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위엔 달을 가린 구름이 있고,
등 뒤로는 무심히 스치는 차들이 있다.
발밑엔 검은 강물이 흘렀고,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그리고 가슴 속은.
"텅... 비어있다"
무기력하다.
나는 지금 이 무기력한 삶을 끝내기 위해, 리넬 대교 난간에 서 있다. 내 특유의 무기력함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어, 날 휘청이게 한다.
몸이 휘청일 때마다 한번 죽고, 한번 살고.
이 종잡을 수 없는 방향감각은 내 인생의 전부를 차지해왔다. 당장 오늘이 혼란하고 고달파서, 내일을 볼 수 없었다. 걷고 있는 방향이 옳은지에 대해서 생각하는 건, 명백한 사치였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는 건, 어둠 속을 걷는 것과 같다. 한 걸음 앞이 낭떠러지여도 볼 수 없었기에, 그저 내 발끝만을 주시하며 꾸역꾸역 걸었다.
그렇게 살아온 내 인생의 종착지는 결국 이곳이다.
자살명소로 유명하여, 자살대교라고도 칭해지는 리넬 대교.
수많은 인생이 스스로 사라져간 이곳에서, 나는 감정의 흐름과 추억의 호흡을 억제한다.타오르는 분노도, 살 떨리는 원망도, 비탄에 젖은 탄식도, 오히려 삶의 동력이 된다. 그러한 것들이 마음을 할퀴고 지나간 다음에 오는, 공허함이야말로 죽음의 동력이다. 공허함이란, 더 이상 그런 아픔들이 들어오는 게 싫어서, 세상과의 단절을 통해 스스로를 지키고자 하는 의지에서 비롯된다. 그 의지란 참으로 아슬아슬한 것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면 금방 깨지기도 한다. 그걸 알기에 나는 허공을 향해 한걸음 내디딘다.
이 한 걸음으로, 내가 가려고 하는 곳은 죽음의 세상.
한 번 가면 돌아올 수 없는 곳이다. 두렵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벅차오른다. 내가 가려고 하는 세계가 천국일지 지옥일지 모르지만, 내가 있던 세계는 확실히 지옥이기에, 나의 한 걸음은 분명 변수를 초래한다.
그래, 난 변화를 원한다. 그렇기에 죽는다.
안락한 추락감이 엄습한다. 그러나 그 안락함을 만끽하려는 찰나, 어깻죽지 부근에 강력한 통증과 함께 반쯤 잠긴 의식이 깨어나기 시작한다. 누군가 내 손을 잡고 있었다. 이제 겨우 편해지려하는데... 그래 소리 내서 말하자. 분명히 내 의사를 전달하는 거야.
"이거 놔..."
"리브문.. 내 딸.. 포기하지 말거라."
누군가의 육성으로, 사고가 정상궤도로 돌아온다. 잊었던 감각들이 하나둘 제 기능을 시작한다. 제일 먼저 느껴지는 건, 온몸을 뒤덮어 흐르는 땀줄기들. 내 몸은 적잖이 긴장했나 보다.
그렇게 살고 싶을까?
두 번째로 느껴지는 건 비릿한 강바람 냄새. 냄새는 비릿하지만, 바람은 심하지 않다. 세 번째로 느껴지는 건 코끝을 간질이는 긴 흑발. 나의 시선은 흑발을 타고서 점점 위로 올라가, 목소리의 근원을 찾아 나선다. 어느새 구름을 벗어난, 달빛을 등지고 있는 탓에 얼굴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알아 볼 수 있다.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제일 포근하고 익숙한 것 이였으니까.
"엄마? 엄마가 여길 어떻게..."
엄마는 이승을 떠나려는 나를 무리하게 붙잡고 있었다. 엄마의 몸은 거의 반쯤 난간을 넘어선 상태였다. 조금만 더 고꾸라지면, 속절없이 저 검은 강물에 같이 빨려 들어갈 것이다. 그런데도 엄마는 날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미끄러지려 하자 자신의 손톱을 내 손등에 박아서 날 붙잡았다. 통증 때문에 손등에 눈길이 향하여 봤더니, 엄마의 손톱들도 반쯤씩 들려있어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엄마.. 놔줘.. 난 더 이상..."
그때였다. 엄마의 몸이 점점 고꾸라지기 시작한다. 안돼! 놔! 엄마!
아...
잡고 있던 손이 떨어짐에 따라, 추락이 시작되었다. 아니 어쩌면 추락의 끝이라 할 수도 있겠다. 내 인생은 이미 오래전부터 추락 중이었으니까.
지금 이 순간 떠오르는 건...
정말 어이없게도..
다 녹아버린 아이스크림 케이크.
그리고 케이크 상자에 동봉된 팬레터.
[당신은 언제나 나에게 영웅입니다. 동경하고 응원하고 믿습니다. - 아이슈]
미안해요..
이렇게 추락해버려서...
- 신력 998년 8월. 리브문 트라이얼 추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