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아침.
지이잉, 지이잉
거실 탁자에 올려 둔 핸드폰 진동소리에 소파에서 눈을 뜬 하연은 오늘 새벽에 있었던 일이 떠오르면서 괴로움에 소파 쿠션에 얼굴을 묻으며 다시 눈을 감았다.
발신자가 누구인지 확인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었다.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는 인혁에게 손을 흔들고 있는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던 그가 갑자기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리고는 하연의 목덜미와 허리에 손을 두르고 그녀의 입술에 그의 입술이 빠르게 겹쳐졌다.
“흡!”
전혀 예상하지 못한 그의 갑작스런 행동에 잠깐 동안 몸이 굳어있던 하연은 있는 힘을 다해 그를 밀어냈다.
놀란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는 하연의 눈빛이 정신없이 흔들렸다.
너무나도 갑작스런 그의 행동에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던 그녀의 입술에 인혁의 입술이 다시 겹쳐졌다.
그녀를 감싸 안은 그의 팔은 조금 전보다 더 강하게 힘이 들어가 있었고 입술은 너무나도 뜨겁고 강렬했다.
하연의 심장이 무섭게 뛰기 시작했다. 인혁의 팔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써 보았지만 그럴수록 그녀를 안고 있는 힘이 더 강해질 뿐이었다.
“읍! 으읍.”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키스에 하연의 정신이 아득해진다.
인혁은 숨을 뱉어내려 열린 그녀의 입술 사이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의 숨결이 거칠어짐과 동시에 그녀의 입술안의 부드러움을 더 강렬하게 느끼려 목덜미와 허리를 끌어당겼다.
“음으! 읍.”
하연의 그만하라는 비명이 인혁의 입술로 인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인혁의 격렬한 키스에 하연이 숨을 헐떡이기 시작하자 그가 힘겹게 그녀를 놓아주었다.
“하아.. 하아...”
원망과 슬픔으로 가득 찬 하연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더니 이내 후두둑 떨어졌다.
놀라는 인혁을 뿌리치고 현관문으로 비틀거리며 걸어가 도어룩 덮개를 열고 비밀번호를 누르기 시작한다.
삐삐.
하연이 눈물을 닦고 다시 비밀번호를 누르기 시작했다.
삐삐.
하연이 주먹을 쥐고 손등으로 입을 가리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흐흐흑.. 흑..으..흑....“
눈물이 다시 뺨을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비밀번호를 누르면서 시야가 흐려지는지 눈을 감았다 뜨기를 반복한다.
그럴 때 마다 커다란 눈물방울이 뚝 뚝 떨어졌다.
띠리릭.
드디어 문이 열리고 하연이 급하게 들어가려다 비틀거리며 벽을 손으로 짚는다.
“다시는 연락하지 마세요. 이 순간부터 친구관계 종료니까.”
닫히는 문틈으로 현관 바닥에 주저앉는 하연의 모습이 보였다
쾅!
***
“하아.....”
소파에 앉아 무릎에 팔꿈치를 받치고 두 손으로 이마를 감싼 채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는 인혁.
그녀의 심하게 떨리던 눈빛과 눈물 흘리던 모습이 생각나 밤새 잠 한숨 이루지 못하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자신의 이기심 때문에 그녀에게 큰 상처를 준 것이 견딜 수 없이 괴로웠다.
“후우..........”
인혁이 정신을 차리기 위해 소파에서 힘겹게 일어나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하고 나와 하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rrrrrrrr.....rrrrrrrrrrr
받지 않는 전화를 귀에서 떨구다 핸드폰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미간을 구긴 채 고개를 숙이고 힘들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 다시는 연락하지 마세요. -
하연의 그 말이 인혁의 가슴을 무너져 내리게 만들었다.
손등으로 입을 가리고 흐느껴 울던 하연의 기억이 그를 못 견디게 힘들게 했다.
결국 이성의 끈을 잃은 인혁이 주먹으로 벽을 마구 내리쳤고, 그의 주먹을 떼어 낸 벽에는 그의 붉은 피가 묻어있었다.
출근 시간보다 일찍 나온 수척한 인혁을 보며 중호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사장님, 안색이 안 좋으십니다. 어디 불편한 곳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아니, 그냥 좀... 피곤해서 그런가봐.”
“그럼, 오늘 스케줄을 변동할까요?”
“괜찮아. 그대로 진행해. 아! 두바이 비행기 티켓팅이 일요일 몇 시라고 했나?”
“오전 8시 10분입니다.
“음.. 알았어. 나가봐.”
인혁이 쌓인 결재서류들 중 하나를 앞에 던지듯 두고 눈을 감으며 고개를 뒤로 젖혀 의자 깊숙이 몸을 기댔다.
중호가 발걸음을 옮기려다 말고 인혁의 피가 흐르는 손을 보고 걱정스런 표정으로 그를 한 번 더 살펴본다.
인혁의 두 눈을 감은 얼굴이 힘들어 보였다.
***
씻고 나온 하연이 그제야 발신자를 확인한다.
am 7시 12분. 인혁씨.
핸드폰을 엎어버리고 출근 준비를 서둘렀다.
매번 이런 식이다. 하연은 남자인친구들이 없다. 이제 조금 편하게 남자인친구가 생겼다 싶으면 고백을 해오는 통에 거절하다보니 남자인친구가 한명도 없는 것이다.
인혁은 정말 좋은 사람 같아 친구로서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에 실망도 컸다.
문득문득 인혁의 거칠었던 키스가 생각나 머릿속이 어지러웠지만 괜찮아 질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 질것이라고 애써 생각했다.
‘오늘부터는 정말 일만 열심히 할 거야. 그동안 너무 일을 못했어.’
출근준비를 마치고 나온 하연이 자신의 차로 걸어 가다가 걸음을 멈추고 다시 발길을 돌렸다.
인혁을 생각나게 하는 차를 이용하기가 뭐해 그냥 지하철을 이용하기로 했다.
자신의 드레스 매장에 도착한 하연은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정리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꺼내 다시 정리하고 깨끗하게 걸레질을 마쳤다.
웨딩드레스 만드는데 최선을 다해 집중하기 시작했다. 일이 나름 잘 진행되어 인혁의 생각을 머릿속에서 잠시나마 지울 수 있었다.
빠르게 하루가 지나가고 날이 어두워졌다.
지이잉. 지이잉.
인혁의 전화였다. 그냥 끊기도록 놔뒀다. 다시 또 걸려왔지만 역시 받지 않았다.
지이잉.
/ 잠깐 이야기 좀 해요. /
인혁의 문자였다. 시계가 pm10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하연이 고개를 들어 밖으로 시선을 돌리자 인혁의 차가 어렴풋이 보였다.
하연이 굳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매장의 출입문 쪽으로 걸어갔다.
출입문 가까이 다가가자 운전석에서 내려 이쪽을 보고 서있는 인혁의 모습이 보였다.
애써 외면하고 출입문을 안에서 잠궈 버렸고, 또한 밖에서 안을 볼 수 없게 쇼윈도의 블라인드를 매몰차게 쳐버렸다.
하연의 가슴이 찌릿하게 아파왔다.
보통 때와는 다르게 가슴이 아픈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다른 사람들 보다는 좋은 사람이라 확신했고 정말 좋은 친구가 되고 싶은 마음이 컷기 때문이리라 생각했다.
쿵!!!
블라인드가 쳐지는 것을 본 인혁의 가슴에서 무언가가 쿵하고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쿵쾅! 쿵쾅! 쿵쾅!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숨 쉬기 힘들 정도로 심장이 조여 오는 것 같아 거친 숨을 몰아 내쉬었다.
“하아...”
인혁은 더 이상 서 있기가 힘들어 운전석에 몸을 기댔다. 경솔하게 행동한 자신에게 화가나 미칠 것만 같았다.
하연을 앞에 두고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자신과 이 답답한 상황이 숨이 막히도록 힘들었다.
하연이 퇴근하길 기다리다보니 어느새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어젯밤부터 잠 한숨 못자고 먹지도 못했던 인혁은 땅 밑으로 꺼져버릴 것 같은 몸을 힘겹게 일으켰다.
하연에게 다시 전화를 할까 말까 망설이다 출근을 위해 시동을 걸고 그녀의 매장을 한동안 바라보다 그대로 차를 출발 시켰다.
인혁의 차 시동소리를 들은 하연이 블라인드 사이를 살짝 벌리고 인혁이 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왠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지는 것을 느끼며 하던 일에 다시 집중했다.
점심시간이 다가올 때쯤 피곤함을 느낀 하연이 일찍 퇴근 준비를 서둘렀다.
피팅도 오전시간에 다 끝낸 상태고 드레스 만드는 일 또한 어느 정도 진행해 둔 터라 일찍 퇴근해도 무리는 없었다.
문단속을 한 뒤, 돌아서는 하연의 앞에 언제 온 건지 인혁이 서있었다.
하연이 인혁을 피해 가려하자 인현이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하연이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피해가려하자 인혁이 다시 막아선다.
“하연씨, 얘기 좀 해요.”
“저는 할 말 없어요. 비켜주세요.”
인혁이 옆을 지나치는 하연의 손목을 잡았다.
“하연씨.”
하연이 신경질 적으로 인혁의 손을 뿌리쳤다.
“내 몸에 함부로 손대지마요! 무슨 할 말이요? 사과하러 오신 거면 빨리 사과하고 가세요. 그리고... 다시는 찾아오지 마세요.”
고개를 숙이고 인혁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말하는 하연의 목소리는 격양 되어 있었고 분노와 원망이 서려있었다.
대체 왜.. 왜 좋은 관계를 무너뜨려 버린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날 일은 미안해요. 하지만 진심 이었어요. 당신과 친구 따위 되고 싶은 마음 처음부터 없어요. 그렇게라도 옆에 있고 싶었던 거고. 그날 하연씨에게 일방적인 내 행동으로 상처준건 미안합니다. 그렇지만 내 마음을 그렇게라도 표현한 것에 후회는 없어요.”
“...”
하연은 인혁을 피해 걷기 시작했다. 인혁도 더 이상은 그녀를 잡지 않았다.
택시를 타고 멀어져 가는 그녀를 지켜보던 인혁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
그날 밤.
인혁의 단골 Bar, 하연을 처음 만난 그 곳에서 처음으로 취해있었다.
독한 위스키 한 병이 이미 비워져있었고, 지금 기울이고 있는 위스키도 반 이상이 비워져 있었다.
보통 때라면 위스키 두병 쯤 아무렇지 않게 마시던 인혁이었지만 이틀 동안 자지도 먹지도 못한 지금의 인혁에게는 무리였다.
“같이 한잔 할래요?"
강한 향수 냄새를 풍기며 몸에 쫙 붙는 원피스 차림의 낯선 여자가 인혁의 옆자리에 앉는다.
인혁이 눈을 게슴츠레 뜨고 미간을 찌푸리며 눈의 초점을 맞추려고 애를 썻다.
“흠..”
“한잔 줘요.”
잔을 쥔 손의 화려한 네일이 인혁의 뇌리에 박혔다. 인혁이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더니 들고 있던 잔을 거칠게 내려놓고 일어섰다.
비틀거리는 인혁을 낯선 여자가 부축했다.
택시를 탄 인혁이 기사에게 신화호텔로 부탁했다. 옆자리에는 조금 전의 낯선 여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혼자서는 걷기 힘들 정도로 엉망으로 취한 인혁이 여자의 부축을 받으며 호텔로비로 들어섰다.
프론트 직원이 달려오자 인혁이 손을 들어 물린다.
“괜찮아요... 일보세요.”
여자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인혁을 보고 직원들이 몰려들었다.
“갑자기 무슨 일이래. 사장님 한 번도 취한 걸 본적이 없었는데. 저 여자는 또 누구야?”
객실에 도착한 인혁이 방으로 들어가려다 말고 여자와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니가 왜.. 하연...”
“오빠 여기서 이러지 말고 들어가자.”
“너 하연이 아니잖아. 하연이.. 하연이 아니잖아...”
“오빠. 술 많이 취했구나? 나 하연이 맞는데?”
“놔... 중호야.. 중호야...”
“오빠. 왜이래. 이제 들어가자.”
“중호야.”
마침 같은 층에서 객실 담당 호텔리어와 객실을 순찰 중이던 중호가 급히 소리가 나는 곳으로 뛰어왔다.
“사장님!”
중호가 달려와 한쪽 손을 벽에 짚고 기대어 있는 인혁을 안다시피 해 부축했다.
‘사장님?’
여자의 눈이 반짝였다.
“오빠 들어가자. 우리 오빠 부축 좀 해줘요.”
“아니야 중호야. 이 여자... 하연이 아니잖아. 하연이.. 아니잖아... 저 여자 빨리 보내..”
중호가 경멸에 찬 눈빛으로 여자를 노려보고 같이 있던 호텔리어에게 눈짓을 했다.
“아.. 네.”
호텔리어가 고개를 살짝 숙이고 여자에게 몸을 돌려 눈을 맞췄다.
“엘리베이터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여자가 얼굴이 붉어진 채로 걸음을 옮겼다.
침대에 인혁을 눕힌 중호가 그의 신발을 벗겨주고 슈트 재킷을 벗겨 편하게 눕혀 주었다.
“중호야.. 하연이는 향수를 안 뿌려. 하연이는... 네일 같은 것도... 안한다... 그리고..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나를... 밀어내..”
중호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인혁을 내려다보다 인사를 하고 나간다.
***
엘리베이터 안.
“저희 사장님한테 되게 아름답고 우아하고 고.급.스.럽.고 품.격.있.는 애인이 계세요. 하연이라고. 아까 들으셨죠? 그분 얼굴 우리도 다 아는데...”
여자가 민망함에 붉어진 얼굴이 더욱 붉어져 검게 보일정도였다.
얼굴도 들지 못하고 로비를 뛰다시피 걸어 나가는 낯선 여자를 뒤로 하고 아까 중호와 함께 있던 호텔리어가 프론트로 와서 서류에 뭔가를 적기 시작했다.
“아까 사장님이랑 같이 올라간 여자 아니에요?”
“어, 맞아.”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대답한다.
“왜 저렇게 뛰어가요? 무슨 일 있었어요?”
그제야 서류에서 눈을 떼고 펜을 탁 내려놓으며 그 여자가 사라진 쪽을 보며 말을 한다.
“여자 망신 다 시키더라 저 여자. 한 비서님이랑 객실 순찰 중이었는데 어디서 중호야 중호야 부르는 소리가 들리더라고.”
“중호? 중호가 누구...”
“한비서님 이름이잖아, 한중호.”
“아.. 맞다. 네.”
“둘이 있을 땐 이름 부르시나봐. 이름 부르는 거 얼마나 다정하신지. 그래서 달려가 봤더니 저 여자랑 실랑이중인거야. 하연이라는 여자가 있나봐. 저 여자가 하연이라는 여자인척 사장님 방에 데리고 들어가려고 했는지 너 하연이 아니잖아 하연이 아니잖아 그러시면서. 중호야 저 여자 보내. 그러시는 거야. 후우.. 하연이가 누구 래니? 부럽다.”
“아 정말요? 우리는 또 오해를.. 에고... 그때 발목 다쳐서 온 여자가 이하연 이었어요. 얼마 전에 슬리퍼 반납하고 사장님 만나고 갔었어요.”
“그래? 그래서 내가 그러면 안 되는데 저 여자가 하도 미깔스러워서 한마디 했다. 우리 사장님한테 아주 아름답고 우아하고 고급스럽고 품격 있는 애인분이 계시다 아까 들으신 하연이라고. 너 같은 싸구려가 어떻게 한다고 넘어가실 분 아니라는 뜻으로. 그분 얼굴 우리 다 아는데..라고 했더니 얼굴이 벌겋다 못해 시꺼매 지더라?”
“어머, 무슨 그런 여자가 다 있데요? 잘하셨어요!”
“간다, 수고해. 사장님 오해한 직원 있음 소문내고. 이런 건 소문내도 돼.”
“네!”
***
“사장님, 공항 가셔야 합니다.”
“어.. 후우... 아.. 머리야.”
“여기 꿀물 드십시오. 근데 제가 정말 안 따라가도 되는 겁니까?”
“... 안와도 돼. 힘든데 뭐하러 너까지 고생하냐? 거기 나가있는 직원들도 있는데.”
인혁이 시원한 꿀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맛있네. 나 샤워하고 나올게.”
“...사장님! 지금 많이 힘드시면 제게는 힘든 티 내셔도 됩니다.”
“뭐가? 니 앞에서 울라고?”
피식 웃으며 아무렇지 않은 듯 무심하게 농담을 툭 던진 인혁이 욕실로 들어갔다.
“지금 울고 싶으신 겁니까...”
중호가 낮게 중얼거렸다.
***
11시간이상의 비행 후 약간의 휴식시간을 갖고 인혁은 바쁜 두바이에서의 일정을 소화했다.
두바이에 호텔이 지어질 부지를 둘러보고 공사를 맡게 될 신화 건설의 담당자와의 회의도 있었다.
바쁜 일정을 마무리 한 후, 마지막 날에는 결혼 준비를 하고 있는 두바이 왕자와 저녁식사 자리가 있었다.
두바이 왕자는 인혁에게 결혼의 여부를 물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냐는 물음에 그는 짝사랑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 그런가요? 이곳에는 영원한 사랑을 빌어주는 우리 두바이 왕족만이 이용할 수 있는 쥬얼리 매장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커플링을 맞추면 사랑이 이루어진답니다. 제가 이야기 해둘 터이니 그곳에서 커플링을 한 세트 준비하시는 건 어떠신가요?”
“그렇습니까? 좋습니다.”
“여깁니다.”
두바이 왕자가 비서에게 받은 명함 한 장을 인혁에게 건네주었다.
“감사합니다.”
인혁은 곧장 그곳으로 달려가 심플한 디자인의 다이아가 박힌 커플링을 구입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일주일간의 두바이에서의 일정을 모두 끝내고 묵고 있는 호텔로 돌아갔다.
다음날 아침, 제일 빠른 시간의 한국으로 돌아가는 두바항공에 인혁은 몸을 실었다.
***
여는 때 보다 일찍 눈이 뜨인 하연은 원두커피를 내려 한 모금 마시고는 핸드폰을 뒤적인다.
지난 주 금요일 밤을 마지막으로 인혁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다.
왠지 모를 섭섭함에 한숨이 나왔다.
“이하연 니가 밀어냈잖아. 뭘 기대 하는거야.”
하연은 리모콘을 들어 TV를 켰다.
-뉴스 속보-
두바 여객기 추락. 폭파. 신화호텔 서인혁사장 탑승 확인. 충격.
하연은 눈을 감았다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눈을 떠 TV화면을 확인했다.
화면에는 여전히 인혁이 탑승한 여객기가 추락해 폭파했다는 문구와 비행기 잔해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연은 들고 있던 커피잔을 떨어뜨렸고, 뜨거운 커피가 그녀의 발등으로 쏟아졌지만 뜨거움을 느끼지 못했다.
정신없이 흔들리고 있는 하연의 눈에서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