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판타지/SF
매화가 진 자리
작가 : 백아
작품등록일 : 201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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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우(遭遇) - 세 사람 (2)
작성일 : 16-09-02     조회 : 192     추천 : 0     분량 : 6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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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운궁의 깊은 곳. 천주윤이 왕수문, 일환과 함께 걷고 있었다. 주위에 늘어서 있던 전각들이 사라지고 어느새 높은 나무들이 옆을 지키고 있었다. 궁궐의 뒤뜰로, 군데군데 정자가 있어 예전 왕이 산책을 하거나 더위를 피하던 곳이었다.

 “수문. 낮에는 어딜 갔던 거야?”

 “예?”

 천주윤이 살짝 고개를 돌려 뒤따라 걷던 왕수문을 보며 물었다.

 “낮에 나랑 이야기하고 나간 다음에, 일환이랑 셋이 궁 안이나 돌아볼까 하고 찾아봤는데 안 보이더라고.”

 “아…. 궐에 워낙 오랜만에 와서 구경을 좀 했습니다.”

 “그래? 같이 하지 그랬어.”

 “제가 미처 거기까진 생각을 못했군요.”

 왕수문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천주윤은 대수롭지 않은 듯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계속 걸음을 옮겼다.

 제법 걸어가서야 나온 건물. 그 앞에서 왕수문이 당황한 듯 입을 떡 벌렸다.

 “갈 곳이라는 게…. 여기였습니까?”

 대운궁 내부, 왕의 침전보다도 더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건물. 분명 다른 건물들보다 높고, 넓었지만 웅장하거나 화려한 느낌을 주지는 않았다. 다만 소박하면서도 어렴풋이 보이는 두꺼운 나뭇결들로 단단하게 지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앞에서 왕수문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천주윤은 그런 왕수문을 보며 씩 미소를 지었다.

 “여기서 가져갈 물건이 있어.”

 “가져갈 물건이요?”

 “형님이 내게 남긴….”

 천주윤이 말을 다 잇지 않고 건물의 문 앞에 섰다. 커다란 문 위의 현판에 적힌 글자. ‘천기서실(天機書室)’ 하늘의 기밀이 들어 있다고 할 정도의 서재. 만학(萬學)의 성지(聖地)라 불리는 상운국의 보고로 오로지 왕과 왕위를 물려받을 자, 혹은 왕의 허가를 받은 자만이 출입할 수 있는 곳이었다. 차남이라 왕위를 물려받을 수 없었던 천주윤은 당연히 이 서재에 한 번도 들어와 본 적이 없었다.

 상운국이 멸망하며 이곳의 책들 중 귀하거나 마법과 관련된 것들은 모두 레오트의 수도 마오텐의 황궁으로 옮겨졌었다.

 천주윤이 문고리를 당기는 동안 일환이 날카로운 눈으로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늘 굳게 닫혀 있던 문은 끼익하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너무도 쉽게 열렸다. 문을 열자마자 천주윤을 덮친 것은 눅눅하고 퀴퀴한 냄새. 천주윤이 인상을 찌푸리며 손으로 벽을 더듬었다.

 “저하. 어두우니 조심하십시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왕수문이 성냥 하나를 그으며 말했다. 작은 성냥 불빛으로 어렴풋이 서재 안이 보이자 천주윤이 손을 뻗어 벽에 걸려 있던 램프를 들었다. 왕수문이 얼른 성냥불을 램프 안으로 가져갔다.

 빛이 아까보다 환해졌지만 여전히 넓은 서재를 다 비추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천주윤이 램프를 들고 서재 안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왕수문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

 “저하. 램프 안에 아마 기름이 없어 금방 꺼질 겁니다. 낮에 다시 오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아니. 낮에는 보는 눈이 너무 많아. 걱정 마. 물건만 하나 찾으면 돼.”

 “대체 그 물건이 무엇입니까?”

 왕수문이 답답했는지 약간 목소리를 높였다. 천주윤은 주저하다가 입을 열었다.

 “책….”

 “책? 책이요? 수많은 책들이 황궁으로 옮겨지긴 했지만 남은 책만 해도 상상을 초월할 양일 겁니다. 그런데 지금 이 램프 하나 가지고 책을 찾자는 말씀이십니까?”

 왕수문이 천주윤에게 잔소리를 하는 데 뒤에서 일환이 무엇인가를 유심히 보고 있었다. 왕수문이 그 모습을 보고 눈살을 지푸렸다.

 “일환. 너는 밖에서 오는 사람이 없나 살펴.”

 “여기. 심지가 하나 있습니다.”

 일환은 왕수문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천주윤 쪽으로 말했다. 그 말에 천주윤이 얼른 일환의 옆으로 다가갔다. 보니 벽이 끝나고 문과 닿는 지점에 심지로 보이는 것이 튀어 나와 있었다. 천주윤이 램프를 들고 자세히 보니 작은 계단 모양으로 벽에 한 칸 층이 져 있었고, 그 층 위에 길게 유리관이 방을 빙 한 바퀴 두르고 있는 듯했다. 그 유리관 안에 심지가 연결돼 있는 것을 확인한 천주윤이 왕수문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성냥.”

 천주윤이 짧게 말했다. 왕수문이 얼른 품에 넣어 두었던 성냥을 꺼내 건넸다. 천주윤이 성냥을 그어 그 심지에 불을 놓았다.

 순간, 불이 심지를 따라, 유리관을 따라 번지기 시작했다. 워낙 넓은 곳이었기에 2분 정도 지난 뒤에야 불이 서재를 한 바퀴 다 돌아 반대편으로 돌아왔다. 천주윤은 물론 왕수문과 일환도 생전 처음 보는 장관에 입을 떡 벌렸다.

 아까까지 어두웠던 서재가 환하게 밝혀지고, 책장에 꽂힌 수많은 책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거나, 서재 한 가운데 놓인 커다란 탁자 위에 아무렇게나 놓인 책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이게 바로 만학의 보고(寶庫)….”

 왕수문이 자신의 앞으로 펼쳐진 서재의 위압감에 취해 중얼거렸다. 천주윤이 천천히 비틀거리며 안으로 들어가다 살짝 뒤를 돌았다.

 “일환. 미안하지만 너는 밖에서 망을 봐줘.”

 “아, 예.”

 장관에 넋이 나가 있던 일환이 얼른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닫히자 왕수문이 다시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설마, 이 많은 책들을 다 뒤져야 하는… 겁니까?”

 “아니. 그렇게 대놓고 있었으면 이미 황궁에 들어갔겠지.”

 천주윤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왕수문이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데 천주윤이 품에서 열쇠 하나를 꺼내 흔들었다.

 “그것은…. 뭡니까?”

 왕수문의 물음에 천주윤은 대답대신 서재 안으로 더 깊숙이 들어갔다. 한 가운데 놓인 탁자를 지나, 여기저기 쓰러져 있는 사다리와 널브러진 책들을 치우고. 서재 문의 정 반대편에 위치한 책장. 그 책장 아래에 쭈그려 앉았다.

 왕수문이 천주윤의 뒤에 서서 멀뚱멀뚱 무엇을 하는 지 바라보고 있었다. 천주윤은 책장과 바닥이 닿는 부분. 잘 눈에 띄지 않는 곳의 홈을 찾아 손을 넣었다. 천주윤이 낑, 하고 힘을 쓰자 그 홈에서 부터 바닥의 긴 나무판 한 칸이 들어 올려졌다. 그렇게 나무판을 벗겨내고 흙을 쓸어내자 나타난 것은 열쇠구멍과 손잡이가 있는 쇠판. 금고를 입구가 위로 가게 파묻어 놓은 듯했다.

 왕수문이 살짝 놀랜 표정을 짓는데 천주윤이 입을 열었다.

 “형님께서 붕어하시기 전에 이곳 위치를 알려주고, 열쇠를 내 손에 쥐어주셨어. 뭐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천주윤이 말하며 열쇠를 구멍에 꽂아 돌렸다. 찰칵, 소리가 들리자 천주윤이 손잡이를 당겼다. 문이 열리고, 그 작은 금고 안이 가늠도 안 되는 시간 만에 세상의 빛을 받았다.

 “이건….”

 천주윤이 떨리는 손으로 금고 안에 들어 있던 물건을 꺼내 들었다. 왕수문이 침을 꿀꺽 삼키며 천주윤의 손에 들린 ‘그 물건’을 바라봤다.

 

 송경 남쪽의 언덕 뒤편. 패형소가 이끄는 군대가 어느새 와서 숨을 죽이고 있었다. 언덕 뒤편이라 남문 앞에 주둔한 3보병대 진영에서는 패형소의 군대가 보이지 않았다.

 병사들 모두 바닥에 쭈그려 앉아 있었고, 말의 입에도 재갈을 물리고 있었다. 오로지 병장기와 말만 끌고 온 병사들. 막사도 없이 그들은 밤이슬을 맞으며 대기 중이었다.

 “장군. 적은 방비가 허술합니다. 오늘 도착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아직 정비가 되지 않은 듯합니다.”

 병사 하나가 언덕 위에서 급하게 뛰어내려 오며 말했다. 패형소가 자세를 낮춘 채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또 언덕 위에서 병사 하나가 뛰어 내려왔다.

 “장군. 지금 상단 연합의 수레가 남문에 거의 다다랐습니다.”

 “좋다. 저 대군을 먹일 군량이면 큰 길로 갈 것이니 우리를 발견하진 못할 것이다. 걱정하지 말고, 성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공격한다.”

 “헌데 아직 불화살이….”

 병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송경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패형소의 부관이 그 말에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패형소는 아무렇지 않게 시계를 바라봤다.

 “아직 시간이 남았다. 조금만 기다려라.”

 “만약 상단이 성문을 다 통과할 때까지 불화살이 오르지 않으면….”

 “그런 생각하지 마라. 전투가 시작되면 어떻게 움직일 지만 생각해라. 보병들이 3보병대 진영을 휩쓸고, 그 사이 기병들이 성문을 통과한다. 알겠나.”

 패형소의 말에 모여 있는 부관들이 힘없이 대답했다. 그 모습에 패형소가 허리의 칼을 뽑아 들었다.

 “하늘이 있다면, 제 나라를 되찾고, 제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백성들을 버리겠는가. 하늘이 우리 편이다. 무엇이 두려운가!”

 패형소가 살짝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이어 패형소의 바로 옆에 있던,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부관이 눈을 질끈 감았다.

 “존명.”

 크지 않았지만 낮은 목소리. 비장함이 느껴지는 대답. 패형소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고, 다른 부관들도 모두 입을 모아 대답했다.

 “존명.”

 

 타윈은 대운궁의 담벼락 근처에서 살짝 거리를 둔 채 걷고 있었다. 점점 외진 곳으로, 최대한 경비가 허술한 곳을 찾기 위해. 타윈은 중간 중간 담장 위로 고개를 내밀고 안쪽을 살피기도 했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다시 내려와 거리를 벌렸다.

 ‘돌아버리겠네. 조금만 있으면 1시 반인데….’

 300헤트나 쓰며 인력거를 타고 온 보람도 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영주가 지내고 업무를 보는 곳. 경비가 허술한 곳 따위 존재할 리 없었다.

 ‘조금만 더 가보고, 정 안 되면 그냥…. 어떻게든 들어가야지 뭐….’

 타윈이 마음을 정하고 걷는데, 담장 안으로 건물들 대신 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자 타윈이 자세를 낮추고 담벼락으로 다가갔다.

 펄쩍 뛰어 올라 담장을 붙잡고 고개를 빼꼼 내밀어 안을 살폈다. 안은 온통 나무와 풀 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타윈이 그 틈을 행여 놓칠까 얼른 몸을 담장 위로 올렸다.

 ‘좋아. 일단 안에만 들어가면 어떻게든 되겠지.’

 안으로 들어온 타윈은 입을 헤 벌리고 주변 광경에 넋을 놓았다. 맑은 하늘에 뜬 보름달. 높은 나무들의 잎 사이로 내려오는 달빛. 평생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자신할 정도의 아름다운 장관이었다.

 ‘아, 이럴 때가 아니지.’

 타윈이 고개를 옆으로 몇 번 흔든 뒤 나무들 사이로 걸음을 옮겼다.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높은 전각. 그쪽으로 타윈이 잔뜩 경계하며 걸음을 옮겼다. 투박하게 흙으로 된 길이 있었지만, 타윈은 차마 여유롭게 길을 따라갈 수 없었다. 길이 어렴풋이 보일 정도로 최소한의 거리만을 유지한 채 걷고 있었다.

 그때 앞에서 느껴지는 인기척. 타윈이 얼른 커다란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점점 목소리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길 한 쪽에서 걸어오는 두 사람. 타윈이 온 신경을 그 쪽으로 집중시켰다. 어렴풋이 둘의 대화가 들렸다.

 “공작 각하. 오늘은 새벽에 군량도 들어오는 데 처소에서 쉬시는 게 어떠신지요.”

 살짝 나이가 있어 보이는 목소리였다. 타윈이 여기서 주목한 것은 ‘공작 각하’라는 말. 순간 타윈의 눈빛이 바뀌었다.

 ‘지금 저 둘 중 하나가…. 영주. 타미스 한 도르.’

 타윈은 심장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갈 듯 커지기 시작했다. 지금 바로 나가서 처리할까. 아니면 조금 더 기회를 볼까. 기회가 오긴 올까. 오만가지 생각이 타윈의 머릿속을 스쳤다.

 ‘1시 22분….’

 타윈이 손목의 시계를 바라봤다. 타윈은 결국 그 자리에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일단 최대한 거리를 벌려, 둘의 뒤를 조심스럽게 뒤쫓았다. 둘은 정원의 더욱 깊숙한 곳이었다.

 3분 정도. 둘의 뒤를 쫓던 타윈이 시계를 한 번 본 뒤,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에 움직이려 한 순간,

 “안에는 천주윤 공작 각하께서 계십니다.”

 “천주윤 공이 여기는 왜 오신 거지?”

 “죄송하지만, 저도 거기까지는 모르겠습니다. 일단 안에 전하겠습니다.”

 새로운 목소리. 타윈이 슬쩍 고개를 내밀어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봤다. 낡은 건물 앞에 세 사람이 서있었다.

 ‘빌어먹을 역시 아까 해치워야 됐어. 사람이 늘고 있잖아.’

 타윈이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며 머리를 싸잡았다. 그 사이 시계 분침이 또 한 칸 움직였다.

 ‘좋아. 이렇게 된 거, 이판사판이다.’

 

 서재 안, 천주윤과 왕수문이 책의 내용이나 제목을 확인할 틈도 없이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천주윤이 얼른 책을 넓은 소매 안으로 넣었다. 그 사이 왕수문이 금고 문을 닫고 떨어진 널빤지를 다시 바닥에 끼워 넣었다.

 서재의 문이 열리고, 일환이 안으로 들어온 뒤 문을 닫았다.

 “왕제 저하. 밖에 도르 공이 와계십니다.”

 “그래. 나가자.”

 천주윤이 긴장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일환이 문을 열어주자 문 바로 앞에 서있던 도르의 모습이 보였다. 핏기 없이 새하얀 얼굴. 밤에 보니 새삼 도르의 모습은 섬뜩하게 느껴졌다.

 천주윤이 문 밖으로 나와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그 뒤로 일환과 왕수문이 뒤따라 나와 허리를 숙였다. 천주윤이 허리를 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죄송합니다. 제 부하가 영주님을 몰라 뵀습니다.”

 “괜찮습니다.”

 도르 또한 미소로 화답했다. 천주윤의 시선은 이어 도르의 뒤에 선 사내 쪽으로 옮겨졌다.

 4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였다. 왜소한 체격에 검은색 머리카락. 갈색 눈동자. 아무런 표정도 보이지 않는 눈과 꽉 다문 입술. 각진 얼굴에 피부는 살짝 가무잡잡했다. 긴 앞머리가 한쪽 눈을 가리고 있었고 이마에 천을 동여맸었다.

 ‘저 자가 이셀로 크라타프….’

 천주윤은 단번에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타미스 한 도르의 호위를 맡고 있는 페이도스 출신 무사, 이셀로 크라타프. 강철조차 단숨에 두 동강 낸다는 그의 이름을 과연 대륙에서 모르는 자가 있을까.

 “천주윤 공, 여긴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심각한 표정의 천주윤을 보며 도르가 물었다. 천주윤이 얼른 다시 얼굴에 웃음을 머금었다.

 “예전에 형님을 따라 이곳에 왔다가 들어갈 수 없다 하여 그냥 돌아갔던 게 떠올라 와봤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낮에 오시지 이리 어두울 때 오십니까. 하하.”

 “예…. 그럴 걸 그랬….”

 “뭐 그 정도로 천주윤 공에게는 중요한 것이었겠지요.”

 별 것 아니라는 듯, 웃으며 말했지만 천주윤은 단숨에 알 수 있었다. 이 자가 무엇인가 낌새를 눈치 챘다는 것을. 천주윤의 이마에서 땀 한 방울에 흘렀다.

 뭐라도, 변명이 될 만한 것을, 누가 들어도 마땅한 이유를 말해야 한다. 천주윤이 생각하는데 도르의 뒤에 있던 크라타프가 갑자기 칼을 뽑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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