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이후, 학교는 시끌벅적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예상치 못했던 사건에 아이들의 시선은 전과 확연히 달라져있었다. 사신에게서 새어나왔던 빛과 갑자기 성건의 머리 위로 피어오른 불까지. 그 모든 상황을 지켜본 아이들은 사신이 마법사일수도 있다며 그의 정체를 의심했고, 그 모습을 보지 못한 아이들은 그저 라이터로 불을 지핀 거라며 그 말을 애써 부인했다.
아이들의 입소문이 어쨌던 간에, 그 사건의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인 성건의 상태는 최악이었다. 머리가 화르륵 타버린 탓에 아무리 불을 빨리 껐다고 해도, 화상을 피할 수는 없었다. 짧은 스포츠머리가 새카맣게 다 타버리고, 이마까지 닿은 불이 두피를 새빨갛게 만들었다. 그의 머리는 머리카락 한 올도 남아있질 않은 채, 뺀질뺀질한 빛을 냈다. 끄윽, 끅, 알 수 없는 울먹임을 쏟아내던 성건은 위잉 울리는 구급차 소리를 듣자마자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갑작스레 터진 빅뉴스에 학교에 있던 모든 아이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창문에 착 달라붙어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야야, 김성건이 당했데!” 한 아이에 급박한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아이들은 으악! 하는 비명을 질렀다. 흔히, 학교의 짱이라 불리는 그가, 딱 봐도 여자보다 더 연약해 보이는 사신에게 당한 건, 몇 년 동안 울어먹을 대박 뉴스임이 분명했다.
성건은 구급차에 실려 가는 내내 “강사신! 죽여 버릴 거야!” 라는 말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가 이토록 위협적이지 않게 느껴진 것은 처음이라고 아이들은 생각했다. 머리가 확 벗겨진 대머리 독수리처럼, 기운 빠져 있는 그의 모습이 한없이 약하고 바보같이 느껴졌다. 아이들은 큭큭 거리며, 성건을 비웃었다. 봤어? 완전 대머리라니까.
어떤 아이들은 성건은 당해도 싸다고 통쾌해했으며, 또 다른 아이들은 아무리 그래도 불을 지른 건 너무 심했다며 사신을 비난하기도 했다. 두개의 주장이 선명하게 엇갈리는 가운데, 그 이야기의 주인공인 사신은 그야말로 정신을 놓아버린 채, 어딘가로 끌려가고 있었다. 한참 끝에 탁, 문이 닫히고 자신이 앉아있는 이 공간이 입학식 때 딱 한번 와보았던 교무실이라는 걸 깨닫게 된 순간 그는 멍했던 시선을 바로 했다.
“성건이한테 불을 질렀니?”
“아, 아뇨. 그게….”
“아이들이 다 봤다고 하던데?”
사신을 억지로 맞은편 의자에 앉힌 선생님이 짜증나는 말투로 물었다. 그녀의 눈매는 매섭게 치솟아있었다. 찔리면 피가 날듯, 뾰족하게 쭉 빠진 그녀의 턱이 잔뜩 심술을 담고 있었다. 그는 서늘한 시선을 쏟아내는 그녀가 꼭 마녀 같다고 느꼈다. 동화 헨젤과 그레텔에서 과자 집을 만들어 아이들을 유혹하고, 결국 그 아이들을 집어삼키는 마녀.
“어쩌자고 그랬니?”
그녀가 물었다. 이마가 팽팽해질 정도로 꽉 올려 묶은 머리와 두꺼운 뿔테 안경, 그리고 하얀 셔츠 위에 걸친 짙은 밤색 정장 상의와 빨간 정장 스타일의 치마까지. 조금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그녀의 성격을 반영하듯 그녀의 옷은 섬뜩할 정도로 깔끔하고도 단정했다. 어, 그러니까…. 그는 자꾸만 눈치를 살폈다. 도대체, 이 상황을 뭐라고 설명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사실대로 말할까? 아니, 그런다고 믿어주시긴 할까? 뒤죽 박죽한 복잡한 머리 사이로 그녀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꽂혔다.
“이건 범죄야, 어떻게 할거니?”
그녀가 물었다. 싸늘한 공기가 훅 교무실 안을 끼쳤다. 그는, 그야말로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마음 같아선 당장 뛰어나가 아무나 붙잡고 도움을 청하고 싶었지만 꽉 잠겨져있는 문 탓에 그러기가 쉽지 않았다. 수업으로 인해 텅 비어진 교무실이 오늘따라 야속하게 느껴졌다. 어떡해…, 그는 울컥 차오른 뜨거움을 꾸역꾸역 참아냈다.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팔짱을 낀 그녀가 다리를 휙 꼬며 말했다. 순식간에 푹 풍기는 향수냄새에 머리가 어질해지며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무슨 애가 불을 지를 생각을 해? 너 미친 거 아니니?” 선생님의 언행은 갈수록 거칠어져만 갔다.
“너 때문에, 내가, 할일이, 얼마나, 많아진 줄, 알아?”
그녀는 빨간 매니큐어가 잔뜩 칠해진 손가락으로 그의 머리를 툭툭 치면서 말을 끊어가며 말했다. 뾰족한 손끝이 이마를 찌르며, 따끔한 상처를 냈다. “내가 정말 너 때문에 이게 뭐니?” 씩씩, 내뱉는 콧김엔 불같은 화가 가득했다.
그는 그저 고개를 숙였다. 너무 억울하고, 화나고, 답답해 미치겠는데도 턱 목에 걸린 말이 튀어나오질 않았다. 아니, 그냥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사실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아무리 억울함을 토해내고, 이건 자신도 모르는 일이라고 울고불고 난리를 쳐도 이 상황은 절대 달라지지 않는 걸, 이 지옥 같은 공간을 절대 빠져나갈 수 없다는 걸. 초등학교 1학년, 8살 아이가 하루아침에 겪은 현실은 웬만한 어른도 견뎌내지 못할 정도로 기묘하고, 절망적인 일이 분명했다. 엄마, 나 어떡해…. 울컥 차오른 뜨거움이 그를 점점 무너져 내리게 만들었다. 서러움에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던 그 순간,
“때려치울게.”
매서운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벌컥, 열린 교무실 문 사이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자신도 모르게 휙 뒤를 돈 그가 어? 하는 탄성을 냈다.
“학교 때려치운다고.”
눈에 확 튀는 빨간 머리와 창백한 흰 피부, 몸에 착 달라붙은 짙은 파란색 원피스까지. 누가 봐도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를 뿜어내는 그녀는, 얼마 전 장례식에서 자신을 엄마 친구라 소개했던 미연이었다.
오랜만에 마주한 얼굴은 그때의 그녀가 맞나 싶을 정도로 꽤나 핼쑥해져 있었다. 어, 어떻게 아줌마가 여기에? 화들짝 놀란 그가 입만 떡 벌리고 있을 때, 두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은 그녀가 씨익 웃으며 그를 향해 인사를 건넸다. “안녕, 오랜만이야.” 짙은 밤색의 눈이 따뜻한 시선을 쏟아냈다. 새빨간 머리를 쓱 쓸어 올린 그녀가 곧장 선생님을 향해 다가왔다. 또각또각, 걸어오는 높은 하이힐이 몹시 아슬아슬하게 움직였다.
“자퇴한다고,”
“네? 누, 누구신데요?”
“그건 알거 없고, 알아서 자퇴서 내.”
“…….”
“이딴 쓰레기학교 다신 안 다닐 거니까.”
그녀가 서늘한 시선을 쏘아대며 말했다. 코앞에서 느껴지는 시리도록 찬 기운에 선생은 말을 더듬으며 허, 하는 기가 찬 숨을 내쉬었다. 씨익 웃은 미연이 손을 뻗어 사신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리곤,
“가자, 사신아.”
사신의 몸을 일으켰다. 어, 어? 억세게 손목을 부여잡고 문으로 걸어가는 미연의 행동에 채 다 일어서지 못한 그의 다리가 질질 끌려갔다. “저, 저 아줌마.” 갑작스럽게 벌어진 상황에 당황한 채, 허겁지겁 따라가던 사신이 갑자기 걸음을 멈춘 미연의 등에 쿵 이마를 박았다. 아야, 그는 작게 탄성을 냈다. “아 참, 내가 깜빡했네.” 그녀는 다시 몸을 휙 돌려 선생님을 향해 다가갔다. 터벅터벅, 손목을 잡고 걸어가는 미연의 억센 힘에 사신의 몸이 종잇장처럼 가볍게 끌려갔다.
“얘가 불을 지른 게 아니라.”
“예?”
“걔가 불을 붙인 거야.”
미연은 씨익 하고 웃으며 말했다. 뭐, 뭐야. 선생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 “자, 가자.” 다시 몸을 돌린 그녀가 사신의 손을 꽉 붙잡은 채, 문으로 향했다. 선생님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쉴 새 없이 변했다. 뭐, 뭐야 진짜. 어이가 없어서. 그녀는 잔뜩 붉어진 얼굴에 손부채질을 하며, 허. 하는 기가 찬 숨을 내쉬었다. 이것저것 따질 말은 많아보였지만, 심상치 않은 미연의 기운에 아무 말도 못하는 듯 보였다.
저 아줌마. 또 다시 질질 끌려가던 사신은 “아아, 잠깐만.” 하고, 또 다시 멈춰선 그녀의 등 뒤에 이마를 쿵 하고 박았다. 아야. 그는 잔뜩 울상을 지었다. 그런 그를 알아채지 못한 채, 미연은 휙 뒤를 돌더니 손끝을 뻗으며 외쳤다.
“우(雨, 비)”
순식간에 빛이 주변을 휘감았다. 그리곤, 꺄악! 비명이 터져 나왔다. 천장에서 물줄기가 쏟아지며, 책상, 의자, 정수기, 티비, 심지어 선생님까지, 폭포수 같은 세찬 물줄기가 사방으로 퍼부었다. 선생님은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소리를 질렀다. 사신의 표정이 이상하게 일그러졌다. 이, 이게 도대체…. 멍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사신을 향해, 미연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너무 더워하는 거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