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연의 괴이한 행동으로 인해, 그의 하루는 더욱 더 기묘한 일의 투성이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그는 좀처럼 이 모든 상황을 이해를 하지 못했다. 머릿속이 뒤죽박죽 난장판인 상황에서 그는 꾸역꾸역 생각을 정리했다. 기묘한 일의 끝은, 언제나 기묘하다고.
“자, 타렴.”
그의 손을 잡고 무작정 운동장으로 향한 그녀가 스포츠카 앞에 서서 말했다. 그녀는 차 문을 열고, 곧바로 사신을 밀어 넣듯 뒷자리에 태웠다. 그녀의 머리만큼이나 새빨간 스포츠카가 짙은 가죽냄새를 풍기며 불을 반짝였다. 이게 도대체…. 질문을 알 수 없는 답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운전석에 탄 그녀가 사신을 향해 손짓을 했다. “안전벨트 매.” 백미러로 스치듯 비친 눈이 처음으로 따뜻함을 담았다. 사신은 그 눈길이 너무도 따뜻해서, 자신도 모르게 “네.” 하며 이 상황을 받아들일 뻔했다고 생각했다. 부르릉, 곧장 시동이 걸리고 휙 핸들을 꺽은 그녀가 씩 웃으며 말했다.
“잘했어.”
“네?”
“그 놈한테 잘했다고.”
한대 때려줬어야 했는데, 아쉽네…. 그녀는 혼잣말처럼 말끝을 흐리며 말했다. 괴롭힘 당한 것도 알고 있는 건가? 불을 지른 것도? 근데, 그걸 어떻게? 사신은 그저 입만 떡 벌리며, 지금 이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애를 썼다. 아침부터 자신을 괴롭힌 성건, 자신의 손끝에서 나온 이상한 빛, 그리고, 그 빛이 가져온 화염. 불쑥 찾아온 아줌마와 선생님을 향해 쏟아 붓던 비까지. 도대체, 이게 뭐지? 뒤죽박죽 복잡해진 머릿속에 그의 얼굴이 이상하게 일그러졌다.
그의 마음속에는 자꾸만 알 수 없는 찝찝함이 남아있었다. 아무리 성건이 자신을 괴롭혔다고 해도, 그에게 자신이 저지른 일은 계속 기억 속에 남아 마음을 더 무겁게만 만들었다. 불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어도, 어쨌든 자신이 저지른 불이 아닌가. 그 모든 일을 수습할 생각에 눈앞이 캄캄했다. 이젠 학교도 못다니는 건가? 그럼 나는 어떡하지? 성건이 일 때문에 경찰서에 가게 되면? 그러면 난…,
“성건이 일은 걱정마.”
그녀가 불쑥 그의 생각을 끊으며 말했다. 자신의 생각을 들켜버렸다는 사실에 사신은 화들짝 몸을 떨었다.
“그건 주술사 협…. 아니, 다른 곳에서 알아서 처리해줄 거야.”
그녀는 말을 대충 얼버무렸다. 주술사 협회까지는 말할 필요 없겠지, 코앞까지 차오른 말을 그녀는 꾸역꾸역 삼켜냈다. 어차피, 알게 될 사실이었지만 오늘 일도 벅찬 아이에게 이 모든 걸 설명해줄 필요는 없었다. 데굴데굴 사방으로 굴러가는 눈이 혼란스러움을 가득 담고, 백미러로 힐끔, 그 모습을 바라보던 그녀가 씨익 하고 웃어보였다. 하여간, 애기들은 귀엽다니까….
“이젠 아줌마와 살자.”
그녀는 불쑥 말했다. 예? 그는 화들짝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그, 그게 무슨….”
“아빠도 다 허락 하신 일이야.”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백미러로 마주친 그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며, 입을 떡하니 벌렸다. 아, 아빠까지요? 그는 자신도 모르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꽤나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듯 했다. 힘들어도 어쩔 수 없지, 그녀는 속으로 생각하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구나….”
그는 말끝을 흐리며 대답했다. 커다랗게 뜨인 동그란 눈이 금세 울먹울먹. 그녀는 그 모습을 보고 애써 속상한 마음을 숨겼다. 지금 받아들이긴 힘들겠지만, 언젠간 꼭 알아야하는 일이야, 아줌마도 겪었던 일이고. 그녀는 그 말을 덧붙이려다가 금세 마음을 접고 애써 시선을 돌렸다. 아이에게 이렇게 까지 설명하는 건 너무 가혹한 듯싶었다.
사신은 정말로 이 모든 게 자신에게 내려진 가장 가혹한 벌이 아닐까 생각했다. 내가 엄마 말을 듣지 않아서 그랬나? 착한 아이가 아니라서? 8살 아이에게 내려진 물음들은 끝도 없이 사신을 괴롭혔다. 엄마가 곁을 떠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젠 아빠까지 자신을 버렸다는 사실에 그의 머릿속은 그야말로 흑백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미, 그에겐 오늘 일어난 일들에 대한 생각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아빠까지, 날, 버렸구나. 사신의 머릿속은 이미 끔찍한 결론에 다 달아있었다. 꾹 다문 입이 삐죽 튀어나오며, 창백하게 질린 얼굴이 울컥울컥했다. 그녀의 얼굴이 안타까움으로 물들었다. 아무래도, 지금은 아이라서 이해하기 힘드려나….
*
그의 힘듦은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1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그곳은 참으로 조용하면서 기묘했다. 빨간색으로 잔뜩 칠해진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초록빛 잔디밭이 펼쳐지고, 그 끝에 작고 아담한 집 한 채가 보였다. “자 들어갈까?” 그녀는 조심스레 문을 열고, 그를 안으로 이끌었다. 끼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찬 집 안의 모습이 보였다. 그야말로 난장판. 사방으로 쌓여있는 물건들과 확 풍겨오는 고약한 냄새까지. 그는 이렇게 더러운 집은 이 세상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집이 좀 많이 더럽지?”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이건 다, 버릴게 없는 아주 중요하고 특별한 것들이야.” 그녀의 목소리가 차분하게 울렸다.
집은 참으로 기괴하면서 시렸다. 파란색 벽지가 사방을 감싸고 있는 탓에 눈이 아플 지경이었다. 거실엔 커다란 탁자가 하나 있고, 그 주변으로 수많은 책장이 감싸고 있었다. 탁자 위엔 긴 호리병과 깃털이 달린 펜, 그리고 담요처럼 보이는 망토가 놓여있었다. 그리고, 빗자루와 우산 등등.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 사방으로 흩어져있었다. 책장에는 뭐라고 적혀있는지 알 수 없는 꼬불꼬불한 글자가 적힌 책들이 가득 꽂혀있었다. 그 책들은 꽤나 오래된 것처럼, 색이 바래 낡아있었고, 그 위엔 뿌연 먼지가 가득 쌓여있었다.
코끝으로 고약한 냄새가 풍겼다. 그 냄새는 마치, 가방 안에서 터진 썩은 우유의 냄새 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널찍한 거실 끝에는 지하로 내려갈 수 있는 계단이 있었다. 그녀는 그 밑에 자신의 방이 있다고 소개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오른쪽 벽에는 요상한 조각이 걸려있었는데, 그건 마치 사람의 얼굴 가죽을 뜯어다가 그대로 박아 놓은 것처럼 눈 부분이 뻥 뚫려있었고, 살갗 위로는 수많은 주름이 잔뜩 져있었다. 살이 늘어져 축 쳐진 볼 주변은 벌레가 파먹은 듯 구멍이 뻥 뚫려있었으며, 떡하니 벌려진 입안으로는 수많은 구더기가 끓고 있었다. 우웩, 목 끝까지 차오른 구역질을 겨우겨우 참아 넘기며 그는 애써 시선을 돌렸다. 만약 옆에 아줌마가 없었다면, 바닥에 깔려있는 카펫에 토를 했을지도 모른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소름이 돋은 팔 주변을 쓱쓱 매만지며, 잔뜩 인상을 구겼다. 도대체, 사람 사는 집이 맞긴 한 건지, 미연의 집은 보면 볼수록 경악 그 자체였다. 이런 곳에서 살 수 있을까? 그가 답이 없는 물음을 던지고 있을 때, 그녀가 신이 난 듯 그를 한 곳으로 이끌었다. 잡동사니들로 꽉꽉 차있는 거실을 지나자, 흰색문의 방과 노란색문의 방이 보였다. 그녀는 흰색문의 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제 저기가 너의 방이야.”
사신은 작게 아 하는 탄성을 냈다. 저기가 내 방…. 목소리가 옅게 흐려졌다. 그는 자신의 방이 생겼다는 사실이 참으로 이상하게만 느껴졌다. 불과 오늘 아침까지 살던 집은, 방 하나가 집이였고 방이었으며 주방이었는데. 이젠 자신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사실에 그는 왠지 모르게 떨려오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들어가 볼래?” 그녀가 물었다. 작게 고개를 끄덕인 그가 천천히 방을 향해 다가가고 있는 순간, 바로 옆에 있던 노란색 방문이 벌컥 열리며, 한 여자아이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는 화들짝 몸을 떨었다.
“아, 엄마, 왔으면 부르라니까!”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그 여자아이는 불쑥 튀어나온 노란색 방만큼이나, 샛노란 원피스와 양 갈래로 묶은 머리, 큰 눈망울과 통통한 볼 살을 가지고 있었다. 잔뜩 투정을 부린 아이의 볼이 빵빵하게 부풀며, 토라진 표정을 담아냈다. 그는 그 모습을 보며 가뜩이나 빵빵한 볼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다고 생각했다.
“미안, 일단 목소리 좀 줄일래?”
미연은 곧장 장난스런 말투로 아이를 달랬다. 아이는 수긍하듯 작게 고개를 끄덕인 후에 사신의 앞에 섰다. 그리곤,
“안녕! 난 미인이야.”
큰 목소리로 외치며, 작은 손을 불쑥 내밀었다. “아, 으응.” 그는 멋쩍게 대답하며, 뒤로 주춤 물러섰다. 사신은 정말이지 이 모든 것이 당황스러워 미칠 지경이었다. 아까 전, 미연이 자신의 친구가 될 사람이 있다고 소개했을 때만 해도, 자기와 비슷한 또래의 남자아이일줄 알았는데, 생각과 다르게 자신의 앞에 서있는 것은 아주 작고 귀여운 여자아이였다. 가뜩이나 심란했던 그의 마음에 같이 살게 된 여자아이의 존재는 그 마음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잔뜩 당황한 사신과 다르게 미인은 이 상황이 마냥 즐거워 보였다. 몇 년 동안 친구도 없이 혼자 지낸 탓에 그럴 만도 했다. 드디어, 친구가 생겼다니! 그녀의 마음은 두근거리는 설렘에 풍선처럼 커다랗게 부풀어 올랐다. “친하게 지내자.” 큰 목소리로 외친 미인은 씨익 하고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으응.” 알 수 없는 부끄러움에 작게 대답한 그가 그 작은 손을 꼭 부여잡았다.
“이젠, 우리는 가족이야.”
미인은 말했다. 맞닿은 손은 차가웠지만 사신은 그 온기가 왠지 모르게 따뜻하다고 생각했다. 끼익, 열린 하얀 문 밖에서는 또 다른 세상이 보였다. 그는 망연히 생각했다. 이런 곳이라면, 몇 년이든, 몇백 년이든 상관없을 것 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