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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술사
작가 : 유지
작품등록일 : 2017.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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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악귀의 욕망(1)
작성일 : 17-07-28     조회 : 348     추천 : 0     분량 : 5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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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깐 잠들었다 깬 사이에 하늘은 이미 어두워져있었다. 상체를 벌떡 일으킨 사신은 금방 회복된 몸을 느꼈다. 마력이 위험할 정도로 떨어지긴 했지만, 마신이 준 물약을 먹은 탓에 위험한 고비는 넘길 수가 있었다. 핑크 물약은 마력을 회복시켜주는 역할을 했는데, 그 물약을 먹게 되면 마력이 50% 정도 크게 상승했다. 그 물약을 마신이 어떻게 구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꽤나 어려운 일을 해낸 것은 분명했다. 사신은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마신에게 이 고마움을 꼭 값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곧장 거실로 향했다. 거실에서는 긴 탁자 위에 각종 물약을 늘어놓은 미인이 비커 위에 물약을 부으며, 새로운 물약을 만들고 있었다. 마신은 그녀가 태워먹은 자켓을 새로 구매해야한다며, 자리를 뜬지 오래였다.

 

  “뭐해?”

 

  그는 미인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녀의 주변에는 뿌연 연기가 일어나며, 쾌쾌한 냄새를 풍겼다. 인기척을 느낀 그녀가 곧장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퍼뜩 들었다. 딱 마주친 미인의 시선이 몹시도 사납게 변해있었다.

 

  “도대체 왜 그렇게 인간을 도우려 하는 거야?”

 

  그녀는 숨을 씩씩대며 말했다. 그동안, 참고 참았던 화가 터져버린 모양이었다. 그녀는 겨우 꾹꾹 참아내던 그에 대한 물음을, 무려 2년 동안 만들던 물약이 실패로 돌아간 탓에 쌓여버린 화와 함께 표출했다.

 

  “넌 인간이 밉지도 않아?”

 

  싸늘한 목소리가 귓가에 꽂혔다. 비커에 담긴 물약을 잡고 있는 손에 세게 힘이 들어가며, 손끝이 새하얗게 질렸다. 미인은 정말이지 사신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인간이 주술사들에게 어떤 짓을 했는데, 그걸 보고도 어떻게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대할 수 있는 건지 정말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사는 거야! 그녀의 속은 시커멓게 썩어 문드러졌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본인의 엄마이면서 어떻게!

 

  “…미워.”

 

  사신은 불쑥 대답했다. 푹 숙여진 고개위로 비친 표정이 차갑게 굳어있었다. 입을 달싹이던 미인이 하 하는 한숨을 내쉬며 물약을 탁자 위에 세게 내려놓았다. 금방이라도 쏟아져 나올 듯, 일렁이던 물약이 잠잠해지며 뿌연 연기를 뿜어냈다. 그는 또 다시 말했다. 너무나도 미운데….

 

  “그 짓을 한 사람들은 잘못된 거지만, 다른 사람들은 잘못이 없잖아.”

  “하, 너도 참….”

 

  속도 없다. 그녀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한심하게 그를 바라보던 미인이 “맘대로 해.” 라는 말을 사납게 뱉고는 곧장 자리를 떴다. 그리곤, 쿵, 세게 닫히는 방 문소리에 참아왔던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는 애써 자신의 마음을 거짓으로 말했다. 그게 자신에게도 미인에게도 편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나, 우리 엄마 그렇게 만든 사람들 찾게 된다면…,”

 

  그는 문이 닫히자마자, 꾸역꾸역 참아왔던 말을 내뱉었다. 그땐 정말로.

 

  “그 인간들, 죽일지도 몰라.”

 

  그의 목소리가 차갑게 흩어졌다.

 

 

 

  *

 

  그의 악몽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얼마나 버틸 거 같아?”

 

  또 다시 꿈속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지독한 실험실, 엄마는 침대 위에 묶여있었다. 한 여자가 물었다, 그러자, 초록 모자를 쓴 여자가 답했다. ‘그래도, 뭐 주술사라고 하는데 최고로 올려도 괜찮지 않겠어요?’ 나머지 여자들은 그 말에 동조를 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넌 …아이야.’

 

  이상한 목소리가 들렸다. 사신은 억지로 눈을 감고 그 상황을 보지 않으려 노력했다. 여자들은 빠르게 기계를 세팅했다. 그리고,

 

  “전기충격 시작”

 

  곧바로 기계의 전원을 올려졌다. 전압을 알 수 없는 전기가 주사바늘을 타고 엄마의 살갗으로 파고들었다. 아악-! 엄마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이제 내게 오렴.’

 

  절규, 절망. 그 모든 게 담겨 있는 끔찍한 비명소리가 새어나왔다. 소름끼치는 목소리가 자꾸만 그 상황과 겹쳐져서 나타났다. 엄마는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몸을 비틀며 괴로워했다.

 

  ‘넌 내 아이야.’

 

  소름끼치는 목소리. 그는 또 악몽에서 깨어났다. 아악! 외마디 비명과 함께 지독한 꿈에서 깨어난 그가 습관처럼 침대 시트를 더듬었다. 꿈이었구나…,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그는 자꾸만 그 모든 게 꿈이었다는 걸 확인하려 애썼다.

 

  꿈은 참으로도 지독했다. 그는 그 모든 게 꿈일 뿐이라고 애써 자신을 달래려했지만, 왠지 모르게 찝찝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저 인간들의 욕심으로 벌어진 끔찍한 사건일 뿐이란 걸 알면서도, 왠지 모르게 꾸며진 공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누군가가 자신에게 그 사실을 억지로 세뇌시키기 위해 만든 동화 속 세계, 같은 내용이 반복되는 꿈은 이상하게도 허점을 보였다. 처음엔 끔찍하기만 했던 그 곳은 점점 갈수록 연극 같은 느낌이 강했다. 엄마에게 이상한 약물을 투여하는 인간들, 고문하는 기계들의 위치와 묶여있는 엄마의 얼굴이 이상했다. 그리고, 자꾸만 귓가를 울리는 끔찍한 목소리까지. 그는 이 모든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느낌이 자꾸만 들었다. 혹시 설마.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그의 생각이 최악의 상황까지 미치자, 그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땀으로 범벅이 된 이마를 손으로 대충 닦아내며, 억지로 생각 속에서 깨어났다. 어떻게 되었든 간에 꿈은 꿈일 뿐이었다. 그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정신 차리자 강사신. 꾸역꾸역 치밀어 오르는 이상한 생각을 거두고,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부엌으로 가서 물이라도 한잔 마셔야할 듯싶었다.

 

  쾅, 문이 닫히고 머지않아 침대 밑에 숨어있던 검은 형체가 스물스물 밖으로 기어 나왔다. 그건, 꼭 바닥에 떨어트린 푸딩 같이 탱글거렸으며, 연체동물을 보는 것처럼 부드럽고 유연하게 움직였다. 그 검은 형체는 바닥을 기어 창가 쪽으로 움직였다. 그리곤, 창문에 척 하고 달라붙더니, 작게 벌어진 창문 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그 것은 액체 상태로 변해 창문을 넘어 벽을 타고 흘러내려가며, 마당을 향해 뚝뚝 떨어져 내렸다. 물방울처럼 흩어진 검은 형체는 머지않아 또 다시 뭉쳐지며 하나의 덩어리가 되었다. 그리곤,

 

  “아, 엄마. 나 돈 좀 보내달라니까?”

 

  마당 주변으로 한 여자가 전화를 하며 지나갔다. 그녀는 주황색 바람막이와 짧은 트레이닝 반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딱 보기에도 연약해 보이는 팔 다리가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 야위어있었다. 그녀는 짙은 갈색의 긴 생머리와 작게 쭉 빠진 눈, 그리고 커다란 반창고를 코에 붙여놓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정소진이였다.

 

  “뭔 또 성형수술이야! 나 이제 그런 거 안 해. 그냥 돈이 없어서 그런다니까? 좀 보내달라고!”

 

  소진은 전화에 대고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잔뜩 일그러진 얼굴엔 짜증이 가득했다. 딱 듣기에도 알 수 있듯이 그녀는 오늘도 엄마에게 전화를 해 돈을 보내달라는 싸움 아닌 싸움을 하고 있었는데,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아 몹시도 화가 난 상태였다.

 

  ‘아니, 또 무슨 돈을 보내 달라는 거야. 이젠 엄마도 돈이 없어.’

 

  수화기에서 새어나오는 엄마의 목소리엔 지친 기운이 가득했다. 그녀는 표정을 잔뜩 일그러트렸다.

 

  “아 몰라, 내일 까지 보내!”

 

  버럭 소리를 친 그녀가 머지않아 전화를 끊었다. 보내달라니까 왜 난리야. 구시렁대던 소진은 잠바 주머니에 뜨거워진 핸드폰을 쑥 집어넣으며 투덜거렸다.

 

  검은 형체는 어느새, 그녀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물처럼 흘러내려가더니, 머지않아 그녀의 신발 뒷 굽에 척하고 달라붙었다. 스물 스물 그 것은 스산한 기운을 뿜어내며, 그녀의 다리 위를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 뭐야.” 다리에서 느껴지는 소름끼치는 감촉에 그녀가 급히 종아리 부분을 더듬었지만, 만져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기분 탓인가? 알 수 없는 찝찝함에 왠지 모르게 온 몸이 더러워진 기분이 들었다.

 

  “빨리 집에 가서 샤워나해야지.”

 

  걸음을 재촉하는 그녀의 뒤로 검은 형체가 점점 타고 올라와 그녀의 엉덩이, 허리, 등을 거쳐 서서히 머리로 향했다. 그건, 꼭 그녀를 정복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액체처럼 흩어진 검은 형체는 물방울이 되어 순식간에 그녀의 귓구멍을 파고들었다. 그녀의 걸음이 우뚝 멈추어 섰다. 검은 기운은 머지않아, 소진의 머리를 잠식해나갔다. 꺄악! 어두워진 골목길에 끔찍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가 방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어슴푸레한 새벽의 빛이 다가오고 있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되었나? 그는 이상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침대 곁에 있던 시계를 들어올렸다. 분명, 부엌에 다녀 온지 5분정도 밖에 되지 않은 것 같은데, 하늘은 아까와 다른 색을 띄고 있었다. 누가 왔었나? 방 안에선 기분 나쁜 스산한 기운이 맴돌았다. 주변을 살피던 그는 창가로 다가가려하다가 금세 마음을 접었다. 아니 됐다. 사신은 침대 위에 앉으며, 베게 옆에 들고 있던 시계를 내려놓았다.

 

  그는 애써 불안한 생각을 접으려했다. 안 그래도, 이것저것 신경써야할 문제들이 많은데 사소한 것 까지 해결해야한다면, 머리가 터져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제 그에게 남은 건 해결해야 할 숙제뿐이었다. 엄마의 죽음과 그 날 이후로 지겹도록 귓가를 울리는 목소리, 그리고, 자신을 이곳에 데려온 미연까지. 그가 풀어야할 숙제들은 갈수록 산더미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도대체, 그는 누구지? 그리고 미연의 정체는…,

 

  ‘그의 피, 그의 피 냄새가 나.’

  “제길!”

 

  그의 생각을 방해하듯, 끔찍한 목소리가 귓가로 파고들었다. 그는 아악! 비명을 지르며, 억지로 두 귀를 틀어막았다.

 

  ‘그의 아이, …의 피를 받은 아이.’

 

  소름끼치는 목소리는 계속해서 그를 괴롭혔다. ‘피 냄새가 나. 짙은 피 냄새’ 목소리의 울림은 점점 더 커져만 가고 있었다. 제발, 제발 그만해! 그의 절규는 점점 더 짙어져만 갔다.

 

 

 

 *

 

  어둠이 가득한 방 안에는 지독한 냄새가 풍겼다. 그 속에서 킬킬되는 목소리가 들렸다. 검은 형체는 어느새 여자의 주변을 맴돌았다.

 

  동그란 거울 앞에 한 여자가 다가섰다. 섬뜩한 눈빛이 거울 속을 비추었다. 그녀는 빨간 매니큐어가 가지런히 칠해진 손톱으로 거울 위를 긁어내렸다. 끼익, 끽. 손톱이 거울과 마찰하며 끔찍한 소음을 만들어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있으면 돼, 그녀는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웅얼거리며 말했다. 찾아야하는데, 누구껄 가져오지? 누구껄…. 섬뜩한 목소리가 공간을 울리고, 붉은 손톱 끝이 거울 주변을 세게 할퀴었다. 잠시 고민하던 그녀의 입가에 살며시 미소가 돌았다. 아, 그게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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