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판타지/SF
매화가 진 자리
작가 : 백아
작품등록일 : 201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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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협조(協助) - 전설의 마법 (2)
작성일 : 16-09-06     조회 : 64     추천 : 0     분량 : 6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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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라코 궁전 앞, 대공 코리옌의 저택-

 방 안에서 한 남자가 초조한 듯 서서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볼이 두툼하고 배도 살짝 튀어나와 귀티가 나는 중년 남자였다. 대공 덴월 친 코리옌의 아들 덴월 친 포리안. 어렸을 때부터 모자란 것을 모르고 산 코리옌의 하나 뿐인 아들. 포리안은 손톱을 물어뜯으며 자신의 침대 앞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그때 방문을 열고 들어온 자는, 영면실에 숨어 있던 의문의 남자. 남자의 표정은 잔뜩 주눅이 들어 있었다. 삐쩍 마르고 코가 유별나게 뾰족한 남자. 코리옌의 하나 뿐인 딸이자, 포리안의 하나 뿐인 여동생 덴월 히 테리에의 남편. 델리 찬 케원. 즉, 포리안과는 처남, 매부 사이였다.

 “어떻게 됐어요! 성공 한 거예요?”

 포리안이 케원 쪽으로 다가가 호들갑을 떨며 물었다. 케원이 우물쭈물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게…. 워낙 노인네가 펄펄 날아서….”

 “그래서 실패한 거예요? 아니, 팔십 먹은 노인네 하나를 처리 못해요?”

 포리안이 답답하다는 듯 케원을 다그쳤다. 케원은 자기보다 어린 처남에게 그런 소리를 듣고도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었다. 그때 다시 방문이 열렸다.

 순간 포리안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아, 아버지!”

 방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코리옌. 코리옌이 관복(官服)을 입은 채 포리안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놈. 파르가에게 자객을 보냈다는 게 사실이냐!”

 코리옌이 호통을 치자 포리안이 케원을 노려봤다. 케원이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사병을 동원하는 일이라, 장인어른께 아뢰지 않을 수가….”

 케원이 변명을 하듯 중얼거렸다. 포리안이 한숨을 쉬는데 코리옌이 방 한 가운데 놓인 테이블 앞에 앉았다.

 “지금 파르가와 함께 폐하를 뵙고 왔다. 파르가가 뭐라고 했는지 아느냐?”

 “서, 설마 이번 일을 폐하께….”

 “궁전 안에 소속도 모를 병사들이 돌아다니는 것을 봤다며, 황제 폐하의 친위대만으로 수비가 불안하니 근처에 주둔하고 있는 1보병대 2편대를 궁전 안으로 불러들이자 하더구나.”

 “그, 그래서요. 폐하께서 허락 하셨습니까?”

 “당연하지. 폐하께선 파르가의 말이면 뭐든 하시는 분이다. 파르가가 전군을 자기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음에도 하나하나 폐하의 윤허를 받으니…. 더욱 신임이 깊어 질 수밖에.”

 코리옌이 쯧, 하고 혀를 차며 말했다. 포리안이 코리옌의 맞은편에 몸을 쭉 내밀며 앉았다.

 “아버님. 그래도 희소식이 하나 있지 않습니까.”

 “희소식?”

 “송경 중부 영주 도르가 3보병대를 그곳에 주둔시키도록 하지 않았습니까. 폐하께서도 허락을 하셨고요.”

 “안 그래도 파르가가 펄쩍 뛰더구나. 코우 정벌을 위해 수도까지 불러들인 병력인데, 송경에 주둔시키면 어찌 하냐고 말이다. 폐하께서 현재 수도로 불러들인 1기병대와 근처에 주둔하고 있는 2보병대 소속의 5개 편대로 어떻게 안 되겠냐고 하시더구나. 폐하께서 달래고 달래니 파르가도 일단 숙이고 들어갔다. 하지만 당분간 코우 정벌은 불가다. 코우는 산악 지역이야. 보병이 1개 병대 병력도 안 되면 점령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파르가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야.”

 “다행입니다. 다행이에요. 그밖에 다른 일은 없었습니까?”

 “사라진 천주윤 공작에 대해 수배령을 내리라고 한 것 외에는 없다. 하여튼 너는 쓸 데 없는 짓 하지 말거라.”

 코리옌이 앞에 앉은 포리안을 노려보며 쏘아 붙였다. 포리안이 다시 주눅 든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전 그저 아버님을 도와드리려고….”

 “너는 그냥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이 도와주는 거다. 파르가가 살아봤자 얼마나 살겠냐. 그냥 두면 죽을 노인네를 왜 자꾸 건드리는 게야.”

 “그냥 두면 도저히 안 죽을 것처럼 팔팔하니 그러는 것 아닙니까.”

 포리안이 입을 삐쭉 내밀며 말하자 코리옌이 씁, 하는 소리를 냈다.

 “하여튼 얌전히 있어라. 마약 쪽에도 손을 대고 있다며. 그것도 욕심 부리지 말고 적당히 해. 요즘 마약 사업에 손대는 귀족들이 늘어서 괜히 마찰을 빚으면 귀찮아 진다. 알겠냐.”

 “예….”

 포리안이 대답하며 코리옌 옆에 서있는 케원을 노려봤다. 마약 일에 손대고 있는 것까지 불었냐는 질타의 눈빛. 멍하니 있던 케원이 다시 흠칫 놀라며 시선을 회피했다.

 코리옌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포리안도 일어나 살짝 고개를 숙였다. 코리옌이 그 모습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어휴, 한심한 놈. 나이도 사십이나 먹은 놈이….”

 코리옌이 방을 나가며 주위에 다 들리게 중얼거렸다. 포리안은 고개를 숙인 채 주먹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탄스산, 그라함의 통나무집-

 통나무집은 제법 넓었다. 문 바로 옆에 작은 화장실이 있었고, 방이 두 개. 작은 부엌이 거실과 붙어 있었다. 거실에는 제법 넓은 식탁과 여섯 개의 의자가 놓여 있었다. 그 의자에 타윈과 왕수문, 일환이 어색하게 앉아 있었다.

 그라함이 안내한 곳은 자신의 방이었다. 침대와 책장 두 개, 테이블 하나가 다인 깔끔한 방이었다.

 사각형 모양의 작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그라함과 천주윤이 앉아 있었다. 둘의 앞에 놓인 찻잔의 특이한 향이 방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차가 입맛에 맞으실지 모르겠습니다. 타윈이 얼마 전에 의뢰인에게 보수 외에 약간 받은 차라는 군요. 듣자 하니 케이론 지방에서 자라는 유일한 찻잎이라고 합니다.”

 “케이론 지방이면 온통 얼음으로 뒤덮인 곳인데 거기에 찻잎이 자라나요?”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가본 적이 없어서. 추위를 견딘 잎이라 그런지 향이 특이하더군요.”

 그라함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찻잔을 코 근처로 가져갔다. 천주윤이 후후, 분 뒤 차를 약간 입에 머금었다가 삼켰다.

 “궁궐에 있을 대 마셨던 차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습니다.”

 “다행이군요.”

 그라함도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찻잔을 내려놓았다. 아무런 말도 없이 차를 마시는 둘 사이로 묘한 긴장감이 돌고 있었다.

 “텐크라를 어떻게 아시는 지요?”

 그라함이 표정 변화 없이 천주윤 쪽으로 물었다. 천주윤 또한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여전히 희미한 미소를 띄고 있었다.

 “마법의 존재를 문서에서 찾아낸 것은 저희 상운국입니다. 그 후 수많은 학자들이 마법에 대해 연구하고 책을 남겼죠. 뭐, 결국 마나의 존재를 찾아낸 것은 레오트지만 말입니다. 하여튼 저희 상운국에서는 마법에 대한 책을 읽는 것도, 쓰는 것도, 파는 것도 불법 이었지만 전 궐에 있었던 덕에 몇 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에 텐크라가 나와 있었나 보군요.”

 “예.”

 천주윤이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

 “그렇다면 텐크라가 어떤 마법인지도 알고 있습니까?”

 그라함의 표정이 살짝 변한 듯 했지만 천주윤은 찻잔을 보느라 알아차리지 못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납니다만, 그 책엔 그냥 ‘굉장히 강력한 마법’ 정도로 적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그라함 씨는 텐크라에 대해 아십니까?”

 천주윤이 고개를 살짝 들어 그라함을 쳐다봤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그라함이 살짝 당황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답을 주저하고 있었다.

 “저도 모릅니다.”

 거짓말이다. 천주윤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를 더 추궁할까, 아니면 그냥 속아준 채 슬며시 캐볼까. 천주윤이 한결 편해진 표정으로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때 그라함이 머뭇머뭇 입을 열었다.

 “텐크라를…. 찾고 계신 겁니까?”

 “예. 찾고 있지요. 그리고 텐크라에 대해 몇 가지 알아낸 것도 있습니다.”

 “…!”

 그라함이 표정이 눈에 띄게 변했다.

 그라함의 동요. 이거구나. 천주윤이 속으로 미소를 지으면서도 겉으로는 무표정하게 입을 열었다.

 “텐크라라는 마법은 아주 먼 옛날 존재했던 마법이더군요. 현존 최강이라 불리는 두 마법. 페틴스와 라코타홈. 두 마법과 필적할 정도인 것 같은데…. 그 어느 책에도 어떤 마법인진 나오지 않더군요. 그저 그것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무한한 마나’가 필요하다. 정도가 적혀 있었습니다.”

 천주윤은 자신이 알아낸 모든 것을 솔직히 말하고 있었다. 그간 소운궁에 머물며 테라코 궁전의 ‘제국 대 서재’를 몇 년간 드나들어 알아낸 정보. 그 모든 것을 그라함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그라함의 몸이 살짝 떨리는 게 느껴졌다. 천주윤의 입 꼬리가 자기도 모르게 살짝 올라갔다. 여기서, 쐐기를 박자.

 “그리고 ‘무한 마나’에 대한 단서가 적힌 책을 송경, 대운궁에서 찾아냈습니다.”

 “그, 그게 사실입니까?”

 그라함은 자기도 모르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천주윤이 빙긋 웃자 그라함이 헛기침을 하며 제 자리에 앉았다. 너무 감정을 드러냈다. 그라함이 속으로 자신의 실수를 자책하고 있었다.

 천주윤이 그라함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라함 씨가 텐크라에 대해 캐고 다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게 무슨….”

 “서재를 관리하는 노인이 말해주더군요. 제가 읽고 있는 책들. 모두 예전 그라함 군단장이 읽었다고.”

 “그, 그건 그냥 마법에 대해 공부하려고 찾아봤던 겁니다.”

 “잘 정리된 마법 서적들도 많을 텐데, 실현 가능한지도, 실존 여부도 불투명한 고대 마법들에 대한 책을 굳이 찾아보신 이유는 뭐죠?”

 “그, 그냥 호기심이었습니다.”

 그라함이 천주윤의 시선을 회피했다. 자신의 앞에 있는, 아직 소년티도 벗지 못한 청년. 그에게 산전수전 다 겪은 자신이 농락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수치스러웠다.

 그라함이 계속 시치미를 떼자 천주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 제가 아는 모든 것을 알려드렸습니다. 그런데도 그라함 씨는 절 믿지 못하시는 모양이군요. 이만 가보겠습니다.”

 천주윤이 허리를 숙여 인사한 뒤 방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라함이 초조한 눈빛으로 찻잔을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잠깐 기다리십시오.”

 그라함의 목소리와 동시에 천주윤이 걸음을 멈췄다. 천주윤이 씩 미소를 지었다가 다시 표정을 정리하고 뒤로 돌았다.

 “뭐 하실 말씀이라도?”

 “저도…, 텐크라를 찾고 있습니다.”

 그라함이 자신의 머리를 벅벅 문지르며 한숨을 쉬듯 말했다. 천주윤이 그제야 다시 미소를 지으며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어째서 찾고 계시는 거죠?”

 “그건 말씀 드릴 수 없습니다. 다만, 제가 알고 있는 정보를 하나 알려 드리죠. 저 또한 천주윤 공이 알고 있는 것 정보 밖에 모르지만, 딱 한 가지를 더 알고 있습니다. 단, 이것을 알려드리는 대신, 텐크라에 대해 앞으로 얻게 되는 모든 정보를 공유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천주윤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라함이 다 식은 차를 단숨에 들이켠 뒤 말을 이었다.

 “텐크라에 대해 상세히 기록돼 있다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 텐크라를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적혀 있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책은…. 황제의 비밀 서재에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황제의 비밀 서재….”

 “예. 제가 마법군단을 나오며 마법 군단 본부 내에 있던 모든 마법 서적을 불 태웠습니다. 거기다가 ‘제국 대 서재’에 까지 불을 질렀었죠. 오늘 천주윤 공을 만나고 확신이 섰습니다. 그때 분명 상당수의 책이 유실됐을 텐데 천주윤 공은 제가 읽었던 책들을 읽지 않곤 알 수 없는 정보를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원본’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것이겠죠.”

 “확실히 대 서재의 책이 많이 줄어든 것 같았지만 마법과 관련된 서적은 대부분 보존돼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필사본 같지는 않았습니다. 많이 낡아 있었고….”

 “저 또한 그게 궁금한 것입니다. 굳이 필사본임을 숨기기 위해…. 그렇게 원본과 똑같이 베끼고, 낡아 보이도록 할 필요가 있는가.”

 그라함의 말에 천주윤이 고민하다가 고개를 살짝 저었다. 천주윤이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숨을 골랐다.

 “그렇다면 황제가 일부러 책이 필사본임을 숨기기 위해 필사한 후 낡아 보이도록 만들었다는 겁니까?”

 “예. 전 확신하고 있습니다. 당시는 제국 대 서재가 생긴 지 얼마 안 됐던 시점입니다. 밤늦게 갔는데도 시종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더군요. 그들을 붙잡아 물었더니 필사한 책을 꽂아 놓는 중이라 했습니다. 대 서재가 생긴 지 얼마 안 돼 계속 필사 작업을 하고 있었던 거겠죠. 그런데 그 필사했다는 책들을 보니 마치 수십, 수백 년 전의 책들처럼 표지와 종이가 낡고 일부 훼손됐더군요. 이것을 필사하는 곳으로 안내하라 했으나 시종들은 끝내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확실하군요.”

 천주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라함은 아무런 말없이 천주윤을 바라보고 있었다. 천주윤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함께 하겠다는, 돕겠다는 대답을. 그라함의 그런 눈빛을 알면서도 천주윤은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물론 마음은 정했었다. 그렇지만 조금 더 안달이 나게 하고 싶었다.

 “좋습니다. 돕겠습니다.”

 천주윤의 대답에 그라함이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라함이 손을 내밀었고, 천주윤이 그 손을 맞잡았다.

 “전 수배 중인 몸이라 활동이 제약됩니다. 그래서 타윈이 혼자 돈을 마련하느라 고생을 하고 있죠.”

 “돈이요?”

 “예. 대륙에 모르는 것이 없다는 정보 조직 아벨. 그곳에 황제의 비밀 서재를 찾아 달라 의뢰를 넣었는데 돈이 꽤 많이 들어서 말입니다.”

 “아….”

 “타윈을 좀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그라함의 말에 천주윤이 맞잡은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물론입니다. 오히려 저희가 부탁하고 싶었습니다.”

 그라함과 천주윤. 둘은 서로의 손을 맞잡고 있으면서도 진심으로 웃고 있지 않았다. 그라함은 그라함 대로, 천주윤은 천주윤 대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를 계산하는 중이었다. 텐크라. 그 마법을 서로 왜 찾는 지도 모르면서 맞잡은 손. 둘이 맞잡았던 손을 놓고 문 쪽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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