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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술사
작가 : 유지
작품등록일 : 2017.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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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절망과 행복의 경계
작성일 : 17-07-28     조회 : 336     추천 : 0     분량 : 4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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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둠, 스산한 숲, 그 숲에 숨겨진 붉게 물든 성, 기도하는 여자, 울고 있는 아이…. 눈앞으로 좀처럼 이해 할 수 없는 장면들이 스쳐지나갔다. 그 것들은 신기할 정도로 어두운 기운을 내뿜었으며, 이상할정도로 익숙하게만 느껴졌다. 그는 어둠 속으로 점점 더 깊숙하게 빠져들었다. 그 어둠 속에선 희미한 무언가가 자신을 향해 말을 걸고 있었다.

 

  ‘강사신.’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끔찍한 목소리, 그 목소리는 마치 커다란 동굴 속에 갇힌 것처럼 묵직하고 스산한 기운을 토해냈다. 그는 급히 주변을 살폈다. 등 뒤를 스치는 서늘한 기운과 다르게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너는 이제 나에게 …주렴.’

 

  검은 형체는 아이를 달래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스산한 공기가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는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아이야.’

 

  그 기운은 머지않아, 그를 집어 삼켰다.

 

  “아악!”

 

  그는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건, 익숙한 자신의 방의 풍경이었다. 하아, 그는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뭐야, 그는 정말이지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매일 반복되던 엄마의 꿈이 아닌, 더 섬뜩하고 기분 나쁜 꿈을 꾸었다. 그건, 마치 지옥 불 속에 빠져있는 것처럼 숨이 막히고, 온 몸이 타오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는 이마에 배어난 흥건한 땀을 손으로 대충 훔쳐 쥐었다. 선명한 달빛이 쏟아져 내린 지독한 밤이 오늘따라 길게만 느껴졌다.

 

 

 

 

  *

 

  그의 인생은 그 날로 부터, 180도 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자신의 존재와 과거를 알게 된 날, 그는 절망에 빠지기 대신 체념하는 걸 택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미연이 했던 말들을 자신이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진 믿지 않기로 다짐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 사실을 미연이 알게 된다면 그에 대해 실망할게 뻔했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미연을 믿지 못했다. 그건, 그가 미연을 좋아하는 것과는 별게의 문제였다.

 

  그는 예전과 달리 컸고, 주술사였고, 과거의 비밀에 대해 속속들이 알게 되었다. 엄마의 얘기를 들었던 그 날,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은 채 밤새도록 눈물을 흘렸지만, 그는 금세 털고 일어났다. 그에겐 영원히 풀어야 될 숙제가 있었다.

 

  생각보다 주술사는 완벽했다. 마냥 연약한 존재였던 자신에게 용기를 주었고, 누군가를 지킬 수도, 제 자신을 보호할 수도 있는 힘을 주었다. 몸 안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기운을 느낀 그 날, 그는 주술사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진 존재가 아닐까하는 바보 같은 생각을 했다.

 

  그는 주술사 중에서도 가장 높은 마력을 가지고 있는 사신이었다. 그걸 알고 있던 엄마가 자신의 이름을 사신이라 지었는지는 미지수지만, 그는 엄마의 유일한 흔적인 자신의 이름을 좋아했고, 그 누구보다도 아꼈다. 그래서, 사신이라 불리는 이름도, 사신이라는 주술사의 직책도 여태까지 살아온 인생에서 최고로 마음에 들어야만했다.

 

  그는 그 날도,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은 채 이건 행복한 일이라며 자신을 세뇌시켰다.

 

  그는 몹시도 행복해보였다. 적어도 미연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사신은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이 주술사가 된 일이 행복해보였으면 하고 바랬다. 그래야, 자신이 해야 할 숙제들을 더 쉽게 풀 수 있으니까.

 

  주술사에 대해 알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아, 그는 주술사에 대한 기대를 숨길 수가 없었다. 그는 분명히 주술사가 굉장히 멋있는 마법사일거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해리포터처럼 하늘을 날고, 지팡이로 푱푱 마법을 쓰고, 볼드모트처럼 악당을 처치하는 모습을 꿈꿨다. 동그란 안경을 끼고 빗자루를 타며 마법을 쓰는 모습, 상상만 해도 정말 멋지지 않은가?

 

  하지만, 그런 기대는 하루아침에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미연은 주술사란 영적인 존재를 소멸시킬 수 있는 사람일 뿐이라며 주술사에 대한 기대를 꺾어버렸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주술사는 생각만큼 많은 마법을 쓰지 못한다고 했다. 아니,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건 주술사 사이의 지켜야 할 조항이기도 했고, 만약 주술사가 너무 많은 주술을 쓰게 된다면, 마력 소진이 빨라지고, 그렇게 되면 주술사의 목숨이 위험해 질수도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쓸 수 있는 주술이 10가지 정도 밖에 되지 않는 다는 사실에 엄청난 절망에 빠졌다. 마법사처럼, 푱푱 튀어나오는 지팡이도 하늘을 날 수 있는 빗자루도 없다니! 현실을 깨닫게 된 순간, 그는 정말로 엉엉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주술사라는 이름 하나로 꾸역꾸역 버텨온 일들이 다 무너지는 걸 느꼈다. 며칠간 방에 콕 박혀 우울감에 빠져있는 그의 모습을 보며, 그녀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다.

 

  그는 우울감에 빠진지 꼬박 일주일 만에 원상태로 돌아왔다. 그건 바로 미연이 그에게 특별한 주술을 가르쳤기 때문이었다. 마신이었던 미연은 80정도의 마력으로 사신보다 낮은 등급이긴 했지만, 오랫동안 주술사로써 활동한 탓에 사신보다 훨씬 더 뛰어난 주술을 많이 알고 있었다.

 

  그녀는, 사신이 훌륭한 주술사로 성장할거라 믿었다. 그래서, 아무에게도 가르치지 않았던 바람, 물, 불 등. 자연의 모든 걸 이용할 수 있는 주술과 물건을 움직일 수 있는 주술, 그리고 사람을 조종할 수 있는 주술까지. 그녀가 가지고 있던 모든 걸 그에게 전해주었다.

 

  100인 마력을 가진 그는 그 모든 걸 쉽게 터득했고 머지않아 훌륭한 주술사로 성장했다. 그는 자신의 손짓하나로 마음대로 움직이는 주전자를 보며, 주술사를 알게 되던 그날처럼, 주술사가 생각보다 멋진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딱히 특별한 마법과 엄청난 마법세계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주술사에게도 정해진 질서와 틀이라는 게 존재했다 아무리 주술사가 흔한 마법사처럼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라 해도, 확실히 인간보다는 우위에 있는 존재임에는 분명했다. 그래서, 미연은 매일 주술사가 갖춰야 할 덕목과 지켜야할 일들에 대해 가르쳤다. 그중에는, 악마와 악귀 귀신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으며, 또 다른 존재인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미연은 인간들에 대해 이야기를 할때 마다 항상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피며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건 마치,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았으며, 인간이라는 단어를 쉽게 꺼내면 안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주술사에 대한 말을 전해주면서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말을 덧붙였는데, 그건 바로 인간과 주술사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였다. 미연은 현재 주술사는 인간을 지키지 않는다고 말했다. 불과 20년전 까지만 해도, 인간을 도와주고 지켜주던 주술사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이제 주술사는 인간들을 보호하지 않는다. 악마와 악귀, 귀신같은 영적인 존재들 주술사가 아닌 인간들이 짊어져야할 짐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녀는 다른 주술사 앞에선 인간들의 얘기를 절대 꺼내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주술사가 인간과 멀어지게 된 계기가, 엄마의 죽음 때문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자꾸만 10년째 그 얘기를 반복하는 미연이 밉게만 느껴졌다. 이젠, 지겨울 정도로 그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그녀는 그 얘기를 절대 멈추지 않았다. 엄마가 죽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왜 주술사들이 인간을 싫어하게 되었는지. 그가 미연의 집에서 살게 된 밤마다 그는 지독한 악몽울 꾸었다. 어둠이 가득한 꿈속에서는 매일 같은 내용이 반복되었다. 수술대에 묶여있는 엄마와 그런 엄마를 고문하는 사람들, 그리고….

 

  “사신아.”

 

  불쑥 끼어든 목소리가 그의 생각을 방해했다. 지독한 꿈속에서 깨어난 그가 “아, 미인아.” 하고 대답하며, 몸을 일으켰다. 미인은 문고리를 잡은 채, 문을 열고 서있었다. 20년이라는 시간동안, 그녀는 꽤 많이 변해있었다. 금발로 염색한 머리와 날렵해진 턱선, 그리고 볼 옆에 생긴 커다란 화상자국까지. 20년전 처음 보았던 티 없이 밝던 그녀의 얼굴엔 이젠 어둠이 가득했다. 미인은 잔뜩 미안한 기색을 비추며 말했다.

 

  “저 미안한데, 고림 아저씨에게서 검은 물약 좀 받아다줄래?”

 

  다른 물약을 손에 들고 흔들거리며, 씨익 웃어 보이는 그녀의 얼굴에 복잡했던 생각들이 사라졌다. “응, 알겠어.” 고개를 끄덕인 그가 곧장 미인을 따라 나섰다. 쾅 닫히는 문 뒤로, 침대 밑에 숨어 있던 어두운 연기가 스르르 퍼지며, 서서히 그 공간을 잠식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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