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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술사
작가 : 유지
작품등록일 : 2017.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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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지독한 꿈
작성일 : 17-07-28     조회 : 333     추천 : 0     분량 : 5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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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신은 스산한 어둠으로, 짙은 어둠으로, 어둠으로…. 계속해서 빠져들었다.

 

  암흑 속에 서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어둠속에 갇혀있었다. 사신은 사방을 뛰어다니며 이 어둠속을 벗어나기 위해 애를 썼다. 하지만, 아무리 주변을 샅샅이 훑어보아도 이곳을 빠져나갈 문은 보이질 않았다. 하아, 짙은 한숨을 내쉰 사신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갇힌 건가? 어둠으로 막힌 공간에선 지독한 정적만이 맴돌았다.

 

  사신은 멍하니 시선을 던졌다. 왜 이곳에 오게 된 건지, 어떻게 해서 여기에 갇힌 건지 아무런 기억이 나질 않았다. 이 공간은 꼭 누군가에 의해 꾸며진 공간 같았다. 억지로 만들어진 동화 속 세계. 그는 이 모든 게 익숙하면서도 끔찍했다. 이게 도대체 뭐지? 여긴 어디지? 답을 알 수 없는 물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때 쯤 저 멀리서 눈부신 빛이 피어올랐다.

 

  사신은 급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곳을 향해 뜀박질을 시작했다. 빛이 더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쿵쿵 거리며 거세게 요동쳤다. 드디어, 드디어 이곳을 나갈 수 있어. 기대감에 벅찬 가슴이 점점 더 발걸음을 빨라지게 만들었다. 빛이 코앞에 다가 왔을 때, 사신은 그 빛을 향해 몸을 던졌다. 눈부심이 온 몸을 휘감고, 사신이 기대에 가득 찬 눈을 떴을 때, 그의 앞에 보이는 건 평화로운 세상도. 이 지긋한 어둠을 나갈 문도 아닌,

 

  “엄마.”

 

  바로, 그의 엄마였다.

 

  사신은 탄성 같은 말을 뱉었다. 그토록 보고 싶던 엄마는 수술대 위에 묶여진 채로 고통이 섞인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어, 엄마가 왜. 그는 말을 차마 잊지 못했다. 마치, 실험실처럼 만들어진 공간 안에는 4명 정도의 여자가 바쁘게 움직이며,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계들을 엄마의 팔에 끼워 넣고 있었다. 푹푹, 여자들이 꽂아 넣는 주사 바늘이 살갗을 파고 들때 마다, 땀으로 잔뜩 뒤덮인 엄마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갔다.

 

  여자들은 준비가 다 된 듯 보였다. 마지막 주사바늘을 꽂아놓은 여자가 나머지 3명을 향해 말했다. “얼마나 버틸 거 같아?” 그 맞은편에 서있던 초록 모자를 쓴 여자가 답했다. ‘그래도, 뭐 주술사라고 하는데 최고로 올려도 괜찮지 않겠어요?“ 나머지 여자들은 그 말에 동조를 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들은 빠르게 기계를 세팅했다. 그리고, ‘전기충격 시작’ 초록색 모자를 쓴 여자가 말을 하며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섰다. 바로 옆에 있던 여자가 고개를 끄덕이고, 곧바로 이상한 기계의 전원을 올렸다. 그리고, 전압을 알 수 없는 전기가 주사바늘을 타고 엄마의 살갗으로 파고들었다. 아악-! 엄마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절규, 절망. 그 모든 게 담겨 있는 끔찍한 비명소리가 새어나왔다. 엄마는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몸을 비틀며 괴로워했다.

 

  “악! 그만해!”

 

  사신은 소리를 쳤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저 끔찍한 일들을 막고 싶었지만 좀처럼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안돼! 사신은 절규 섞인 비명을 질렀다. ‘전압 상승’ 여자는 또 다시 기계의 전압을 올렸다. 으아악-! 귀가 찢어질 듯한 비명소리가 들렸다. 엄마의 몸이 크게 경련하며 사방으로 튀어올랐다. 이제 그만! 그만하라고! 사신은 계속해서 소리를 질렀다. 제발 그만해! 제발!

 

  “그만하라고!”

  “…사신아!”

 

  사신은 벌떡 몸을 일으켰다. 헉헉, 뱉어내는 숨 사이로 흐느낌이 새어나왔다. “왜 그래 악몽 꾼 거야?” 곁에 다가온 미인이 걱정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하얀 침대와 시리도록 파란 방. 그리고 익숙한 냄새, 이곳이 자신의 방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자마자 사신은 안도의 숨을 뱉어냈다. 아, 꿈이었구나…. 흐려진 시야 사이로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진짜 괜찮은 거야?”

  “…응.”

 

  사신은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방이 땀으로 범벅이었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악몽. 엄마가 사라진 이후 지겹도록 숨통을 조여 오는 이 꿈은 매일 밤 사신을 지독하게 괴롭혔다. 하, 젠장. 쿵쾅거리는 심장이 요동치며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목까지 차오른 뜨거움을 꾸역꾸역 참아내며 사신은 찝찝한 생각을 애써 떨쳤다.

 

  “근데 난 어떻게….”

  “하, 정말 너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어.”

 

  미인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 찬 기운이 느껴질 정도로 시린 집 인테리어만큼이나, 차가운 색의 청 셔츠의 단추를 목까지 꼭꼭 채우고, 연청색의 스키니 바지를 입은 그녀가 허리에 척 하고 양손을 올리며 말했다. “내가 그러니까 인간들 도와주지 말라고 했잖아!” 톡 쏘아붙이는 말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사신은 잔뜩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두 손을 모아 싹싹 빌었다. “미안, 이번엔 정말 내가 잘못했어.” 하, 기가 찬 숨을 내쉬며, 잠시 그를 내려다보던 미인이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한번만 더해봐 그냥,” 눈을 흘긴 그녀가 못 이기겠다는 표정으로 침대 맡에 앉았다.

 

  금세 정신을 차린 사신은 작게 아, 하는 탄성을 냈다. 아, 맞다 물약! 사신은 엉덩이를 살짝 들어올리며, 뒷주머니 꽂아놓았던 물약을 찾기 위해 더듬거렸다. 어? 물약이….

 

  “그거 엄마께 부탁했어.”

  “아.”

  “너 뒷주머니에 꽂혀있더라.”

 

  아, 다행이다. 그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마침, 마신이 그곳을 지나가고 있어서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넌….”

  “나에게 또 빚을 졌네.”

 

  미인의 말을 끊고, 누군가 불쑥 치고 들어왔다. “헤이!” 두 손가락을 이마에 척 올렸다가 뗀 한 남자가 입꼬리를 씩 당기며 장난스럽게 웃어보였다.

 

  “오마신, 말 끊지 말라니까!”

 

  미인은 버럭 소리를 쳤다. 그녀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침대 곁으로 다가온 그가 개구진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 거려보였다.

 

  이 남자의 이름은 오마신, 그는 짙은 갈색 머리에 커다란 눈, 그리고 하얀 피부에 190을 웃도는 키와 날렵한 턱선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엉덩이를 덮는 긴 검정 자켓과 찢어진 진청바지 그리고 머리 위에 빨간 끈이 감겨진 검정 마술사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꼭 금방이라도 무대에 올라갈 것 처럼, 반짝이는 수들이 그의 팔 부분에서 영롱한 빛을 내고 있었다. 그는 목뒤로 돌아간 빨간 나비넥타이를 정면으로 빙글 돌려놓으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오마신!”

 

  버럭, 미인은 또 다시 소리를 질렀다. 자신의 말을 무시하는 그의 행동이 좀처럼 마음에 들지 않은 탓이었다. 씩씩, 뜨거운 콧김을 내뱉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마신이 못 이기겠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네네. 공주님. 부르셨어요?”

 

  씨익, 웃은 그가 장난기가 가득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는 언제나 미인을 놀리는 걸 좋아했다. 워낙 장난기가 많은 성격 탓이기도 했고, 화를 내며 씩씩 거리는 미인의 얼굴이 너무 귀여워서 그러는 것도 있었다.

 

  그는 미인의 머리 위에 척 하고 손을 올리며 “자꾸 화내면 주름 생긴다니까.” 하는 능글맞은 대사를 던졌다. 어린아이를 놀리듯, 개구지게 올라가는 입꼬리에 그녀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이, 이 족발 안 치워?”

 

  그녀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아까부터 부글부글 끓고 있던 속은 이미 한계에 다 따랐다는 걸 느꼈다. 그녀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손을 치우지 않은 채, 왼쪽 자켓 주머니에서 빈 호리병을 꺼낸 그가 사신을 향해 휘휘 흔들었다.

 

  “핑크물약이야.”

  “고맙다.”

 

  천만에, 마신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마력이 위험할 정도로 떨어진 사신을 살려준 것은, 바로 이 핑크물약이었다. 핑크물약은 마력을 회복해주는 물약 중 하나였는데, 인간이 누군가를 사랑할 때 나오는 특유한 호르몬으로 만들 수 있는 꽤나 귀한 약이었다. 그걸 마신이 어떻게 구한건지 알 수 없었지만, 인간과 가까워지기 힘든 세상에서 이 약을 구해왔다는 건 엄청난 위험을 감수했다는 것을 뜻이기도 했다. 고마워. 그는 또 다시 마신을 향해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현재 마력 50%. 핑크물약이 10%까지 떨어진 마력을 끌어올려 50%까지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아직 회복하기 위해선 꽤나 긴 휴식이 필요했지만 그래도, 이정도면 당분간 활동하는 데는 큰 문제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물끄러미, 사신을 내려다보던 마신이 흠흠, 하고 헛기침을 하며 그의 관심을 끌었다.

 

  “이거 구하기 힘든 거 알지? 인간이 누군가를 사랑할 때만 나오는 물약이라고, 내가 이거 만들려고 얼마나 많은 여자를 꼬셨….”

  “치우라니까!”

 

  아차, 성미인. 그의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마신은 ‘망했다’ 라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말하는데 정신이 팔려 미인의 심기를 계속해서 건드려 놓다니, 어느 정도 하고 그만 두었어야했는데 이미 그 도를 지나치고 말았다. 제길! 마신은 잔뜩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그는 앞으로 다가올 일이 무섭게만 느껴졌다. 그건, 평소에 미인의 성격이 얼마나 더러운지 잘 알고 있던 탓이었다.

 

  방 안이 쩌렁쩌렁 울리게 소리를 친 미인이 탁 하고 날카롭게 그의 손을 쳐내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반지를 낀 손으로 크게 원을 그리며, 마신을 향해 손끝을 뻗었다.

 

  “화(火, 불)”

  “아악!”

 

  새빨간 빛이 방 안을 감쌌다. 그리곤, 마신의 자켓 위로 화르륵 불이 붙었다. 악 뜨거! 그는 사방을 팔팔 뛰어다니며 불을 끄기 위해 애를 썼다. 방 안으로 재가 날리며, 뿌연 연기가 가득 찼다. “성미이인!” 울음 섞인 목소리를 낸 그가 급히 자켓을 벗고 헐레벌떡 방 끝에 있는 화장실로 향했다.

 

  흥, 콧방귀를 낀 미인이 문을 쾅 소리가 나도록 닫은 채 밖으로 나섰다. 콸콸, 물이 쏟아져 나오는 소리와 함께 “이거 내 소중한 옷인데에….” 하는 마신의 울먹임 소리가 들려왔다.

 

  “못 말린다니까, 진짜.”

 

  사신은 푹 하는 웃음을 터트렸다. 무작정 주술을 쓴 미인이나, 그걸 당하고 있는 마신이나 참으로 웃긴 상황이 아닐 수가 없었다. 마신이 마인에게 당했다는 사실을 알면, 다른 주술사들은 깔깔되며 평생 그를 놀릴지도 몰랐다. (미인은 마인으로 마신보다 낮은 등급의 주술사이다) 꾸역꾸역 억지로 웃음을 참아낸 사신이 티를 내지 않기 위해 흠흠 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머지않아 물소리가 그치고, 터벅터벅 무거운 발걸음으로 화장실을 나온 마신이 물에 젖은 자켓을 툭 땅바닥에 떨어트렸다. 그의 얼굴이 잔뜩 시무룩했다.

 

  “괜찮아? 데인건 아냐?”

 

  사신은 물었다.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마신의 얼굴이 꽤나 안 좋아보였다. 진짜 다친 거 아냐? 미인이는 애 다치면 어쩌려고, 평소에 주술사 사이에서 또라이라 불리는 미인의 행동에 당황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긴 했지만, 그의 얼굴을 보아하니 이번엔 상황이 꽤 심각한 듯 했다.

 

  사신은 몸을 벌떡 일으켰다. 진짜 다쳤으면 어떡하지? 그의 머릿속에는 최악의 상황이 그려지고 있었다. 사신이 그를 향해 다가가던 순간, 고개를 숙이고 있던 마신이 퍼뜩 고개를 들며 하, 기가 찬 숨을 내쉬었다. 그는 머리를 쓸어 올리더니, 문을 바라보며.

 

  “진짜 섹시해.”

 

  윙크를 날렸다. 아, 하는 탄성을 낸 사신의 표정이 썩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는 생각했다. 진짜 또라이는 여기에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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