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로맨스
미치도록 너를
작가 : 카페인부작용
작품등록일 : 2017.7.27
  첫회보기
 
04. 그럼 우선 그냥 친구합시다.
작성일 : 17-07-28     조회 : 282     추천 : 0     분량 : 5734
뷰어설정열기
기본값으로 설정저장
글자체
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이하연.

 

 인혁이 그토록 잊으려 노력했던 여자.

 

 하연이 내리자마자 구급대원에게 머라고 이야기하며 손바닥을 내보이고 두 손을 교차시키며 흔든다.

 

 얼굴에는 상냥한 미소를 머금은 채...

 

 인혁이 운전석 창을 내리고 하연을 조금 더 가까이 보기위해 핸들에 손을 겹치고 손등위에 위에 턱을 괴었다.

 

 “괜찮아요. 얼른 가세요. 급하시잖아요.”

 

 “연락처를..”

 

 “정말 괜찮아요. 저는 괜찮으니까 얼른 가세요.”

 

 “아, 고맙습니다. 그럼”

 

 길을 건너다 구경하는 사람들 틈에 여의치 않지만 하연이 차에 타서 차를 조금 더 옆쪽으로 움직여 준다.

 

 그는 가슴 밑바닥이 아려오는 게 느껴졌다. 간신히 잠재웠던 심장이 다시 반응을 하기 시작했다.

 

 

 ***

 

 인혁은 자신도 모르게 하연을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조금 전 까지만 해도 후덥지근한 날씨에 앞차의 답답한 운전 실력이 거슬려 짜증이 났지만 운전자가 하연임을 알고는 달라졌다.

 

 운전을 차분하게 잘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한 번도 넘은 적이 없는 속도계의 65km가 안 되는 숫자가 적당하다는 생각에 본인이 이렇게 유치했나 싶어 실소가 나오기도 했다.

 

 ‘서인혁, 미친거냐.. 스토커처럼 왜 따라가는 거냐.’

 

 그때 인혁의 차안에 핸드폰 벨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Rrrrrr..rrr.. rrrrrrrrr

 

 인혁이 차에 연결된 블루투스 스피커로 버튼을 터치해 전화를 받는다.

 

 “네, 어머니.”

 

 [아들, 오고 있는 거지? 어디쯤이니?]

 

 “아, 저.. 어머니 제가 일이 좀 생겨서 늦을 것 같아요.”

 

 [무슨 급한 일이니? 안 좋은 일은 아니지?]

 

 “네, 별일은 아니에요.”

 

 [너 이번일 축하 겸 해서 형들이랑 형수들도 와있는데, 저녁은 같이 먹도록 하자.]

 

 “네, 그럴게요. 어머니. 가족들께는 죄송하다고 전해주세요.”

 

 [그래. 운전조심하고.]

 

 “네.”

 

 하연의 목적지는 그녀의 드레스매장이었다.

 

 인혁은 하연의 매장이 잘 보이는 도로가에 차를 세우고 그녀를 애틋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하연이 그녀의 매장 앞 주차공간에 주차를 한 뒤, 내리는 것이 보였다.

 

 매장으로 곧바로 향하는 것 같더니 아까 사고가 생각이난건지 다시 뒤돌아 사고부위를 확인하려고 되돌아왔다.

 

 민소매 나시에 핫팬츠로 드러난 그녀의 하얀 피부가 뜨거운 햇볕아래에 눈이 부셨다.

 

 하연이 뒷 범퍼 쪽에 다다르자 사고부위를 바로 보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한쪽 눈부터 실눈을 뜨며 천천히 확인하기 시작했다.

 

 ‘꽤 찌그러졌네요, 하연씨.’

 

 그녀의 귀여운 모습에 인혁의 얼굴 전체에 미소가 번졌다.

 

 어디하나 흠집 없이 깨끗한 차의 사고 부위를 본 하연이 털썩 쪼그려 앉더니 차마 보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

 

 사고부위를 다시 못 보겠다는 듯 한손은 눈을 덮어 가리고 한손은 다 가려지지도 않는 사고부위를 덮었다.

 

 한숨을 내쉬며 사고부위를 짚은 채로 몸을 지탱해 일어나더니 한발을 살짝쿵 바닥을 구르고 뒤돌아 터벅터벅 걸어 매장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그런 하연의 행동이 너무도 귀여워 인혁의 입가에 번졌던 미소가 어느새 웃음으로 터져버렸다.

 

 ‘여기까지 와서 뭘 어쩌겠다고.’

 

 

 ***

 

 하연은 매장으로 들어가자마자 전등을 켜고 에어컨을 가동시켰다.

 

 매장 안쪽에 위치한 문을 열고 들어가 커피머신에서 라떼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탁자와 긴 소파가 놓여있어 밥을 먹기도 하고 밤새도록 작업한 후 잠깐 눈을 붙이기도 하는 하연만의 휴식 공간이었다.

 

 뜨거운 라떼가 담긴 머그잔을 들고 밖으로 나온 하연은 매장을 한 번 둘러봤다.

 

 한쪽 벽면가득 길게 위치한 위 아래 고정행거에 아기 돌 드레스들이 몇 벌 없는 것을 보며 라떼를 한 모금 들이킨다.

 

 제법 인기 있는 하연의 돌드레스는 이번 주에도 거의 대여가 나가고 몇 벌 남아있지 않았다.

 

 내가 만든 드레스가 예쁘긴 예쁜가보구나 사랑받고 있구나 라고 확인받는 순간이다.

 

 하연은 지금 쯤 어디선가 그녀의 드레스를 입고 돌잔치를 준비 중일 아가들을 생각 하며 싱긋이 미소를 지으며, 쇼윈도로 다가가 밖을 내다보았다.

 

 그녀의 시야에 썬팅이 짙게 된 차가 한 대가 보인다.

 

 ‘그 사람이랑 같은 종류의 차 같은데?’

 

 몇 달 전 자신을 도와준 보답으로 함께 저녁을 하기로 했다가 오지 않은 남자가 잠시 스쳐지나갔다.

 

 한 모금 남은 라떼를 털어 넣고, 오늘 할 일을 서둘러 정리한다.

 

 보름 전, 프랑스에서 같이 일하던 친한 프랑스인 친구가 일을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맡기고 갔기 때문이다. 본식에 입을 웨딩드레스 한 벌과 이브닝 드레스 2벌을 디자인뿐 아니라 제작까지 맡기고 갔다.

 

 프랑스에서 하연의 드레스를 좋아해 다른 분들에게 소개도 많이 해주었던 프랑스재벌가 여사가 이번에 며느리를 들이는데 특별히 하연에게 부탁했다고 해서 거절하지 못하고 받았던 것이었다.

 

 “나쁜 기지배, 콘셉트 같이 잡아준다더니 놀기만 하다 갔어.”

 

 하연이 가장 자신 있는 웨딩드레스를 먼저 만들기로 하고 틈틈이 디자인 했던 패턴으로 어제 재단해둔 천을 들고 재봉틀 앞에 앉았다.

 

 재봉틀 발판에 발을 올리고 시작하려는 순간 천이 떨어져 주우려다 실수로 발판을 눌러버렸고 그 순간 재봉틀 바늘 앞에 있던 왼손 검지손톱이 바늘에 찍혀버렸다.

 

 “아악!”

 

 다행히 바늘이 한번 박혔다 위로 올라간 상태여서 하연은 본능적으로 피가 흰 천에 떨어질까 재빨리 왼손을 천에서 치우며 오른 손으로 왼손가락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받쳐서 막았다.

 

 망치로 손가락을 찧은 것과 비슷한 통증에 손가락을 꼭 잡고 티슈를 찾기 시작했다. 피가 오른쪽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당황하니 티슈가 어디 있는지 보이지를 않아 우왕좌왕하고 있는 사이 누군가 매장으로 들어와 하연의 왼손을 손수건으로 감쌓다.

 

 “인혁씨가 왜 여기에...”

 

 인혁은 가지도 들어오지도 못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하연만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그녀의 손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보고 앞뒤 생각도 못하고 무작정 그녀 앞에 나타났던 것이었다.

 

 하연이 놀라서 인혁을 빤히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어쩌다 이런 겁니까!”

 

 인혁이 걱정스러움에 하연의 다친 손가락을 강하게 움켜쥐고 높아진 목소리로 소리쳤다.

 

 “.....”

 

 인혁이 부상 부위를 확인하려는 건지 손수건을 걷어냈다.

 

 오른쪽 검지손톱이 중앙을 살짝 비켜 깨져있었고, 그 밑 부분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바늘에 손가락이 관통된 것이었다.

 

 “어.. 재봉틀 바늘에... 괜찮아요. 별거 아니에요.”

 

 “이게 별거 아닙니까! 파상풍 걸리면 어쩌려고. 병원 가요!”

 

 “일요일이에요.”

 

 “응급실가면 되요!”

 

 “아니에요. 이런 걸로 무슨 응급실이에요. 정말 괜찮아요. 바늘이 녹슨 것도 아니고...”

 

 인혁이 하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밖으로 뛰어나갔다.

 

 6~7분정도 흘렀을까?

 

 인혁이 땀을 흘리며 붕대와 소염제, 소독약, 반창고, 대일밴드 등을 한 봉지나 사들고 들어온다.

 

 “우선 소염제부터 먹어요!”

 

 하연이 매장 홀 소파에서 웃으면서 인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하연을 보고 신발을 신은 채로 들어오려다 이제 여유가 좀 생겼는지 하연이 슬리퍼를 신은 것을 한번보고 주변을 둘러보더니 신발을 벗고 슬리퍼를 신고 들어온다.

 

 그런 인혁을 보고 풋 웃는다.

 

 “아.. 슬리퍼를 신어야하는구나. 미안해요.”

 

 “아니에요. 제 피를 보고 많이 놀라 셨나봐요.”

 

 “아.. 하연씨, 물. 물 어디 있어요?”

 

 “이쪽으로 오세요.”

 

 하연이 그녀만의 휴식공간으로 인혁을 데려간다. 인혁에게는 거리낌 없이 자신만의 공간으로 데려가는 스스로가 이상하게 느껴진다.

 

 두 달 전 헤어진 남자친구에게도 데려가 본 적 없는 그녀만의 집이고 휴식 공간이었다.

 

 “이런 곳이 있었네요?”

 

 인혁이 들어오더니 또 넉살좋게 식기 건조대의 컵을 들고 곧바로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들고 탁자에 약봉지와 물 컵을 내려놓고 소파에 앉는다.

 

 문득, 2달 전 하연의 집에 처음 온 손님이면서도 익숙한 듯 커피를 내려 본인에게 마시라며 내밀던 인혁이 생각났다.

 

 ‘이 사람은 모든 공간에서 이렇게 익숙한 걸까..?’

 

 “뭐해요? 어서 이쪽으로 앉아요.”

 

 인혁이 문손잡이를 잡고 서있는 하연을 쳐다보며 옆자리를 탁탁 치면서 손짓한다.

 

 그런 그의 행동 때문인지 하연도 어색함이 조금은 가시는 듯했다.

 하연이 거리를 좀 두고 앉자 인혁이 살짝 다가와 앉는다.

 

 “약부터 먹어요. 파상풍이 약으로 해결되는 건 아닌데 안 먹는 것 보단 낫다니까 일단 먹어요. 정말 병원 안가 봐도 괜찮겠어요?”

 

 “네. 이정도야 뭐. 예전에는 바늘이 부러져서 손가락 밑으로 삐죽이 나와 있어서 빼 낸 적도 있는데요 뭐. 그땐 약도 안 먹었는걸요?”

 

 그 끔찍한 상황을 이 여자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이야기 하고 있다.

 

 어쨋거나 하연은 예전에 재통틀을 처음 만질 때 이런 적이 가끔 있었고 약을 안 먹어도 괜찮았지만 더운 날 인혁이 사온 성의가 고마워 약을 받아먹었다.

 

 인혁이 봉지에서 물티슈를 꺼내 말라버린 피를 조심스레 닦아낸다.

 

 “이제 피가 좀 멈춘 것 같네.”

 

 이 남자 대체 뭐란 말인가.

 

 약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피가 말라있을 걸 생각하고서 물티슈까지 준비해오다니. 이 인물에 이 섬세함에 바람둥이 임에 틀림없다.

 

 소독약을 꺼내 상처부위에 떨어뜨리니 거품이 부글부글 끓는 것이 조금 감염이 되긴 했나보다. 연고를 바르고 붕대를 손가락에 감아주는 것 또한 익숙하다.

 

 “이렇게 말하면 하연씨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아까 하연씨 사고 나던 거 보고 여기까지 따라왔어요. 하연씨 차 바로 뒤에 있었거든요. 그리고 지금 하연씨가 다친 게 다행이라는 이기적인 생각이 들어요. 망설이던 나한테 하연씨 앞에 나설 기회를 준 것 같아서.”

 

 그 다음 말은 차마 인혁이 밖으로 내뱉지 못하고 속으로 삭여야 했다.

 

 ‘그리고 지금부터 나는 당신을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할 겁니다. 과거의 아픔 때문에 당신이란 사람을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걸 확실히 알게 됐어요. 더 많이 사랑하는 것 외에 다른 사랑의 치료약은 없을 테니까. 내가 죽을 만큼 노력하고 사랑하면 당신 한사람 행복하게 해줄 수 있지 않을까?’

 

 눈을 아래로 내리고 다소곳하게 앉아 그가 붕대를 감아주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잠시 동안 바라보았다.

 

 하연 또한 자신이 다쳐서 인혁이 본인의 앞에 있는 거라면 다친 게 싫지만은 않다고 생각했다.

 

 하연이 어색한 마음에 말을 돌린다.

 

 “크흡, 오늘은 일요일인데 문을 연 약국은 어떻게 찾았어요?”

 

 “호텔리어들은 24시간 약국정도는 어디에 있는지 알아두죠. 고객들을 위해. 게다가 여기는 우리 호텔이랑 멀지 않은 곳이라.”

 

 “아...”

 

 “다 됐어요. 불편하거나 그러진 않죠?”

 

 “네.”

 

 “인혁씨는 매너도 좋은 것 같고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호텔리어들은 다 그래요. 그렇다고 해서 내가 호텔 밖에서도 모든 사람들에게 다 그러는 건 아니고.”

 

 “사장님은 그런 거 필요 없지 않아요?”

 

 “나도 호텔직원인척 고객 응대한적 많아요. 요즘은 호텔고객들 중에 아는 사람들은 알아서 못하지만, 불편해 하더라구요.”

 

 “그러고 보니 왜 얼굴을 노출 안하세요? 위에 형 두 분은 네이버 프로필에 사진 딱 뜨잖아요.”

 

 “친구들이랑 막놀고 싶어서요.”

 

 “치.. 인혁씨는 좋은 사람 같아요. 여자친구분은 좋으시겠어요?”

 

 “여자친구 할래요?”

 

 “여자친구 없어요?”

 

 “없어요. 할래요? 여자친구?”

 

 “안할래요.”

 

 “왜요?”

 

 “독신주의니까.”

 

 인혁이 그럼 그때 그 남자는 뭔지 궁금해 죽겠지만 차마 물어보지 못하고 하연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때 그 남자는 뭐냐고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이네요?”

 

 “맞아요. 잘 봤어요.”

 

 “독신주의긴 한데, 연애 한번 못해보면 억울할 것 같아서 해본 건데.. 왜 헤어졌는지는 대충 들어서 아실 거고. 그래서 벌 받았나 봐요.”

 

 독신주의라는 것도 황당한데 연애도 안하겠다니.

 

 “내가 좋은 사람인 것 같다면서요?”

 

 “그래서 안 된다는 거에요. 인혁씨같이 좋은 남자는 좋은 여자 만나세요.”

 

 하연 또한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말이 있었다.

 

 ‘나같이 부모사랑도 모르고 자란 여자 말고.’

 

 “그럼 우선 그냥 친구합시다.”

 

 인혁이 그녀 앞으로 한걸음 다가서고 있었다.

 
 

맨위로맨아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