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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도록 너를
작가 : 카페인부작용
작품등록일 : 2017.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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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너는 무슨맛이니? 나는 죽을맛이다.
작성일 : 17-07-28     조회 : 311     추천 : 0     분량 : 7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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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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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우.. 잘 못 생각한 것 같다. 이렇게 피할게 아닌데. 왜 하연과의 일은 이렇게 망설여지고 판단에 착오가 생기는지 모르겠다.

 

 ‘피하는 게 아니었어. 피하는 건 내가 아닌데.. 지금이라도 가서 말할 건 하고 사과할 건 하는 게 맞아. 흠..’

 

 인혁이 일어나 객실 문을 향해 걸어간다.

 

 띵똥.

 

 "하연씨 갔어?"

 

 "아직 안 갔는데요."

 

 하연이 무표정한 얼굴로 인혁을 쳐다보고 있었다.

 

 무심코 문을 연 인혁이 하연을 보고 기겁을 한다.

 

 그녀의 뒤에서 중호가 급하게 뛰어오다 이미 하연과 맞닥뜨린 인혁을 보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중호를 본 인혁이 손을 전화기 모양을 하고 귀에 대자 중호가 본인의 핸드폰과 인혁의 핸드폰 두 개를 양손에 들어 보인다.

 

 “하...”

 

 인혁이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뜬다.

 

 “하연씨 미안해요. 속이려고 했던 건 아니에요."

 

 "네, 그러셨겠죠. 이렇게 뽀록 날줄은 모르셨겠죠."

 

 '이상해. 왜 화가 풀린 거지? 왜 화가 안 나는 거야?'

 

 하연은 자신이 화가 난 것에 대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가득 찬 인혁을 보자마자 화가 풀린데 대해 이상한 기분이 들었고 당황스러웠다.

 

 "계좌번호랑 수리비 청구서 문자로 보내줘요."

 

 하연이 그대로 뒤돌아서 왔던 길을 되돌아 걸어가기 시작했고 놀란 인혁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 하연의 팔을 잡아 세웠다.

 

 "화 많이 났어요? 정말 미안해요. 하연씨가 점심도 사줬고 해서 보답하는 차원에서.."

 

 "그건 제가 고마움에 산거고 보답이래도 너무 세게 하셨잖아요. 그럼 저도 보답 할 테니까 계좌번호 보내세요."

 

 "그럼 다른 걸로 해줘요. 밥 사고 술사고 영화 보여주는 걸로. 다 친구 사이에 할 수 있는 거잖아요."

 

 하연은 농담하는 걸로 들려 한소리 하려고 인혁의 얼굴을 올려봤지만 웃음기 하나 없는 그의 진지한 얼굴을 보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하연이 인혁의 손을 뿌리치려하자 인혁이 그녀의 팔을 더욱 더 힘주어 잡았다.

 

 “정말 미안해요. 화 풀어요.”

 

 "알았으니까 놔줘요..."

 

 인혁이 하연의 손을 가만히 놓았다.

 

 하연이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자 인혁이 그 뒤를 따랐다.

 

 “따라오지마요. 부탁이에요.”

 

 인혁은 두 손을 허리에 언지고 멀어져가는 하연의 뒷모습을 지켜보다 난처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이마를 매만졌다.

 

 매장으로 돌아온 하연은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재봉틀을 박았다 뜯었다를 반복했고, 드레스일러스트 하나도 제대로 되질 않았다. 아기 엄마드레스를 피팅하면서 시침핀에 손가락이 찔리기를 수십 번, 아기엄마를 찌르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중간중간 핸드폰 발신자에 인혁의 이름이 뜨지만 받지 않았다. 못 받았다는 표현이 맞는 듯하다.

 

 어디서나 당당하고 첫 대화부터 야한 농담을 능글맞게 하던 적당히 여유로운 그런 남자였다.

 

 하지만, 오늘 자신을 보자마자 어린아이처럼 겁먹은 표정을 하고 있는 인혁을 보고서 화가 눈 녹듯 사라져버렸다.

 

 35살 남자가 어떻게 그렇게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표정이 나올 수 있는지.

 

 그리고 자신이 오고 있는 것에 겁을 먹고 객실로 도망쳐 버렸던 걸 생각하면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힘없이 터트리며 피식피식 웃음이 나왔다.

 

 화가 다 풀린 지금 그를 생각하며 실없이 웃으면서도 전화를 못 받고 있는 이유를 본인도 알 수가 없었다.

 

 전화를 못 받을 이유가 전혀 없는데도 말이다.

 

 ‘반성을 많이 한 것 같은 표정이어서 내가 마음이 약해진거야. 오늘은 일도 안 되고 집에 일찍 가서 쉬어야겠어.’

 

 퇴근하자마자 집으로 온 하연이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 몸을 담구었다가 나온 후 거실소파에 누워 무의식적으로 TV채널만 돌리고 있었다.

 

 띠리링.

 

 < 하연씨, 잠깐 나올래요? 집 앞이에요.>

 

 시간을 확인해 보니 9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어? 내가 자고 있으면 어쩌려고 문자야. 기다리다 갈 생각인거야?’

 

 하연은 서둘러 반바지에 끈나시만 입고 있던 복장에 박시한 흰 롱셔츠를 걸쳤다. 이제 밤에는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불어 긴팔을 입어야 되는 날씨가 되었다.

 

 “단추가 왜 이렇게 많아.”

 

 거울로 본인 상태를 확인하던 하연이 머리끈을 찾아 높게 포니테일로 머리카락을 묶었다.

 

 머리카락을 말리지 않고 누워있었던 탓에 머리가 산발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서둘러 아파트 입구를 나서자 바지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고개를 숙이고 바닥을 보며 서성거리고 있는 인혁의 모습이 보였다.

 

 하연이 가까이 다가갈 때까지도 모르던 인혁이 인기척을 느꼈는지 그제서야 고개를 들어 하연을 발견했다.

 

 인혁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주머니에서 손을 빼고 빠른 걸음으로 하연에게 걸어왔다.

 

 인혁과 마주한 하연은 배시시 웃음이 나왔고, 그녀의 웃는 모습을 본 인혁도 그녀를 따라 웃었다.

 

 “화 풀렸어요?”

 

 “...”

 

 “그럼 바람도 시원한데 좀 걸을까요?”

 

 하연이 말없이 몸을 돌려 먼저 걷기 시작하자 인혁이 웃으며 큰 보폭으로 걸어가 그녀의 옆에서 걷기 시작했다.

 

 말없이 어색하게 걷다가 침묵을 먼저 깬 건 인혁이었다.

 

 “가볍게 칵테일한잔 할래요? 이 근처에 있는 것 같던데.”

 

 “그럴까요? 이쪽으로 가면 칵테일바가 있긴 해요.”

 

 “그럼 거기로 갈까요?”

 

 “네, 친구들이랑 가끔 가는데 거기 괜찮아요.”

 

 목요일 밤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자리를 잡고 마주앉은 두 사람은 머리를 맞대고 메뉴판을 보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조금 전까지의 어색함은 사라지는 듯했다.

 

 “하연씨는 뭐 마실래요?”

 

 “저는.. 데낄라 선라이즈 할게요.”

 

 “나는 와인으로..”

 

 인혁이 가볍게 쥔 주먹으로 관자놀이를 받치고 테이블에 기대 메뉴판을 훑기 시작했다.

 

 “어? 그럼 나도 와인”

 

 하연이 테이블 위에 두 손을 겹쳐 올리고 강아지처럼 웃고 있었다.

 

 “그렇게 웃지마요. 오늘 뭔가.. 용기를 내고 싶어지니까.”

 

 “...”

 

 하연이 고개를 갸우뚱 하는 것을 외면하고 말을 돌린다.

 

 “와인 뭘로 할까요? 하연씨 즐겨 마시는 거 있어요?”

 

 “전 와인 잘 몰라요. 친구가 추천해 주는 걸로 마셔서 모르겠어요.”

 

 “음.. 스파클링 와인은 어때요?”

 

 “친구들이랑 와서 먹어본 것 중에 스파클링 와인이 있었는데 그게 되게 맛있는게 있었거든요?”

 

 “그럼.. 나는 즐기는 건 아닌데 이거 한번 마셔볼래요?”

 

 “네.”

 

 인혁이 고개를 들자 웨이터가 다가왔다.

 

 “주문하시겠습니까.”

 

 “와인은 이걸로. 안주로는 적당한 걸로 준비해줘요.”

 

 “네, 알겠습니다.”

 

 웨이터가 가고나자 인혁은 양손을 깍지 끼고 하연을 바라본다.

 

 “술 좋아해요?”

 

 “싫어하진 않아요. 먼저 먹자는 말은 안하는데 친구들이 먹자 그러면 지금처럼 ok하는 편이죠.”

 

 “어디서 주로 마시는 겁니까?”

 

 “우리 집 근처가 되더라고요. 우리 집이나”

 

 “먹고 친구들은 하연씨 집에서 자고?”

 

 “당연하죠.”

 

 “그럼 나도 오늘 하연씨 집에서 자는 겁니까?”

 

 “치. 안돼요.”

 

 “잠은 재워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우리 처음 만난 날 나랑 잘거라고 했잖아요.”

 

 “아아아, 아무것도 안 들린다. 안 들린다.”

 

 민망함에 목덜미까지 붉게 물든 하연이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뗏다를 빠르게 반복하며 중얼 거렸다.

 

 귀여운 하연의 행동에 인혁이 눈을 아치형으로 늘어뜨리고 웃으며 손을 뻗어 하연의 팔을 가볍게 잡는다.

 

 “알았어요. 하연씨가 안된다면 안 되는 거죠.”

 

 “아이 착하다.”

 

 두 사람이 말장난을 하는 사이 주문한 메뉴들이 나왔다.

 

 안주로는 카프레제와 가볍게 조리된 닭가슴살, 야채들이 준비되었다.

 

 “하연씨 술 좀 쎈 편이가? 보통 주량이 어떻게 돼요?”

 

 인혁이 웨이터가 하연의 잔에 와인을 따라주는 것을 보다 그녀와 눈을 맞추며 물었다.

 

 “음.. 소주는 1병 이쪽저쪽이고 와인은 반병?

 

 “맥주는요?”

 

 “맥주는 몰라요. 한 병 마시고 나면 배불러서 더 못 마셔요.”

 

 “음.. 못 마시는 편은 아니네.”

 

 “인혁씨는요?”

 

 “난.. 술 먹고 취한 적 없어요.”

 

 “아 술이 쎄시구나.”

 

 “그런 것도 있겠지만 술은 정신력이라고 생각해요.”

 

 “멘탈이 강하신데 오늘 왜 방으로 도망가셨어요?”

 

 “크흡. 하연씨, 한잔해요.”

 

 인혁이 잔을 들고 내밀자 하연이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장난스럽게 웃으며 잔을 살짝 부딪쳤다.

 

 “와아. 맛있다. 오늘 좀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무슨 맛이지? 그때 그거보다 맛있는데, 버터향이.. 음, 맛있어요.”

 

 “다행이네요. 맛있는 대신 독한편이니 조심해요.”

 

 “무슨 걱정이에요? 든든한 보디가드가 있는데.”

 

 “하아... 나도 남자거든요? 호감있는 여자는 어떻게 해버리고 싶은?”

 

 다른 남자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면 하연은 분명히 기분나빠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대상이 인혁이 되니 그냥 가벼운 농담정도로 느껴졌다.

 

 첫 만남부터 자신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고, 무엇보다 무방비상태의 자신을 어떻게 해버리지 않은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리라.

 

 오늘 낮에는 어린아이같이 순수한 표정을 그에게서 보았고, 지금도 그의 얼굴어디에서는 악한느낌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하연씨는 외동이라고 했죠?”

 

 “네. 인혁씨는 형이 두 분이나 계셔서 외롭진 않으셨겠어요?.”

 

 하연이 급히 대답하고 급히 말을 돌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가족 관계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대체 이 여자는 어떤 상처가 있길래 가족 이야기를 이리도 꺼리고 독신주의까지 된 걸까.

 

 “그랬나? 나이차가 많이 나서. 큰형님이 나랑 13살 차이고 작은형님이 11살 차이가 나죠.”

 

 “아 그렇구나. 늦둥이라 사랑 많이 받으셨겠네요?”

 

 “그랬죠. 부모님께는 넘치도록 받았죠. 한 번도 매를 맞아본 적이 없어요. 큰 형님한테 많이 맞아서 그렇지.”

 

 “왜요?”

 

 “11살? 12살? 그때쯤 부모님한테 짜증을 부릴 때가 있잖아요. 떼쓰고 버릇없이 굴고 그럴 때 방에 데리고 가서 그렇게 때리더라고요.”

 

 인혁이 그때 생각이 나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부모님은 뭐라 안하시고요?”

 

 “왜 안 해요? 한 두 마디 정도 해주셨죠. 봐가면서 때리라고. 니들 삼형제 중에 막내얼굴을 제일 잘 만들어놨으니까 얼굴 건들면 죽여버린다 머 그 정도? 얼굴은 안 건들더라고요. 죽기 싫었나봐요. 진짜 많이 맞아본 게 중학교 1학년 땐가 2학년 땐가 담배 피는 걸 걸려서 야구방망이로 엎드려 뻗친 자세로 엉덩이를 맞았는데 살이 다 터질 정도로 맞았어요.”

 

 “진짜요? 잘못은 맞는데 너무 심했다.”

 

 “응. 침대에 바로 못 눕고 고개를 옆으로 돌려서 엎드려서 누워있었는데, 나는 가만히 있는데 눈물이 계속 옆으로 흐르는 거죠. 작은 형이 와서 약을 발라주는 거에요. 큰형이 약 주면서 발라 주라고 그랬다면서. 담배 피는 거 걸렸냐고. 그랬다고. 자기도 담배 피다 걸려서 이렇게 맞아봤다고. 나는 니가 담배 피는걸 알고 있었다. 큰형한테 담배 피는 거는 절대 걸려선 안 된다고 말해주려고 했는데 이렇게 한번 맞아 보는 것도 추억이 될 것 같아서 말 안 해 준거라고 약 올리더라고요. 말이라도 해줬으면 좀 더 조심했을 텐데.”

 

 “안 폈을텐데가 아니고요?”

 

 하연이 입을 가리고 웃기 시작했다.

 

 “아 그런가? 나가라고 소리 지르고 싶은데 힘을 주면 아프니까 ‘작은형 나가 나가라고..’ 목소리가 작게 나오는 거죠. 그게 걸릴 일이 없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작은형님이..”

 

 “그 생각도 해봤어요. 근데 만약 작은형이 고자질 했던거면 그때 그렇게 멀쩡할 수가 없어요.”

 

 하연이 동그랗게 뜬 눈을 반짝이며 중간 중간 키득키득 웃으며 흥미롭게 인혁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 갈 준비한다고 나왔더니 큰형이 소파에 앉아서 신문보고 있다가 담임선생님한테 너 오늘 학교 못 간다고 말씀드렸다고 왜 맞았는지 지금 상태가 어떤지도 아시니까 방에 가서 엎드려있으라고. 학교 가서 앉아있으면 엉덩이 썩는다고. 금토일 꼬박 엎드려있었어요 그때.”

 

 “그래서 담배 안 피우는 거에요?”

 

 “그치. 그 정도 맞고 나니까 담배는 뭐 쳐다보기도 싫고. 그때 형이 술도 먹냐고. 먹고 있었거든요. 안 먹는다고. 속아준거겠죠? 수능치고 형들이랑 같이 마시러 가자 그래서 그 후로 안마셨어요. 수능치고 형들이랑 포장마차를 갔어요. 내가 가고 싶다고 해서. 사람들이 쟤들 누구 아니냐고 이런데도 오냐고. 쟤가 늦둥이 걘가? 머 좀 안 좋은 말도 하고. 신경도 안 쓰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런 사람들도 많더라고요. 그래서 얼굴이 알려지는 건 안 좋은 거구나 했죠.”

 

 “그랬구나...아 그래서 음.. 그래도 행복한 가정에서 성장하셨네요. 형님들이랑 사이도 좋을 것 같아요.”

 

 “그렇죠. 난 우리형들이 좋아요. 특히 큰형님한테 많이 맞아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큰형님이 되게 좋고 아버지 같은 느낌도 들고, 학교 다닐 때 사고 치면 큰형님이 어떻게 알았는지.. 또...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어떻게 잘 살아있구나 기특할 지경이에요.”

 

 “음.. 그렇구나.”

 

 하연이 부러운 표정으로 손으로 턱을 괴고 인혁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 후로도 이런저런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지만 하연은 본인의 어린시절이라던지 가족들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하연이 인혁의 이야기를 들으며 홀짝홀짝 마신 탓에 와인은 어느새 거의 비워져 있었다. 하연이 거의 반 이상은 마신듯 했다.

 

 “이 와인.. 너무 맛있어요.”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가 반쯤 풀린 하연의 눈은 촉촉하게 젖어 반짝이고 있었고, 그녀의 양 볼은 분홍빛으로 발그레하게 물들어 있었다.

 

 실수 하지 않으려는 듯 행동 또한 느려져 그녀의 몸짓 손짓 하나하나가 요염해보였다. 인혁은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금방이라고 하연의 입술을 덮쳐버리고 싶은 욕망을 간신히 참아내고 있었다.

 

 하연이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눈을 감았다가 다시 고개를 세우며 눈을 천천히 뜨면서 인혁을 쳐다봤다. 섹시한 그녀의 눈빛에 인혁은 숨이 멎는 것 같았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것을 느꼈다.

 

 “나 졸려요. 취했나봐요. 빨리 집에 가야 할 것 같아요.”

 

 하연이 배시시 웃으며 눈을 감았다 떳다.

 

 “하아.. 보내기 싫다.”

 

 “응?”

 

 “아니에요. 일어납시다.”

 

 밖으로 나온 하연이 살짝 비틀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바람도 좋고, 밤하늘도 좋고, 술친구도 좋고. 아이 기분 좋아라.”

 

 하연이 인혁의 팔을 잡고 그를 쳐다보며 웃으며 말했다.

 

 술에 취한 하연은 기분이 업 된다거나 애교를 마구 부리는 쪽이 아니었다.

 

 행동이라던가 말투가 더 차분해지고 잔잔해지면서 섹시한 분위기가 뿜어져나왔다.

 

 천천히 길을 걷던 하연이 관자놀이를 누르며 어지러움을 호소했다.

 

 “어지러워.. 이게 많이 독하구나.. 하...”

 

 인혁이 하연의 어깨를 감싸 쥐고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편의점을.. 봤었는데... 하연씨 저쪽으로 갑시다.”

 

 편의점을 발견한 인혁이 하연을 부축해 파라솔 의자에 앉히고 급히 안으로 들어가 오렌지 주스하나를 사왔다.

 

 “하연씨 이거 좀 마셔요.”

 

 인혁이 한손으로 그녀의 목덜미를 받치고 주스를 조금씩 먹였다.

 

 주스를 받아든 하연이 주스를 요리조리 유심히 관찰하다가 대화를 시작했다.

 

 “너 되게 맛있구나? 어디보자.. 이게 무슨 맛이지? 아.. 오렌지.. 맛이구나? 나는.. 아 머리야.. 아.. 나는 죽을 맛이다.”

 

 그런 하연의 모습을 보며 인혁이 입술을 터트리며 웃기 시작했다.

 

 “인혁씨 나 집에 데려다 줘요. 여기서 잠들 거 같아.”

 

 ‘잠들었으면 좋겠네요. 내방으로 데려가게.’

 

 아파트에 도착해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와서 혼자 내린 하연이 뒤돌아서 졸리는지 눈의 거의 감긴 채로 아기처럼 순수한 웃음으로 인혁에게 인사를 한다.

 

 “오늘 너무 즐거웠어요. 조심히 가세요.”

 

 엘리베이터 안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던 그가 갑자기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리고는 하연의 목덜미와 허리에 손을 두르고 그녀의 입술에 그의 입술이 빠르게 겹쳐져 왔다.

 

 “흡!”

 

 전혀 예상하지 못한 그의 갑작스런 행동에 하연의 눈은 커졌고 있는 힘을 다해 그를 밀어냈다.

 

 놀란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는 하연의 눈빛이 정신없이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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