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하지 마세요!”
폴리스라인을 경계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촬영이 불가하다는 경찰의 말에도 전혀 아랑곳 하지 않고 기자들은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시간이 지날수록, 폴리스 라인 주변에는 고가의 촬영 장비들이 빠르게 세팅되었다. “촬영하시면 안된다니까요!” 경찰들은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힘껏 소리를 쳤지만, 그 소리를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눈이 아플 정도의 끊 없는 플래시 세례가 쏟아져내렸다. 번쩍 터지는 빛 사이로 끔찍한 광경이 스쳐지나갔다. 흰 천으로 덮힌 여자의 시체가 들것에 의해 실려 나갔다. 좀처럼 피해주지 않는 사람들 덕에 경찰들은 계속해서 주변을 맴돌았다.
“좀 비켜주세요!”
경찰들은 계속해서 소리를 쳤다. 동그랗게 모여 주변을 감싸고 있던 사람들은 그 얘기를 듣지 않고 수군거리기 바빴다. “무슨 일이야?” “사람이 죽었데!” 사람들의 비명 같은 목소리는 점점 더 커져만 갔다.
꾸역꾸역 길이 트였다. 사람들은 두려움 반, 호기심 반으로 흰 천에 둘러싸인 시체를 보고 있었다. “죽은 여자가 술집여자라는데?” “아냐, 의사래!” 사람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문들을 퍼트려나갔다. 시체는 겨우 차에 다다랐다. 물에 젖은 듯, 부쩍 무거워진 시체 덕에 경찰들은 좀처럼 그 것을 들어 올리지 못하고 끙끙되었다.
시체가 막 차에 실리려고 할 때쯤, 궁금함을 참지 못한 한 소녀가 조심스레 근처로 다가왔다. 살며시 흰 천으로 뻗는 작은 손엔 호기심이 가득했다. 예쁘게 땋은 양갈래 머리가 삐죽삐죽 튀어나오며, 사람들 속으로 푹 파묻혔다. 그리곤, 머지않아 불쑥 튀어나온 작은 손이 흰 천을 휙 걷어냈다.
“아악!!!”
그 모든 건 순식간에 일어났다. 사람들에게서 끔찍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소녀는 코앞에 놓인 시체를 보자마자, 꺄악! 하는 소리를 지르며 바닥에 철푸덕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다들 비키세요!”
경찰들은 눈을 질끈 감은 채, 억지로 흰 천을 다시 덮었다. 갑작스레 드러난 시체는 참으로 끔찍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시체의 얼굴은 다 뜯겨나가 뼈가 훤히 보였고, 그 위로 울긋불긋한 핏줄이 튀어나와있었다. 크게 울음을 터트린 소녀를 시작으로, 사람들은 구역질을 뱉어냈다. 일그러진 얼굴은 잔인할 정도로 역했다.
마치, 악마처럼.
*
창욱은 정말이지 죽을 맛이었다. 하루아침에 벌어진 살인사건은 그의 혼을 쏙 빼놓기에 충분했다. 새벽 6시,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기괴한 살인 사건으로 인해 경찰서는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따르릉, 쉴 새없이 울리는 전화 벨소리가 사람들의 혼을 쏙 빼놓았다. 수많은 기자들이 경찰서 앞을 에워싸며, 끊임없는 질문을 던졌다.
“수민이는요? 예? 우리 수민이는요!”
피해자의 어머니는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전화를 받자마자, 헐레벌떡 뛰어온 얼굴엔 세월의 흔적이 가득했다. 엉엉 쏟아지는 울음소리가 가슴을 미어지게 만들었다. “우리애가 왜 죽어요? 예? 아니죠? 그런 거 아니죠?” 어머니가 심장 주변을 주먹 쥔 손으로 세게 쿵쿵 내리치며 말했다. 창욱은 피해자의 어머니를 향하고 있던 시선을 애써 돌렸다.
피해자의 이름은 정수민, 나이는 25세. 술집에서 서빙 일을 하던 그녀는 새벽까지 술을 마신 채,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살해를 당했다. 그것도 아주 처참하게. 그녀는 얼굴이 다 뜯겨 나간 채로, 골목길 한복판에서 발견되었는데 술에 취해 길거리에서 잠들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똑바로 누워있는 상태였다.
아침 6시. 그 근처에 살던 남씨가 출근을 하던 길에 그녀를 발견했다. 목격자인 그는 그녀의 얼굴이 마치 악마의 실사 판을 본 것 같았다며, 현장의 끔찍함을 생생하게 설명했다.
사건 현장에는 그 흔한 증거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부검 결과 살해당한 방법은 질식사였다. 그녀는 범인에게 목이 졸라 살해당한 후, 숨이 끊긴 상태에서 얼굴이 뜯겨나갔다. 참으로, 끔찍한 살인이 아닐 수 없었다. 그나마, 살아 있을 때 얼굴이 뜯겨나가지 않아서 다행인건가, 창욱은 그 생각을 하다가 금세 마음을 접었다. 그 생각만 하는 것만으로도 속이 좋지 않았다.
범인은 무슨 생각인지, 얼굴의 전체 면적을 아주 깔끔하게 잘라갔다. 꼭 마스크를 싹 벗겨놓은 것처럼 소름끼치게 깨끗한 손놀림이었다. 범인은 칼을 잘 다룰 줄 아는 의사나, 간호사 등 의료 직종 종사자 일 것이라고 경찰들은 추정했다. 참으로 특이한 살인 사건에 수많은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죽였으면 된거지, 도대체 왜 그녀의 얼굴까지 벗겨 간 걸까? 그는 좀처럼 범인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분명, 완전 또라일거야. 창욱은 범인이 아주 끔찍한 싸이코패스일 거라고 생각했다.
도심 한복판의 살인사건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미 각종 인터넷 사이트들은 살인사건 기사로 인해 홈페이지가 마비된 상태였다. 살인사건에 대한 용의자를 추리하는 글이 수두룩하게 인터넷을 도배했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피해자의 예쁜 얼굴을 노린 사건이며 범인은 아주 못생긴 여자일거라고 추정했다.
사람들의 추정이 틀린 말은 아닌 듯, 피해자 정수민의 얼굴은 굉장히 예쁜 편에 속했다. 흔히 말해, 연예인 뺨치는 얼굴이라고 말해도 될 정도로 화려했다. 그는 피해자의 사진을 빤히 바라보다가, 금세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예쁜 얼굴을 노린 살인사건이라고? 그건 절대 말이 되질 않는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예쁜 얼굴이 부러웠다고 한들, 얼굴을 뜯어가서 뭘 하겠는가? 차라리 그 얼굴을 망가트리고 싶었으면 망가트린 거지…. 그의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순간적으로 아, 하는 탄성이 샜다.
“얼굴을 망가트린다고?”
그의 얼굴에 작은 반짝임이 스쳐지나갔다. 급히 몸을 일으킨 창욱이 의자 뒤에 걸어놓았던 겉옷을 챙긴 채, 헐레벌떡 바깥으로 뛰어나갔다. 뒤에선 “지형사님! 이렇게 바쁜데 어디가세요!” 하는 애처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마신은 오랜만에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 매일 실패하던 동전 마술을 처음으로 성공하기도 했고, 흥신소에서 곧 그녀를 찾을 수 있을거라고 희망을 주었으며, 길을 가다가 한눈에 반한 아주 예쁜 여자에게 번호를 따기도 했다. 이렇게 좋은 날이 있나, 그는 콧노래를 흥얼흥얼 거리며, 대걸레를 든 채 신나게 공연장을 청소했다.
둥그런 지붕을 가진 돔 형식의 공연장은 마신이 항상 마술을 공연하는 곳으로, 마신의 할아버지께서 물려주신 곳이었다. 좌석은 30개정도로 규모는 작은 편에 속했지만, 마신은 이곳이 참 마음에 들었다. 오로지 자신의 공간이라는 점도 좋았고, 또 공연장 곳곳 할아버지의 손길이 남아있다는 사실도 좋았다. 소극장 같은 이 공간에는 두개의 문이 있었는데, 하나는 공연장으로 향하는 문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마신이 살고 있는 공간이었다. 두개의 공간은 문으로 독립되어 나누어져있었는데, 마신은 오늘 아주 오랜만에 자신의 집이 아닌 공연장으로 향하는 문 앞을 청소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도, 많은 사람들이 들락날락 한 탓인지 흰 공연장 바닥은 까맣게 변해있었다.
“하여간, 인간들은 더럽다니까.”
마신은 잔뜩 투덜거렸다. 사방으로 찍혀있는 검은 발자국들이 심기를 뒤틀리게 했다. 잠시 망설이던 그가 주변을 둘러보고는 왼쪽 손목에 찬 짙은 밤색 시계에 손을 가져다대었다. 그리곤, 반대쪽 손끝으로 크게 원을 그려 수(水, 물)라는 주술을 사용했다. 그는 수(水, 물)라는 주술로 공연장 바닥을 촉촉하게 적시고, 걸레를 이용해 깨끗이 닦은 후에 풍(風, 바람)이라는 주술을 마지막으로 사용해 공연장을 깔끔하게 말렸다.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그의 손길로 인해 공연장은 더러운 빛을 지우고, 금세 번쩍한 빛을 냈다. 깨끗해진 공연장에 그가 흐뭇해하고 있을때쯤,
“마신님!”
누군가가 그의 공간에 끼어들었다. 누구야! 그는 잔뜩 얼굴을 구기며, 휙 뒤를 돌았다. 헐레벌떡, 공연장으로 뛰어온 창욱이 헉헉대는 숨을 몰아쉬며 공연장 문을 잡고 서있었다. 그의 더러운 신발이 공연장 곳곳을 지지 밟고, 새까만 발자국을 찍어놓았다. 저 형사 양반이 진짜! 마신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야! 너 자꾸, 더러운 신발 신고 들어올래?”
“악귀가 있다고 했죠?”
“뭐?”
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갑자기, 공연장으로 불쑥 찾아와 더러움을 묻힌 것도 모자라, 뭐? 악귀? 그는 정말로 속이 뒤집어져서 쓰러질 뻔한 경험을 했다. 하, 이젠 하다하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단어까지 꺼내다니! 이미 잔뜩 달아오은 마신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만 같았다.
“악귀요! 몇번 본적 있다고 했잖아요!”
마신의 얼굴이 기괴하게 구겨졌다. 악귀? 곧 눈앞에 떠오른 시커먼 형체에 부르르 몸이 떨렸다. 저 놈의 형사가 미쳤나 진짜, 아까부터 뭐라는거야. 그는 도저히 창욱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실, 그가 이렇게 화를 내고 있는 건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주술사들이 가장 싫어하는 존재가 악귀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악귀보다는 악마가 더 세고 강해서 싸우기엔 더 끔찍한 존재긴 했지만, 목표가 딱 하나인 악마와 달리 악귀들은 그 속을 알 수가 없어 더 힘든 편에 속했다. 흔히 알고 있는 인간을 타락시키고, 죽임을 일삼는 것은 악마가 아닌 수많은 악귀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악귀들은 인간들을 꼬셔서 다른 인간들을 죽음에 이르게 만들고, 그 죽은 영혼을 먹어치우며 힘을 키웠다.
악귀라니, 듣기만 해도 소름끼치네, 그는 소름이 오소소 돋은 팔뚝을 쓱쓱 매만지며 잔뜩 미간을 구겼다. 내가 진짜 저 형사 양반과 친구를 하는게 아니었는데, 그는 사신만 아니었다면 절대로 저딴 형사와 친구를 맺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그, 얼굴을 뺏어가는 악귀요.”
창욱은 급히 말을 이어 붙였다. 하, 기가찬 숨을 뱉어낸 마신의 얼굴이 못마땅하게 구겨졌다. 도대체, 뭐가 궁금해서 이러는거야? 마신은 좀처럼 창욱에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다. 다급한 마음 때문인지, 창욱의 눈에는 마신의 못마땅한 표정이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그, 그게 뭐랬더라?” 그는 말을 이어붙이려다가 자꾸만 망설였다. 잠시 멈칫하던 마신이 미간을 찌푸리며 답했다.
“처사악귀 말하는거야?”
“네! 맞아요! 바로 그 악귀요!”
창욱은 큰 목소리로 대답하며,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마신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시선에 목까지 차올랐던 화를 겨우 삼켜냈다.
사실, 그는 사람들의 격한 리액션에 약했다. 누군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거나, 맞장구 쳐주면 그는 화가 났던 마음도 금세 스르르 풀리곤 했다. 그건 자신을 인정해준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것도 있었고, 뭔가 아주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아 우쭐해지는 기분이 들어서 그런 것도 있었다.
창욱은 그런 마신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정말 목이 빠질정도로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신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화가 난 마음을 식혔다. 처사악귀라니, 갑자기 그게 왜? 마음속에 떠오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큰 호기심으로 번졌다. 그런 그의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창욱은 알아서 그 질문에 답했다.
“오늘 살인사건이 일어났는데, 왠지 그 악귀의 짓인것 같아서요.”
창욱은 기대감이 가득 찬 눈빛으로 말했다. 처사 악귀의 짓이라고? 마신은 고개를 갸웃하며 그 말에 대해 물었다. “네네!” 고개를 크게 끄덕인 창욱이 “이 사진 보세요!” 하면서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그 사진 속에는 한 여자가 얼굴이 뜯겨진채, 누워있는 모습이 찍혀있었다. 악! 소리를 낸 마신이 얼굴을 급히 뒤로 뺐다. 하마터면, 너무 놀라서 그대로 뒤로 나가떨어질 뻔했다.
“도, 도대체 이게 뭐야?”
“오늘 일어난 살인사건 피해자에요, 이 피해자는 질식사로 사망했고, 그 후에 얼굴이 뜯겨졌어요. 뭔가 냄새가 나질 않아요?”
냄새는 너한테 더 난다 이 새끼야. 마신은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을 애써 삼키며,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근데 뭐 어쩌라고”
“한번 확인해주세요”
“뭐?”
마신은 잔뜩 크게 떴다. 처사 악귀를 확인해달라고? 그것도 내가? 그는 참으로 어이없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처사 악귀라니, 처사악귀…. 하하, 호탕한 웃음을 흘리던 그가 싹 표정을 바꿔 차갑게 얼굴을 굳히더니, 창욱을 억세게 문 밖으로 밀어냈다.
“당장 나가!”
어어? 잠시만요! 창욱은 밀리지 않으려 몸에 힘을 주고 버텼다. 하지만, 마신의 힘을 도저히 감당하지 못했다. 금세 쾅 닫히는 문 뒤로 “꺼져!” 하는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렸다. 하, 망했다. 그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