까 금이 놓여 있던 자리에 올려놨다.
“일이 끝나면 송경 북쪽 건물들 중 높은 곳에 올라가서 불화살을 쏴 올려 주십시오. 그리고 이건 선금입니다.”
패형소가 천으로 된 가방을 활 옆에 올려놓았다. 타윈은 제대로 보지도 않고 얼른 가방을 집어 들어 어깨에 둘러멨다. 돈에 홀려 대답도 하지 않고 화살과 활을 든 뒤 나가려는데, 패형소가 입을 열었다.
“돈은 안 세 봐도 되겠습니까?”
“그런 믿음도 없으면 이 일 못하죠. 하하.”
타윈이 호탕하게 웃으면서도 돈 가방 무게에 살짝 휘청거렸다. 패형소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일은 언제 할 생각입니까?”
“오늘은 하루 쉬고 내일 당장 하죠, 뭐.”
“예. 신호를 기다리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걱정 마. 돈 낸 만큼은 일을 하니까요.”
타윈이 자신만만하게 말하며 자신의 붉은빛이 도는 앞머리를 옆으로 쓸었다. 어느새 상대가 영주라는 사실도 잊은 듯 보였다. 패형소가 허리를 살짝 숙여 인사하자 타윈도 허리를 숙여 인사한 뒤, 건물 밖으로 나갔다.
타윈이 밖으로 나가자, 아까 회의를 하던 패형소의 부하들 중 하나가 안으로 들어왔다. 패형소보다도 커다란 덩치에 머리카락 하나 없는 대머리. 험상궂은 얼굴의 남자였다.
“뭐하는 잡니까?”
“용병이네.”
“용병이요?”
“타미스 한 도르를 죽여 달라 아벨에 의뢰했네.”
패형소의 말에 부하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연히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영주를, 그것도 작은 곳도 아니고 상운 중부를 통치하는, 황제의 사촌동생을 죽이는데 고작 그런 용병을, 헌터 나부랭이 하나를 고용하다니. 안 그래도 자금이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것은 돈 낭비라 생각하는 게 당연했다.
“그래서 얼마를 쓴 겁니까?”
“일단 칠백만.”
“치, 칠백만…. 장군, 이건 아닙니다. 저런 애송이가 성공하리라고 보는 겁니까? 그 돈이면 무기를 몇 개나 더 살 수 있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반란군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기. 적은 병력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고, 제국의 중앙군과 제대로 싸우려면 중무장은 필수였다. 칠백만 헤트면 괜찮은 무기들을 제법 사서 무장시킬 수 있는 돈이었다.
그러나 패형소는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걱정 하지 마. 내일 밤 전 군에 명령을 내려. 송경에서 불화살이 오르면 총 공격할 테니까.”
“자, 장군. 그게 무슨….”
부하가 당황한 듯 말도 채 잇지 못했다. 패형소는 덤덤한 표정으로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고 회의용 건물을 나갔다.
타윈은 반란군 진영을 나오자마자 근처 숲 속 깊은 곳에서 쭈그려 앉아 돈을 세고 있었다.
‘이게 대체 얼마야.’
가방 가득 담긴 돈을 보니 타윈은 실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여기에 아까 봤던 황금 두 덩어리. 그게 아까부터 눈에 아른거렸다. 자신이 영주를 죽여야 한다는 사실 따위 까맣게 잊은 듯했다.
다시 한 번 돈을 세던 타윈의 머리로 자신이 해야할 일이 떠올랐다.
“그냥 선금만 받고 나를까….”
타윈이 중얼거리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이 바닥은 신용이 생명인데. 아무리 반란군이라도 착수금을 받아놓고 모른 척하는 건 상도에 어긋나.”
타윈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영주를 죽이는 큰일에 시간까지 촉박했다. 지금 여기서 이렇게 돈을 셀 시간도 아까운 상황이었다.
“영주고 나발이고, 알게 뭐냐. 죽이라는 놈 죽이면 황금이 두 덩어린데! 가자, 켄홀리 타윈!”
타윈이 가방을 한 손에 들고 벌떡 일어나 찬란한 하늘을 보며 소리쳤다. 주변에 까마귀 소리가 까악, 까악. 타윈의 말에 대답하듯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