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그와 마찬가지로 절규를 쏟아내는 또 한명의 소녀가 있었다.
스산한 바람이 불었다. 이술은 그와 비슷한 꿈속에서 혼자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그녀는 익숙하게 주변을 더듬었다. 사방이 꽉 막힌 것처럼, 딱딱한 벽의 촉감이 느껴졌다. 꿈이구나, 그녀는 순식간에 이 모든 게 만들어진 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수없이 반복되던 악몽은, 이제 더 이상 그녀에게 공포와 두려움을 주지 못했다. 그녀는 주변을 살폈다. 그녀는 이곳으로 누군가가 올 거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또 만났네.”
머지않아, 저 멀리 어둠 속에서 검은 형체가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왔다. 악귀다. 그녀는 그것을 보자마자 말했다. 벌써 10번도 넘게 만난 그 존재는 사람들이 보이겐 흉측한 괴물이었지만, 그녀가 보기엔 아주 못생긴 한 명의 사람처럼 보였다. 악귀는 사뿐히 이술의 앞에 내려앉으며, 흰자가 가득한 두개의 눈을 번뜩였다.
“오늘도 너구나.”
그가 말했다. 귀까지 찢어진 커다란 입이 뾰족한 이빨을 드러내며, 킬킬대는 웃음을 흘렸다. 악귀는 그녀에게 얼굴을 바짝 같다대며 말했다.
“…가 되길 원했던 인간의 아이.”
악귀는 일부러 웅얼거리며 말을 흐렸다. 코앞까지 다가온 얼굴에 이술은 자신도 모르게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섰다. 피부가 찢어진 것처럼, 잔뜩 트여진 악귀의 얼굴 살갗사이로 붉은 피가 비추었다. 피부가 건조해서 잔뜩 일어나버린 피부를 보는 것만 같았다. 악귀는 얼굴뿐만 아니라 모든 몸에 튼 살갗을 가지고 있었다. 잔뜩 벌어진 피부 사이로 고여 있는 붉은 피들은 그 흉측함을 배가 되게 만들었다.
악귀는 검은 날개를 접으며, 커다란 자신의 몸을 가렸다. 짙은 검은색 날개가 몸의 반을 덮어버리자, 어둠으로 가득 찬 그 곳에선 꼭 악귀의 얼굴만 동동 떠다니는 것 같이 보였다. 마치 얼굴만 있는 괴물처럼, 잔인할 정도로 역한 악귀를 본 그녀가 억지로 시선을 피했다.
“탐하지 말아야할 걸 탐한 자의 결과는 언제나 처참하지.”
악귀는 침을 잔뜩 흘리며 말했다. 그의 시선엔 허영심과 오만함, 그리고, 알 수 없는 욕망이 가득했다. 뚝뚝, 떨어진 침이 바닥을 적시고, 그 것들이 모여 웅덩이를 이루었다. 그 웅덩이는 마치 호수처럼 커다랗게 변해, 투명한 거울처럼 그 속에 무언가를 비추었다.
“네 엄마는, 그를 화나게 했어.”
그 속엔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 작은 학교와 그 안에 있는 교실, 그리고, 그 교실에서 울고 있는 한 아이. 그녀는 작게 악! 하는 비명을 질렀다.
“그게 네가 받는 저주의 이유야.”
이술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 웅덩이 속엔 어리고 어린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쉬는 시간 신나게 뛰어노는 다른 교실 아이들과 다르게 소녀가 앉아있는 그 교실은 초등학교의 교실이 맞는 걸까? 싶을 정도로 소름끼치는 정적이 맴돌다. 초등학교임에도 특이하게 아이들의 모습을 좀처럼 찾아볼 수가 없었다.
교실에 있는 사람이라고는, 어린 소녀인 이술뿐이었다. 그 소녀는 바닥에 쪼그려 앉아,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었다.
‘나 때문이야. 다 나 때문에….’
소녀는 작게 웅얼거리며 말했다. 울음이 가득한 그녀의 눈은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로 가득 차올랐다. 그녀는 자신의 손을 빤히 바라보더니, 머지않아 그 손을 이로 세게 물어뜯었다. 작고 여린 손에는 이미 흉측한 상처들이 가득했지만, 그녀는 좀처럼 자해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그 것은 마치 몸에 달라붙은 끔찍한 벌레를 죽이는 행동처럼,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이어졌다.
“끔찍해, 끔찍하다고!”
소녀는 마치 동물처럼 크게 울부짖었다. 손에는 상처가 깊게 파여 피가 철철 흐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소녀는 자신의 손을 마구잡이로 뜯고 핥퀴고 때리는 행동을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그만해!!!”
과거는 이술의 숨통을 죄여왔다. 그녀는 악에 받힌 절규를 질렀다.
“타락의 호수, 인간들에게 가장 끔찍한 순간을 보여주는 시간 거울이지.”
악귀는 킬킬 대며 말했다. 그는 이 상황이 몹시도 즐거운 것처럼 보였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악귀들의 가장 큰 기쁨은 인간들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었다. 울고, 좌절하고, 타락하는, 그런 사악하고 끔찍한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악귀들은 지나친 재미를 느꼈다. 역시, 무당의 아이라 다른 건가? 악귀는 피부에 와 닿는 악에 받친 절규를 느끼며, 킬킬대는 웃음을 흘렸다.
이술은 정말이지 죽을 것만 같았다. 지독했던 과거, 끔찍했던 사건들. 그녀에겐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기억들이 자꾸만 그녀를 고문했다. 악귀는 크게 손을 펼쳤다. 그리곤, 손가락으로 커다랗게 원을 그려 그녀의 과거를 더욱 더 크게 부풀렸다. 과거는 점점 더 커져, 그녀에게 폭풍처럼 밀려왔다.
초등학교 1학년, 8살이었던 이술은 그때까지 만해도 꽤나 평범한 편에 속했다. 이술은 산속 통나무집 노부부에게 키워졌는데, 그건 노부부가 태어난 지 3달도 안돼 보이는 이술을 산속에서 발견 했을 때 부터였다.
이술은 고아였다. 소녀의 엄마는 산속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는데, 엄마의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이술은 산속에서 엄마의 시체와 함께 발견되었다. 엄마의 시체는 산 중턱에 위치해있었고, 그 아이는 산비탈을 굴러 떨어져 산 아래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진 채, 큰 목소리로 울고 있었다. 사망한 시각은 새벽 1시로 추정. 그 밤중에 왜 엄마가 산속으로 향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투성이었지만, 사건이 복잡해질 것을 안 경찰들은 그것을 그저 단순한 사고일 뿐이라고 결론 지어버렸다.
이술은 산비탈을 굴러 떨어졌음에도 운 좋게 살아남았다. 아마, 소녀의 엄마가 이술을 마지막까지 품속에서 놓치지 않으려 애를 쓴 탓에 크게 다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소녀는 워낙 어린나이에 버려진 탓에 자신의 나이도, 이름도 알지 못했다. 그걸 딱하게 여긴 노부부가 결국 소녀를 자식처럼 키우기로 마음먹었고, 그 아이가 바로 지금의 이술이 되었다. 그 소녀는 작은 얼굴과 큰 눈, 그리고 눈에 띄게 흰 피부를 가지고 있었는데, 다른 아이들과 다를 게 하나 없을 정도로 평범한 편에 속했다.
평범했던 소녀가 평범한 아이라는 흔하고 흔한 이름을 벗어 던진 건, 바로 초등학교 1학년,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부터였다. 8살, 어린 나이였던 소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또래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고, 그게 바로 이 불행의 시작이었다.
입학식. 아이들이 바글바글한 학교에선 꺄르륵 거리는 높은 목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졌다. 산속생활을 오래했던 이술은 처음 만난 또래 아이들이 너무도 반갑고 신기했다. 그래서, 그녀는 방방 뛰어다니며 모든 반 친구들에게 인사를 하고, 친하게 지내자는 말과 함께 악수를 건네며, 그 누구보다도 활발한 입학식을 보냈다.
처음으로 친구를 사귀게 되고, 처음으로 할머니가 사준 짜장면을 먹었던 그 날. 입학식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올때 까지만 해도 그 소녀의 기분은 그야말로 하늘을 날고 있었다. 이렇게 행복한 적은, 태어나서 처음 겪어본 일이라고 생각했다. 당장 내일부터 같이 수업을 듣고, 이야기를 할 친구들이 생겼다는 사실이 미치도록 행복했다.
하지만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것도 바로, 그 소녀 자신 때문에….
그 끔찍한 사건은, 전날 밤 꾸었던 악몽으로 부터 시작된다.
소녀는 처음으로 꿈을 꾸었다. 처음 겪는 일에 이술은 그게 꿈인지도 모를 정도로 그 곳에 푹 빠져있었다. 캄캄한 어둠으로 가득 찬 그곳은 빛 하나 없이, 사방이 막혀있었다. 소녀는 그 곳이 몹시도 무서웠지만, 애써 담담한 척을 했다. 그건, 소녀가 무서움을 참는 방법 중에 하나였다.
“네가 아이들을 다 죽인거야.”
갑자기 어디에선가 끔찍한 목소리가 들렸다. 소녀는 “누구세요?” 라는 말을 던졌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캄캄한 어둠은 점점 더 소녀를 집어 삼키기 시작했다. 어둠에 갇힌지, 벌써 몇 시간째. 소녀는 이곳을 벗어날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넌 아무와도 닿을 수 없어.”
어둠 속에 쪼그려 앉아 1에서 100까지의 숫자를 세고 있던 소녀는 급히 몸을 일으켰다. “누구세요?” 또 다시 외쳤지만, 여전히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그 목소리는 계속해서 소녀를 향해 기괴한 저주를 퍼부었다.
“너와 손이 닿는 사람은 모두 다 죽을 거야.”
소녀는 그 말이 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도대체, 누가 자신에게 왜 그런 말을 퍼붓는지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저 꿈일 뿐이라고 치부했던 그 말은, 그 다음날 벌어진 사건으로 인해 금세 현실이 되었다.
-
아침 일찍 설레는 마음으로 학교에 향한 그녀는 텅 비어있는 교실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다들 늦는 건가? 자신이 분명 일찍 출발하긴 했지만, 산속에서 학교까지 거리가 있는 탓에 도착한 시간은 등교 10분 전이었다. 소녀는 텅 비어있는 교실이 왠지 모르게 섬뜩하다고 느꼈다.
소녀는 맨 앞자리에 앉아 아이들을 기다렸다. 하지만, 1시간 2시간이 지나도 아이들은커녕 선생님의 모습도 보이질 않았다. 째깍 거리는 시계초침소리가 자꾸만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애들아, 빨리 와. 그녀는 울먹임을 잔뜩 참아내며 말했다.
소녀가 기다 린지, 반나절이 지나고 있을 때. 교실 주변을 급하게 뛰어가던 한 남자 선생님이 교실 안에 남아있던 소녀를 발견하고 급히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 옷을 입고 있었는데, 사방을 뛰어다닌 탓에 머리는 잔뜩 헝클어져 산발이 되어있었다. 아, 이런! 그는 탄성을 냈다. 그리고, 곧바로 문을 열고 교실 안으로 들어섰다. 인기척에 소녀는 퍼뜩 고개를 들었다.
“아, 미안해. 선생님이 깜빡하셨나보다.”
“친구들은요?”
소녀는 급히 물었다. 이술의 머릿속에는 지금 선생님이 왔다는 안도감보다, 아이들에 대한 궁금증이 더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선생님은 당황한 표정으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친구들은, 어 그러니까….”
“친구들은요? 네?”
“친구들은, 모두 다른 곳으로 갔어.”
“다른 곳이요? 어디요? 저도 가면 안돼요?”
소녀는 조르듯이 말했다. 머릿속은 지금이라도 당장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지배되어있었다. 선생님은 잠시 머뭇거리는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보더니 금세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말고, 나중에. 나중에 가자.”
“왜요?”
“이술아, 오늘은 이만 집에 가는게 좋겠다.”
선생님은 어두운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선생님! 소녀는 소리쳤다. 하지만, 소녀가 더 말을 잇기도 전에 급히 교실을 빠져나간 그가 금세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휑하니 열린 교실 안으로 찬바람이 불었다. “선생니임….” 소녀는 울음을 참아 넘겼다.
소녀는 그 이후로 학교에 나가지 못했다. 아니, 갈 수가 없었다. 학교에서 당분간 수업을 진행 할 수 없다는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었다. 며칠이 지나고 나서야, 소녀는 학교에 갈 수 없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갑자기 사라진 친구들이 간 곳이 어딘지도, 왜 소녀가 학교에 다닐 수 없는지 까지도, 모두 알게 되었다.
며칠 뒤에서야 같은 반 친구들이 모두 이유 모를 죽음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날. 소녀는 방에 틀어박혀 엉엉 울음을 토해냈다. 머리를 망치로 내려친 것 같은 충격에 어떤 말도 튀어나오질 않았다. 친구들의 사인은 밝혀지지도, 밝힐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너와 손이 닿는 사람은 다 죽을 거야.’
그건, 악마의 저주였으며, 소녀의 끔찍한 운명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