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변했다.
아니 이건 마치 융합되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곳곳에 남아있는 익숙한 건물들. 그리고 그 익숙한 광경을 침범 하듯 섞여있는 이세계의 것들.
강수는 도로를 따라 걸어가면서 주변을 살폈다.
음울한 기운이 느껴지는 괴이한 모양의 나무들과 꽃들이 마치 판타지 세계를 연상시켰다.
주변을 살피던 강수의 발에 무언가 채였다.
툭
발에 걸린 물체를 본 강수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사람의 뼈였다. 그 뼈는 강수의 발 근처만이 아닌 곳곳에 흩뿌려지듯 널려있었다. 죽은 사람이 한, 두 명이 아닌 것 같았다.
뼈 주변에는 거대한 사이즈의 발자국이 겹쳐지듯 어지럽게 찍혀있었다. 세 발가락을 가진 유치장 괴물의 발자국은 아니었다.
아니길 바랐건만. 괴물이 더 존재했다. 얼마나 더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유치장에 나타났던 괴물이 끝이 아니었다.
강수는 일단 몸을 숨길 곳을 찾아 나섰다. 이렇게 뻥 뚫린 도로에 있는 건 나 여기 있으니 죽여 달라고 광고하는 꼴이었다.
가까이서 본 건물들은 붉은 가시가 박힌 덩굴이 외벽을 휘감고 있었다. 많이 있느냐 적으냐의 차이만 있을 뿐 덩굴이 안 뻗은 곳이 없었다. 입구가득 덩굴이 틀어막고 있는 건물들을 지나쳐 그나마 덩굴이 적은 건물을 발견했다. 강수는 깨진 창가로 다가가 안을 살폈다.
괴물이 없는 걸 확인 한 강수가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내부는 테이블과 물건들이 엎어져 엉망이었다. 강수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주방도 마찬가지로 엉망이었다. 강수는 냉장고와 선반 안을 뒤졌다. 냉장고 안의 음식은 완전히 문드러져 곰팡이가 펴 있었고, 그나마 선반에 통조림 몇 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어질러진 내부를 적당히 치워 쉴 공간을 마련한 강수는 통조림으로 허기를 달래고 몸을 뉘었다. 긴장이 풀리니 온갖 생각이 물밀 듯 떠올랐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여기가 자신이 살던 곳이긴 한 걸까? 아니면 판타지소설처럼 차원이동이라도 한 걸까?
혼란스러움과 답답함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하지만 괴물을 잡느라 무리하게 움직인 몸은 금세 수마에 휩쓸렸다. 잠시 후 낮은 숨소리만이 내부를 채웠다.
쿠구궁 쾅 파사삭
“쿨럭. 뭐, 뭐야”
깊은 잠에 빠져있던 강수는 고막을 강타하는 굉음과 거센 먼지바람에 놀라서 깨어났다.
건물 한쪽이 무너져 있었다. 뿌연 먼지 사이로 드러난 곳엔 발목까지만 있는 거대한 외발이 있었다.
강수는 주방에서 챙겼던 식칼을 움켜쥐고 천천히 문가로 뒷걸음 쳤다.
발목에 실선이 그어지더니 살이 갈라지고 눈알이 나타났다. 눈알은 이리 저리 눈을 굴리더니 강수를 발견해내고 눈을 휘었다. 그리고 다시 눈꺼풀이 닫히며 사라져버렸다. 커다란 발이 통통 위아래로 몸을 띄우더니 한 번에 크게 도약을 해 강수를 짓뭉갤 듯 떨어졌다.
강수는 냅다 뒤로 돌아 문 밖으로 달려 나갔다.
도로에서 봤던 발자국의 주인이 분명했다. 저런 괴물은 건물 안에 있는 게 더 위험했다.
쿵 통통 쿵 통통 쿵
외발 괴물의 이동 속도는 빠르지 않았다. 하지만 도약력이 좋아 거리는 좀처럼 벌어지지 않았다.
통통 쿵
외발 괴물이 아슬아슬하게 강수 옆에 떨어졌다. 외발 괴물의 발에 조각난 도로의 시멘트 조각이 튕겨 강수의 볼을 긁으며 지나갔다.
강수는 이를 악물고 괴물의 특성 분석해내려 애썼다.
두 번 뛰고 한번 도약.
오른쪽, 왼쪽, 왼쪽, 직선, 오른쪽...
다음은 왼쪽!
강수는 오른쪽으로 몸을 피했다. 외발 괴물은 예상대로 왼쪽으로 떨어졌다.
좋았어!
강수는 힐긋 숲 쪽을 바라봤다. 아까 둘러볼 땐 차마 들어가지 못했었다. 어떤 위험 요소가 있는지 알 수가 없었으므로.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유치장에서야 운 좋게 괴물을 처리했지만, 지금 나타난 괴물은 자신이 어떻게 해보기엔 너무 까다로웠다. 지금 강수가 할 수 있는 건 숲 속으로 들어가 놈의 시선에서 벗어나는 수밖에 없었다.
결심을 굳힌 강수는 숲 속으로 뛰어들었다. 외발 괴물은 나무와 식물들을 으깨며 따라 붙었다.
강수는 나무와 큰 돌을 활용해 괴물을 요리조리 피했다. 뒤를 돌아보자 외발 괴물과의 거리가 꽤 벌어져 있었다.
이대로만 가면 따돌릴 수 있다.
턱
방심한 탓일까.
강수는 바닥에 뻗어있는 빨간 가시 덩굴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발이 걸려 넘어져 버렸다.
스르륵
자극을 받은 빨간 가시 덩굴이 꿈틀거리며 강수의 발 위로 칭칭 감겼다.
점점 다가오는 괴물의 발소리에 강수는 들고 있던 식칼로 빨간 가시 덩굴을 쳐냈다. 하지만 덩굴은 보기와는 다르게 어찌나 질긴지 잘 잘리지 않았다.
통통 쿵 통통 쿵
멀리서 들리던 외발 괴물의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져 가고 있었다. 강수의 손도 더 다급하게 움직였다.
“제발 잘려라. 잘려. 왜 이리 안 잘려! 제길!”
쿵
외발 괴물이 강수의 앞까지 도달했다. 외발 괴물의 발목에서 다시 눈알이 나타났다. 눈알은 빨간 가시 덩굴에 발이 묶여 옴짝달싹 못하는 강수를 보고 만족스레 눈을 휘었다.
눈은 다시 자취를 감추었고 이번엔 발등이 들썩거렸다. 울퉁불퉁한 선이 길게 그어지며 쩌억 입을 벌리듯 발등이 들춰졌다. 갈라진 그 사이로 날카로운 이가 드러났다. 외발 괴물은 캉캉 이를 부딪쳤다. 식사를 하기 전 칼이 얼마나 잘 벼려져있는지 점검하듯이.
외발 괴물은 한껏 입을 벌려 강수를 집어 삼키려했다.
“으아아아아!!”
강수는 눈을 질끈 감고 식칼을 치켜세우고 휘둘렀다.
피융-
어디선가 화살 하나가 빠른 속도로 날아와 벌어진 외발 괴물의 입안에 꽂혔다.
푹푹푹푹푹
화살은 연달아 날아와 외발 괴물의 입에 박혔다. 외발 괴물은 괴로움에 자지러졌다.
끄웩 끄웨엑
강수는 괴물의 비명 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 처음엔 자신이 휘두른 눈 먼 칼에 맞은 건가 싶었지만 이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쿵-
푸욱
아래로 떨어져 내린 사내가 검으로 외발 괴물의 발등부터 바닥까지 꿰뚫었다. 외발 괴물은 파르르 떨더니 쓰러졌다. 검을 뽑아낸 사내는 외발괴물의 입안을 검으로 뒤적이더니 무언가를 빼내었다.
사내는 강수 쪽으로 다가와 강수의 발을 덮은 빨간 가시 덩굴을 검으로 쳐냈다. 강수가 자르려고 애쓰던 것과는 다르게 쉽게 잘려져 나갔다. 사내는 강수에게 손을 내밀었다. 강수는 손을 맞잡고 일어났다.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사내는 어깨를 으쓱 거렸다. 강수는 그제야 사내를 자세히 봤다. 짧게 친 머리에 커다란 덩치, 순해 보이는 인상. 볼에 있는 긴 흉터만 아니었으면 사람 좋아 보이는 평범한 사내였다.
휙~ 탁
사내의 뒤로 다른 사람이 떨어져 내리듯 나타났다. 화살을 메고 있는 포니테일 머리의 젊은 여자였다. 외발 괴물의 입에 화살을 박아 넣은 사람이었다. 강수는 얼른 두 사람을 향해 감사의 인사를 했다.
“두 분 다 정말 감사합니다.”
여자는 힐긋 강수를 보고는 몸을 돌려 걸어갔다. 사내는 당황한 강수를 보고 애매하게 웃었다.
“하하, 낯을 많이 가리는 애야. 일부러 무시 한다던가 그런 건 아니야. 아마도.”
사내는 마지막 말을 할 때는 손에 입을 대고 작게 소곤 거렸다.
“아저씨.”
“어이쿠. 그래. 간다. 가.”
사내는 찔끔한 표정으로 여자의 뒤를 따라갔다. 여자는 뒤도 안 돌아보고 말했다.
“거기 서서 뭐해요? 안 따라 올 거예요?”
“예? 저요?”
사내는 강수에게 다가와 어깨에 팔을 두르고 이끌었다.
“그래. 예리 말이 맞아. 같이 가야지. 여기 혼자 있다간 괴물한테 죽는다고.”
오는 길에 통성명을 한 사내, 진한이 안내한 곳은 강수가 있던 곳과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건물이었다. 건물 안에는 두 사람이 더 있었다.
“왔어요? 그보다 누구예요?”
마른 체격의 안경을 쓴 남자가 강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뻔하지. 진한 아저씨 성격에 괴물한테 당하는 사람 구해서 대려 왔겠지.”
노란머리에 고등학생 교복을 입고 있는 남학생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하하하. 이번엔 내가 아니라 예리가 먼저였다고.”
“예리가요?”
“헤에~ 마음에 들었나봐~?”
고등학생이 깐죽거리자 예리는 화살 통에서 화살을 하나 꺼내들어 시위에 걸었다. 닥치지 않으면 화살을 날려버리겠다는 무언의 행동이었다. 고등학생은 찔끔한 얼굴로 진한의 뒤에 숨었다.
“나한테만 그래.”
고등학생은 끝까지 구시렁거리는 걸 잊지 않았다. 예리는 깔끔하게 무시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 쪽은 한 강수야. 강수야. 여기 안경 쓴 사람은 김 찬, 요기 반말 찍찍 하는 건방진 고등어는 백 대수야.”
찬과 강수는 서로 예의바르게 인사를 했다.
대수는 진한의 뒤에서 고개만 삐쭉 내밀고 으르렁 거렸다.
“백 재수라고 하면 죽을 줄 알아!”
콩
대수의 이마 위로 진한의 딱밤이 내려앉았다.
“아얏! 왜 때려!”
“씁! 반말하지 말라니깐.”
“알겠다고! ...요.”
다시 한 번 내려오려는 딱밤을 피해 대수가 이마를 감쌌다. 진한은 대수의 머리를 거칠게 헝클었다. 대수는 머리 스타일 망가진다며 버둥거렸다.
“말은 이래도 나쁜 녀석은 아냐.”
“아, 네.”
자신을 향해 눈을 번득이는 대수를 보며 강수는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궁금한 게 많겠지만 일단 잠부터 자자고.”
“전 괜찮아요. 말해주세요.”
“에비~ 덜덜 떨면서 무슨.”
“씁!”
“아 알겠다고요~!”
대수는 투덜거리면서 구석으로 들어가 벌러덩 누웠다.
“대수 말이 맞아. 넌 지금 휴식이 필요해. 몸을 보라고.”
“전 정말 괜찮 ...”
강수는 괜찮은 걸 어필하려고 손을 들어올렸다.
덜덜덜덜
강수의 손이 눈에 띄게 덜덜 떨리고 있었다.
“어..? 어라 손이 왜...”
강수는 급히 손을 맞잡아 진정 시키려 애썼다. 하지만 강수의 손만이 아니라 다리까지 떨리고 있었다.
“긴장이 풀려서 그래. 마음 놓고 한 숨 푹 자.”
진한은 강수의 어깨를 두드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강수는 진한을 붙잡으려 했지만 찬이 고개를 저어 말리자 한숨을 쉬고 포기했다. 강수는 찬이 건네는 모포를 들고 구석에 자리 잡고 누웠다.
고소한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 강수는 그 냄새에 이끌려 눈을 떴다. 어제 식사를 통조림으로 때워 매우 허기진 상태에 맡은 고소한 냄새에 절로 눈이 떠진 것이었다.
“딱 맞춰서 일어났네. 어서 와서 먹어.”
네 사람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다가간 강수가 빈자리에 몸을 앉혔다. 예리가 크게 스튜를 떠 그릇에 담아 건네줬다.
고기가 듬뿍 들어간 스튜였다. 스튜라고 하기도 민망한 고기 국에 가까웠지만, 고소한 냄새와 손 안에서 퍼지는 따뜻함에 입에서 절로 침이 고였다. 배에서 어서 음식을 달라고 요동을 쳤다. 강수는 허겁지겁 스튜를 먹기 시작했다. 스튜는 맛이 조금 부족했지만 시장이 반찬이라고 맛있었다. 특히 고기는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하게 씹히는 식감이 일품이었다.
“하하. 배가 많이 고팠나봐. 더 있으니 천천히 먹어.”
강수가 잘 먹는 모습이 보기 좋은지 진한은 호쾌하게 웃었다.
“맛있어? ... 요.”
맛있게 스튜를 먹는 강수를 대수가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며 물었다. 반말을 하려다 진한의 부릅뜬 눈에 슬그머니 요를 덧 붙였다. 강수는 입 안에 가득 들어찬 고기 때문에 말은 못하고 고개를 끄덕여 답을 대신했다.
“헤에~. 딱 봐도 처음인 것 같은데 잘 먹네.”
“대수야. 그만.”
찬이 고개를 저었다.
“뭐 어때? 어차피 알게 될 건데.”
강수는 의미심장한 대수와 찬의 대화에 먹던 걸 멈추고 둘을 바라봤다. 찬은 못 말린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강수는 그 묘한 분위기에 의아하게 주변을 둘러봤다. 진한은 어색하게 웃으며 시선을 딴 곳으로 피했고, 예린은 묵묵히 자기 몫의 스튜를 먹을 뿐이었다.
“궁금하죠?”
대수가 몸을 앞으로 내밀며 개구지게 웃었다. 강수는 입안에 남은 고기를 마저 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괴물고기로 만든 거예요.”
“?”
강수는 방금 대수가 한 말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듣긴 들었지만 머릿속에 제대로 입력이 안 됐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귀가 잘 못 됐나. 어제 괴물이랑 싸우다가 잘 못 된 건가. 그럼 큰일인데. 여기 병원이 있으려나.
강수는 귀를 후벼 팠다.
대수는 그런 강수에게 확인 사살을 날렸다.
“잘 못 들은 거 아니에요.”
“하하. 얘가 농담도.”
“농담 아니에요.”
“거짓말...”
“제가 왜 거짓말해요. 괴물고기 맞아요. 괴. 물 .고. 기!”
강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다른 사람을 둘러봤다. 아니라고 부정해 주길 바랐지만 다들 시선을 피하며 딴청을 피웠다. 말만 안했지 무언의 긍정을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우웁!”
강수의 얼굴이 순식간에 시퍼렇게 질렸다. 강수는 먹던 그릇도 내팽겨 치고 입을 막고 건물 밖으로 뛰쳐나갔다.
“하하하하!! 내 그럴 줄 알았어. 악!”
강수의 뒷모습을 보며 낄낄 거리는 대수의 이마로 진한의 딱밤이 날라 왔다. 이번엔 앞서의 귀여운 장난 수준의 딱밤이 아닌 진심이 담긴 매서운 딱밤이었다. 대수의 눈앞에 별이 반짝였다.
“꼭 이 타이밍에 말했어야했냐.”
“아야야. 어차피 알게 될 사실, 지금 아나 나중에 아나 똑같잖아! 요.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말 몰라욧!”
“으이구. 말이나 못하면.”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보이는 강수가 받았을 충격은 어마어마할 터. 진한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문밖을 응시했다.
몇 분 만에 돌아 온 강수의 얼굴은 헬쓱하게 변해 있었다. 그 짧은 사이에 십년은 더 늙어보였다.
“좀 괜찮아?”
“네. 괜찮아요.”
괜찮다고는 했지만 누가 봐도 전혀 괜찮지 않아 보이는 얼굴과 목소리였다.
“남자가 말이야~비위가 그리 약해서 되겠어? 요.”
대수는 말은 건들건들 하게 했지만 미안했는지 쭈뼛쭈뼛 다가와서 물통을 건넸다. 그의 이마에는 빨갛고 동그란 원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딱 봐도 진한의 작품이었다.
“풋”
그 모습이 꽤나 우스꽝스러워 강수는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강수의 웃음 덕분일까 미묘하게 가라앉아있던 분위기가 부드럽게 풀어졌다.
진한은 웃음을 터트리며 대수의 등짝을 짝 소리가 나게 내리쳤다.
“허세는. 이 놈도 처음에 괴물고기인거 알고 토하고 울고불고 난리쳤었어. 그거 달래느라고. 어우.”
진한은 생각도 하기 싫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대수의 얼굴이 순식간에 시뻘겋게 타올랐다.
“내, 내, 내, 내가, 언, 언제! 아니야. 아니라고!”
대수가 아니라고 악악 악을 써댔지만 다들 아무 신경도 쓰지 않았다. 대수의 애절한 외침만이 계속 울려 퍼질 뿐이었다.
강수는 물을 마시며 한껏 토라져 구석으로 박힌 대수와, 그런 대수를 어르고 달래는 진한의 모습을 바라봤다. 강수의 옆으로 찬이 다가왔다.
“대수가 반말하고, 건방지고, 얄미울 정도로 깐죽거리고 그래도 심성이 나쁜 애는 아니에요.”
“그거... 칭찬 맞죠?”
“칭찬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