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신의 마술쇼는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한 달에 4번, 그러니까 일주일에 딱 1번씩 열리는 쇼는 표 값이 무려 15만원임에도 불구하고, 연이은 매진행진을 이어갔다. 그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는데 바로 마신이 늘 신기한 주술을 쓰기 때문이었다. 그는 매번 쇼를 할때 마다, 다른 주술을 부려 사람들을 놀렸다. 어느 날은 하늘에서 비가 내리게 하고, 또 어느 날은 갑자기 불을 지펴 좌석을 태워버리기도 하고, 눈이 내리게 한다던가, 바람이 불게 해서 여자들의 치마가 홀딱 날아가게 만드는 등. 정말 기이한 주술을 부리곤 했다.
그에게 마술사라는 직업은 천직인 것처럼 딱 들어맞았다. 사람들을 놀래 키는 신기한 마술과 유머 넘치는 입담까지 그의 마술쇼를 보러온 여자들은 모두 사랑에 빠져 집에 돌아가곤 했다.
“봤어? 나 보고 윙크했다니까?”
“무슨 소리야! 날 봤다니까?”
여자들은 그에 대한 환상에 빠져들었다. 잘생긴 남자가 신기한 묘기를 부린다는 입소문이 퍼지자마자, 여자들은 너나할 것 없이 그의 쇼를 보기 위해 매일 줄을 섰다. 최대 관객 수가 20명밖에 되지 않는 탓에 여자들은 항상 애가 타있는 상태였다.
“오늘 자리 없으면 어떡해?”
빨간 마술사 모자와 긴 생머리를 늘어트린 여자가 말했다. 이미 줄은 공연장을 한 바퀴 돌고도 남을 정도로 길게 이어져서있었다. 여자 관객만 받는다고 오해할 정도로, 긴 줄에 서있는 사람들은 모두 여자들뿐이었다. 그녀들은 마신에게 조금이라도 더 잘 보이기 위해 예쁘게 치장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녀가 울상인 얼굴로 말하자, 옆에 있던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절대 그럴리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 아침 6시부터 왔어, 우리 자리는 꼭 있을걸?”
그녀는 확신에 차서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술쇼는 항상 밤 10시에 열리곤 했는데, 10시 공연을 보기 위해 6시부터 기다렸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시간은 어느새 9시 반을 향해 가고 있었다. 여자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곧 만날 그를 떠올렸다. 잘생긴 얼굴에 큰 키, 재치 넘치는 대사와 말도 안 되는 신기한 묘기까지! 그녀들은 점점 더 세게 뛰어오는 심장을 느꼈다.
“오늘은 뭘 보여줄까?”
“전에는 비를 내리게 했으니까, 오늘은 눈을 내리지 않을까?”
“헐, 그것도 너무 멋있겠다.”
그녀들은 곧 벌어질 마술쇼를 기대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 초침은 어느새 9시 59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
새벽 1시, 영적인 존재들의 기운이 가장 강해지는 시간. 사신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검은색으로 치장한 뒤, 도심 한복판에 있는 골목길로 향했다. 골목길 주변을 감싼 주택들은 모두 어둠으로 물들어 있었고, 거리엔 가로등 몇 개만이 희미한 빛을 쏟아내고 있었다.
폴리스 라인을 경계로, 수많은 영혼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얼굴이 찢어지거나, 팔 다리가 몇 개 없거나, 가슴에 칼이 꽂혀있는 등, 매우 끔찍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침을 질질 흘리며, 죽음을 맞이한 영혼을 환영했다. 오늘 아침 살해당한 여자의 영혼은 원한으로 인해, 승천하지 못하고 바닥에 쩍 달라붙어있었다. 그녀는 아직 죽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영혼들은 그녀의 주변을 빙빙 돌며, 그 영혼을 집어 삼키는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젊은 여자군.’ ‘맛이 좋겠는데?’ 킬킬 대는 웃음소리가 사방을 울렸다.
사신은 그 곳으로 다가갔다. 창욱의 말이 사실이라면, 악귀의 흔적이 남아있을게 분명했다. 폴리스라인 안으로 들어서자, 실컷 떠들고 있던 영혼들이 화들짝 놀라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사신이야!’ ‘사신이라고!’ 그들은 펄쩍 뛰며, 그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급히 모습을 감추었다. 시끄러웠던 주변이 조용해지고, 그가 살인 사건이 일어난 자리 위를 손으로 천천히 더듬었을 때, 뒤에서 뭔가가 휙 하고 스쳐지나갔다.
“누구야.”
그는 급히 뒤를 돌았다. 잘못 본 게 아니라면, 분명 한 여자가 뒤에 있던 골목길 안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그 곳으로 다가갔다. 사건현장을 바로 마주보고 있는 골목길은 가로등이 없는 탓에 캄캄한 어둠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희미하게 느껴지는 사람의 온기에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골목길 안을 살폈다. 그때,
‘…아이.’
또 다시 끔찍한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악! 비명을 낸 그가 자리에 주저앉으며 귀를 틀어막았다. 한번 시작될 때마다 끝없이 이어지는 흉측한 목소리는 계속해서 그를 고문했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점점 희미해져가는 정신 사이로, 한 여자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괜찮으세요?”
머리 위로 그림자가 졌다. 퍼뜩 고개를 든 사신이 한 여자를 마주했다. 넌 누구야? 묻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턱 걸려버린 목소리가 좀처럼 새어나오질 않았다. 그는 희미한 가로등의 불빛이 없었다면 그녀가 있는지도 알아보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검은 반팔 티와 검은 긴 바지, 그리고 여름에 어울리지 않는 벙어리장갑을 양손에 끼고 있었다. 갈색 빛이 나는 단발머리에 눈에 띄게 흰 피부, 그리고, 커다란 눈까지. 사신은 왠지 모를 미인을 떠올렸다.
“저, 저기.”
이술은 천천히 곁으로 다가왔다. 눈앞에 있는 남자는 고통에 몸부림 치고 있었다. 어떻게 하지, 그녀는 발만 동동 구르며, 그를 살폈다. 점점 창백하게 질려가는 얼굴과, 이마 위를 흥건하게 적신 식은땀까지. 어, 어떡해! 그녀는 이 상황이 꽤나 심각하다는 것을 느꼈다. 괜찮으세요? 계속해서 물었지만, 그에게선 좀처럼 답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결국 그를 향해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 최대한 손이 닿지 않게 이 남자의 옷깃만 잡는다면, 큰 문제가 없을것이었다. 덜덜 떨리는 이술의 손끝이 그의 셔츠위로 닿는 사이,
“제길.”
그는 작게 소리쳤다. 사신의 뒤에서 피어오른 새까만 연기가 주변을 감싸 안았다. 저, 저게 뭐야? 이술은 눈을 크게 뜨며 뒤로 주춤 물러섰다. 폴리스 라인 안으로 알 수 없는 검은 기운이 피어오르며, 검은 형체가 나타났다. 제길, 그는 급히 손을 뻗어 그녀를 자신 쪽으로 휙 잡아 끌었다. 악! 작게 소리를 지른 이술이 그의 품 안으로 떨어져내렸다.
“조용히 해.”
그는 이술의 어깨를 감싸 안은 채, 말했다. 잔뜩 겁에 질린 눈이 울먹임을 담고 있었다. 그는 이마 위에 흥건한 땀을 대충 닦아내며, 조심스레 뒤를 돌았다. 그곳엔, 창욱의 예상과 달리 악마의 모습이 보였다.
“하, 이런.”
사신은 잔뜩 얼굴을 구겼다. 악마가 벌인 일이란 말이야? 거센 기운이 숨통을 조여오는 기분이었다. 악마의 얼굴은 익숙했다. 폴리스 라인 안으로 들어선 검은 형체는 전에 아이를 탐하려 하던 그 악마였다. 금세 더 많은 영혼들을 잡아먹은 건지, 어두운 기운이 엄청나게 강해져있었다.
“하, 제길”
그는 억세게 그녀를 끌어안은 채, 겨우 겨우 몸을 일으켰다. “뭐하는….” 입을 열려하는 그녀의 입을 억지로 틀어막고, 골목길 안으로 몸을 숨겼다. 그는 그녀의 어깨를 한손으로 감싸 안았다. 입을 틀어막은 손 위로 뜨거운 입김이 차올랐다. 어둠 속에 들어서자, 그녀는 몸을 사시나무 떨듯 파르르 거리며, 눈물만 뚝뚝 흘렸다.
“조용히 해, 죽기 싫으면.”
그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겁에 질려있는 여자에게 할 말은 아니었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어쩔 수가 없었다. 지금 이 순간 악마에게 들킨다면, 둘 다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아무리 마력이 가장 높은 사신이라고 해도, 현재 주술이 다 회복되지도 않은 순간에 악마와 싸우는 건 불가능 했다. 그는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있는 손을 품으로 끌어당기며, 등을 지고 악마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그녀의 시야를 차단했다.
‘젊은 여자군.’
악마는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바닥에 척 달라붙어있던 여자 영혼이 흉측한 악마의 모습을 보자마자, 온 몸을 펄떡이며 찢어질듯 한 비명을 질렀다. 아직까지 힘이 남아있나보네. 악마는 킬킬대며 그녀를 한껏 조롱했다. 그녀의 얼굴이 기괴하게 뒤틀려졌다. 악마는 천천히 손을 뻗어 여자의 영혼을 부여잡았다.
‘아프지 않게 먹어주지.’
악마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힐끔, 그의 품 속 사이로 그 모습을 몰래 지켜보던 이술이 갑자기 아악! 하는 비명을 질렀다. 제길,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머지않아, 악마의 얼굴이 휙 하며 골목길 안을 향했다.
‘손님이 있나보군.’
악마의 눈이 번뜩였다. 잔뜩 인상을 구긴 사신이 몸을 일으켜 그녀를 골목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싫어요!” 이술은 소리치듯 말했다. “조용히 하라니까.” 그는 말했지만, 겁에 질린 그녀에겐 그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보였다. 검은 형체는 점점 골목길 안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두려움으로 물든 이술은 그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 애를 썼다.
‘손님이 많나보네.’
악마는 말했다. 번뜩이는 눈이 어둠속에서 둥둥 떠다니며, 섬뜩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는 어쩔 수 없이 그녀를 자신의 뒤에 숨기듯 세웠다. 악마는 이제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오늘은 포식을 하겠군.’
악마는 킬킬대는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이술은 그의 뒤에 딱 붙어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건지. 그녀는 좀처럼 이 모든 걸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저, 자신은 아침에 자신과 부딪쳤던 그녀가 자꾸만 마음에 걸려서 온 것일 뿐인데. 이런 끔찍한 일에 휘말릴 거였으면 절대 오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흉측한 눈이 머리 위로 둥둥 떠다녔다. 처음 보는 남자를 믿을 수는 없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도움을 청할 곳이라곤 이 남자뿐이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그의 허리를 확 끌어안으며, 등 뒤로 얼굴을 파묻었다.
‘사신.’
악마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했다.
‘강사신이네.’
악마에게선 왠지 모를 살기가 느껴졌다. 뾰족한 손끝으로 가볍게 원을 그린 악마가 주변을 감싸고 있던 어둠을 손에 쥐었다. 그러자, 금방이라도 낮이 온 것처럼 사신과 이술사이에 눈부신 빛이 쏟아져내렸다.
‘이런, 이런. 여자가 있었군.’
악마는 말했다. 킬킬 대는 웃음소리가 귓가를 연신 울렸다. 등 뒤로는 계속해서 식은땀이 흘렀다. 그녀는 사시나무 떨 듯, 몸을 파르르 거리며 그의 등 뒤에 바짝 붙었다. 어둠은 점점 두 사람을 집어삼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