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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가 진 자리
작가 : 백아
작품등록일 : 201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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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협조(協助) - 전설의 마법 (3)
작성일 : 16-09-07     조회 : 54     추천 : 0     분량 : 5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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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수문과 일환, 타윈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거실의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그러다 천주윤과 그라함이 방문을 열고 나오자 일제히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라함이 타윈을 보고 한 번 웃은 뒤 입을 열었다.

 “앞으로 서로 도움을 주게 됐으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라함의 말에 왕수문이 천주윤 쪽으로 걸어왔다.

 “왕제 저하. 저들과 손을 잡기로 한 겁니까?”

 “어. 이야기를 해보니 저쪽이 원하는 것과 우리가 원하는 것이 같은 만큼, 일단 협력하기로 했어.”

 “예? 원하는 것…. 상운국의 재건… 말입니까?”

 왕수문이 의아한 듯 고개를 살짝 갸우뚱했다. 천주윤이 배시시 웃으며 왕수문의 귀로 얼굴을 가져갔다.

 “나중에 따로 말해줄게.”

 “아, 예….”

 왕수문이 멍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스, 스승님. 그럼 저 자식들을 받아 준다는 말씀이세요?”

 “뭐, 그렇게 됐다. 어차피 여기서 머무는 건 얼마 안 될 거야. 너도 일하러 다녀야 되고, 저 쪽도 아무래도 바쁠 것 같거든. 일단 너는 저쪽 사람들이랑 동행해라.”

 “예? 스승님 제가 돈 버느라 얼마나 바쁜지 아시잖아요.”

 타윈이 팔짱을 끼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왠지 우쭐대는 것 같은 표정이 한 대 때리고 싶었지만, 그라함이 꾹 참고 말을 이었다.

 “아벨은 어차피 대도시 마다 있으니까 동행하면서도 의뢰는 받을 수 있잖아.”

 “그건 그렇지만….”

 타윈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천주윤과 왕수문, 일환을 훑어봤다. 아무리 봐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타윈은 일환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움찔하며 시선을 돌렸다.

 “천주윤 공. 어떻게 움직이실 생각입니까?”

 “일단 백로항으로 갈 생각입니다.”

 “백로항이요?”

 백로항은 송경에서 꽤 멀리 떨어진 항구였다. 옛날에는 전 세계에서 온 물자가 모여 들었으나, 지금은 예전에 비해 그 수가 줄었었다. 탄스산에서도 제법 떨어진 곳으로 가려면 제법 시간이 걸렸다.

 “해온이라는 사람을 찾으려고 합니다.”

 “해온?”

 “50년도 전에 최초로 마법이 기록된 고서적을 발견한 사람입니다. 그 책이 마법을 세상에 나오게 했죠. 그가 찾아낸 ‘마도기원’이라는 책을 바탕으로 수많은 학자들이 마법 이론서를 적어 냈고, 그게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마법서적들 입니다. 그가 찾아낸 마도기원이야 말로 사실상 아이칸 시대의 유일한 마법서적. 그것을 발견한 사람이니 뭔가 알지 않을까요?”

 천주윤의 말에 그라함이 약간 못 미덥다는 표정을 지었다.

 “50년 전….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정확히는 모릅니다. 다만 상운국의 사서(史書)를 읽던 중, 마서 금지령이 내려진 뒤 송경에서 추방시켜 백로항에 가 살도록 했다는 기록을 봤습니다.”

 천주윤의 말에 그라함은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각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했다. 그것이 무엇이든, 조금이라도 단서가 될 만한 것이라면 파들어 가 봐야 했다. 그만큼 막연한 일이었다.

 “통성명은 각자 알아서 하기로 하고, 피차 급할 테니 내일 바로 출발하는 걸로 합시다.”

 그라함이 손뼉을 한 번 짝, 치며 말했다. 천주윤 또한 그에 동의했다.

 

 천주윤 일행은 원래 타윈이 쓰던 방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타윈은 거실의 소파에서 잠을 청했다.

 밤이 깊어 산 정상은 소리 하나 없이 고요했다. 가끔 산짐승이 우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등불 하나를 켜놓은 채 타윈이 침대에 앉아 있고 왕수문, 일환이 바닥에 앉아 있었다.

 “그 마법과 상운국의 재건이 무슨 상관이 있는 겁니까?”

 말할 때마다 왕수문의 미간이 조금씩 찌푸려졌다. 천주윤이 빙긋 웃으며 품에서 서신 하나를 꺼냈다.

 “그날 천기서실의 비밀 금고 안에 있던 서신이야.”

 낡아서 만지기만해도 바스라질 것 같은 종이. 누렇게 바랜 색이 그 서신이 얼마나 많은 세월을 보냈는지 말하고 있었다. 왕수문이 조심스럽게 서신을 받아 읽었다.

 [왕실의 존망이 달린 위기 때 위대하며, 또 위험한 그 마법을 사용하라. 그 열쇠를 이곳에 두노라.]

 서신을 읽은 왕수문이 천주윤을 바라봤다.

 “여기 적힌 그 마법이….”

 “그래 텐크라야.”

 “설마 이 서신 하나를 믿고…. 저하.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형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이곳의 위치를 알려주고, 열쇠까지 준 데에는 이유가 있을 터. 형님께선 분명 그 텐크라에 대해 알고 계셨던 거야.”

 천주윤은 진심이었다. 그의 빛나는 눈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이 마법이 어떤 마법인지는 모르겠으나, 천주윤은 믿고 있었다. 이것이 이미 사라진 상운국을 재건할 힘이 될 것이라고.

 왕수문이 한숨을 한 번 푹 쉬었다.

 “그 금고 안에 이 서신만 있었던 것입니까?”

 “아니. 책이 하나 있었어.”

 “책이요?”

 천주윤이 옷가지 등을 싼 보자기를 풀려다가 손을 멈췄다.

 “이건 나중에 보여줄게.”

 “예? 어떤 책이기에….”

 “굉장히 중요한 책.”

 “아까 서신에 적혀 있던 ‘열쇠’라는 것이….”

 왕수문이 말하려는데 일환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를 가로막았다.

 “신 일환, 왕제 저하의 명이라면 무엇이든 따르겠습니다.”

 일환이 천주윤 쪽으로 한쪽 무릎을 꿇었다. 이에 왕수문 또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양손을 모으고 천주윤 쪽으로 절을 올렸다.

 “신 왕수문 또한 저하의 명을 따르겠나이다.”

 둘의 모습에 천주윤의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비록 표정은 어두웠지만, 입은 확실히 웃고 있었다.

 “내일 바로 길을 떠나야 하니, 준비 해놓고 일찍 자자. 다들 잘 부탁해.”

 천주윤이 말을 마친 뒤 그대로 침대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다. 이불을 덮은 천주윤의 어깨가 살짝 떨렸고, 일환과 왕수문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덴월 친 코리옌의 방 안에는 그의 사위, 델리 찬 케원이 들어와 있었다. 테이블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 코리옌의 앞에서 케원은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고개도 들지 못하는 케원을 보고 코리옌이 피식 웃었다.

 “장인과 함께 있는 것이 불편한가?”

 “아, 아닙니다. 장인어른께서 절 그렇게 아껴 주시는데 불편할 리가 있나요.”

 “그래. 포리안 그 놈이 멍청하니. 자네가 옆에 있으며 계속 살펴주게.”

 “예….”

 케원이 힘없이 대답했다. 코리옌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케원은 가지 않고 머뭇머뭇 서있었다. 코리옌이 그런 케원을 힐끗 바라봤다.

 “뭐 할 말이 있나?”

 “아, 아닙니다. 저 같은 것을 사위로 삼아 주시고,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몰락한 저희 가문도 장인어른 덕분에….”

 “그런 말 말게. 자네는…. 아닐세. 나중에 중요할 때 내 부탁을 하나만 들어주면 되네.”

 “다, 당연하지요. 장인어른께서 시키시는 일은 뭐든 할 것이니 염려 마십시오!”

 케원이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코리옌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케원이 허리를 숙여 인사한 뒤 방 밖으로 나가자 코리옌의 표정이 바뀌었다.

 

 다음날 탄스산, 그라함의 통나무집-

 점심 식사를 마치자마자 타윈과 천주윤 일행이 떠날 채비를 마쳤다. 그라함이 문밖까지 나와 넷을 마중했다.

 “돈은 챙겼냐?”

 “저금소에 맡겨 둔 것들 조금씩 찾아서 쓰면 돼요.”

 “그래. 조심하고.”

 그라함이 타윈의 옷매무새를 정리해주며 말했다. 타윈이 입을 삐쭉 내밀었다.

 “제가 무슨 어린애인줄 아세요? 걱정 마세요. 가는 길에 페이시티 들려서 의뢰도 받고, 돈도 왕창 벌어올게요.”

 “그래….”

 그라함은 여전히 불안하다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런 눈빛을 뒤로한 채 타윈과 천주윤 일행은 산을 내려갔다.

 “어휴, 스승님도 참 걱정이 많아.”

 타윈이 중얼거리는데 옆에 있던 천주윤이 피식 웃었다.

 “설마 그라함 씨가 스승일 줄이야. 대체 어떻게 만나게 된 거야?”

 “글쎄. 그냥 어릴 때부터 같이 지내서.”

 타윈이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뒤에서 듣고 있던 일환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마법병도 아니면서 마법을 쓸 줄 아는 이유가 있었군. 그라함 정도 되는 마법사에게 배웠으면 그 정도는 당연한 거였어.”

 일환의 말에 타윈이 우쭐한 표정으로 어깨에 힘을 줬다.

 “당연하지. 내가 얼마나 어렸을 때부터 마법을 배웠는데.”

 “그런데 그라함 씨는 왜 너한테 마법을 가르친 걸까?”

 천주윤의 물음에 타윈이 미소를 지었다.

 “너희랑 비슷한 관계라고 할까. 마법을 가르쳐준 대신 내가 스승님의 손과 발이 되어 움직이는 거야.”

 “그래서 그 해온이라는 사람은 살아 있기는 한 겁니까?”

 왕수문이 뒤쪽에서 힘든 듯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정곡을 찌른 질문. 오십년 전에도 나이가 적지 않았던 자였다. 지금 살아있다면 팔십은 가뿐히 넘어, 구십 정도 되지 않았을까. 천주윤이 살짝 당황한 듯 시선을 피했다.

 “뭐 가보면 알겠지.”

 천주윤이 속도를 높였고, 일환과 타윈도 덩달아 걸음을 빨리 했다. 왕수문이 뒤떨어진 채 최대한 빨리 셋을 쫓았다.

 “저, 저하. 같이 가십시오!”

 왕수문이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최대한 힘을 짜내 뛰었다.

 

 페이도스 지방 주도, 페이시티-

 천주윤 일행은 페이시티에 도착하자마자 음식집을 찾아 나섰다. 마침 제법 큰 식당을 발견하고 타윈이 얼른 뛰어 들어갔다. 안에서는 향긋한 고기 냄새가 풍겨져 나오고 있었다. 양고기와 술을 파는 곳. 타윈이 들어와 커다란 음식점 내부를 훑어보더니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천주윤 일행이 타윈을 뒤따라 들어왔다. 넷이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종업원이 다가왔다.

 “저기, 죄송하지만…. 돈이 있으신지….”

 종업원은 웃고 있었지만 넷의 행색을 기분 나쁜 눈빛으로 훑었다. 탄스산에서 이틀을 씻지도 못하고 서둘러 걸어 왔더니 넷은 거지꼴이었다. 타윈이 살짝 기분 나쁜 기색을 보이며 식탁 위를 꽝 하고 내리쳤다.

 “여기.”

 타윈의 손에는 돈다발이 한 뭉치 들려 있었다. 타윈이 놓은 돈뭉치를 보고 종업원의 행동이 달라졌다.

 “아이고, 손님. 죄송합니다. 제가 말도 안 되는 질문을 드렸네요. 뭐 드릴까요. 뭐 양고기 찜, 구이, 뭐, 양고기로 만드는 건 다 있습니다. 술도 좋은 걸로 하나 내놓을까요?”

 종업원의 입이 빠르게 움직였다. 쉬지 않고 말하는 종업원을 천주윤이 신기한 듯 바라봤다. 타윈이 의기양양하게 팔짱을 끼고 돈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여기 양고기 구이 3인분이랑 찜 3인분. 그리고 술은 뭐가 좋을까요?”

 타윈이 일환을 바라보며 물었다. 묵묵히 근엄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일환이 종업원을 바라봤다.

 “상운국의 백옥주(白玉酒).”

 “배, 백옥주요. 알겠습니다.”

 “세 병.”

 “예, 예.”

 주문을 받은 종업원이 얼른 주방으로 달려갔다. 그런 일환을 천주윤이 불안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일환. 세 병…. 이나 시켜도 돼? 나 술 못 마셔.”

 “나도 못 마시네.”

 천주윤의 바로 옆에 앉아 있던 왕수문도 앞에 놓인 물을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그러나 일환은 여전히 덤덤한 표정이었다.

 “세 병 정도는 자기 전에 목마를 때 마시는 정도입니다.”

 “술은 일환이랑 타윈이 마시면 된다고 치고…. 백옥주면 제법 비싼 술 아니야?”

 천주윤이 이번엔 타윈을 바라봤다. 사실상 천주윤 일행은 무일푼. 모든 돈을 타윈이 대줘야 했다.

 “뭐 까짓 거 술이 얼마나 하겠어. 하하.”

 타윈이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말했다.

 넷이 수다를 떠는 동안 음식이 하나 둘 나왔다. 넷이 허겁지겁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한편 이런 넷을 구석 쪽에 앉은 두 남자가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야, 봤지.”

 “어. 돈뭉치.”

 마주 앉은 두 남자가 중얼거리며 눈빛을 교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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