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괴하고, 놀라운 마술쇼! 당신을 환상의 나라로 초대합니다!”
엄청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시계바늘이 10시를 가리키자마자, 무대는 암전이 되고, 화려한 빛들이 그 곳을 가득 채웠다. 꺄악! 울리는 높은 목소리가 기대감을 더 증폭시켰다. 머지않아 무대 가운데에 커다란 빛이 쏟아지는가 싶더니, 갑자기 무대 위에 달려있던 조명이 바닥으로 쾅! 하고 떨어졌다.
“아악! 뭐, 뭐야!?”
비명이 터져나왔다. 사람들은 너무도 깜짝 놀라서 화들짝 몸을 떨었다. 혹시 사고인가 하는 마음에 관객들은 급히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두리번 두리번 거렸다. 그러나, 그 걱정들은 머지않아 가루가 되어 흩어져버린 조명을 보며 사라져버렸다. 뿌연 가루가 가득 찬 그 곳에 마신이 짠! 하고 등장했다.
“안녕하세요,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을 마술사 오마신입니다!”
그는 씨익 하고 웃으며 말했다. 그의 트레이드 마스크라 할 수 있는 검은색 마술사 모자와 빨간 나비넥타이 그리고, 뒤에가 길게 빠진 수트 상의와 통이 넓은 바지까지. 그는 마치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독특하고도 오묘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꺄악! 하는 환호성을 터트렸다.
“여러분 더우신가요?”
“네!”
그의 존재는 거의 신과 같았다. 사람들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큰 소리로 대답을 했다. “그럼 제가 시원하게 해드리겠습니다.” 익살스런 표정으로 윙크를 날린 그가 나비넥타이로 손을 가져다 대었다. 사람들은 잔뜩 긴장을 한 채, 곧 다가올 일을 기대하며 침을 꼴딱 삼키고 있었다. 그는 반대쪽 손으로 원을 그리면서 외쳤다.
“더위를 날려버릴 시원한 바람아 불어라! 풍(風, 바람)”
그러자, 머지않아 공연장 안에 엄청난 바람이 일어났다. 태풍이 왔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거센 바람이었다. 사람들의 머리는 산발이 되고, 가방 같은 가벼운 소지품들은 하늘 위로 붕 날아갔으며, 시린 바람에 의해 눈에선 눈물이 줄줄 흘렀다. 어떻게 보자면, 화를 낼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서로의 모습을 보면서 깔깔대고 웃음을 흘렸다. 이번에도 성공이군, 마신은 손끝으로 바람을 움직이며, 씨익 하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
미인은 분주했다. 주술사 협회에서 부탁한 ‘저주 물약’을 내일까지 완성해야했기 때문이었다. 가뜩이나 뒤죽박죽한 거실 안은 그녀가 늘어놓은 물건들로 인해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그녀는 물약을 만들기 위해 커다란 솥을 천장 위에다가 걸어 놓고는 그 밑에 불을 지피고 있었다. 바로 옆에 놓여 있는 탁자 위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들이 가득했는데, 그 중에는 악마의 손톱과 유니콘의 뿔, 그리고, 마왕의 숨까지 있었다.
“저주 물약이라….”
그녀는 책에 적혀있는 레시피 대로, 그것을 만들기 위해 재료를 준비했다. 그녀는 조심스레 손을 뻗어 탁자위에 있던 물건을 몇 개 집어 들었다. 그녀가 챙긴 것들에는 황새의 깃털과 인간의 피, 그리고, 주술사들의 눈물이 들려있었다.
“자, 이제 시작해볼까!”
당차게 외친 그녀가 그것들을 한꺼번에 솥 안으로 밀어 넣었다. 곧이어 뿌옇게 연기가 일어나기 시작하고, 쾌쾌한 냄새가 풍겼다.
뭉쳐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재료들은 어느새 하나가 되어 액체로 변해있었다. 누런빛을 띄는 그것은 안 좋게 보자면 오줌 같기도 했고, 좋게 보자면 오렌지 주스 같기도 했다. 뜨거운 기운을 내뿜는 솥은 더욱 더 팔팔 끓고 있었다. 그녀는 떨리는 가슴으로 마지막 재료를 손으로 집어 들었다.
“이제, 마왕의 숨만 넣으면 되는 건가?”
작은 비커 안에 들어있는 마왕의 숨은 시커먼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비커에 담겨 있는 그것을 손으로 잡는 것만으로도, 억센 기운이 느껴졌다. 그녀는 크게 숨을 들이 삼켰다.
마왕의 숨은 물약 재료 중에서도 가장 귀하고, 가장 위험한 물건으로 여겨졌다. 원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도, 만약 얻는다고 해도 쉽게 손에 쥘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마왕의 숨은 작은 숨결만으로도 엄청난 어둠의 기운을 내뿜었다. 그 기운에 빨려 들어간다면, 어떤 사람이라도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마왕은 악마보다도 더 높은, 아니, 주술사보다도 더 높은 존재에 속했다. 그 누구도 마왕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은 인간을 타락시키고, 죽음에 이르게 만든 후에 그 영혼을 집어삼켰다. 그 일은 은밀하고도, 치밀하게 이루어졌다. 마왕으로 인해 죽은 사람이 수억 명에 다다를 정도였다. 하지만. 마왕이 개입한 인간의 죽음은 절대로 사인을 밝혀낼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건 도저히 인간이 찾아낼 수 있는 기운이 아니었으니까.
이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
마왕은 끔찍한 힘을 지녔지만 동시에 얼마 전 일어난 사건으로 인해 그 엄청난 힘을 잃었다.
그건, 한 20년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마왕은 인간들의 영혼을 삼켜서 힘을 키웠는데, 어느 날 그는 절대로 삼켜서는 안 될 영혼을 삼켜버렸다. 그 부작용으로 인해, 그는 괴로워했고, 힘을 잃었으며, 머지않아 깊은 어둠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그 영혼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때 그 일로 마왕은 꽤나 큰 타격을 입은 듯 했다.
그녀는 최대한 그것을 흘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조심스레 마개를 열었다. 조금이라도 실수를 한다면, 그 뒤가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조심 또 조심을 반복했다. 팔팔 끓는 솥에 마왕의 숨을 넣으려던 그때,
쾅! 하며 뭔가가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아악!”
그녀는 비명을 질렀다. 어찌나 놀랐는지, 손끝이 벌벌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급히 주위를 살폈다. 하지만, 소리가 났다는 사실이 이상할정도로 모든 게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녀는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았다. 뭐, 뭐지? 도대체? 그녀가 잠시 한눈을 판 사이, 비커에서 빠져나온 마왕의 숨이 천천히 하늘로 올라가 그대로 흩어져버렸다. 그녀는 급히 고개를 돌렸다.
“아, 안돼!!!”
그녀는 찢어질듯 한 비명을 질렀다. 마왕의 숨은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져있었다.
*
강사신, 현재 마력 75%
사신의 현재 마력은 완전 바닥을 치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악마와 싸우기에도 충분한 마력은 아니었다. 혹시라도, 악마와 싸우다가 마력을 다 소진해서 이곳에서 쓰러지게라도 된다면, 그러면 그때는 정말로 그 뒤를 장담할 수가 없었다.
그는 위험한 도박에 빠져있는 것 같았다. 도저히, 여기서 빠져나갈 방법이 떠오르질 않았다. 뒤죽박죽 복잡해진 머릿속이 자꾸만 그에게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사신은 정말이지 벼랑 끝에 몰려있는 기분이었다. 그의 뒤에 숨은 채, 덜덜 떨리는 손으로 옷깃을 꼭 부여잡고 있는 이름 모를 여자가 그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오랜만이군.’
악마는 커다란 몸을 더 부풀리며, 천천히 앞으로 걸어왔다. 새까만 4개의 손가락과 발가락 위에 난 길고 뾰족한 손톱이 섬뜩한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 악마는 날개를 펄럭이며, 거센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금세 뿌연 연기가 일어나더니, 머지않아 온 주변이 깜깜하게 변했다. 시야를 가린 시커먼 연기에 눈을 뜨기가 힘들었다.
‘내가 너 때문에 죽을뻔했었지, 아마?’
악마는 분노를 꾸역꾸역 삼키며 말했다. 그때, 그 아이를 삼키지 못하고 사신에게 공격을 받은 이후로 얼마나 큰 상처를 입었는지 당분간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지 못했었다. 심지어, 날개까지 타버린 탓에 그의 모습은 더 흉측해져있었다. 충실한, 악귀들이 영혼들을 잡아다가 갔다 바쳤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정말로 소멸해버릴 수도 있었다고, 악마는 생각했다.
‘죽여 버릴 거야,’
악마는 작게 중얼거렸다. 언젠가 사신을 만날 날을 기다리며, 지겹도록 반복했던 말이었기도 했다.
‘갈기갈기 찢어서 죽여주지.’
악마는 잔뜩 날이 선 말투로 말했다. 씨익 올라가는 입꼬리가 끔찍한 기운을 내뿜었다. 악마는 주먹을 쥐고 있던 손을 펼쳐 어둠을 풀어냈다. 어느새, 사방이 어둠으로 갇히고 그 곳엔 악마와 사신, 그리고 이술만이 남아있었다.
이술은 정말이지 기절을 할 것만 같았다. 도대체 이 상황이 무엇인건지, 왜 자신은 이곳에 갇혀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시커먼 형체가 말을 하며 다가올 때마다, 쿵쿵 심장이 거세게 뛰며 요동쳤다. 나, 나는 이 일에 관계가 없어. 그녀의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그녀는 어떻게든 이곳을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신과 악마 사이에는 알 수 없는 기운이 흘렀다. 서로 죽일 듯이 바라보고 있긴 했지만, 서로의 힘을 알고 있는 탓에 쉽게 덤비진 못했다. 그 둘은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린 듯 보였다. 이때다!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 둘이 자신을 신경 쓰고 있지 않을 때 도망친다면 분명 도망칠 수 있을 것이었다. 번뜩이는 악마의 두 눈이 가늘게 뜨이고, 사신이 그녀의 앞을 더 바짝 막아섰을 때, 이술은 뒷걸음질을 치다가, 급히 골목 밖으로 뜀박질을 시작했다.
“안돼!”
사신은 소리쳤다. 하지만, 그녀를 잡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녀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허겁지겁 달려갔다. 턱까지 숨이 차오르고,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사방이 어둠으로 막혀있는 탓에 아무리 뛰어 봐도 같은 곳을 맴돌고 있는 기분이었다.
악마는 눈을 번뜩이며, 씨익 입꼬리를 당겨 웃었다. 멍청한 인간 같으니라고, 악마의 시선에 든 그녀를 잡기엔 이미 늦어있었다.