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판타지/SF
매화가 진 자리
작가 : 백아
작품등록일 : 201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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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협조(協助) - 한밤의 추격전 (1)
작성일 : 16-09-08     조회 : 81     추천 : 0     분량 : 5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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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탁 위에는 양 뼈가 어지럽게 널려 있고, 식탁 아래엔 빈 술병 세 개가 놓여 있었다. 타윈이 부른 배를 몇 번 툭툭 치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게 얼마 만에 포식이야.”

 “오늘은 페이시티에서 머물 거지?”

 타윈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천주윤이 물었다. 타윈이 손가락을 입 안에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칸 한테 갔다가, 숙소 바로 구하자.”

 “칸?”

 천주윤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타윈이 이에 낀 고기를 떼 바닥에 튕겨 날렸다.

 “아벨 페이시티 지부 담당자. 계산하고 올게. 좀 쉬고 있어.”

 타윈이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누군가 타윈의 어깨를 툭 쳤다. 타윈이 비틀거리며 옆을 보는데, 험상궂게 생긴 남자가 갑자기 팔을 감싸 잡았다.

 “아이고! 팔이야. 팔 부러졌겠네!”

 아까 타윈과 천주윤 일행을 멀리서 지켜보던 남자 중 하나였다. 타윈은 어이가 없어 코웃음을 쳤다. 그때 그의 일행이던 남자가 달려왔다.

 “아니! 괜찮아? 아니 이 자식들이 뭐하는 놈들인데 사람을 치고도 사과 하나 없어!”

 “아이고, 아이고, 괜찮을 리가 있나. 병원, 병원 가보자고.”

 두 남자의 어이없는 쇼를 지켜보던 타윈이 뭐라 한 마디 하려는데 들려온 목소리.

 “어이. 너희들, 매우 시끄럽구나.”

 술 세 병을 마신 뒤, 고개를 푹 숙인 채 졸고 있던 일환이었다. 그 소리에 남자 둘의 시선이 일환 쪽으로 향했다. 그 중 팔이 부러졌다는 남자가 소매를 걷어붙였다.

 “어이, 형씨. 방금 뭐라고 지껄인 거야.”

 드러난 남자의 팔뚝에는 동그라미 두 개가 나란히 붙어 있는 모양의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눈사람 같은 형상에 빨간색 문신이라 눈에 확 띄었다.

 두 남자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일환에게 다가가려는데, 갑자기 바람이 붕 일고, 팔이 아프다는 남자의 앞머리 몇 개가 잘려 떨어졌다.

 일환의 손에 들려진 칼, 두 남자는 순간 몸이 언 듯 움직이지 못했다.

 “그래. 한 번 해보자 이건가.”

 일환이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일환 취했어.”

 천주윤이 이를 말리려는데, 갑자기 일환이 주먹으로 식탁을 내리쳤다. 식탁이 반으로 쪼개지고 올려져있던 식기들이 와르르 바닥으로 쏟아졌다. 일환이 무서운 표정으로 두 남자를 노려봤다.

 “나가서 겨뤄보지.”

 일환의 표정. 거기다 턱 언저리의 칼자국까지. 두 남자가 갑자기 어색하게 웃기 시작했다.

 “아이고, 이거 죄송합니다. 이 친구가 엄살이 심해서 말입니다. 자네 별로 안 다쳤지? 그렇지?”

 “아, 그럼. 뭐 그거 조금 부딪힌 것 가지고 얼마나 다치겠나. 이거 실례가 많았습니다. 하하. 그럼 이만.”

 두 남자가 일환 쪽으로 90도 허리를 숙인 뒤 물러나려했다. 그때 팔이 아프다던 남자의 어깨로 묵직한 것이 올라왔다. 남자는 자신의 어깨를 보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일환의 칼이, 물론 칼등이 아래로 가게 해 어깨에 올라와 있었다.

 “아…, 아. 서, 선생님 무, 무슨 용건이라도….”

 “이 식탁과 접시 값은, 우리가 변상해야 하나.”

 일환이 씨익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물론 자신의 입장에서는 미소였지만, 두 남자에게는 그것이 지옥에서 온 사신의 웃음으로 느껴졌다.

 “그,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요. 저희가 변상하고 가겠습니다.”

 “무, 물론입지요. 예, 예.”

 두 남자가 굽실거리며 말했다. 그제야 일환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칼을 칼집에 넣었다. 그리고는 바로 종업원을 불렀다.

 “어이 종업원. 여기 식탁이랑 접시 값. 이 친구들한테 받으라고.”

 일환의 말에 종업원이 힐끗 두 남자를 바라봤다. 두 남자 팔의 문신. 그것을 보고 종업원이 손사래를 쳤다.

 “아니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하하, 이 정도는 변상 안 하셔도 괜찮습니다.”

 종업원의 말에 일환의 표정이 다시 굳었다.

 “뭐? 당연히 물건이 부서졌으면 변상을 받아야지. 여기 가게 주인 불러서 줘야 되나?”

 “아니, 정말 괜찮습니다.”

 종업원이 한사코 거절을 하는데, 일환의 시선이 다시 두 남자 쪽으로 향했다. 두 남자가 움찔하며 얼른 종업원의 옆으로 갔다.

 “아니, 이봐. 우리 때문에 물건이 부서졌는데 당연히 변상을 받아야지. 왜 안 받겠다는 거야. 하하.”

 “그러게 말이야. 여기 이 정도면 될 테니, 받아 두라고.”

 두 남자가 양쪽에서 종업원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친한 척 말했다. 종업원은 남자가 주는 작은 주머니를 받아들고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일환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정말로 가보겠습니다.”

 남자 둘이 다시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그때 또 들려온 목소리.

 “잠깐!”

 두 남자가 이제는 약간 짜증이 난 것 같은 표정으로 소리 난 쪽을 바라봤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타윈. 타윈이 어깨를 감싸 쥐고 있었다.

 “아이고, 이걸 어쩌나. 그쪽 팔은 괜찮을지 몰라도 내 어깨는 빠진 것 같은데?”

 타윈이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남자 둘 쪽으로 말했다. 남자 둘의 커다란 주먹과 두꺼운 팔뚝이 부르르 떨렸다.

 “이 자식들이 정말….”

 “진짜 못 참겠네.”

 남자 둘이 중얼거리며 타윈 쪽으로 걸어가는데 뒤에서 일환이 그 중 하나의 팔을 붙잡았다. 남자가 힘을 줘 뿌리치려는데 팔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일환이 손아귀에 힘을 주자 남자의 입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아, 아 하는 신음소리가 나왔다.

 “돈, 돈 드리러 가는 거였습니다.”

 남자의 말에 일환이 손을 놓았다. 남자의 팔뚝에는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타윈이 그 모습에 최대한 웃음을 참으며 종업원을 바라봤다.

 “어이, 여기 얼마 나왔어?”

 “아, 예. 어…. 만 오천 헤트 나왔습니다.”

 “저 돈이면 될 것 같은데.”

 종업원의 말에 타윈이 다시 남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남자가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종업원을 바라봤다.

 “아니, 뭐 대단한 걸 먹었다고 만 헤트가 넘게 나왔어!”

 “백옥주가 상운지방 술에서도 조금 가격이…, 있습니다.”

 종업원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남자가 어금니를 꽉 깨물고 또 다른 주머니를 꺼냈다.

 

 타윈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페이시티의 골목길을 걷고 있었다. 그 뒤를 천주윤 일행이 따르고 있었다. 일환은 가장 뒤에서 비틀거리며 걷고 있었다. 천주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힐끗힐끗 일환 쪽을 뒤돌아봤다.

 “일환, 괜찮아?”

 “저하. 저런 주정뱅이는 신경 쓰지 마시지요. 자기가 마신 술이니 자기가 알아서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왕수문의 단호한 말에 천주윤이 다시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그때 타윈이 멈춰서 막다른 골목 끝의 천막을 가리켰다.

 “저기야.”

 타윈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천막으로 향했다. 천막 안으로 들어가는 타윈을 천주윤 일행도 조심스럽게 뒤따랐다.

 허름한 천막. 도저히 아벨의 페이시티 지부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곳. 안에는 갈색 피부에 까만 머리카락의 젊은 남자가 벽에 등을 기댄 채 앉아 있었다.

 그의 앞에는 앉은뱅이책상 하나가 놓여 있었고, 뒤에는 낡고 낮은 책장이 몇 개 있었다. 칸이 타윈의 얼굴을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타윈. 사, 살아 있었어?”

 “누가 이상한 의뢰를 맡긴 덕에 죽을 뻔했지.”

 “아니. 내가 맡겼냐. 네가 다짜고짜 받아서 나가버렸잖아.”

 “뭐, 하여튼. 살았으니 다행이지.”

 타윈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칸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쩐지 대금도 지부에 안 맡겨 놓고 본인이 직접 준다 하고, 하여튼, 뭔가 이상하더라고. 이렇게 무사하니까 다행이다. 그런데 뒤에 계신 분들은….”

 칸이 타윈의 뒤에 서있는 천주윤 일행을 바라봤다.

 “아 그냥, 같이 동행하는 사람들. 그보다 지금 백로항에 가야 되는데, 가는 길에 할 만한 의뢰 없어?”

 “백로항? 백로항은 왜?”

 “그럴 일이 있어.”

 “그래? 백로항이라….”

 칸이 자신의 뒤에 있는 책장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곳에 있는 종이들은 모두 전국의 지부들이 공유한 의뢰들과 각종 현상수배지들. 칸은 그 중 상운지방 의뢰들을 뒤지고 있었다.

 “오늘 공짜 밥도 얻어먹고, 운이 좋은 것 같아. 좋은 의뢰 하나 걸릴 것 같은데.”

 타윈이 기대에 가득 찬 눈으로 의뢰서들을 바라봤다. 그때 칸이 의뢰서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마침 괜찮은 게 하나 있네.”

 “오, 뭔데?”

 타윈이 책상 쪽으로 바짝 붙어 앉으며 물었다. 칸이 의뢰서를 타윈에게 내밀었다.

 “여기서 백로항으로 가는 길에, 페이도스 지방과 상운 지방의 접경지역. ‘에릴로’라는 소규모 도시가 하나 있어. 페이도스 남부 영주 대신 그곳을 관리하는 귀족이 맡긴 의뢰네. 최근 그곳에 ‘라일’이라는 자가 자기 패거리들을 데리고 들어와서 행패를 부린다는데. 규모가 백 명도 넘나봐. 영주에게 군대 파견을 요청했는데도 감감 무소식이라 이렇게 사비를 털어 헌터를 고용한 모양이야.”

 “오, 그래? 돈은?”

 “선금 없고, 의뢰금은 백만 헤트. 거기다 라일에게 걸려 있는 현상금 오십만 헤트까지 하면 백오십만 헤트네.”

 “좋아. 좋아.”

 타윈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의뢰서에 서명을 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금은 여기 다시 오기 힘들면 백로항에 갔다가 송경 지부에서 받아.”

 “알았어. 고마워, 칸.”

 타윈이 손을 흔들며 천막 밖으로 나갔다. 천주윤도 칸에게 허리 숙여 인사를 한 뒤 밖으로 나왔다.

 “위험하지 않겠어?”

 천주윤이 타윈의 옆으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타윈은 소리 내 웃으며 의뢰서를 안주머니에 넣었다.

 “위험은 무슨. 이 정도야 껌이지, 껌.”

 “이제 숙소를 구하자. 일환도 힘든 것 같고.”

 “그래. 그래. 밥값도 굳었고 괜찮은 데로 구하자.”

 타윈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는데, 천주윤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 일환은?”

 천주윤의 말에 타윈과 왕수문도 주위를 둘러봤으나 일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뒤쪽에서 칸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이. 어이. 이 사람 좀 데려가.”

 타윈과 천주윤, 왕수문이 시선이 뒤로 향했다. 천막 안에서 칸이 머리만 빼꼼 내밀고 있었다. 천주윤과 왕수문이 천막 쪽으로 향했고, 타윈도 한숨을 쉬며 뒤따랐다. 천막 안에서 몸도 못 가누고 있는 일환을 결국 타윈이 업고 나왔다.

 

 페이시티 내 최대 규모 도박장-

 “그래서. 돈을 뜯으려다가 오히려 돈을 뜯겼다고?”

 “예….”

 “멍청한 놈들.”

 지하 1층을 도박장 보다 더 지하에 위치한 비밀스러운 방. 한 가운데 마련된 휘황찬란한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은 생각보다 젊은 사람이었다. 귀족들이나 입고 다닐 법한 까만 정장을 입고, 까만 앞머리를 뒤로 넘긴 올백머리. 눈썹 사이의 주름 때문에 늘 불만이 가득해 보이는 표정의 남자였다.

 현재 페이시티에서 이름을 모르는 자가 없는 ‘투폭시’의 리더. ‘자단’이 바로 그였다. 붉은색 눈사람 모양의 심벌. 주변 상인들을 비롯해 인력거꾼, 도박장 등은 그 심벌을 보면 안 해주는 것이 없었다.

 맞은편에는 음식점에서 타윈, 일환과 시비가 붙었던 남자 둘이 서있었다. 안절부절 못하는 남자들을 향해 자단이 입을 열었다.

 “그 자식들 지금 어디 있어.”

 “몰래 뒤 따라서 숙소까지 알아냈습니다. 동쪽의 ‘헨 여관’에 머물고 있습니다.”

 “좋아. 애들 소집해.”

 “예.”

 남자 둘이 얼른 대답했다. 자단이 담배를 입에 물자 음식점에서 팔이 부러졌다고 소란을 피운 남자가 얼른 성냥을 그었다.

 “낮에는 제3기병대가 페이시티를 지키지만, 밤에는 사정이 다르지.”

 자단이 중얼거렸다. 남자가 얼른 다가가 담배에 불을 붙여주자 자단이 연기를 후,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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